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이라는 것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양지마을에 전원주택이 있고, 그 옆으로는 선사시대 유적지가 있다. 전원주택은 모두 단층으로 되어있으면서 너른 마당을 끼고 있어서 각종 화초를 가꾸는 그야말로 꽃 같은 주택이다. 선사시대 유적지엔 땅을 파고 갈대 등으로 덮개만 올린 움집 군락지가 있다. 이 둘을 함께 둘러보노라면 현대인과 원시인의 생활상을 한눈에 보는 듯 묘한 감정이 인다.
현대의 주택 종류엔 크게 나누어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이 있고, 단독주택엔 단독주택, 다중주택, 다가구주택, 공관이 있으며, 공동주택엔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기숙사 등이 있다.(대한건축학회 건축용어사전에서)
나는 이중에서 단독주택에 이어 연립주택에 거주하다가 현재는 도심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한적한 교외로 나가 다시 단독주택에 거주하고 싶지만 딸과 손주들이 딸려있어 마음 뿐이다.
연립주택에 거주하던 70년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부동산 투기 열풍이 거세게 불었는데, 중랑천 변으로 루핑가옥이 따개비처럼 붙어있었고, 잠실벌로는 대단지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리라는 뉴스가 화제였다. 이때 나는 연립주택에서 벗어나 아파트로 이전하리라는 생각이 굴뚝같았는데, 그래서 중랑천 변으로 내달았다.
당시 루핑가옥 하나가 5만 원에 거래되었다. 그걸 열 개를 사서 가지고 있었다. 장차 잠실벌 아파트가 건립되면 입주권과 교환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던 거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뒤에 잠실아파트 건립계획이 발표되고, 중랑천 변 루핑가옥을 모두 철거한 뒤에 그 입주자들에게 아파트 입주권을 준다는 거였다. 그야말로 대박이었던 거다.
그러나 그게 호사다마였다. 루핑가옥을 나에게 판 사람들은 이를테면 전세를 낸 사람들이요, 입주자들은 전세를 든 사람들이었으니, 입주자들은 그냥 맨손으로 쫓겨날 판이었던 거다. 마침내 루핑가옥이 강제 철거되고, 그들은 쫓겨났으니, 그들이 나에 게 찾아와 하소연하는 거였다. 입주권을 달라고, 그것 참!!
그래서 그들의 사는 모습을 직접 가 보았는데, 봉천동 달동네에 땅을 파고 루핑으로 벽과 출입문을 달아 살고 있었다. 마치 선사시대 움집처럼 말이다. 이게 현대에 인간이 사는 모습인가? 하여 심한 자괴감이 들었다. 하여 그들로부터 5만 원을 받고 아파트 입주권을 돌려줬다. 나야 5만 원에 샀다가 5만 원에 판셈이어서 기간이자는 생각할 것도 없이 손해는 안 봤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지냈던 거다.
암사동 양지마을에 가면 전원주택단지가 있고, 그 옆으론 선사시대 움집 유적이 있는데, 나는 전원주택에 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20세기에 기원 전 4천 년대 선사시대의 움집 같은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보았기에 지금 현재 행복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루핑 : 부직포에 아스팔트 찌꺼기를 입힌 것
양지마을 전원주택
첫댓글 루핑 가옥 ㅎㅎ 오랜만에 듣는 단어 입니다.
어린 시절 루핑 집에서 살았던 기억을 자아내게 합니다.
흙벽에 돌멩이가 들어 있는 집
아버님의 사업실패로 이사 간 집이 ......
그래도 그 집을 생각하면 웃음꽃이 피어난답니다.
부모님과 함께 한 삶 형제들과 꿈을 향해 나아가던 시절들이었으니까요
선배 님의 글을 읽으며 지난 시절들을 돌아보며 추억에 젖어 봅니다^^
귀공자처럼 생긴 희정님이 루핑가옥에 살았었다고요?
어린시절엔 고생도 많았겠네요.
그래도 지금은 서울에서 번쩍 부산에서 번쩍 하니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해야할까요?
그것도 지나간 추억이니 많이 반추하면서 웃고 웃고 지내세요.
저도 오래전에 선사 유적지 가봤어요 올림픽 공원에도 유젹지가 있지요
루핑 가옥 ? 첨 들어 봅니다
착하시니까 그냥 본전에 넘기시고 혹시 조금은 후회 하지 않으셨나요 ㅎ
도심만 바라봤으면 모를 수 있겠네요.
후회보다 내가 그렇게 치부해야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죠.
오랜만에 루핑이란 단어 들어 봅니다
예전에 하꼬방들 지붕은 대충 루핑이었지요
미국에서도 루핑으로 지붕 많이 덮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루핑이지 않을까
루프가 지붕이고, 루프탑이 옥상이지요
옥탑방도 루프탑이라고 하구요
좋은 일 하셨네요
복 받으실겁니다
저는 어려서 일본인 들이 지은 관사
그 다음엔 한옥, 양옥집에서 살았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아파트로 옮겼지요
저는 아파트가 좋습니다
편리하고 보안이 좋구요
무엇보다 주차가 편리하니까요
그게 루프, 영어에서 왔을겁니다.
주택난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죠.
루핑 가옥 첨들어봐요.
결혼전엔 양옥집에서살고 결혼후엔 쭉 아파트에만 살고있어요.
오늘 하나 배웠네요
루핑가옥~ ㅎ
그게 7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있었죠.
큰 하천은 고용이고 그 둑도 공용이니까 무주택자들이 너도나도 그곳에 루핑으로 집을 지어 살았죠.
판자촌보다 더 열악한 주거환경이었고요.
어서 오세요 도반님
저는 중곡동에서 대지 130평 되는 단독주택에 살았고
지금은 경치따라 하남 아파트에 사는데 전 편하고 좋은데
손주는 할머니 옛집이 좋았는데 하는 것을 보면 저도 단독주택이 좋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건강하십쇼
하남도 좋지만 대지 130평이면 그게 자신이 가꾸는 땅이니 얼마나 좋아요.ㅎ
그런데 그것도 누려보고나면 아파트도 좋죠.
선사시대의 유적지와 현대인의 주택,
집의 차이는 주거자의 욕망의 차이이기도 하죠?
겨우 목숨만 유지하기 위한 보금자리와,
무한한 욕망을 누리기 위한 삶터...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생각도 들지요.
사실 집이 편안하면 나가지 않게 된답니다.
미국의 어떤 거부는 자기 빌딩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살다가 삶을 마쳤다고해요.
전 64년도에 부모님 따라 고향 공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습니다.
오래 전 서울은 밭 가운데 움막집을 짓고 살거나
하천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서울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매우 많았었던 그런 시절이었었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
공주라 하셨나요?
제가 59년도부터 62년도까지 공주에서 학교다녔는데요.
금학동에서 하숙하고
반죽동에서 자취도 하고~
64년도라면 서울도 주거환경이 참 어려웠지요.
물차도 다니고요.
참 많이 좋아졌어요.
@도반(道伴)
전 공주시는 아니었고 꽃피는 산골에서 살았었습니다
요즘 제 고향 중학교 자리에 대규모를 자랑하는 힐스포레라는 큰 건물이 들어 섰습니다.
의정 건물도 있는 큰 카페들 하며 풀빌라도 있어 사람들이 꽤나 많이들 모이는 것 같더라구요. ^^~
@수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