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에서 종교개혁한다면 기존의 종교와 달라야 한다. 다른 것이 무엇인고 하며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루터가 이야기 했다. 그전에는 없었는가? 있었다. 그런데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종교개혁까지 일어날 문제였는가?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와 국한된다. 그 당시 교회 내에서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영국의 위클리프라는 사람은 성경이 최고의 권위지 교회가 아니다. 체코 프라하의 구스라는 사람도 성경대로 해야지 교회가 최고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그 전의교회가 성경을 버렸는가? 카톨릭 교회가 성경도 안버리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니 이단이 되어 버리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라고 하니 이단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개신교이기 때문에 개신교를 좋게 해석하면 안된다. 루터의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을때 잇슈가 된 이유가 있다. 이것을 알려면 정치적 상황을 알아야 한다. 그 당시 정치적 상황은 교회가 국적이 없었다. 스페인 영국 덴마크, 독일이 있는데, 1517년에 휘텐 베르크 교회앞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그래서 그 당시 교회가 국적이 없었다. 교회가 국적이 없다니. 독일교회 프랑스 교회 영국교회가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영국, 독일, 프랑스란 나라가 없었다. 분권제, 권력이 분산되어 있었다. 영주들이 돌아가면서 왕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형이 유지되는 것은 교회의 총대표, 교황이 있었다. 각나라의 교회들은 그나라의 왕에게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교황의 말을 듣는다. 교인들은 누군가 영주밑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교황이 유일한 대통령이 된다. 부름스 회의에서 교황과 황제가 회의를 했는데 사제를 뽑는데 교회에서 뽑고, 주교는 황제에게 임명받는다는 조항이 있지만 주도권은 교황이 꽉 쥐고 있다. 왜 그런고 하면 이 많은 교회의 십일조가 교황에게 간다. 이것으로 교황이 용병, 군사를 만들어 각 황제들이 황제 되기 위해 전쟁할 때 교황에게 도움을 청할 때 군사파견을 요청하고, 교황은 군사 파견의 조건으로 자신의 말을 듣게 한다. 교황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함께 가짐
그래서 만약에 어떤 지역에 프로이센 지역에 교회가 있는데, 어떤 사제가 그곳에 관여하게 되면 일년치 봉급은 교황에게 바쳐야 한다. 그런데 성베드로 성전을 짓는데 초입세를 달라고 한다. 돈을 내면 죄가 용서 되는 그런 식으로 용서를 돈을 받고 팔아 먹는 일을 교황의 지시를 받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속제를 해주는 돈. 이렇게 할때 루터가 이것에 대해 반대해서. 쿠텐베르그 성당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건다. 주 내용은 속죄표로 죄를 용서 받을 수 없다. 연옥은 없다. 교황이 축복권한이 없다.
그런데 루터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이야기함. 그러면 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획기적인 이야기인가? 기존 주장도 있었는데. 그런데 왜 그 당시 정서에 맞지 않는가? 그 이유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각 교구별과 사제들이 있고, 성만찬이 행해지니 이미 다 구원받은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으로 구원으로 받는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그 당시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다 사기다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복음을 좀 알면 예수님을 좀더 알게 되었다는 것은 복음을 잘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복음 전한다고 하니 복음의 미진한 것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프로드리히3세가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정치적 종교개혁이었다. 평소 교황에서 억눌렸던 황제와 영주들이 교황에게 속한 신부가 반박해 주니 이들이 고마운 것이다. 왜냐하면 세속권력자가 독립적이라면 자기 백성들을 직접 다스릴 수 있다. 그 당시 황제고 영주가 신앙이 없었다. 그러면 왜 교황말을 듣는가? 돈이 많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고 돈 많은 것이 최고이다. 그래서 마지 못해 종교적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루터가 구원이라는 말을 꺼낸 것은 교황체제에서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교회 개선이 아니다. 교회 개혁이 아니다. 괜찮은 교회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무엇이箚?이야기하던가이다. 종교개혁은 매일 자기에게서부터 일어나야 한다. 교회건전이라는 것은 종교개혁이 아니다.
루터가 왜 그리 겁 없이 용감했는가? 독일 최고 영주가 받쳐 주니 가능했다.
사실 종교개혁자는 쯔빙글리이다. 루터보다 앞서 종교개혁을 했다. 그런데 전사했다. 프랑스인인데 스위스로 와서 공부함. 쯔리히에서 활동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했다. 이 쯔빙글리는 권력을 입은 것이 아니라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쯔빙글리의 지적은 화체설을 반대했다. 마리아 무오설을 반대했다. 성경이 최고권위가 있다는 것을 주장했고, 연옥설을 반대했다. 제세례파도 반대한다. 쯔빙글 리가 이러한 반대를 하게 된 것은 에라스무스에게서 배웠서 가능했다. 루터와 충돌-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했다. 에라스무스는 그리스도만이 성경의 중심이다라고 주장함. 그래서 에라스무스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음.
쯔빙글리는 초대교회로 단순하게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이것은 교회의 모든 장치와 형식이 사람의 구원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스위서 사제에게 교황이 월급을 줌. 쯔빙글리는 이것을 거부함. 스위스 자체를 종교개혁지로. 성상을 다 거부함. 미사를 반대한다. 쯔빙글리는 두 번다시 제사 드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함. 그래서 쯔빙글리의 사상은, 농민 출생이 되다 보니, 사회 구제라는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같은 시기의 루터의 사상은 이와 조금 다른다. 루터는 내면적이다. 십자가 중심이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이라는 것은, 루터가 자연 계시를 믿는가? 일반인들이 하나님을 아는가 안다. 그런데 모른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자신을 가리고 계신다. 이것은 루터의 기발한 것이다. 우주전체를 자신을 가리는데 사용하신다. 다른 사람들은 자연계시를 희미하게나마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루터는 하나님의 신의 존재를 아는데, 안다는 그 순간 그 사람은 우상 숭배자가 된다. 그러면 진짜 성령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희미하게 알지만 희미하게 알게된 그것을 보면서 내가 제대로 모른다는 죄를 느끼게 된다. 이전 신학 자들은 하나님을 자연을 통해서 아는데, 특별계시를 통해 보충하면 온전히 안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베일을 통해 하나님을 안다. 그래서 베일을 제거하면 하나님을 제대로 안다. 그래서 칼빈은 어그스틴에서 새로운 것이 없다. 그런데 왜 칼빈이 그렇게 유명해 졌는가? 어거스틴과 다를 것이 없는데 왜 그런가? 이것은 정치적이다.
칼빈이 인기를 얻은 것은 신흥 자본가들이 칼빈의 사상, 즉 이세상에서 돈 버는 것도 축복이라고 주장함. 신부만 소명이 아니라 모든 직없이 소명이다. 그래서 그 소명대로 열심히 하기만 하면 이 땅에서 실제로 복을 받는다고 주장함. 그래서 이땅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축복했다는 증거물이다. 그러니 도시 신흥 자본가들로부터 대박이 터짐. 이것이 르네상스, 계몽주의 사상에서 인간이 주체 의식이 강하면 강할 수록 칼빈사상이 더욱더 빛을 본다. 미국부흥운동이 일어난다. 이것은 내 몫의 축복이다. 개인주의 사상과 일치.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카톨릭 사상이나 루터의 십자가 사상이 먹히지 않는다. 그런데 칼빈주의를 믿는 대학생이면 백번보장.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땅끝까지 보장해 주시니 얼마나 인기. 칼빈은 개인 소명중심. 쯔빙글리는 기존 가난한 사람들. 종교적 형식 다 때려부숨. 루터는 십자가 신학. 그 당시에 군주의 신앙을 따르지 않으면 쫓겨난다.
교황이 파면한 지역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다 뺏어 와도 상관 없게 된다. 그럼 그 당시는 왜 그런가 황제가 교황에게 꼼짝 못함. 그러니 루터의 주장을 영주들이 좋아한 것이다. 1514-1526 농민들이 영주의 과다한 세금을 줄여달라고 주장한다. 루터는 영주편이다. 그 당시 구원은 군주만 눈뜨면 그 수하는 다 구원된다는 시대 였다. 그래서 영주편이다. 영혼이 다 다른데, 영주가 구원받는다고 개인이 다 구원받고, 나중에는 나라의 국왕이 구원받으면 국민이 다 구원받는다.
영국인들이 미국으로 가서 영국에서 하든 방식으로 그대로 함. 예를 들어 주일날 교회 가지 않으면 법으로 잡아들임. 청교도 법을 적용함.
칼빈이 취리히에 있을때 주일날 장로들은 예배 참석치 않는 자들을 잡어 죽였다. 개인의 종교는 본인이 결정한다는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그러면 언제 개인이니 구원이 개인이 결정하는가 할때에는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후에 가능했다. 그 전 까지는 교회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루터교 믿겠습니다. 칼빈교 믿겠습니다. 그래서 구원받던 시대였다. 그래서 많이 나온 것이 신조가 많이 나온다.
신조가 나온다는 말은 성경대로 성령에 의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너 뭐 믿노, 그래 옳다. 합격 불합격 가려냄. 신자 만들어서 뭐하 나. 국가 만든다. 신조 만들어서 독립국가를 만들었다. 이 신조에 동의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도망가야 한다. 종교개혁이 경건해 보이지만.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정치적 봉권 시대에서 근세 시대로 넘어오는 정치적 변화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을 거부한 수도원제도. 최초자본주의 발전, 개간해 돈이 되니. 먹고 살기 위해 수도원으로. 가난한 자들은 수녀 수도사가 되었다. 수도원이 복지 사회 단체가 다 되었다. 꽃동네같은 단체가 되었다.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굉장히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상은 생존의 욕구와 본능에 의해서 움직여 나간 것이다. 루터; 자연은 스스로 하나님이 자신을 숨기심. 우리는 죄인이다. 우리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한다. 쯔빙글리나 칼빈은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하다 연약하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 영광 돌려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누구를 더 좋아할까? 물론 칼빈이다.
칼빈은 앞서 개혁한 것을 이용한 것이다. 모은 일을 했다. 앞선 개혁자들의 개혁을 들고 반박함. 앞에서 한 것을 후예들이 그것을 그대로 이용한다. 박영선 목사 복음 안다고 하니 그 부교역자들이 복음을 안다고 한다.
목사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각자에게 일하시는 것이다. 루터가 이야기 한다. 루터사상은 교황을 반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영주들은 세금 내기 싫어서 루터를 지지함.
이제는 영주가 사제를 임명한다. 교황 간섭철폐 후 모든 십일조는 영주에게 바쳐야 한다. 그러니 종교개혁이라 할때 사람들은 자꾸 교회가 건전한 교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도 경건한 교회는 없다.
예수님을 바르게 증거하면 되지 칼빈 루터를 들먹인다. 어거스틴을 들먹인다. 왜냐하면 어거스틴이 권위가 있기 때문에, 왜 그런고 니케아 회의 삼위일체를 정립했기 때문에, 어거스틴 인정. 믿음으로 구원은 어거스틴이 주장. 그러나 이것은 인정해도 성경의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것은 씨도 안 먹힘.
그 시대 각 사람들은 루터 칼빈을 이용한다. 칼빈이 죽은 후 칼빈의 이름으로 국가 등장. 그러면 그 국가 밑의 사람들은 칼빈이 주장한 것을 벗어나면 이단된다는 의식이 있다.
십자가 신학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십자가로만 바로 드러난다. 십자가에서 인간은 비로소 죄인이 된다. 우린 구원을 요청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 루터는 말하기를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자를 하나님이 원하시면 구원하신다.
요한복음 6장66절을 두고 루터는 예수님이 아니면 아무도 아버지를 알자가 없다를 강조했다. 칼빈은 누구든지 내 아버지께서 오시게 하지 않으면 내게로 올수 없다는 강조했다. 칼빈은 구원론에 관심이 있다. 여러분 구원받고 싶죠. 아버지께서 오게 하시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연약해서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다. 이 연약을 메꾸는 것이 십자가이다.
그러나 루터는 아버지께서 구원해 주시면 그때 구원받는다. 칼빈은 하나님 구원중심이고 루터는 어떻게 구원받아야가 중심이다. 纓姑?하나님의 자유를 강조. 칼빈은 은혜를 기다리자. 어느 것이 나은가? 역시 칼빈이다.
쯔빙글리는 예수님을 믿었으면 이웃에게 봉사를 해야지. 천주교는 천주교는 어느 누가 함으로 해석하는가? 교회에서 지금까지 해석한 것을 근거로. 그러면 이것을 근거로 어떻게 구원받는가? 화상숭배, 연옥설등이 다 인간 구원을 위해 있다. 천주교가 성경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천 몇 년의 역사를 통해 모여 회의 기도 연구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믿으면 구원, 성경으로 돌아가자.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라. 그러나 칼빈은 성경대로 믿어야 한다.
칼빈의 예정론 하나님이 예정하신 자만 구원얻는다. 타락전 예정. 쯔빙글리는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시면 누구든지 구원받는다. 인간의 어떤 것도 관여못한다. 심지어 이방인이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더라도 구원얻는다. 루터는 하나님의 예정의 증거가 있다. 말씀과 성례참예.
말씀과 성찬식으로 예정되었다고 주장하면 말씀과 성찬으로 예정을 결정하기 때문에 다시 카톨릭으로 돌아간다고 쯔빙글 리가 주장함.
실제로 칼빈은 인간의 행위 됨됨이로 판다. 하나님이 예정했으면 다른 사람이 관여할 수 없다.
루터의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예정하신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창조전 예정했기 때문에 예정된 자는 구원받는다.
어떤 사람이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당신 머리가 잘 나왔다라고 말했을때 내가 잘나서 그랬다는 것이 칼빈. 미용사가 잘 했기 때문에 잘 나왔다. 이것이 루터의 주장이다.
특히 성례문제에 있어서 쯔빙글리는 폼이다. 인간들이 놀음이다. 실제로 주님이 거하지 않는다고 본다. 성찬식 없어도 구원받는다. 오직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 그런데 루터는 그 떡과 잔이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앙으로 보면 주께서 임재하는 것이 보인다. 칼빈은 성령안에서 임재한다. 루터는 성찬식할 때 임한다. 칼빈은 성령님이 오셔야 임재한다. 칼빈은 성령님의 자유로운 결정. 루터는 성찬식때 마다 임한다. 쯔빙글리는 임하지 않는다.
십자가의 능력이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임해 구원받는데. 성찬식이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칼빈과 루터는 작용한다고 본다.
그러면 왜 그 당시 성찬논쟁이 중요한까? 그 당시 민중들은 성찬식 참여 하지 않으면 파문당한다고 배워짐. 성찬 참가치 않는자는 악마의 지배를 받으니 모든 보호를 못 받음. 정식 사제집행의 미사 참여하면 예수님이 실제로 오시니.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 그러니 하나님 백성으로 보호받는다.
기독교가 국교가 된후 기독교는 이미 끝나 버렸다. 살기 위해, 생존을 위해 교회 미사에 참석한다. 그러니 쯔빙글리처럼 주장해 버리면 교회 안나오는 자들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이방인들과 같이 취급됨. 그러니 루터와 칼빈이 당신은 성도가 맞습니다.라고 이야기 하려면 성례를 붙들어 놓아야 한다.
유아세례를 루터 칼빈 쯔빙글리 다 인정함. 이에 대해 재세례파는 유아가 무엇을 아는가? 이 당시는 유아가 부모소유이다. 어릴때 유아가 죽으면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의 연옥을 만들었다.
그러니 이것을 반대 해야만 종교개혁이 성공한다.
개혁주의에서는 유아세례를 주장함. 왜냐하면 어린 나이에 죽은 아이들을 생각해서.
유아세례가 성경적 근거가 있는가? 없다. 그러면 안해도 되겠네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유아에 대한 관심 사랑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목사님 성경대로 합시다. 라고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으면 유아세례 안주면 , 아이 때 죽으면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묻는다. 그러니 이것도 없다면 얼마나 무책임하고 비정한가. 나쁜 부모가 되는가? 그래서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쉽게 그만둘수 없다.
개혁주의가 대중들이 어떤 종교를 원하는가로 획 돌아가 버린다.
십자가 신학에서 루터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돌아가,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이 사랑으로 가능하지 율법으로서는 안된다고 주장함. 여기에서 나온 것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그런데 여기에서 믿음도 인간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믿음이 방편이 되어 구원된다. 여기서 나온 것이 만인제사장을 주장함. 칼빈이 이것을 거부함. 그러나 칼빈이 천주교에서 사람을 빼낼때 이것?써 먹는다. 목사 장로 일반교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장로들은 예배 불참석자 색출하러 다닌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상적이 국가가 된다.
이런 것을 보면 예정되었다고 해놓고 교회가 사실 목사가 한다. 만인제사장이 아니다. 교회 없는 구원이 없다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말함으로 말미암아 한 국가가 교회 중심으로 질서를 찾음. 그 시대가 내버려 두면 개 망나니가 다 되어 버리니. 지시를 받다가 내버려 두면 엉망. 교회가 묶어둔다. 이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신조이다. 이것은 천주교와 다른 개혁주의 신조를 만든다.
루터는 여러분이 다 만인 제사장이다. 하나님의 자유를 강조. 실제로 일하심. 실제로 십자가를 통해 인간을 죄인으로, 무조건 사랑에 의해 죄인이 구원받음. 교회의 머리는그리스도. 모든 사람은 만인 제사장이다. 칼빈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음. 어거스틴 마리아 숭배, 연옥설은 부정했지만, 인간의 미약으로 자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받는다. 이 은총이 모든 영역에 미쳐야 한다. 칼빈의 소명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넘쳐야 한다. 여러분이 예정된 성도라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도덕적으로 옮겨야 한다.
이렇게 나오니 기존 천주교에서 군사동원개혁주의를 치려고 함. 1618-1648년 30년 전쟁. 세 번지고 한번 개신교가 이김. 마지막 전쟁이김. 이기게 된 것은 덴마크 스웨덴이 개입하여. 이때 개신교도 정식 종교를 인정해 준다. 루터교 칼빈교를 정식종교로 인정치 않는다는 것은 교회 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법으로 보호 받지 못한다. 십일조 바치면 국가가 보호하지 않는다. 그러니 교회의 재산이나 개인의 재산 보호 받지 못함. 그러니 국가 보호를 받으려면 국가가 인정해주는 종교가 있어야 한다. 영국국교. 영국국왕이 교황말 듣지 않으려고 국교를 정함. 그러면 국교만 인정한다. 이렇게 되면 비국교의 재산은 다 몰수 함. 헨리8세의 경우는 천주교 칼빈교 등을 다 죽여 버린다.. 그래서 반발해 일어난 것이 청교도 혁명이 일어난다. 칼빈파 등장. 이제부터는 천주교가 당하기 시작한다. 만일 칼빈주의가 되지 않으면 공무원시험을 치러지 못한다.
미국가서도 만찬가지이다. 재산보호 못받았다. 1789년에 프랑스혁명. 박애평등 자유. 모든 교회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 독일에서는 신부나 목사가 월급쟁이이다. 공무원이다.
우리가 보기에 예수믿어서 구원받는데 어떻게 국가가 등장하는가> 원래 국가라는 것이 없었는데 사람들이 국가를 원했고, 국가가 지배할 때 어떤 쾌감을 느낀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교를 믿을때 쾌감을 느낀다. 정신을 지배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모든 통로가 교회를 통해서 움직인다. 이것을 민중들도, 목사들도 원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통로를 다 막아 버림. 교회가 부흥하면 교회를 믿지 십자가를 믿지 않는다.
종교개혁할 때 퀘이크 교도-목사도 없다. 성령받아 설교하고 싶은 분 설교. 기도 하고 싶은 분. 성도의 모임중 은사가 임한 것이 계시라 생각함. 이것이 유행함. 이것은 기존 교회 부정. 모든 제도도 싫다. 성경말씀 해석도 자기 자신이 한다. 신부도 목사도 싫다. 초심미안주의.
그러니 하나의 그동안 쫙 짜였던 틀에서 해방되니 개인주의가 튀어나온다. 문예부흥. 과학발달로 교회고 무엇이고 다 과학이 진리, 이젠 성경없이 과학으로 학문으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