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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말한다 ! Re:대상과 아는 것은 동시성립한다.
은하의 돛 추천 0 조회 243 18.08.24 04:29 댓글 3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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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8.24 07:54

    첫댓글 초침소리도 멸상이 있기에 행자가 그걸 감지한 게 아닐까요 .. 집중을 놓치거나 뇌가 마비 되거나 무시하거나 그러면
    집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만구 제 생각입니다만 ...

  • 18.08.24 08:10

    한 때 기차소리며 비행기소리가 하루 종일 들리는 곳에서 산 적이 있었는데 어느 정도 지나니까 인식이 그러는 것인지 뇌가 그러는
    것인지 정말 무시하게 되더군요 ....

    그런 것이 무시라면 무실까 ...
    신경이 날카롭고 예민한 사람은
    무시가 안되는지 떠나더군요



  • 18.08.24 08:40

    저는 마음속에서 무시가 아니라 소멸 된 사람들도 꽤 됩니다 ..주로
    갈갈이를 많이 괴롭혔던 사람들인데요 ...은하님은 혹시 은하님 마음속에서 소멸 된 사람들
    없나요 ...무시하거나 체념됬거나 잊혀진 사람들 말고요...

  • 18.08.25 18:51

     일단 관련된 본글 두개는, [불교를 말한다 !] 게시판이 적절한 듯 하여 옮겼습니다.

     [ 위 본글과 관련된 다른 본글(이 게시판 2778번글, 대상과 아는 것은 동시성립한다.) ]의 아래 제가 적은 꼬리말에 다음 내용이 있습니다.
    <<
     '시계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어떤 (소리의) 상이 알려진다'는 겁니다... ... 경험적으로, 바로 그 구체적 상은 주의를 기울이는 강도에 따라 발생하고 선명해지며 소멸합니다... ... 특정 범위보다 ('집중' 즉 '주의 기울임'의) 강도가 약할 때, 소리 상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특정 범위보다 강도가 강할 때, 그 역시 소리 상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 동일한 조건이라면, 동일한 상이 알려집니다...
    >>

  • 18.08.25 19:03

     또한 해당 본글 아래의 꼬리말로 다음 내용도 적었습니다.
    <<
     구체적인 A상은 발생하고 선명해지다가 소멸합니다. 그런데 A'상, A"상등을 A상과 함께 모두 '시계 소리'라는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고 하여, '시계 소리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같지 않은 것을 같다고 하고, 없어진 것을 있다고 하는 겁니다.
    >>

     먼저, 위 본글의 [ 뇌는 소리 등등 어떤 대상을 받아들일 때... 그 대상이 변화가 없으면, 즉 변화가 감지되지 않으면...그것을 무시한다 ]는 주장과 관련해 적습니다.
     집중을 하다가, 집중의 대상을 놓치고 흐리멍텅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무기'라고 이름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경우는요.

  • 18.08.25 19:15

    사실상 집중 연습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나 발생합니다. 물론 저는 해당 논점과 관련해 무기의 경우를 적은 것은 아닙니다.

     다음, 위 본글은 [ 동일한 강도인 B의 집중으로 계속 감지하다 보면 B'라는 소리가 소멸한다는 것에 대해 자꾸만 생각해보게 된단 말이죠 ]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해당 논점과 관련해 '동일한 강도의 집중을 유지한다'고 말한 바 없습니다. 저는 해당 논점과 관련하여 '집중을 점점 더 강화하면 어느 순간 그 모습이 없어진다'는 취지로 적었습니다.

     위에서도 옮겨 왔듯...소리 상은 특정 범위의 집중에서만 성립합니다. 그 성립 조건을 떠나면, 소리 상은 '조건으로 있다'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 작성자 18.08.26 02:12

    [특정 범위보다 강도가 강할 때, 그 역시 소리 상은 성립하지 않는다.]: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그 소리를 듣기 위한 어느 영역대의 집중이 필요한데.. 그 영역을 벗어난 정도의 집중에서는 그 소리 상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즉 '소리 상'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조건과 함께 한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조건을 넘어선다면 그 소리 상은 없다. 그러므로 그 '소리 상'은 고유의 상이 아니다. 조건으로 있었을 뿐이다.
    제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저는 오늘 아주 중요한 하나를 알게 된 것이구요... '소멸'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기의 이치로 있고 없을 뿐이라는 것이 보다 확연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18.08.25 23:30

    그러네요.. 저가 그 당시 기차며 비행기 소리에 둔감해졌던 건 소음에 집중해서 둔감해진 게 아니라 일상이 더 재밌어서 둔감해 진 거 같습니다 ...그런데 초침소리에
    집중하다가 집중이 약해지면 즉 주의력이 떨어지면 또 다른 말로 집중이 여자 생각으로 바뀌면 초침소리는 들리지 않지요 ...
    그러다 다시 정신차려 초침소리를 듣다가 어느 순간 초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초침소리 자체 보다는 집중의 집중이 되어 들리지 않게 되는 지경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역시 초침소리를 놓친 경우와 어떻게 다른 건지 ... 혹시 집중이란 집중만의 어떤 세계가 있는지 문득 생각듭니다..
    잠이라는 세계가 있듯 말이지요 ..


  • 18.08.25 23:36

    초침소리를 듣다가 어떤 다른 차원으로 진입한다? 뭐 이렇게 제 댓글이 정리가 되겠네요 ..

  • 18.08.26 01:44

    허긴 흐리멍텅하다 잠이 순간 들어
    초침소가 들리지 않는 것과 집중의
    강도로서 초침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어찌 같이 비교하랴 ..

    전자는 후자의 경계를 꿈에도 모를 것이요 .. 후자는 가지가지의 경계에 잘 휘둘려지지 않는 세계에 익숙해 지겠지요 ...

    각종 운동선수들도 안그러겠어요
    지가 흐리멍텅해서 또는 지가 흐리멍텅한지도 모르고 상대를 놓친 선수와 선명함에도 ..아차!! 상대를 놓친 선수와는 비교가 안되죠 ...

    괜히 먹고사니즘에 불철주야 바쁘신
    방장님 힘들 게 할까봐 적다보니
    위와 같이 정리가 되네요 ..
    좌우간 뭔가 잘 안풀린다 싶으면
    끄적거려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는 거 같습니다 ..

  • 18.08.26 01:59

    은하님은 방장님 좀 괴로피지 마시라능 ... 하이간 어디가나 여인들이 문제여 문제 ..


  • 18.08.26 02:13

    하이간 참... 남자로 태일라다 삐끄러진 분 같다는 ...-.-;;

  • 작성자 18.08.26 02:19

    님하~! 님은 흥이 넘쳐 주위를 즐겁게 하시는 장점을 갖고 있소.
    평시 그 흥을 다 어찌 풀어내시나 ...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것 같소이다.

    그래도 우리... 흥겨운 자리와, 근엄한 자리 정도는 차별하면서 흥을 쏟아내는 훈련이 필요할 듯 하오.
    지금 이 자리가 .. 결코 흥겨운 자리는 아니오.
    진중하게 공부하고 있는 짝꿍에게 볼펜으로 옆구리 찌르며 자꾸 웃기면 그 짝꿍이 좋아할 듯 하오?

  • 18.08.26 02:18

    이젠 분신술까정 쓰넹 아 잼나 ㅋㅋ

  • 작성자 18.08.26 02:20

    님은 잼나는지 몰라도... 열공하는 사람은 교실에서 잡담하는 것을 보는 것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오.

  • 18.08.26 02:23

    글킨 하네요 ... 자삭으로 우리끼리만
    웃은 거로 하께요 ㅋㅋ

  • 18.08.26 02:26

    경계선이 있다니께요 ...
    독자들을 우습게 보지 맙시다요 ..
    다 걸러서 볼 수도 있다니께용

  • 18.08.26 02:52

    웃슴과 공부를 걸러서 볼 수 있당께로 저리 소심할 때 보면 천상 여잔디 ..글체를 보면 칼 찬 남장여인이고 ㅋㅋ

  • 18.08.26 02:43

    은하님 열바드라꼬 자삭안하고 냅뚤랍니더 .. 안녕히 주무세요 .

  • 18.08.26 03:52

     제 말이 어려운가요? 아주 단순한데요.

     '집중'이 '붙잡는 것'입니다. '고정시키는 것'이예요. 그래서 일정 수준까지는 주의를 기울일수록(집중하는 만큼) 집중한 대상이 더 선명해집니다. 이 정도까지는 누구나 쉽게 경험합니다. 따라서 그 대상의 절대값이 있다면, 집중이 강해질수록 그 절대값으로 수렴해야 합니다.
     그런데 집중이 어느 수준 이상 강해지면, 집중한 대상이 소멸합니다. 그런즉 집중한 대상은 절대값이 없다는 겁니다. 어렵지 않거든요.

     그러면 어째서 없어질까요? 왜 절대값이 없을까요? 연기에 따른 성립이거든요. 알려진 대상은, 단지 조건으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액체인 물'은, 101도등의 조건에선 없습니다.

  • 작성자 18.08.26 03:53

    저도 그 얘기를. 하고 있는건데요

  • 18.08.26 04:03

    객관적으로 그래요. 뇌피셜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특정 수준 이상으로 집중을 강화한 것은, 온도를 101도로 올린 것과 같은 겁니다. 집중의 정도를 특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면, 외적인 소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소멸합니다. 왜 그런가? 우리 인간이 '외적인 소리'라 칭하는 것은 바로 그 특정 수준 이하의 집중을 조건으로만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 '액체인 물'은 101도등의 조건에선 없다 ]는 말에, [ 100도 아래에서는 '액체인 물'이 있는데, 무슨 '액체인 물'이 없다고 하냐? 뇌피셜이냐? ]라고 반문합니까?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집중의 대상에는 그와 같은 논리로 따질까요? '조건으로 있다'는 말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 18.08.26 04:30

    ===
     소리는 워낙 짧은 시간만 존속해서 말이 좀 더 길어지긴 하는데, 그냥 소리로 계속 이야기합시다.
     우리가 시계 소리에 집중한다는 것은요. 시계 소리 A1, A2, A3...를 들으면서 점차 집중이 강화됩니다. 얼마나 연습이 되었냐에 따라 누구는 A10 에서 소멸할 정도로 집중이 강화되고, 누구는 A100 이나 되어야 그 정도의 집중이 가능하고의 차이는 있을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갑의 귀에 도달한 소리'와 '을의 귀에 도달한 소리'는, '동일한 소리'가 아닙니다. 애초에 동일율이 성립하는 경우가 아니라구요. '동일율'이라는 것 자체가 상당히 자성적인 건데요. 쓸데 없이 복잡해지니까, 일단 여기서는 그에 대한 논의는 하지 맙시다.

  • 18.08.26 04:44

    어쨌든 소리에서는 동일율이 적용되지 않는데, 동일율이 적용된다면 갑의 귀에도 들리고 을의 귀에도 들릴 수 없습니다. 게다가 '갑의 귀에 도달한 소리'는 '듣는 기반'과 '집중(주의 기울임)' 그리고 '소리 감지 기반'과 함께 성립하는 겁니다. 갑과 을은 조건이 완전히 같지 않기 때문에, '소리의 모습'도 같지 않습니다. 갑이 듣는 기반이 없거나, 갑이 소리 감지 기반이 없거나, 갑이 집중이 없으면, 갑의 귀에 도달한 소리도 없습니다. 소위 데시벨의 크기는요. 인간이 듣는 바로 그 소리가 아니예요. 데시벨은요. (역시 동일율은 적용되지 않으면서) 소음측정기와 소리를 조건으로 성립한 모습(측정값)일 뿐입니다. 자연과학으로도 그래요.

  • 18.08.26 04:55

    성립 조건의 하나인 '집중(주의 기울임)'의 범위를 벗어나면, 당연히 '갑의 귀에 도달한 소리'도 소멸합니다. '파동이 있는가 없는가'는 다른 문제예요. 왜 그런가? 갑은 외적인 소리가 있는(성립하는) 조건을 떠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이 외적인 소리가 있는 조건일 때를 상정하여, 소리가 없다는 것은 뇌피셜이다"는 식으로 말할 수 없는 겁니다. 비유하자면 말입니다. 온도가 101도에 이른 영역에는, 액체인 물은 없는 겁니다. 그 이웃 영역이 90도라서 액체인 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101도인 영역에 액체인 물은 없는 거예요. 당연히 그런 거예요. 조건이 그러니 그런 겁니다. 조건으로 있고, 조건으로 없기에 그런 거예요.

  • 18.08.26 05:09

    ===
     알아차림에서요. '외적인 소리'와 '내적인 소리'등은 구별이 됩니다. 예를 들면요. '꿈에서 듣는 아에이오우 소리'와 '라디오에서 나오는 아에이오우 소리'는 구별이 됩니다. 소위 질감이 틀립니다. 조건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조건으로 있던 것이 조건으로 없을 때, 조건으로 있던 그것은 소멸한 겁니다. 물론 여기서의 소멸이 열반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단순히 발생과 소멸이라고 할 때의 소멸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이든 발생과 소멸은 '구체적 상(모습)'의 문제입니다. A상을 B상등으로 환원하여 발생과 소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논점입니다. 그러한 환원 작업은, 경험(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일단 판단의 문제거든요.

  • 18.08.26 05:33

    ===
     어쨌든 관련 다른 본글 아래 꼬리말에서 이미 적었듯, 불교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도 '조건으로 있다'는 말의 일차적 의미조차 모르고 말장난을 만드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자연과학의 입장에서도, 제가 적은 내용은 당연합니다. 소위 '포텐셜 배리어'는 아주 흔한 논점입니다. 우리들이 개념을 잡기 쉬운 표현을 만들자면, '에너지 장벽'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건데요. '에너지 장벽'이 있으면요. 국소적으로 그 에너지 장벽 영역에서는 없는 것들이 있어요. 자연에서 극히 흔한 겁니다. 문이나 벽도 일종의 에너지 장벽이거든요. 벽의 수준을 구축하는 순간, 벽의 수준에게 소리는 소멸합니다. 자연과학적으로, 소리 전달이 안되요.

  • 18.08.26 05:50

    그래서 벽의 영역에서는 소리가 없어요. 소리가 있는데 주관적으로 소리를 못듣는 것이 아니라, 소위 뇌과학하는 분들이 흔히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한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소위 객관적으로다가 그 영역에서는 소리가 없어요. 그러한 조건을 실현하면, 갑에게는 소리가 없어요. 그러한 조건을 실현하는 순간, 소리가 조건으로 있다가 조건으로 소멸해서 조건으로 없는 겁니다. 갑의 뇌피셜로 그런게 아니라, 소위 객관적으로 그래요. 그리고 적었듯, 누구나 그러한 조건에서는 그렇습니다.

     무자게 반복했는데요, 이제 혼동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단순한 주관의 문제가 아니란 점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말장난도 떠납니다.

  • 18.08.26 06:08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왜 이렇게 반복해 강조하는지 알겠습니까? 단순히 인식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뇌피셜의 문제로 접근하면, 열반도 뇌피셜의 문제가 되기 쉽거든요. 신심에 치명적이란 말입니다.

    ===
     갈갈이님... 집중의 대상을 놓친 것인지, 집중의 대상이 소멸할 정도로 집중한 것인지 어떻게 구별하는가?
     간단하게 말하자면요. 알아차림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상을 놓쳐 소위 무기에 빠져 흐리멍텅해진 경우, 한동안 대상을 놓친 줄도 모릅니다. 반면에 알아차림이 확고하면...충분한 집중으로 소멸한 것인지, 집중이 충분하지 못한데 주의력 결핍으로 놓친 것인지...자신이 곧바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 18.08.26 08:10

    잘 살펴 보겠습니다 .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 18.08.26 15:12

    네. 불교는 '인식론이자 존재론이다' 라고 하셨던 글 읽었고요. ..제가 나름대로 골똘히 생각해 보건데... 인식론이라는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방문객님께서 그것에 더해 '존재론'이라고 하시는 근거는 어디에 있었던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교가 '존재론'이기도 한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오늘 설명을 듣고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18.08.27 18:03

    대단히 아리까리한 지점인 듯한데, 방님의 입장은 잘 전달된 것 같네요.

    '한강을 보고 있을 때(등 뒤엔 남산이 있음), 남산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없다'고 하는 얘기가 생각납니다.
    일반인들인 미친 뇌피셜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저같은 어중잡이는 아리까리합니다.

    암튼 잘 봤습니다.

  • 18.08.28 08:04

    식은 딱 한대상 또는 한인식도 좋고요 ..딱 그만큼만 성립하므로
    뒤에 남산이 없다해도 맞을 듯 하고요 ...왜냐 ...식이 남산까지 감지해서 한강을 본다면 한강이 제대로 보일까요 .. 또 남산자체의 입장으로 보아서는 남산은 남산 지나름대로 연기해서 존재할테니
    우리의 인식과는 무관할 듯 ..ㅡ 아닌가?


  • 18.08.28 04:38

    우리의 인식과는 무관한 존재 또한
    있기에 ... 서로 부딪혀 보이기도 하고 안보이기도 하는 것이지 아예 이도 저도 없다면 .. 뭐 이런저런 말도 있을 수가 있겠으며 ...

    또 한편 남산이든 그것을 인식하는 놈이든 둘 다 .. 잠시도 머물러 있지
    못하기에 ... 있다고도 못하고 없다고도 못하므로 아리까리 하다면
    그렇게나 아리까리 한게 아닐까요
    역시 만구 내 생각 ..

  • 18.08.28 07:34

    근데 사실 더 정확인 앞에 보이는 한강도 이미 없는 한강을 봄인데
    뒤의 남산 또한 늘 없는 남산일테고

    한강을 보다 돌아서서 남산이 보인다고 ..아리까리 할것도 없고
    헷갈릴 거도 없고 ..

    어쩌면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란 구절 같기도 ...







  • 18.08.28 18:11

     '한강을 보고 있을 때(등 뒤엔 남산이 있음), 남산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없다'고 하는 이야기...

     (특단의 상황이 아닌 한,) 불교는 그러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즉 충분히 의미를 보충할 근거가 없는 한, 불교를 기준으로 한다면, 그러한 이야기는 틀린 겁니다.

     어째서 그런 이야기는 틀린 것이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조건으로 있다'는 말의 의미를 아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18.08.28 20:59

    생각이 시간을 뺏아서 먹고사는 것을 방해하면 큰 문제겠으나
    그럭저럭 괜찮으면 이런저런 생각도
    해봄도 ... 우리의 조건이라면 조건
    같습니다 .. 좋은 건지 나쁜 건지 ..
    앗싸 ~ 이거 한동안 재광님의 유행어가 될 거 가따능 ㅎㅎㅎ

  • 18.08.29 02:39

     네. 가급적 많은 분들이, 시간이 있다면,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뭐...혹자에 따라서는...위에 제가 적은 꼬리말 내용을 참조해서, "방문객은 어떠한 사고에서 그러한 이야기에 불교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며, 무슨 이유로 그러한 이야기는 불교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을 겁니다.
     

  • 18.08.31 17:29

    한강을 보고 있을 땐, 한강을 감지하기에, 이름하여 '한강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한강을 보고 있으면서, [남산이 없다]고 하는 언명은 성립할 수 없다.

    이름하여 '있다, 없다'는 감지하는 식과 연기하여 성립하는 언명이기에,
    한강을 감지하고 있는 중에, 감지되지 않은 것의 있다-없다는 논하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 사고는, 감지하는 식과 독립적으로 무엇(남산)이 있거나 없다는 전제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불교적이지 않다

    ---제 짱구로는 이것이 최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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