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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모사 아히도벨이 다윗에게 칼을 겨눈 이유)
다윗> 왕이 주변국 여러 나라를 정복하여 국가체제를 이루어 가던 무렵
한번은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장대한 족속의 장수인 <이스비브놉>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때 <다윗>의 30용사의 버금3용사의 우두머리였던 <아비새>가 <이스비브놉>을 쳐 죽이고 <다윗>을 살려냅니다.
이 때 <다윗>의 신복들이 "왕이 직접 전투에 참여하여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다윗> 왕에게 청원 한 후로,
그 이후로 부터 <다윗>은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이스라엘이 다 이겨놓은 상태에서 승리자로 입성하는 형식의 전투양식을 취합니다.
그래서 <요압>장군이 군총사령관이 되어 암몬의 랍바성을 정복하러 전쟁에 나갔을 때
<다윗>은 왕궁에 머물러 있다가
우리가 잘 아는 바 처럼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는 죄를 범하고 말죠!
이 일로 밧세바가 임신을 한 것입니다.
이 범죄를 덮기 위해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한참 암몬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우리아>를 불러와 휴가를 줍니다.
밧세바의 낳을 아이를 <우리아>의 휴가 베이비로 둔갑을 시키려는 음모였던 것이죠!
충직한 용사 <우리아>는 두 번씩이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본 <다윗>왕은
<우리아>를 전투에 복귀시키면서 <요압>장군에게 편지를 합니다.
<우리아>를 전투에 내어 보내 저만 남겨둔 채 후퇴하여 <우리아>를 죽이라는 전갈이었습니다.
<요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아>를 랍바성에서 가장 치열하게 대항하는 지역의 전투에 투입하여 그를 죽입니다.
이 때의 <다윗>왕의 모사꾼은 <길로>사람 <아히도벨>이었습니다.
<아히도벨>의 계략은 하나님의 계략과 같다고 여겨질 정도로 치밀하고 정확했습니다.
그런 <아히도벨>은 이스라엘의 국가체제가 완성이 되었어도
다른 공신들과 같이 중요 요직에 오르지 않고
고향 <길로>에서 야인생활을 하다가
<압살롬>의 반란 때에 <압살롬>의 모사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다윗>과 등지고 지내다가
왜 갑자기 <압살롬>에게 붙어 <다윗>을 대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침묵을 합니다만,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행간에서 그 원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역시나 <밧세바>와 관련이 있습니다.
<밧세바>는 <엘리암>의 딸이라고 성경은 기록을 하고있고,
<엘리암>은 <아히도벨>의 아들이라고 성경은 기록을 합니다.
즉, <밧세바>는 <아히도벨>의 손녀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아>는 <아히도벨>의 손녀사위가 되는 것이죠!
<엘리암>과 <우리아>는 모두 다윗의 30용사에 속하는 용사들입니다.
아마도 <우리아>가 전투에 죽었을 때, 사위인 <우리아>와 함께 아들 <엘리암>도 그 전투에서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에는 친척들이 한 부대에서 함께 전투하는 경향이 컸으니까요!
나중에 이 모든 일에 대해서 <아히도벨>은 <요압>으로부터 듣게 되었을 것이고,
<아히도벨>은 말없이 <다윗>을 떠나
고향 <길로>에서 야인생활을 하게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사전 배경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는 것은
이제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함께 반란을 도모할 때에
그의 <다윗>을 제거하기 위한 책략이
얼마나 정신차린 계략이며,
얼마나 치밀한 계획이며,
얼마나 정확한 책략인 것인가를 말하고자함입니다.
<다윗>을 죽이기 위해 <압살롬>에게 붙었고,
<다윗>의 어떠함을 눈에 보듯 훤히 알고 있으며,
<다윗>을 죽이지 못하면 <밧세바>를 건드려 자신의 가문을 풍지박살 내버린 원수에게 되레 당할 것임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오랜 세월 칼을 간 그 계략은 하나님의 계략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아히도벨>의 계략은 이러합니다.
"<다윗>이 급하게 도망가는 바람에 그 노정이 피곤하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해서 대처방법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 때 군사 12,000명으로 급히 추격하여 일거에 급습을 하면 미처 대비가 안된 <다윗>과 군사들은 혼비백산 할 것이고,
그러면 그 틈에 <다윗>만 죽이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백전 노장 <다윗>도 <아히도벨>의 치밀한 계략이 있을 것을 알고 하나님께 <아히도벨>의 계략이 무효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왕의 벗이었던 <후새>에게 할 일을 명하고 계략을 입에 담아주어 미리 예루살렘으로 보내놓았고,
<후새>도 <압살롬>에게 붙는데 성공한 상태라 <압살롬>은 <후새>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어 했습니다.
<후새>의 의견은 이러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 있을 때 함께했던 600용사들과 함께 있는데 그들은 다 용사고 백전노장들이다.
더더구나 그들은 지금 새끼를 잃은 곰처럼 무척 화가 나 있을 것이다.
이 상태에서 혹시 선발대가 급습할 것을 <다윗>이 다 알고
어느 굴에 숨어있다가 역공을 가하여 선발대를 무너뜨리기라도 한다면
그 어느 장수라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그랬다가는 오히려 우리가 <다윗>과 그 장수들에게 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적은 수로 섣불리 <다윗>에게 덤비지 말고
온 이스라엘 군사를 다 모아서
일거에 <다윗>과 그 수하들을 쓸어버려야 할 것이며
혹 <다윗>이 어느 성에 들어가 있다면
온 이스라엘로 그 성을 밧줄로 묶어 골짜기로 무너뜨리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도록 해야한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자!
우리는 <아히도벨>의 책략과 <후새>의 책략 중에 어느 것에 투표해야 할까요?
<아히도벨>의 책략은 모든 정세와 피아간의 장단점을 반영하여 내린 정확한 결정인 것이고,
<후새>의 책략은 <아히도벨>의 책략을 무력화 시키기 위하여 <압살롬>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결정이었습니다.
결국 <압살롬>은 <다윗>의 명성과 600용사들의 용맹에 겁을 먹고 <아히도벨>의 책략은 버리고 <후새>의 책략을 따랐다가
에브라임수풀 전투에서 상수리 나무에 걸려 <요압>과 그 병기든 소년들에게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뜻하심의 오묘함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지혜가 뛰어나 하나님의 계략과 같이 낼지라도
그 뜻을 무력화시키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가십니다.
그럴 듯한 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범부의 입을 빌어 하나님의 뜻대로 내는 말을 더 귀히 여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사려구로 하나님의 말씀을 포장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하여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나라요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