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명시 100선 중 20
part 1 그대의 가슴이 하늘이 싹트리
채빈 엮음
[작가소개]
정희성 : 시인, 교사
출생 : 1945. 2. 21. 경상남도 창원
학력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데뷔 :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변신'
수상 : 2001년 제16회 만해 문학상
1997년 제2회 시와 시학상
경력 : 2006.01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숭문고등학교 교사
작품 : 도서, 오디오북
1945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났으며, 대전·이리·여수 등지에서 성장했다. 1964년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68년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했다. 1970년 군제대 후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했다. 2002년 현재 숭문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및 대기고등학교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군복무시절이던 1970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변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데뷔 초기에는 질박한 시어로 표현된 《바늘귀를 꿰면서》(1970), 《백씨(白氏)의 뼈 1》(1972), 《불망기(不忘記)》(1974), 《얼은 강을 건너며》(1974) 등의 작품을 비롯해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와 향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1974년에 간행된 첫시집 《답청(踏靑)》에 실린 작품들은 이러한 경향을 띤 초기 시로 사회비판적인 성향보다는 고전적 상상력에 기초한 전아한 시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유두(流頭)》 《전설바다》 《해가사(海歌詞)》 등은 신화적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절제된 시어로 형상화한 작품으로서, 작가의 시적 자기인식의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억압적인 사회 현실에 맞선 시인의 시대적 사명감으로 《새벽이 오기까지는》(1978), 《쇠를 치면서》(1978), 《이곳에 살기 위하여》(1978) 등의 사회성이 강한 시를 통해 인간의 삶을 열정적으로 노래했다. 초기의 시에서 보여준 절제와 균형미보다는 사회적 신념과 용기가 담긴 희망의 메시지를 위해 현실지향적인 의지를 작품화하게 되었다. 이 무렵의 시세계는 현실세계와 밀착되어 시적 보편성과 진실성을 획득하게 된다. 특히 1978년에 발표한 《저문 강에 삽을 씻고》는 구체적 삶의 현장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참여시가 지니는 한계를 극복하고 시적 형식의 자유로움과 감성의 역동성을 확보함으로써 1970년대를 대표하는 문학사적 성과로 평가된다.
이후 두번째 시집이 나온 지 13년 만인 1991년 세번째 시집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를 펴냈으며, 2001년에는 표제시 《시를 찾아서》와 《술꾼》 《첫고백》 《세상이 달라졌다》 등을 비롯해 43편의 신작시가 실려 있는 네번째 시집 《시를 찾아서》를 펴냈다. 오랫동안 말을 아끼며 시의 본령을 찾아나선 작가의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이 절제된 시어로 잔잔하게 형상화된 이 시집을 통해 더욱 원숙해진 시세계를 엿볼 수 있다.
1960년대에 참여시를 개척한 김수영(金洙暎)·신동엽(申東曄)의 뒤를 이어 민중의 일상적 삶에 내재된 건강성과 생명력을 구체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견고한 사실주의의 시적 성취를 이룩한 1970년대의 대표적인 참여시인이다. 1981년 제1회 김수영문학상과 1997년 시와 시학사상을 수상했다. 저서에 시집 《답청》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시를 찾아서》 등이 있으며, 번역서 《몽유왕국을 위한 음악》과 김태형과 공저인 이론서 《한국시의 이해와 감상》 등이 있다.
[출처] 얼은 강을 건너며(정희성)|작성자 옥토끼
첫댓글 정희성 시인님에게 시를 배우기도 하였답니다. 그 당시는 막 정년퇴직을 마친 다음이었는데 어느 새 15년이 흘러서 연세가 많으시겠어요. 45년 생이시면
그러셨군요. 훌륭한 스승님께 배우셨다니 너무 좋습니다.
얼마나 더 바쁘셔야 할른지요?
한상림 선생님, 열정의 끝은 어디까지인지요?
오늘도 건필하십시오.
먹을 것 없는 마을로 돌아가는 쓸쓸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