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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 강은 도도했다. 밀림 협곡을 가르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푸르다 못해 검은 비단 결 같았다. 프랑스 병사의 열병식마냥 그렇게 유유히 장강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칸차나부리의 강마을은 청정했다. 잘 닦인 아스파트 길과 자동차만 아니라면 그곳이 <에덴>이라 해도 좋을 듯 했다. 어쩌면 무성 필름을 보는 것 같은 한없는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갖가지 꽃이 형형색색으로 그 곳 그 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피어있었다. 이 꽃 저 꽃 채홍사 같은 나비 가 아니었더라면 꽃들은 조화인 듯, 졸고 있는 듯 했다. 크고 작은 이름 모를 열매와 과일들이 지천이었다. 도대체 이 강에는 강변이 없었다. 강가에 있어야 할 모래사장이나 자갈밭 같은 강변이 없었다. 드문드문 강을 따라 원두막 같은 수상방갈로가 있어서 배도 매고 낚시도 한다. 방갈로에 올라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그네는 섧다. 가는 세월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 섧다. 아니 내 마음을 매어 놓지 못해 이리 서러운지도 모른다.
<떠나가는 배>의 애절함 같은 설움이 복받쳐 온다.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오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 할/ 임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 남겨 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어릴 적에는 소나무 껍질로 나무배를 만들어 개울에 띄었다. 동무들과 누구 배가 빠른지 제각기 띄운 배를 따라 달음질을 쳤었다. 배가 급류에 떠내려가고 나면 한 동안 망연히 멀어져 가는 배를 바라보았었다. 밤이면 손에 닿을 듯 내려앉은 별들이 영롱했다. 어쩌다 산짐승 울음소리가 들리고 맹꽁이 한 쌍이 번갈아 음치 같은 탁성을 냈다. 물이 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던가? 가만히 귀 기울여 보지만 물여울 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다.
남국의 강에도 둥근 달이 떠오른다. 태국 음력 12월 15일 보름, 한국 음력으로는 10월 15일 보름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날 저녁에 연꽃 배를 강물에 띄운다.
‘러이끄라통’ <러이>는 띄운다는 뜻이고 <끄라통>은 연꽃을 말한다. 바나나 줄기 한 토막과 그 잎으로 마치 생일 케이크처럼 생긴 연꽃모양의 작은 배를 만들어 불을 밝히고 초와 향 ,꽃 , 동전 등을 실어서 강물이나 운하 또는 호수로 띄워 보내면서 소원을 빈다. 그러고 나서 폭죽을 터뜨리고 공포탄을 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끄라통>에 액운과 재난을 함께 띄워 보낸다. 앞날의 소망을 말하거나 행운이 있기를 기원한다. 촛불이 꺼지지 않고 멀리 떠내려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보름달빛 아래 고요하고 잔잔하게 흐르는 물을 따라 촛불을 깜박이며 부드럽게 까딱까딱 흔들거리며 떠내려가는 <끄라통>을 보는 것은 희망이고 즐거움일 뿐 슬픔 같은 것은 없다.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보면 사람들은 뭔가를 떠내려 보고 싶은가 보다. 나무배가 되었든 <끄라통>이 되었건 그 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고 싶은 제 마음의 다른 표현 형식일 것이다. 아름다운 축제의 밤이다. 여인들이 줄줄이 강강수월래 같은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랫말이 뭘 말하는지 모르되 그 몸짓 그 표정에서 인간사 희로애락이 매 한가지임을 안다. <칸차나부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