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실매라고 붙일까
박래여
가까이 살아도 얼굴보기 힘들다. ‘얼굴 좀 보자. 밥 먹자. 차 한 잔 하자.’ 이런 말들도 서로의 일상에 치어 쉽게 자리를 내지 못한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좋다지만 친구를 만나는 일도 쉽지 않다. 어떤 모임에 몸담고 있지 않으면 사람 만나는 것도 힘들다. 요즘은 골프도 일상화 된 느낌이다. 산악회도 다리 힘 있을 때 이야기다. 문학회 모임도 마찬가지다. 설이 지났지만 등 너머 지인도 만나기 어려워 문자를 날렸다.
겨우내 나무 해 나르느라 바빴다는 강 처사 부부를 청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 한 끼만으로 헤어지기 아쉬워 매화꽃 보러 갔다. 산청 남사에 있는 원정매는 연분홍 꽃을 피울 준비를 마쳤다. 홍매다. 활짝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새첩다. 새첩다는 말은 예쁘다는 우리고장 사투리다. 산청 원정매는 600년이 넘었다. 고목은 죽고 새로 심어 키운 새끼 매화가 제법 굵어졌다. 남사 원정매는 단속사지 정당매와, 산천재의 남명매는 산청 3매로 통한다.
오랫동안 원정매를 볼 수 없었다. 이번에 갔을 때 드디어 제대로 봤다. 남사마을이 관광지로 거듭나면서 낡은 고가도 번듯하게 단장되고, 높은 담장도 말끔하다. 담장을 감아 오른 담쟁이덩굴도 사진에 담으면 작품이 된다. 잎사귀 떨어뜨린 앙상한 줄기도 제 몫의 멋과 끈기를 발산한다. 작가의 눈으로 보면 문학이 되고, 화가의 눈으로 보면 그림이 된다. 원정매를 감상하다 화가의 찻집으로 찾아들었다. 대나무 숲이 아름다운 찻집에서 화가를 만났다. 지리산에 반해 지리산 사계를 수묵화로 채색화로 그려내는 화가의 표정이 밝다.
강 처사가 선 자리에서 노래 두 곡을 선사하자 화가는 자신의 작업실을 보여주셨다. 벽 하나를 차지하는 거대한 산수화를 봤다. 산천재와 덕천서원이 들어있는 그림이었다. 아침마다 작업실 밖에 핀 매화를 보며 초벌 스케치를 한다는 화가의 눈빛이 맑다. 어떤 분야에 일가견을 이루면 마음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도에 이르는 것일까. 맑은 기운이 좋다. 눈을 소복이 얹은 소나무 한 그루가 벽에 걸려있다. 그림 속에는 함박눈이 펄펄 날린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가만히 소나무를 응시한다. 나무의 강인함이 슬며시 내 속에 들어온다.
대나무 앞의 평상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대나무가 사그랑사그랑 흔들린다. 고향집 뒤란을 가득 채웠던 대나무 밭이 떠오른다. 겨울이면 대소쿠리를 뒤집어쓰고 대나무 밭에 들어 눈꽃을 털어대곤 했다. 눈밭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어도 까르르 까르르 웃음이 터지던 어린 날의 삽화 한줄 그 대나무 밭에서 봤다. 하얀 머릿결을 곱게 빚어 올려 비녀를 꽂았던 할머니. 할머니는 언제나 당당했다. 지팡이를 짚은 엄마의 모습과 달리 할머니는 대나무처럼 허리가 곧았던 모습만 연상된다. 곰방대를 길게 물고 마루에 앉은 모습, 담배를 다 피우고 곰방대를 무쇠화롯가에 탕탕 두드리던 모습까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지리산은 내 글밭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나고 자란 어린 시절은 세월이 변해도 그 모습 그대로 각인되어 시네마천국이 된다. 그 지리산을 그림으로 새기는 화가와의 한 때도 정겹고 따스했다. 화가의 찻집을 나왔다. 이제 나잇살 늘어 먼 길 여기저기 다닐 여력이 없다. 단속사지 정당매는 활짝 피었다는데. 산천재의 남명매는 아직 필동말동 하겠지. 어려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남명선생의 묘소와 산천재, 그 아래 있던 덕천강 깊은 소를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다.
해마다 삽짝의 매화가 피면 3매 보러 가자고 길을 나서곤 한다. 세 그루 거목은 원 둥치는 죽고 새끼나무를 키우는 중이다. 산천재의 남명매는 아직 건재하지만 언제 고사목이 될지 모르겠다. 매화꽃 피었을 때 눈이 내렸다. 눈을 뒤집어쓰고 얼어있는 매화꽃이다. 눈 속에 피는 꽃이라 하여 설중매라 하든가. 올해는 원정매만 보고 말아야겠다. 우리 집 매화나무에도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치실매라고.
202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