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14,23ㄴ-2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어떤 실험 결과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실험 대상을 두 그룹으로 나눠 최근에 경험한 일을 적게 하고 만족감을 수치로 표현하도록 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는 최근에 ‘무언가를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를 적게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룹에는 최근에 ‘남에게 어떤 것을 베풀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를 적게 했습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어떤 그룹의 기쁨이 더 높았을까요? 여러분도 예상하셨겠지만, 두 번째 그룹의 기쁨이 훨씬 컸습니다.
이는 남에게 무엇인가를 베푸는 것이 더 크게 기쁘고 오래 기억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로써 자기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고, 삶에 활력을 주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두 번째 그룹보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하려고 합니다.
즉, 베푸는 것보다 받는 것에 집중하고, 이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남을 돕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요? 사실 남을 도우며 사랑을 실천하는 분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멀리 가지 않고 성당 안에서도 얼마나 많이 만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성당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분들을 정말로 많이 봅니다. 지금 곤란한 일을 겪는 분에게 다가가 친절하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분도 있습니다.
흩어져 있는 의자를 질서 있게 정리해 주시는 분도 있지요. 남들 다 멀리하는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 역시 남을 도우며 사랑을 실천하는 분이십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남을 도우며 사랑을 실천하는 분이 정말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하시는 분은 단 한 번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남을 돕는 일을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일할 사람이 없어서일까요? 아닙니다.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고, 이 사랑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평화를 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행복하길 바라는 우리가 아닌가요? 그렇다면 사랑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베푸고 나누고 또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의 활력과 더불어 커다란 기쁨과 활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의 11번째 책,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입니다' 신청은 아래로~~ https://forms.gle/5a92TVvn8U6iwoEn9
행복은 현재와 관련되어 있다.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앤드류 매튜스).
성령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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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