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삼은 괜찮은 축구회다.
내가 10여년 조기 축구회 생활을 하면서 명절날 정규게임 한 선례가 없다.
명절날은 고사하고 명절연휴 앞뒤로 놀 때 조차 나가면 기껏 5~6명이 나와 숏겜이나 퉁기고 왔더랬다.
전화해보면 다들 집에서 놀면서도 마치 굉장히 바쁜 척들 해가며 명절을 배에다 방구들 붙이고 있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추석은 정말 감동적이다.
삼일 중 이틀 찼다.
다리만 성했어도 삼일을 풀로 때리는 건데....
명절날 인원수 채워 풀코트 축구할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한가.
정기날도 땜빵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래서 호삼은 괜찮은 축구회다.
격식 안 차리고 공찰 기회만 있으면 하이에나 처럼 어디서든 달려들 온다.
호삼은 축구하는 날이 많다.
부득이 정기날인 토욜날 못 하면 화욜날 하면 되고..
화욜날 못 하면 수욜날 하면 되고...
하고 싶을 때 골라 먹는 재미가 이게 쏠쏠하다.
다 먹어도 되고...
추석날.
별 망설임 없이 이 전 마을의 잔디구장에서 한다길래
가족을 한 칼에 베고 아픈 다리 질질 끌고 황산벌로 갔더랬다.
구경하러 간 거 아니니까 갔으니 당연히 차고 왔다.
갔다 오니까 내 맘과는 달리 집 분위기는 밸로다.
각별히 조심하는 마음으로 입 꼭 다물고 구석과 그늘로 돌아다녔다.
그러다 다 늦게.. 잊혀질만한 시간.
호기롭게 마눌을 불렀다.
나: 역시 축구부 가입하길 잘했네. 인원이 되니까 큰게임으로 했다. 축구부 좋네...
마눌: 좋긴?? 내 보기에 조만간 바꿔야 할 거 같은데...
나: 모름지기 축구회는 축구를 해야 해.
시도 때도 없이 공부하는 학생이 좋은 학생이듯
시도 때도 없이 공차는 축구회가 가장 이상적인 축구회지...
마눌: 근데 왜 불렀어???
나: 응.. 그게.. 재밌게 차고 왔으니까 답례로 고맙다는 인사글은 올려야 할 거 아냐.
마눌: 맘대로 해라~.
나: 근데 말이지. 글을 영어로 올려보면 으떨까. 쌈박하잖아. 있어 보이구. 또 동료들한테 폼도 잡구....
마눌: ㅋㅋ 웃기고 있네...
나: 아니.. 괜찮은 아이디어 같은데.. 새로운 맛이 있잖아. 바야흐로 21세기는 싱싱해야 살아남거든.
마눌: 니 맘대로 하세요~~
나: 그래서....근데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영어가 막장이자나...
마눌: 그건 그렇지...그래서...
나: 당신 좀 도와주라. 내가 한글로 말하면 그걸 영어로 좀 써봐봐.
마눌: 가지 가지 하네.
나: 오랜만에 폼 좀 잡아보자. 엉~.
마눌:..........................
그럼 머 해줄 건데..
나: 내일 가사 면제권 한 장 줄께. 내일..조아 그냥 쉬어. 내가 음식 맹글어 줄께.
마눌: ............
조아.. 그럼 불러봐.
<A4용지 한 장과 플러스펜 한 자루를 마눌 코 앞에 디밀었다.>
나: 그니까.그게 에앰. <축구는 나의 졸라리 친한 친구다.>
마눌:평범한 용어로 불러줘..
나: 그건 통역사가 알아서 써야지. 둥글둥글하게 써라.
마눌:........<Soccer is my closest friend.>
나:오 그래..<추석날도 나는 축구를 했고, 골도 한 골 넣었다.>
마눌:<Even on the Korean Thanksgiving day, I played soccer and gained one goal.>
나: 오!! 제법 쌈박한 거 같은데...ㅎㅎ<그런데 운동장엔 나 말고 미친 쉐이들이 30명이나 더 있었다.>
마눌:<There were thirty crazy guys on the ground as well.>
나:조아조아.. <맨날 왔다갔다 해도 쪼다리 같이 나는 후보에 불과하다.>
마눌:.....<By the way, to be honest, I am no more than a substitute.>
나:음~~ 먼가 폼 있어 보인다.ㅋㅋ<다리를 절룩이며 들어올 때 마다 마눌은 나를 한심한 놈 쳐다보듯 한다.>
마눌:.......꼭 그렇게 써야 돼????
나: 괜찮아. 다들 집에서 그래..
마눌:........<whenever I return home with my legs lamed, my wife looks at me with a pity and contempt.>
나:제길..길어서 못 알아 묵겠다...<그리고는 "이제 그만 축구 때려칠 수 없어?" 라고 씨부린다.>
마눌:으이구......<and say "Hey, it`s time to give up soccer">
나:<그런데 그럴 때 마다 나는"니나 없어져라"하고 속으로 말하곤 한다.>
마눌:..........................................................
여기서 필름이 끊겼다.
나 지금 어디니?????
첫댓글 멋져부러 글솜씨 야대단하십니다 ..감동 이야, 멋쟁이
행님요!새벽에 잠도 안자고 뭐하는것이요?글 내용이야 일품이고.행수님 영어실력 찍이네 난 읽을줄도 모르지만ㅋㅋㅋㅋ 그래도 멋있어보이네!행님도 호3축구회 좋쵸?모든회원들이 다 좋아해!그나저나 몸이 빨리 나아야 우리축구회로 스카웃하지빨리 낮기를 빌면서.행님.행수 화이팅!!!!!!!!!!!!!!!!!
너무 죽인다. 재룡이형님 한 분으로도 좋은데 영민씨랑 정성문씨,정인천씨등 공도 잘차고 맘도 좋은 분들 모두 함게 하니 더욱 좋네... 그래도 형수는 맘이 좋네, 저는 축구하고나서 아내에게 "자긴 지금 미쳤다고 한 소리 들었는데..."
ㅎㅎㅎ 너무 재있게 읽었습니다. 가끔 영어로 올려 주세요 읽으니까 재미있네요.. 글을 읽으면서 화면이 그려지는데요...나중에 스토리를 역어서 시나리오 한편 만들어 영화사 한번 찾아가셔도 될것 같읍니다... 영구아트뮤비 가면 재미있게 만들겟는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