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래글을 읽어갈수록 카리스마니 박력있니 경제전문가이니 하는 그환상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충격을 느낄것입니다
경제대통령은 세계어느나라에도 없는 허상이었다 국회의원들이 기업가에게 붙어 무엇을 한단말인가? 외국인들이 비웃는다
일본 이름 바꾸면 이 나라 국민들 자존심이나 살것인데! 일본태생에 군도 갔다오지않은 부패한사람이 그렇게 좋던냐? 미국은 선친부터 애국심이 결여된 그런사람은 대선에 발도 들여놓지못하는 사회입니다 외국인들이 이나라 대선을 보고 비웃고 있습니다 우리 후손에게는 얼마나 비웃음을 당할까요?
경제성장을 이룩한 세계대통령들에게는 경제학박사도 ceo도 그리고 기업인출신도 없었습니다 황제적 독단과 아집그리고 자칭전문가가 얼마나 위험한 가를 철저히 분석한 자료입니다 역사는 진실이 아니라 진리입니다 |
경제 경자도 모르든 고박대통령이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를 놀라게한것은 공정한 인사와 나라살림의 충정이 남보다 월등했기 때문입니다 좌파10년 좌절과 절규와 쇠퇴의 삶을 산 국민들이 돈독이 올라 대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혼란을 느끼는 이때 역사는 그들에게 가장큰 중심이 될것입니다
부정부패에 대한 철저한 검증없는 무수한 공약들은 거짓일 뿐입니다 철저한 검증다음에 공약이며 그공약이 너무환상적일때 국민의 부담이 가중됨을 의심할 여지가 없을것입니다 냄비근성과 빨리 빨리가 이나라를 좌파2대로 망운것입니다 끝없는 주가조작으로 빤짝내수를 조장한것은 외국인들이 가만히앉아 6천억불의 이익내고 제2의 외환위기로 몰고있는 참으로 큰 후폭풍은 간과한 비열한 국민속이기입니다 당신이 1억벌었다 얼마벌었다 할때 외국인들은 그돈으로 몇십억씩번다는것입니다 그말은 대폭락시 우리 국민들에게는 김치국물도 남지않는다는 뜻이지요 주식 그만하세요 주식투기는 마약입니다 대폭락의 주식에 테크닉은 소용없습니다 진정 주식투자를 하고싶으면 애국의 독립군자금을 마련해주는 후보의 주식을 사세요 부패주는 절대사면안됩니다 결국 당신과 다른 국민들에게 독이 됩니다
세계자칭 경제대통령이라는 자들이 자신의 나라를 망운 생생한역사가 여기있습니다
미국 31대 대통령 후버는 성공한 기업가로서 찬사와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광산업과 토목업을 아우르는 다국적기업을 창업한 그는 뛰어난 경영능력으로 30대 후반에 무일푼에서 억만장자 반열에 올라서 미국인들의 영웅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전설로서 모두의 우상이었다.
후버는 31대 미국 대통령(1929-1933)으로 대공황의 단초를 제공한 대통령이었다. 후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유는 딱 하나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모두의 우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미국 경제는 하향곡선을 그릴 때였지만 거의 모든 산업에서 미국은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미국경제를 더 발전시키려면 실물 경제에 해박한 성공한 경제인만이 할 수 있다고 국민들의 머리에 환상을 심어주었던 결과였다.
해박한 실물경제지식을 자부하면서 경제대통령을 자처했던 후버는 끝까지 자기 도그마에 빠져서, 미국경제 펀더멘털이 건전 하다고 주장하면서 현실경제 하향곡선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후버댐 건설 등” 토목공사와 건설경기에 치중하였다. 경기가 나빠지자 증시가 폭락하였고 국내 산업을 보호하면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으로 관세율을 올린 결과 유럽으로부터 보복관세를 당하여 국내 경기 침체로 이어져 주가는 더욱 폭락하게 되었다. 단지 실물경제를 잘 안다는 아집과 독선으로, 디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는 경제정책 실시타이밍을 놓치게 되었고 그 결과 그 유명한 경제대공황을 맞게 된 것이다. 약 1,300만의 실업자를 양산함으로서 미국인의 3할을 빈민촌으로 내몰리게 하였다. 이들이 살던 빈민촌을 후버 대통령의 이름을 따 후버빌(Hooverville)이라고 불렀다. 박스나 판자 등으로 비나 추위를 견딜 정도의 판자촌이었다. 후버빌 거주자들은 구걸이나 쓰레기를 뒤져가며 살아가는 대공황의 참담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던 것이다. 그나마 빈민촌에서도 살지 못하고 노숙자 신세가 된 사람들은 담요 대신 신문지를 이불삼아 지내는 일도 허다했고, 사람들은 이불을 대신한 신문지를 후버 담요(Hoover blanket)라고 부르기도 했다. |
스텐포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초라한 기숙사를 후버빌(Hooverville)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대학 출신인 후버 대통령을 기념하는 기념관은 웅장하게 잘 지어진 데 비해, 자신들이 거주하는 기숙사의 초라함을 비꼬는 말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후버는 1929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빈곤에 대한 최후의 승리가 왔다"고 선언하면서 대통령으로서 첫 일성을 외치게 되는데 이 후버의 말은 후에 후버 정치철학의 빈곤을 나타내는 대표적 문장으로 후세에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 미국인들은 후버의 이 말이 국민을 속이고 기만하는 포퓰리즘성 발언이 될 줄도 모르고, 매우 환호했고 그의 경제적 경영능력을 철석같이 맹신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당시 미국에서 후버라는 이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신화적, 상징적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왜 경제 대통령이라 큰소리쳤던 후버가 미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대통령이란 오명을 남기고 국민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을까?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기업경영과 국가경영은 패러다임 자체가 틀리다는 것이다. 기업가는 오랫동안 개인의 영리를 도모해온 결과 경영 마인드가 사적측면의 이기주의적 성격이 강하고 따라서 공익과 국민봉사를 행해야하는 국가경영과는 사뭇 틀리다. 오히려 그 사적측면이 강한 통치자의 마인드가 사익과 국가이익(공익)이란 두 가지 상반된 카오스의 혼돈에 빠져서 잘못된 정책을 양산할 위험요소가 다분히 있다고 본다. |
후버역시 1929년에 증시가 폭락하자 국내 산업을 보호해야겠다는 혼돈의 잘못된 정책으로 관세를 52%나 올렸다. 그러자 타국들도 긴축재정을 펴면서 경쟁적으로 관세를 올리게 되었고, 그 결과 무역교역국끼리 수출입 물량이 급작스럽게 줄어들게 되면서 1933년에는 파산되는 회사가 속출하고 주가는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혼돈의 잘못된 정책이 결과적으로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이 모든 것이 후버의 오만에서 야기한 사기업-국가경영 혼돈에서 온 오판 때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기업경영과 국가경영 패러다임은 확연히 틀리고 사적부문에서 해왔던 사기업 경영 마인드가 그 통치자의 이기적 사고 때문에 오히려 국가경영에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다.
두 번째로, 기업가는 국가 통치자로서 필히 갖추어야할 조화와 소통의 기술은 기본적으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버려야할 황제적 마인드는 내면에 그대로 간직한 채 겉으로만 극복한척 한다. 교조적 리더십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다반사고 자신의 의견만을 강조하면서 타인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하는 독단의 우에 빠져들기 쉽다. 또한 상명하복의 철저한 논리에 젖어있어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철저히 부하에게 군림한다.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하는 자에게는 용서가 없다. 태생적으로 결코 반대자를 수용할 수 없는 사고와 논리로 긴 세월을 살아온 관계로 주위엔 아첨자와 능력자(엄격히 말하면 불의를 저지르더라도 기업이익만 많이 올리면 된다는 수단에 능한 자)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제 밥줄 지키기 위해서, 출세와 돈과 명예(?)에 눈이 먼 이들 군상들은 기업가를 황제로 떠받들어 왔기 때문에, 기업가의 정신적 세계와 사고는 황제적 마인드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업가는 황제적 마인드에서 도저히 벗어날 없는 구조적 시스템 속에서 모든 사물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평생을 오직 돈벌이에만 일념해서, 부의 창출에만 모든 가치를 둠으로서 어쩔 수 없이 형성되는 부작용적 측면의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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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경제 박사인 후버 대통령 역시 그러했다. 그는 자기 도그마에 빠져서 경제 불황을 극복할 타이밍을 놓쳤다. 당시 미국의 핵심적 경제 펀더멘탈은 건전 하다고 절대적으로 굳게 믿고 있었으므로 모든 경제전문가들의 경제위기 처방 충고를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오히려 그 시대의 경제신화 인물들인 포드와 록펠러까지 동원해서 자신의 도그마를 믿게끔 국민들에게 오도함으로서 국민들을 파탄의 길로 몰고 갔다. 이러한 현상은 황제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기업가 출신에게 국가를 맡겼을 때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인 것이다.
경제성장을 이룩한 세계대통령들에게는 경제학박사도 ceo도 그리고 기업인출신도 없었습니다 황제적 독단과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던 살리나스 대통령은 자유로운 시장경쟁은 더 많은 고용, 더 많은 부의 창출로 멕시코의 선진국 진입을 강조하며 미국과 자유무역 협정 NAFTA를 체결했다. 일부 자국 경제학자들과 국민들 또한 살리나스의 주장에 동조했다. 시민단체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는 ‘대안 없는 비판’으로 치부됐다. 마치 오늘의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다. 미국과 FTA 협상에서 말이다. 그런데 12년 후 멕시코는 살리나스의 장밋빛 전망과는 정 반대로 판이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성공한 사업가 후버가 쑥대밭을 만들었던 미국 경제를 중흥시킨 인물은 ‘경제학의 경자’도 잘 모르던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이류 배우 출신의 대통령 레이건은 전임자 카터 시절 어렵던 미국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90년대 초반 미국경제는 계속 쇠퇴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고 일본이 미국 경제를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때 미국 경제를 살린 사람은 “경제의 경”자도 모른 2류 영화배우 출신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레이건의 성공 비결은 단순하였다. 말이라는 언어매체를 통해 국민과 마음을 함께 나누는 기술이었다. 대통령이 된 다음 그는 말을 통해 자신을 대통령에 당선시켰던 국민 숫자보다 더 많은 국민을 자신의 정치 목표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려놓았다. 연설 횟수가 늘면 지지자도 함께 늘어났다.
레이건의 말은 늘 쉽고 따뜻했다. 경제를 이야기할 때도 일반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물가나 세금이란 간단한 단어로 쉽게 말했지 골치 아픈 경제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언제나 누구나 이해하게 쉽게 말함으로서 모든 국민이 경제회복 운동에 동참하도록 국민들을 이끌었다. 이러한 연유로 레이건에게 ‘위대한 전달자(Great Communicator)’라는 영예스러운 호칭도 주어졌다.
정치는 전달과 소통(疏通)의 고리로서 조화의 기술이다. 레이건은 여기에 능통하였기에 대통령으로도 성공할 수 있었고, 미국 역사상 위대한 대통령 설문조사에서 “링컨대통령”과 1,2위를 다투는 대통령으로서 지금까지도 사랑과 추앙을 받고 있다.(감세정책으로 인한 국가사회복지비의 축소로 미국사회를 양극화시키고 사회양극화경제인 신자유화라는 괴물을 전 세계로 침투시킨 원조대통령인 레이건을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하는 데는 결코 찬성할 수 없다.)
레이건을 오래 보좌했던 한 측근은 레이건 8년을 이렇게 요약했다. “레이건은 자기보다 우수한 사람들로 자기를 둘러싸게 하였고, 그들에게 신뢰로서 일을 맡기고선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끔 동력을 불어넣었다. 최종 결정은 자신이 내리고, 그 성패의 책임 역시 자신이 졌다.”
레이건은 경제에 대하여 문외한이었지만 자기를 낮추고, 본인의 통치철학과 맞는 경제전문가를 등용하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힘을 실어주었다. 또한 단 한 번도 국민의 일부를 적으로 몰아세우지 않고 모든 국민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화합의 정치를 폈다. 레이건의 이러한 리더십은 2000년 전 중국을 통일한 한고조 유방의 리더십과 같다. |
오래되지 않은, 얼마 전의 일로서 이탈리아의 미디어와 부동산 재벌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실각과, 쿠데타로 쫓겨난 태국의 총리 탁신 치나왓도 재벌 총수로서 전문경영인이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재직 중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와 뇌물수수, 회계부정, 세금 포탈 등의 혐의를 받았다. 이 모든 혐의들은 자신의 사업들과 연관된 것이었다. 사실상,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정계에 진출한 것은 자신의 미디어 제국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베를루스코니총리는 이탈리아 최대 민간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는 것 이외에도, 부동산과 보험, 출판 회사들의 대주주이고, 막대한 재산을 치부했다.
CEO 총리'로 탄탄대로를 걷던 탁신 치나왓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그의 일가의 회사주식을 싱가포르 국영기업체에 19억 달러에 팔아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서도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아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사임 위기에 내몰린 탁신은 조기총선 카드로 이를 돌파하려했지만 이미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피플파워'에 굴복, 사임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사퇴는 하지 않고서 미그적미그적 거리면서 악화된 여론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다가 한 달 반 만에 총리직에 복귀했으나 빗발치는 여론의 악화는 군부쿠데타를 불러왔고 해외에서 떠도는 처지가 됐다.
경제인의 한계점은 모든 관점을 눈앞의 이익창출에만 최상의 목표점을 두다보니까 과정은 어떻든 간에 결과만 좋으면 된다. 다시 말하면 ‘이익창출은 선이요 이익불출은 악’이라는 이분법이 머리와 가슴에 고정관념으로 꽉 차 있다. 그 결과 부정부패와 권력의 남용이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로 재벌 총수나 전문경제인이 국가 최고지도자로 성공한 예는 거의 볼 수 없다.
위에서 열거한 바처럼 경제를 잘 아는 “경제전문가”만이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이요 엄청난 착각이다. 우리는 하루 빨리 이런 환상과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어설프게 경제를 조금 안다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경제전문가라고 자기를 내세우는 최고 지도자는 오히려 독선과 아집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망칠 수 있다. 오히려 항상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면서 자기의 통치철학과 맞는 최고의 경제전문가를 등용하여 이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고 보편적 가치로서 국민과 항상 소통하고 조화로서 국민을 화합시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겸손한 생각과 자세를 가진 조절능력이 뛰어난 통합의 지도자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본다. 마치 경제의 경자도 모른 “루즈벨트나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 경제를 살린 것처럼 말이다.
왜 선진국이 선진국으로 계속남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정치적목적으로 왜곡되고 제단된 역사가 아닌 철저한 검증을 거친 왜곡되지않은 그나라의 역사를 반복학습하였고 그 역사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위한 정책과 비젼을 제시하였기 때문이지요 역사는 한번빤짝하고 지나가 우리의 기억속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역사가 아니라 역사라는 진리속에서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국가단위에서 가장중요한 지침서입니다
윗글처럼 세계대통령의 역사를 보면 자칭경제대통령의 독단으로 파국으로 내몰린 불행한국민들만 보입니다 세계의 과거역사는 진리입니다 자칭경제전문가란 소리에 속지마십시오 미국은 미국사람이면서 타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대선에 발도 들여놓을수없도록 법으로 정해놓았다 민주주의국가의 본산인 미국도 태생이 타국인경우 대선에도 못나오는것은 그자체로 부모들부터 애국심이 결여되어있다고 보기때문이다
아놀더 슈왈즈네거가 대선에 나가고싶어도 못나가는것은 그가 타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의 본거지다 그런나라가 왜 타국에 태어난 미국인이 대선에 발도 들여놓게 하지않는냐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수천만명의 군대를 통제하고 나라를 살려야할 애국심이 부모부터 결여되었다는 의미에서다 애국심과 신뢰와 투철한국가관의 상실은 대선에 나올수없는 가장중요한 지도자의 단점이기때문이다 |
세상어디에도 경제대통령은 없다 최고의 인사권자이자 군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은 있어도 경제대통령이라는 문구는 선진국지도자역사를 보면 나라를 가장 크게 망운 인물들이었슴에 그들은 더이상 생각하기도 싫어지는 인물이 자칭 경제혹은ceo대통령이라는 자들이었다 |
미국,이탈리아,태국사람들 우리 국민들 비웃고 있습니다 왜 외국인들이 증시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갈가요? 위의 내용을 잘읽어보면 그곳에 정답이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기업가를 떠 받들어 권력을 주려하는것을 외국인들은 얼마나 비웃고 증시를 빠져나갈까요 통일대통령은 부패와 좌파정권이 야합한 정권이 아니라 여,야 애국구국대선주자들이 모두 통합하여 좌파정권을 종식하고 보수대연합으로 원칙에 입각한 통일대통령을 만들어내는것에 있습니다 정동영도 문국현도 누구도 애국구국의 연합을 원하면 창에 모여야합니다 부패와 반부패의 전쟁이자 통일을향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연합입니다 2002년 좌파정권연장에 결정적역할을 한 jp,정몽준이 모여있는곳은 결국 또한번의 좌파정권연장의 불행의 길로 우리국민을 이끌것입니다
펌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