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환에 치명상 입은 기린 한 마리 기어이 사하라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황혼 무렵이었습니다. 기린들이 하나씩 둘씩 그 주검 앞에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깊이 수그렸습니다.
그 신기루 속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때 카톡이 울렸습니다,
지인의 별세 소식과 함께 계좌번호가 떴습니다.
-『세계일보/박미산의 마음을 여는 시』2022.11.08. -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황혼 무렵 사하라에서 인간이 쏜 탄환에 기린 한 마리가 기어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기린들이 그의 주검 앞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길고 긴 고개를 깊이 수그려 애도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는데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태원 압사 사고로 찬란하게 찾아온 가을이 그 자리에 멈춰버렸습니다.
그 사고를 보면서 오래전, 유학 준비 중이던 제 조카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물속에 잠긴 사람들, 불 속에 있던, 백화점에 있던, 다리 위에 있던 사람들, 그 외 많은 죽음이 차례로 떠올랐습니다.
저는 이러한 충격적인 죽음에 대한 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제 조카를 기리는 시도 15년이 지나 겨우 한 편밖에 쓰지 못했으니까요.
그것도 조카가 아닌 오랜 시간 미워했던 그 남자를 용서하고 그의 입장에서 썼습니다.
사막에서도 기린들이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는데, 지금 우리는 용서와 사랑을 바탕으로 그들을 추모하고 살아있는 우리 자신을 추슬러야 하는 시간입니다.
봉화 광부의 무사 귀환에 모처럼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이제 곧 떠나지 못했던 가을의 자리에 겨울과 봄을 이체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