요약 인류는 극단적인 기후변화에 적응하면서 진화를 이루고 넓은 지역으로 퍼져갔다. 한때 인도네시아 토바 화산의 폭발로 멸종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아프리카 동부에서 살아남은 극소수가 다시 인구를 회복했다. 현대인류의 유전적 유산은 이 소수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동아프리카 열곡에서 갈라져 나온 알버틴 열곡<출처: (CC BY-SA) Christoph Hormann at Wikimedia.org>원본보기
인류사에서 동아프리카 열곡(裂谷, rift)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대륙이 이동하면서 이곳에서 두 개의 대륙이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다. 열곡에서는 오랫동안 불안정한 기후가 지속되었다. 기후의 불안정은 고통이기도 했지만 인류 진화의 동력이기도 했다.
인류 최초의 조상이 이곳 동아프리카 고산지대에서 출현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는 땅에서 거주하는 원시 영장류였다. 기후가 변해 숲이 줄고 초원이 확장되면서 이들의 생활 반경 역시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직립보행을 하면서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게 되었고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초기 인류는 힘이 센 포식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약점을 빠른 이동 능력과 숙련으로 보완해야만 했다. 이들은 먹이를 찢고 자를 수 있는 도구를 동아프리카의 날카로운 흑요석으로 만들었다. 또 동아프리카의 더운 기후조건을 견뎌야 했던 원시인류의 몸에서는 체모가 사라진다. 피부 노출과 더불어 증발냉각을 가능케 하는 땀샘의 형성이 체온을 유지하게 해 주었다.
원시인류의 출현과 기후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호모 속, 다시 말해 원시인류의 출현은 빙하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닷물이 얼어붙어 빙하가 만들어지면서 기후는 점점 더 건조해지기 시작했다. 동아프리카의 고산지대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사람과(Hominidae)의 동물인 호미니드는 두 갈래로 발전하게 된다. 한 갈래는 딱딱한 식물을 대량으로 먹어치울 만큼 힘이 셌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이며, 또 다른 갈래는 보다 연약한 인간인 호모 하빌리스이다. 180만 년 전쯤 동아프리카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호모 하빌리스의 후계자는 호모 에렉투스이다. 호모 에렉투스의 뇌 용적은 1,000cm3 이상이었는데, 이는 현대인류가 가진 뇌 용적의 약 70%에 해당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복원된 두개골원숭이와는 다르게 송곳니가 작고 덜 날카롭다.
<출처: (CC BY-SA) Durova at Wikimedia.org>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인간종을 대표하는 최초의 집단이었다. 이들은 100만 년 전쯤 아시아의 동쪽에 도달해 북경원인 또는 자바원인으로서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다.
자바 지역은 나중에 섬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기에 이주가 가능했다. 걷는 것만으로 아프리카에서 동남아시아까지의 이동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한 세대가 20km쯤 이동했다고 가정하면, 동아프리카에서 동아시아까지의 거리는 20,000년 정도면 극복할 수 있다.
원시인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과정은, 북반구의 빙하기와 아프리카의 강우량 증가로 대표되는 당시의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가 지속되면서 숲이 점점 확장되어 사바나 지역의 기후가 바뀌었다.
사헬 지대와 사하라는 풍부한 강수량 덕분에 비옥한 땅으로 변했다. 에렉투스 인구의 지속적인 유입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와 유사한 현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식생지대가 이동함으로써 호모 에렉투스가 혜택을 누렸던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극단적인 기후변화는 자주 나타났고 초기 인류에게 높은 적응력을 요구했다. 당시의 인간들은 열대우림에서 사바나로, 우기에서 건기로, 더위에서 추위로 반복해서 바뀌는 기후를 이주 또는 지역 차원에서의 적응을 통해 대처해 나갔다.
호모 에렉투스 여성의 얼굴상<출처: (CC BY-SA) John Gurche at Wikimedia.org>
동물들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면서 이주는 수렵인들에게 점점 더 유리해졌다. 유럽에서 사냥감들의 번식기와 에렉투스의 등장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주는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이러한 현실은 고도의 의사소통 능력을 요구하면서 초기 인류의 사고력 발전으로 이어졌다.
생각보다 낮았던 유전적 다양성
이처럼 변동하는 기후에 맞서 진화가 이루어지고 인류가 전파되었다는 가설을 기후변동에 대한 선택적 진화라고 부른다. 초기 빙기 동안에 기후의 변동이 매우 심했는데, 이러한 극심한 기후변동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류가 진화했다는 것이다.
동위원소 분석에 따르면 270만 년, 190만 년, 110만 년 전에 뚜렷하게 습윤한 기후가 나타났다. 이러한 기후는 약 20만 년 동안씩 지속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기간 동안 인간종들의 다양한 분화가 이루어졌으며, 각각의 습한 기후가 끝난 후에 뇌 크기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반복된 환경적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과 재적응 과정을 거듭하면서 보다 적응력이 강한 형태로 진화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후 고대 인류의 활동 범위의 팽창에도 기후변화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가 발견되고 있다. 특히 13만 5천~7만 5천 년 전 사이에 발생한 메가급 가뭄 동안 아프리카 호수 물의 95%가 감소했다. 이로 인해 당시의 고대 인류가 이주를 하면서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인류는 원래 아프리카에 살던 선조 집단과 유전적 차이를 나타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비슷한 유전자 풀을 공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흩어진 집단 사이에서는 이런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뚜렷한 유전적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
현생인류와 혼혈이 이루어질 정도로 가까운 원시인류였던 네안데르탈인<출처: (CC BY-SA) Photaro at Wikimedia.org>
그런데 놀랍게도 현생인류의 유전자 다양성이 놀라울 정도로 적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초기 인류가 사라지고 아프리카에서 다시 인류가 시작되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최초의 인류 멸종
전 세계로 퍼져나가던 인류에게 때아닌 재앙이 몰아닥친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인근에 있는 토바 화산이 지구 전역의 인류를 멸종 위기로 몰고 간 것이다. 73,000년 전에 폭발한 토바 화산을 우리는 ‘초화산’이라고 부른다. 1980년에 분출한 세인트헬렌스 화산이나 1991년에 분출한 피나투보 화산 같은 일반적인 화산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토바 화산의 폭발이 지난 200만 년 동안 지구에서 일어났던 화산 폭발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말 이 화산 폭발이 인류를 멸종 위기로 몰아갔을까? 토바 화산이 실제로 ‘초화산’이었는가? 규모가 얼마나 크고, 어떤 종류의 물질이 분출되었을까? 폭발로 인한 화산재가 지구기후에 어떤 영향을 가져왔는가?
최근 들어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얼음코어 분석이 이에 대한 해답을 들려주었다. 얼음코어 분석은 특정 사건의 발생 연대를 대단히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 과거의 기온과 강우량을 추정하는 데 있어 신뢰성이 아주 높다.
분석에 따르면 토바 화산의 폭발이 일어난 뒤 수십 년 동안의 얼음코어 속 산소 동위원소 비율은 지난 수만 년 동안 가장 낮았다. 즉 폭발이 일어나고 수십 년 동안은 약 2만 년 전 빙하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보다도 더 추웠다는 것이다. 기후학자들은 지구 전역에 걸쳐 평균기온이 16℃ 정도 하강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최악의 화산 폭발을 일으킨 인도네시아 토바 화산의 칼데라 호인 토바 호<출처: (CC BY) Visions of Domino at Wikimedia.org>
1815년 탐보라 화산이 폭발했을 때는 지구 평균기온이 단 1℃ 하강했다. 그럼에도 전 지구가 몸살을 앓았다. 3년 동안 북반구에 여름이 없었고 전 지구적인 흉년과 기근이 들이닥쳤다. 최초의 금융공황이 발생하고 발진티푸스 등의 전염병이 창궐했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폭동과 혁명이 발발했다. 그런데 평균기온이 16℃ 하강했다면 과연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토바 화산이 초화산이었다는 증거는 또 있다. 인도 전역에서 토바 화산의 화산재가 쌓인 두꺼운 퇴적층이 발견된다. 두께가 보통 1~3미터이고 심지어 5.5미터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이 정도의 퇴적물이 발견되려면 엄청난 ‘초화산’이어야 한다.
이런 초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는 지구의 기온을 낮춘다. 기온을 낮추는 것은 황 성분이다. 황 성분은 성층권까지 치올려져 태양광선을 차단한다. 우산효과로 인해 지구의 기온은 낮아지는데 그 성분이 많을수록 기온은 급격히 떨어진다. 수많은 양의 분출물이 대기 상공으로 치올려졌기에 기온이 급하강했을 것이다.
토바 화산의 폭발로 적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일수록 기온이 더 많이 떨어졌다. 강력한 빙하기의 도래로 유럽과 중국 북부에 살던 초기 인류는 아마 완전히 멸종했을 것이다. 더 온화한 지역조차도 상황은 절망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가급적 적게 미치는 지역에 살았던 인류만 살아남았을 것이다. 이런 지역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 바로 적도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한 고립된 열대 분지였다.
아프리카에서 다시 시작된 현생인류
초화산 폭발이 가져온 극심한 빙하기로 식량은 사라지고 전염병이 창궐했을 것이다. 인류는 기근과 질병이라는 두 가지 재앙 앞에서 무기력했다. 결국 적도 아프리카의 고립지역에 살던 소수의 사람들만이 인근의 살아남은 인류와 협력해 간신히 생존했을 것이다. 협력하지 않으면 변화하는 기후 조건에 적응할 수 없었고 그런 부족들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인류는 기후에 적응하면서 천천히 그 수를 회복해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46개인 인간의 염색체는 유전적 다양성이 놀라울 정도로 적다.
최근 과학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인간 유전체(게놈) 지도를 완성한 일이다. 모든 인종의 23쌍의 염색체 속에는 2만~2만 5천 개의 유전자가 들어 있다. 인간 유전체 지도는 인류의 유전적 뿌리에 관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해 냈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프리카에서 멀리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는 다양한 장소에 널리 분포해 왔다. 그럼에도 유전학자들은 현대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이 놀라울 정도로 적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유전자 풀은 그 어떤 곳보다 다양성이 풍부하다. 그러나 아프리카 이외 지역의 유전적 다양성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되는 유전자의 작은 부분집합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게놈 지도를 통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인류가 처음 세계 전역으로 흩어지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뭔가 특별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오늘날 인류의 DNA 속에서 그들의 유전적 특징들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이다.
일리노이 대학의 스탠리 H. 앰브로즈 교수는 그 원인을 기후를 기반으로 설명한다. 그는 73,000년 전에 발생한 토바 화산의 폭발로 당시 지구상에 살던 수많은 인류가 거의 멸종했을 것으로 본다. 겨우 수백 명 정도만 아프리카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현대인류의 모든 유전적 유산이 이 소수의 사람들에게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한민족의 조상도 아프리카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