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고르기 / 노병철
“처음 본 여자”
가장 마음에 드는 여자는 처음 본 여자라고 남자들은 말한다. 이건 나이와는 전혀 상관없다. 욕할 것은 아니다. 수컷 본능이다. 그래서 별다방 아가씨가 새로 왔을 때 우린 기존 단골이었던 물레 다방을 헌신짝 버리듯 하고 몰려갔다. 하지만 결혼은 계속 처음 본 여자와 할 수는 없다. 정신 차리고 고르지 않으면 평생 고생이다. 결혼이란 문화는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게 만들어 얽어매어버리는 제도이기에 특히 물불 안 가리는 젊은 시절엔 눈 똑바로 뜨지 않으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Wedding이란 말 자체가‘베팅하다’는 의미였던 Wedd에서 시작됐다. 결혼은 예나 지금이나‘도박’이란 이야기다. 문제는 베팅도 패를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준비 없이 들이댈 문제는 아니기에 신중을 기하라고 이야기해 준다. 어른들은 여자 고를 때 인동장 씨, 청주 한씨, 파평 윤씨, 능성구씨, 경주 최씨, 은진송 씨, 수원백씨를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들 문중 여자들이 대체로 기가 세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 당시엔 귓전으로 흘러들었다. 이젠 내가 젊은 친구들에게 말하고 있다. 가능하면 조심하는 게 좋다고. 귀담아듣지 않는다.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날이 있을 거다. 내가 그 꼴 났다.
남자는 어떤 여자를 좋아할까? 얼굴이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젊을 때 이야기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정말 이해하기 힘든 선택을 보게 된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여자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가장 많은 대답이 마음이 고운 여자라고 고상한 척 대답한다. 마치 그 옛날 여고생에게 질문하면 ‘현모양처’라고 말했듯이 답이 정해져 있다. 여자는 시집가서 여필종부하고 애를 꼭 낳으라는 속된 교육의 결과물인지도 모르고 고상 떠는 정형화된 답변을 열이면 열 그렇게 대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취미가 독서라는 인간보다 마음 고운 여자라는 인간이 더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차라리 찌찌가 큰 여자라든지 인중이 뚜렷하거나 귓구멍이 좁은 여자라고 하면 얼마나 솔직한가. 이런 솔직함을 속물이라고 비하하는 인간이 더 나쁘게 봤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들먹이는 그 말의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여자 겉모습을 보고 마음이 고운지 안 고운지 판별할 능력이 있는 남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제아무리 투시력 같은 신통한 능력의 소유자라 해도 여자의 속내를 꿰뚫어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자형은 요리를 잘하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 옛날 수박 고르듯 세모로 파서 안을 보고 골랐으면 싶은데 도무지 요리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겉으로 봐서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어쩌다 결혼한 여자가 요리도 잘하고 마음도 고우면 전생에 분명 나라를 구한 놈이고 거기에다가 밤 자리도 잘해주면 넌 거의 안중근 의사급이며 더불어 장인어른이 건물주이면 삼대가 나라를 구한 복 터진 놈이다. 조상 덕을 논하지 않고는 마음에 쏙 드는 여자를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요즘은 젊은 애들에게 마누라 고르는 법을 이야기할 땐 굳이 성씨를 들먹이지는 않는다. 그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여자가 제일 좋다고 이야기해 준다. 음식을 못 해도 좋고 뺑덕어멈 저리 가라 할 만큼 씀씀이가 헤퍼도 상관없다. 친정이 건물주가 아니라도 관계없다. 잔소리 안 하고 내 말을 잘 따라주는 여자. 뭐든 잘 먹는 여자면 그냥 장가가라고 성의 없이 조언해 준다. 나에게 아들이 생기면 철저하게 교육하겠다고 준비했는데 딸 둘만 낳고 공장 문 닫아버렸다. 내 딸들의 성향을 보니 우리 집에 들어올 사위가 너무 불쌍해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뭔 시답잖은 조언을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