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엊그제 부친상을 당한 동료직원을 돕기 위해 다른 직원과 같이 충남 예산 상가(喪家)에 다녀왔는 데,
요즘 이승에서의 생을 마치고 요르단강을 건너 저승으로 돌아가시는 분이 많다해요.
저승사자 따라 염라대왕에게 간다고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겠죠.
오히려 한여름 무더위나 한 겨울 엄동설한이 심할 때보다 봄 가을 환절기인 요즘 같은 때에
지병을 갖고 계신 분들이 지내기 더 힘들고 많이들 사망한다죠.
엊그제 밤에 차를 타고 지난 시내의 장례식장 몇 군데에도 장례를 치르시는 분들로 성황이던데...
다른 어느 곳 보다도 장례식장이 붐비는 건 별로 안 반가워요.
여하튼 병고의 아픔을 겪고 있는 환자분들이 쾌유하여 건강을 되찿고 행복한 생활을 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어제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2일 오전 10시에 직원 차를 타고 대전을 떠나 예산으로 향했어요.
구청이 있는 대흥동을 떠나 대전천변 도로를 이용하여 유성쪽으로 갔지요.
평일 낮시간이라 그리 많이 붐비진 않았는 데, 유성에서 공주 동학사방향 32호선 국도로 들어서니 차가 밀리더라구요.
계룡산 단풍구경 가는 분들이 탄 차가 도로를 메워서, 천천히 갈 수 밖에 없었죠.
시간여유가 있는 분들이야 주말 연휴때 보다 한적하게 구경할 수 있어 더 좋으셨을거여요.
그래도 공주시 반포면 동학사입구 삼거리를 지나니 교통량이 줄어서 제 속도를 낼 수 있었죠.
간간히 속도감시 카메라가 있어서 과속을 할 수 없었지만,
규정속도를 준수하면서 잘 갔어요.
이어서 금강이 나타나고, 같이 가는 직원께서 이곳의 “공주 칼국수” 맛이 끝내주게 좋다며 언제 한번 금강변에 와서 칼국수 맛을 보자고 하였는 데...
그날이 언제나 오려나...?
공주읍에서 예산방향으로 계속 직진을 하였죠.
계룡산, 공산성은 물론, 인근의 이름 모르는 나지막한 산에도 단풍이 많이 들었어요.
공주시 우성면, 사곡면을 지나다 보니, “당진⇔상주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던데,
이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제 처가인 상주에서는 물론이고,
대전에서도 서해안 가기가 지금보다 훨씬 수월해 질 거여요.
그때는 저도 별 부담없이 남당리 대하축제나 전어축제 같은 행사에 다녀올 수 있겠죠.
32번 국도로만 계속 직진해 가니까 , 수리치골 성지가 있는 공주시 유구읍을 지나니 고갯길 위에 “차동휴게소”가 있는 데,
이 “차령고개”가 공주시 유구읍과 예산군 신양면의 경계이더라구요.
제 처가가 있는 용화를 가다보면,“활목고개”가 있는 데, 이 고개는 경상북도 상주시와
충청북도 보은군을 나누는 도계(道界)랍니다.
그러니까, 용화는 행정구역상으론 경북이지만, 충북하고도 엄청 가까워요.
사실, 속리산을 자주 오르는 분들이 보은으로 많이 다니시지만,
속리산 문장대가 엄연히 경북 상주 땅에 속해요.
그러니까 제 처갓 동네 뒷산이 속리산인 셈이죠.
아고, 예산 이야기가 용화이야기로 흘렀네요. (죄송~!!!)
다시 원위치.
저희는 차동휴게소에서 자동차를 세우고, 화장실에 들렀다(화장실 들른 이야기는 안해도
되겠는 데... 그치요? 헤헤헤) 휴게소 매점에서 따끈한 커피를 한잔씩 했어요.
설탕과 프림 마음대로 넣어 먹을 수 있는 셀프커피 한잔에 일금 600원.
날씨가 서늘하고, 갈 길이 바쁜 탓에 10분간 휴식하고는 다시 출발했어요.
예산읍을 향해 가는 데, 대흥면에서 도로표지판에 “의좋은 형제 기념관”인가 눈에
띄이더라구요.
우리 님들은 초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 나왔던, "의좋은 형제“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형과 아우가 서로를 생각해 몰래 벼나락 짚단을 옮겨 주다가 중간에 만났다는 이야기죠.
저는 이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실화라는 걸 알게 되어 작년(2004년) 11월 26일 글에서
소개했었습니다.
제 본당(만년동성당) 사이트에서 함 확인해 보세요?
어디 찿아보길 귀찮아 하시는 님들을 위해 일부분을 발췌하여 아래에다 소개해 드리겠어요.
-저, 참 친절하죠? (ㅎㅎㅎ)-
오늘은 11월 4일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업무 때문에 바쁘겠어요.
출장을 계속 나가야 겠는 데, 오늘 글을 가입한 카페(사이트)에 모두 올려 드릴 수 있으런지...?
내일과 모레에도 기쁜 일 많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월요일(7일)에 뵙겠어요.
아래의 글은 2004년 11월 26일에 제가 그당시 가입해 있던 인터넷 카페(사이트)에 올렸던 글입니다.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였으니 전문(全文)을 보시려는 분은 볼 수 있는 곳에서 더 찿아보아주시길...
감사합니다. (넙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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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원님들은 초등학교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의좋은 형제” 이야기를 아시는 지요?
시골에서 벼농사 짓는 형제 간에 형제애가 돈독하여, 서로의 어려운 형편을 생각해
농사지은 벼나락을 한밤 중 늦은 시간에 서로 형과 동생네 집에 옮겨주다 중간에 길에서
만났다는 야그 입니다.
그런데, 이 국어책 이야기가 전설이 아닌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라해요.
때는 조선시대 연산군 시대(代)에.
우리가 연산군을 폭군이었다고 폄하 하지만, 그래도 그때에도 이렇듯 아름다운 일이
있었다는군요.
하긴, 민초들의 삶은 그때나 다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런지...
연산군시대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이란 곳에 살던
"이성만, 이 순" 형제가 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이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마을에선 “의좋은 형제” 기념 비각도 세웠고, 동상도 만들었다죠.
이 이야기가 앞으로는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등장할 거라는군요.
“의좋은 형제” 이야기는 지금 시대 청소년에게도 감동을 주는 얘기죠.
요즘같이 너나할 것 없이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을 따지는 시절에 그리워지는 옛 인정이지요.
지금은 형제 자매간은 물론, 부모 자식 간에도 재산문제에 여러가지 가사문제로 송사(訟事)를 하는 사람이 있다니 말입니다.
어렵게 살아도 행복을 느끼며, 안분자족(安分自足) 하면 최고라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자기 분수를 알고 만족을 느끼며, 자기 가정과 이웃, 사회, 더 크게는 나라발전을
위해 애쓴다면 교도소도 필요 없게 되려나요?
그럼, 교도소에 백기를 날리고, 직원들은 쉬라 하겠지요?
할일 없으니 집에서 몽땅 쉬라고 하면 곤란한데... (ㅎㅎㅎ)
하긴, 그런 일은 절대 없겠지만요. 안 그래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고 따 먹은 후로 부터 지금껏
"선과 악"은 항상 있어온 게 아닐지...
여러분께도 오늘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회원님들 모두 화이팅!!!
첫댓글 울삼실에도 부고가 하루가 멀다하고 뜨더군요..님도 조은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