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성령님으로 인한 은사들 중 하나이고, 아래 본문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고 증거된 것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아래 본문이 있는 소위 ‘사랑장’이라는 불리는 고린도 전서 13장 바로 직전인 고린도 전서 12장 31절에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라고 증거된 것에서 더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사실상 모든 은사들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의 은사인 것이고, 직접적, 실제적 측면에서는 성령님으로 인해 가능한 최대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그 사랑이라는 것이, 좀 더 정확하게는 주님 안에서의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의 힘이나 세상적 능력으로는 온전하기가 어렵고, 실제로는 온전하기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를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한다는 것, 특히 나와 다르거나 관계가 없거나 유익이 되지 않는 자를, 더 나아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자를 사랑한다는 것, 심지어는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큰 잘못을 행한 자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인내하고 긍휼히 여기며 용납하고 희생하며 섬기는 등과 같은 사랑의 일들에 있어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 곧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지 않고는 주님을 따르는 제대로 된 사랑이 불가하다는 것이고..
그러한 사실은 바꾸어 말하면 그렇게 제대로 된 사랑을 위해서는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이 필요하며, 그것은 곧 정말 성령님으로 인해서는 직접적, 실제적으로 그러한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좀 더 실질적이면서 근원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러한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실제들, 특히 사랑과 같은 은사들은 결코 성령님 단독이실 수는 없는 것으로 반드시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함께 가능한 것인데..
실상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언제나 함께 이시고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들 중 일부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성령님의 은사들, 특히 사랑의 은사를 생생하고 강렬하게 받고 누리며 실행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고,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며,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됨이 모든 우선과 전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면서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이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인해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되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과 같은 징계들에 허덕이고 마치 광야 40년과 같이 먼 길을 돌고 돌면서 방황케 되기보다는, 또한 여전히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 능력과 방법들 등으로 살게 되는 것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으며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은 최대한 빨리 자복하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것이 모든 성령님으로 인한 은사들에 있어, 특히 사랑의 은사에 있어 전적으로 관련이 있고 깊이 직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조금도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바로 그러한 성령님께서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시기 때문인 것이며, 실제로 이 세상에 말씀이 기록되어 지며 우리 인생들이 접할 수 있게 되고, 게다가 그러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말 알고 믿으며 실천하고 누리며 증거하는 등에 있어서 직접적, 실질적인 힘은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성령님이 아니실 수 없는 것이며..
사실 근원적, 본질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바로 그 자체가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그 무엇보다 말씀의 신앙을 기뻐하시며, 말씀대로 모든 것을 다 실행하시고 모두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중요한 사실은 그와 같은 모든 이치와 원리와 실제들이 단지 사랑의 은사나 다른 여러 모양의 은사들에만 관계되고 극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신앙과 영성의 세계에 있어서, 그 속에서의 실제와 경험들에 있어서, 곧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 전반에 있어 직접적, 현실적으로 관련되고, 모든 상황과 사안과 순간들에 실질적, 실제적으로 하나하나 직결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으로..
특히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몸부림치는 죄악들과 싸움에 있어서도, 그러면서 실제로 이길 수 있게 됨에 있어서도, 또한 악한 세력들을 대적함들에 있어서도, 그러면서 실제로 물리치게 됨에 있어서도, 범한 죄악들을 자복하고 돌이키게 됨에 있어서도, 그러면서 실제로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을 누리게 됨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까이하며 사모하고 믿으며 실천하고 누리며 증거할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갈수록 더 충만케 되며,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일들로 더욱 풍성케 됨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께 여러 모양으로 영광이 되고 주님의 사명을 잘 감당케 됨에 있어서도 전적으로 상관이 있는 것이고, 다름 아닌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생각 이상으로 깊은 연계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 전서13:13)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3월 1일(금)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