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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중국사 [삼국지]유선(후주)은 어리석은 인물인가????
바실리우스 2세 추천 0 조회 1,245 08.02.02 00:39 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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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2.02 01:38

    첫댓글 --;;;;; 끌려가서도 즐겁게사시는 유쾌한 그분..

  • 08.02.02 13:09

    정말 캐동감.ㅋㅋㅋ 보고 엄청 웃었음.ㅋ

  • 08.02.02 02:32

    정말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네요.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분수를 알고 조용히 뒷자리로 넘어가 있을수 있는것도 어찌보면 대단한 능력이라 생각됩니다.

  • 08.02.02 03:14

    딱히 대단하기 보다는 보신의 달인이겠지요-_-a 실제로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 모습 때문에 천수를 누리가 갔으니 말이죠;;;; 사실 난세에 능력없이 높은자리에 앉는것은 자살행위라는 점을 감안 해 볼때(예 : 루이 16세) 그것도 나름 능력은 능력인것 같습니다;;;;;;;

  • 08.02.02 10:38

    난세에 자기위치에서 살아가는 방법중의 하나겠지요ㅋ 황제라서 그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점...마지막에 환관들에게만 휘둘리지 않았다면(정사도 그런지 모르겠지만요) 더 괜찮았을텐데요 ㅎ

  • 08.02.02 12:56

    음..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안나는데 정사의 진수왈이 유선이 흰실과 같다고 했었죠. 딱 맞는듯

  • 08.02.02 13:00

    동감합니다;;;애초에 가뜩이나 제일 약한 촉나라(아마 오나라의 반, 위나라의 1/4 국력이었다죠?)로 천재,영웅이 아닌 사람으로써는 할수 있는 최선을 보여줬다 생각되네요;;

  • 08.02.02 15:42

    가늘고 길게 산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인물~!!

  • 08.02.02 18:36

    보신의 달인이긴 하지만 동시에 나라 말아먹은 암군입니다. 제갈량이 구축해 놓은 국가 시스템은 그 당시로서는 효율성의 극치를 달리던 수준이고(인구 120만대 국가가 상비군을 12만 이상 유지해내면서 국가가 오히려 부강해지는 수준이란거, 도저히 상상이 안가는 레벨입니다.) 이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해낸 게 장완이죠. 그런데 장완 사후 유선이 직접 정사를 돌보고 나서부터 시스템이 혼란스러워 집니다. 대표적으로, 제갈량이 단 한번(유비 사후), 장완이 단 두번(제갈량 사후, 황후 사후) 사면을 실시하는데 장완 사후 이러한 사면이 아홉번 실시됩니다. 23년간 3번 있었던게 17년 동안 9번 있었단 소리죠.

  • 08.02.02 23:48

    그러고보니 그렇습니당.

  • 08.02.02 18:45

    여기다가 장완 사후 그나마 나라를 잘 이끌던 비의가 암살된 이후엔 한낱 환관이었던 황호가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동궐, 제갈첨, 번건 등 나라를 이끌 위치의 인물들을 날개 잘린 새로 만들어버렸고, 한 나라의 최고사령관인 대장군이라는 강유 또한 군권의 절반도 통솔 못하며 황호를 두려워해 답중으로 몸을 피해야 했을 지경에 이르릅니다. 누구 때문이죠? 유선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법도 이상의 후궁을 들이는 등 삼국 중 국력이 제일 약한 국가의 황제로서 모범을 보이지 못했죠. 막판에도 강유가 제안한 방어를 황호 말 듣고 무시해 버려 나라를 말아먹습니다.

  • 08.02.02 22:41

    촉의 인구 대비 격차는 위의 1/4이지만 실제 국력 격차는 그보다 훨씬 심했습니다. 선봉 5천만 궤멸당해도 전군을 퇴각시킬 정도로 군사의 수가 형편없었던 촉에 비해 위는 북방 유목민족과 오를 견제하면서도 15-6만의 병력을 대촉전에 집중시켜 장기전을 펼칠만큼 여유가 넘쳤지요. 제갈량이라는 통치의 천재가 있었기에 그나마 4-50년을 버틸수 있었지, 웬만한 인재가 국가경영에 최선을 다할지라도 촉의 패망은 예약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유선이 위황제였다면 나라를 좀 어수선하게 했다는 비판을 받았겠지만, 무난하게 넘어갔을 겁니다. 위나 오라면 흡수할 수 있었던 타격도 촉에게는 회생불가능할 정도로 촉의 기초체력이 약했던겁니다.

  • 08.02.03 00:37

    제가 하고싶은 말이군요;;;동감;;

  • 08.02.03 11:55

    별로 기초체력이 약하지는 않았습니다. '선봉 5천만 괴멸' 이라고 하지만 그시대에 5천이 날라갈 정도의 패배라면 그건 엄청난 대패입니다. 사마의가 작정하고 덤볐다가 노성에서 전사자 3천의 패배를 당하는데 이게 대패 소리를 듣지요. 10만에 달하던 조휴군이 육손에게 합비에서 참수-포획 합쳐서 1만이 날라가자 부대 전체가 궤멸되고 이 구멍을 메꾸려고 관중에서 부대 빼서 채워넣고 하는 등 난리가 났었기도 하고. 물론 위의 황제였다면 위는 어찌 버텨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기본체력이 좋으니까. 하지만 암군인 건 마찬가집니다. 환녕제 두 암군 치세의 결과가 서한 멸망이란 걸 생각해 보면 결국 위를 멸망시킬 가능성이 농후하죠.

  • 08.02.05 15:00

    오나라와 촉이 버틸수 있었던건 국가 시스템적 영향보다는 촉의 산과 오의 장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스템적 영향이 받쳐줘야 그것도 이용할 수 있겠지만, 지형적 유리함이 먼저고 시스템이 나중입니다. 만약 촉과 오가 중원 벌판에 자리잡았다면 시스템이고 뭐고 금방 쓸려버렸을 겁니다. 그리고 상대가 되지않는 국력차에도 북벌을 추구하고 연이어 실패하는 제갈량도 결국 촉의 국력을 깍아먹는데 한몫한 셈이죠. 차라리 북한처럼 국토의 요새화를 추구하는 방안이 더 옳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 08.02.06 20:15

    상대도 안되는 국력차라... 그런데 대규모 북벌때마다 매번 성공 직전까지 갔죠. 한번은 마속 삽질로 망하고(근데 지형의 영향과 왕평의 대처로 인해 피해는 안컸다는), 두번째는 이엄의 농간질로 돌아오고(돌아오면서도 장합 킬), 마지막은 제갈량 자신이 과로사. 전체 북벌로 따져도 제갈량 자신의 실패라 할 건 진창 공략인데, 이것도 동원 규모부터 적으며(유일하게 '수만' 이란 평가. 즉, 5만 이하. 다른 북벌은 최소 8만 이상인데.) 촉군의 중추를 맡은 장군들 또한 참여하지 않았고(제갈량은 정예병은 전부 실전을 맡은 장군들에게 넘기고 직속부대는 신병 및 요새로 따지면 관심사병과 문제아들로 편성합니다.) 돌아오면서도 요격나온

  • 08.02.06 20:20

    위군을 격파합니다. 목적부터가 '장안 한번 찔러봐서 유동적인 정세를 다시 이쪽으로' 여서 말이죠. 그리고 국력소모... 촉한에 대해 다른나라의 풍년이 우리의 평년이고 다른나라의 평년이 우리의 흉년이니 우리를 천하의 곡창이라 부른다는 발언을 한게 대표적 반북벌파인 초주의 발언이었죠. 제갈량의 치세에 대해 당대, 그리고 후대의 평가는 일치합니다. 그렇게 북벌하면서도 오히려 국력을 강하게 했다, 이거죠.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되는 거 같은데, 실제로 그랬다고 그시대 사람들이 그러고 있으니 그런갑다 할수밖에는 없습니다. 제갈량이 본좌는 본좌죠.

  • 08.02.07 10:34

    촉이 위치한 사천성 일대는 험준한 산악지대 즉, 산골짜기 동네라기 보다는 산으로 둘러 쌓인 거대한 분지에 가깝습니다. 거기에다 주변에 큰 강이 많아 습하지요. 온난한 기후에 풍부한 수량, 비옥한 토양등 농업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기에 촉의 농업생산성은 높은 수준입니다. 덤으로 철과소금도 풍부한~.~(유비도 손권도 괜히 촉을 노린 것이 아닙니다)

  • 08.02.07 10:36

    그러나 삼국 말기이면 이미 화북지역도 안정을 되찾아 생산성이 향상되고 인구도 증가하며 인사들도 평화와 안식을 찾아 남으로 남으로 유랑하지 않게 되니 국력의 격차가 커져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죠. 제갈량 본인도 이러한 현실을 우려하여 기회만 되면 북벌을 감행하려 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08.02.12 13:33

    성공직전까지는 성공이 아니죠. 나폴레옹도 성공직전까지갔죠. 제갈량의 전술이나 병력구성은 어찌되었든 결과는 장안까지도 못갔다는 겁니다. 어느모로보나 장안공략은 부분적 전술성공은 있을지 몰라도 전략적 실패입니다. 제갈량의 치세가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진 않습니다. 아무리 정치를 잘해도 전쟁은 국력을 깍아먹는 존재라는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촉의 현재 생산성과 그 당시의 생산성의 개발비율은 차이가 많이 날거라는 겁니다. 당시는 인구도 적었거니와 생산량이 뛰어났다고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촉의 북벌시에 이용할 물자도 넉넉한편이 아니였으니까요.

  • 08.02.16 18:32

    제갈량의 목표부터가 장안이 아닙니다. 옹양주를 접수, 총체적인 국력 자체를 위보다 강하게 하겠다는 거에요. 거기다가 북벌 실패에서 제갈량에게 책임이 있는 건 1차(인사실수) 한번입니다. 나머지는 성공(음평,무도 접수) 또는 후방의 교란으로 인한 실패(이엄의 농간), 비김(진창) 정도군요. 5차는 성공 직전까지 갔다가(옹주 절반을 안싸우고 그냥 꿀꺽해버릴 수 있었음. 그걸 저지하려면 사마의가 공격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촉군의 전투력이 막강하고 오장원의 지형이 방어에 실로 훌륭.) 자신의 사망으로 철수. 실패라기엔 뭐하죠.

  • 08.02.16 18:37

    여기다가 제갈량은 국가의 생산력 증가에 온힘을 다했습니다. 촉한 곳곳에 저수지를 개발, 한중에 8만 둔전병을 투입하여 유비 사망 직후에 비해 생산력이 두배 이상(한중대전으로 초토화된 한중이 제갈량 사후 10년 뒤에 파촉 본토와 맞먹는 생산력을 확보하게 되니까.) 가까이 끌어올리는 기적같은 일을 해내거든요. 유비 입촉 이전의 파촉+한중 생산력과 촉한의 생산력을 비교해보면 촉한의 생산력이 압도적입니다. 촉한 말기, 유선-황호 막장질로 황폐화되고 위의 촉한 침공-종회의 난으로 초토화되며 나헌의 대오전쟁까지 치뤄내 놓고도 진의 오 공격군 20만의 물자가 대부분 구 촉한땅에서 공급됩니다. 그만한 생산력이 있다는 소리죠.

  • 08.02.17 23:42

    제갈량 북벌에 대한 총책임자인 이상 어떤 실패든 책임을 져야합니다. 자기가 잘했든 못했든...그리고 삼국시대 당시 촉의 생산량에 관한건 이렇게 말해주시는 것보단 논문이나 정확한 사료,통계가 있으면 제시해주시는게 더 좋을것 같습니다.

  • 08.02.19 18:39

    '모든 강역 내의 평원과 물가가, 가까이서 멀리까지 모두가 좋은 논밭이 되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잠, 말, 면, 낙의 네줄기 강물이 토지를 비옥하게 적시며, 작은 수로들이 마치 인체의 혈맥처럼 조밀하게 펼쳐져, 논밭은 비단의 무늬처럼 이리저리 배열되어 있다. 기장과 고량, 쌀이 무성하게 자라 빛깔이 뚜렷하다.' -좌사 우리 나라는 다른 곳의 평년이 우리의 흉년이오, 우리의 평년이 다른 곳의 풍년이니, 천하가 우리를 천하의 곳간이라 부른다."-초주 수치나 통계는 사실 남은 게 별로 없습니다. 종회의 난으로 수도가 15일간 싸그리 타고 기록이네 뭐네 하는 게 별로 안남았거든요.

  • 08.02.19 18:43

    덕분에 황제 사위, 외척쯤 되고 거기장군자리까지 올랐던 인물들도 열전 하나 안남고 위세등등하던 인물에 행적이 별로 안남았다고 한탄이 나오죠. 그래도 없는 기록과 남아있는 유물, 유적등을 조사하면 추정 가능합니다. 생산력 관련 기록이라면 소금 전매기구 '염부' 설치, 도강언 유지보수 및 전문기구 설치, 산하언 개축 , 이외 유주언, 오문언, 양전언(모두 전, 후한 시대에 신축) 개축, 한중으로 남중의 오부五部 1만 호와 특수부대인 연노사(원융노병) 가족 3천 호 이주, 제방설치- 성도 서부 - 총 9리에 달하는 길이로 군사적 방위 및 홍수 방지 목적 동시 충족 등이 있군요.

  • 08.02.19 18:46

    그리고 제갈량은 엄연히 자기 책임에 대한 건 책임을 물었습니다. 1차 북벌 실패때 자신의 관직도 3단계 깎았죠. 이엄의 이적질에 대한 건 제갈량에게 함부로 말하기 힘듭니다. 이엄은 익주파의 수장이자 제갈량과 함깨 탁고유신인 촉한의 넘버 2. 인사책임을 물으려면 유비한테 물어야 되죠. 그래도 이때 사건으로 분노한 제갈량은 고위 공직자들의 서명을 받아 이런 거물을 파면시킵니다. 반대로 말해 그정도 노력이 있어야 처리 가능한 거물이었단 말이죠. 그외 무엇에 대해 책임을 묻죠? 비긴 2차 북벌? 성공한 3차 북벌?

  • 08.02.09 07:42

    아 갑자기 삼국지 삘받았네.. 빨리 시디 찾아봐야지 ㅡ.ㅡ~~

  • 08.02.09 16:00

    고우영의 삼국지에서는 참 특이함

  • 08.02.10 17:45

    거기서는 약간 좀 모자라는 인물로 나오더군요.

  • 08.02.18 00:09

    촉이 망한 이유중 중요한 한가지는 촉의 사상(제갈량, 동윤, 비위, 장완)뒤를 이을 인재가 없었다는겁니다. 국가의 헤드가 사라지니 밑에놈들과 환관들이 날뛰고 강유를 제어하지 못해서 무리한작전으로 인해 국력을 피폐하게 만들었죠. 유선은 가만히 있어도 모자랄판에 죽기 살기로 싸워서 겨우 위에 방어군을 박살낸 강유를 불러들여 농서와 장안을 차지할 마지막 기회를 없애버렸죠. 그래서 후주인 유선이 바보의 대명사가 되어버린겁니다. 그뒤 강유가 장익과 요화로 하여금 음평교와 무도를 지키게 하라는 충고를 내렸으나 무시함으로써 촉은 등애에게 망하게 되었으니 바보도 이런 바보 군주가 없죠 -ㅅ-;;

  • 08.08.21 10:08

    촉이 망한이유를 가르쳐 드리지요. 삼국지 정사를 보면 제갈량은 조진 에게 패퇴한 분입니다. 그리고 실제 적벽대전에 촉나라는 그어떤 관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갈량은 내정적으로 엄청난 위인 이었슴죠. 그리고 북벌중 후주가 공명을 호출한 것은 나관중 씨가 제갈량 똑똑하게 보이려고 한 행동입니다. 정사에는 그런말이 전혀 되있지 않습니다. 아참 본론 가죠 제갈량이 죽고 윗분말처럼 대의를 이을 인제가 없었다는 점 입니다. 나라 말아먹은 사람은 후주가 아니라 백약 입니다. 주체하지 못하는 싸움 정신으로 9번 북벌에 나서고;.... 중요한건 위나라가 엄청난 국력을 가지고 있엇습니다. 촉 오 연합군도 대적 못할정도 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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