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호리 2호분 출토 찰갑에 대한 관련 내용으로 검색하던 도중 우연히 찾게 되어 제보 겸 적어 봅니다.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발간한 "마북리 백제 토광묘 보고서" 에서 찾은 내용입니다.
첫번째는 두정갑편으로 추정되는 철제 유물입니다.
"도면19 1호구들 출토유물 , 62(66) 설명
⑮ 철판(도면19-11, 사진24-⑩)
고래 2의 바닥면에서 출토되었다. 두께는 0 . 2 c m정도이고 형태는 장방형이다. 좌측 하단부에 못이 2개
확인되는데 못 머리의 지름은 1 . 1 ? 1 . 2 c m정도이다. 이 면에서는 초본류의 흔적이 관찰된다. 길이 8 . 6 c m
폭 6.0cm, 무게 4 5 . 0 g
철판(도면19-10, 사진 24 -⑨)
고래 2의 나무뿌리부근의 교란부에서 출토되었다. 두께는 0 . 2 c m이고 형태는 장방형이다. 좌측 하단부에
서 못이 1개 확인되며 못 머리의 지름은 1 . 0 c m이다. 길이 7.8cm, 폭 5.0cm, 무게 3 4 . 0 g
철판(도면19-12, 사진24-⑪)
고래 2의 바닥면에서 출토되었고, 두께는 0 . 2 c m 정도이다. 우측 하단부에서 못이 1개 확인되었으며 못
머리의 지름은 0 . 8 c m정도이다. 현 길이 4.7cm, 폭 5.0cm, 무게 1 8 . 0 g "
관련 도면과 사진
두번째는 두정갑, 혹은 감투형투구의 부품으로 추정되는 청동제 유물입니다.
"3 1 청동판 (도면 43-1, 사진 3 9 -①)
Ⅱ구역에서 수습되었다. 용도미상으로 두께는 0.1cm 정도이다. 앞·뒷면에는 못으로 추정되는 장식흔적
이 남아있다. 현 길이 12.9cm, 현폭 5.6cm, 무게 2 7 . 5 g"
관련 도면과 사진
철편은 두정철갑 갑편 청동판은 투구부품(차양, 미간부, 근철 등)으로 추정됩니다.
철편들의 경우 두정철갑 갑편유물과 매우 유사하며 이완장군 유물과는 달리, 곡률은 없습니다.
청동판의 경우, 임란당시 활동한 정공청 장군 투구유물의 철제인 지판을 제외한투구부품 중 황동혹은 청동으로 만든 금속부품(근철,대철,차양,미간부 등)이 쓰였고, 연결용 원두정이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유구의 연대 궁금. 임란당시 용인전투또는 병자호란 당시 광교산전투 관련 유물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정황상 용인전투 당시 무질서한 퇴각 과정에서 급하게 유기한 것은 아닌가 추정해 봅니다. 그렇지만, 광교산 전투는 승리한 전투라 멀쩡한 갑주를 유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임진산성 유물과 함께 묶어 보는 것 도 좋을 것 같습니다.
토광묘가 발굴된 일대의 유적들이 발굴된 지역 일대를 마북산포지3 이라고 합니다.
지도는 마북산포지3 기준 광교산과 임진산성터(현재 파괴됨, 수지 삼성래미안 5차, 6차 아파트단지, 녹십자 일대)와의 거리 비교를 보여주고있습니다. 화면에 나온 것 처럼 매우 가까운 거리인 것 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무질서하게 후퇴했던 당시 상황에 비춰볼때, 퇴각도중 해당 지점에 유기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봅니다.
주소는 마북동408-1 마북리산포지3 으로, 위 보고서의 유적위치와 동일한 곳 입니다.
ps. 보고자 분들 중에 조선시대 갑주에 대해 아는 분이 없었나봅니다.
대놓고 "내가 두정갑이오" 하는 유물을 그냥 '철판'이라 하다니...;;;
ps.2 임란당시 유물이 맞으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의-두정형 갑옷의 실물유물이 되겠네요. 복원을 염두해 둔다면, 정공청, 정충신 장군 유물과 연계하여 복원하는 방법을 고려해 보는 것 도 좋을 것 같습니다.
ps.3 해당 유물 출토 위치가 소설좀 쓴다면 임진산성에서 탄천따라서 열심히 도망가다가 시야에 잘 안들어오는 언덕아래 있는 집안혹은 집터에서 한숨 돌리고 이것저것(무거운 무기라던가 장비라던가;;) 버리고 갈만한 거리와 위치입니다. 참고로 갑찰과 도자조각이 발견된 위치는 방고래 바닥면과 나무뿌리로 인한 교란층입니다(구들장을 열고 그안에 갑옷을 넣고 다시 덮어놓고 간 것 같습니다.).
ps4. 이상한 점은 방구글장을 열고 고래에 넣어놓고 도망갔다면 왜 갑찰편이 몇점밖에 남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나중에 집주인이나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는 구들장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뒤져서 대부분의 갑찰편은 도로 꺼내가고 미처 꺼내지 못한 몇점이 남은걸까요? 동래읍성 찰갑처럼 온전히 남았다면 좋았을 것을...
ps.5 고대찰갑시리즈 연재는 제작기법에 대한 자료가 부족한게 있어 미루고 있습니다-_-;;; 빠른시일내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출동해 자료를 보강해서 연재를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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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및 출처:
경기문화재연구원,(주)한국델파이,(2005),『마북리 백제 토광묘 보고서』서울 EMS테크센터’부지내 발굴조사보고서, 경기문화재연구원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젤레돈님은 제 블로그(뇌입원)에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헉 우리집 근처네요. 발굴 위치 등을 토대로 그 당시 상황 추론한 게 참 재밌네요. 전투에서 패하고 달아나다 한숨 돌리고 무거운 것 버리고 달아난다라~ 갑옷 입고 산길 3km 구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글이 너무 수준이 높아서.. 오히려 댓글이 적어버린 상황!
도망치던 순간에는 살기위해 갑옷을 벗을 새도 없이 도망쳤는데 적이 안 보이는 언덕 즈음에 이르러서 무거운 것 들을 다 버리고 간 것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지도를 통해 경로를 파악해 볼 떄 탄천변을 따라서 도망갔으니 생각보다 길이 험하진 않았을 겁니다. 막판에 언덕에 위치한 곳이긴 한데 그건 얼마 안되니까요.
굳이 비유하자면 방탄복입고 개천변을 따라 5km단축 코스의 반정도 되는 거리를 달리기 했다고 해야될까요? -_-;;;
저야 전공자도 아니고 수준이야 뭐;;; 좀 생소한 자료들이라 그런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