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종합터미널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온 버스터미널이다.
1997년 11월 용현동에서 이사를 오자마자 IMF가 터져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2000년대 초반 구월동이 인천 최고의 상권으로 거듭나면서 호황을 누리나 했는데,
수요 예측 실패로 터미널이 과포화 상태가 되어 사시사철 터져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더군다나 구월동 일대에 엄청난 교통 정체가 생기면서,
개통 10여 년 만에 다시 터미널을 옮긴다는 이야기가 돌고,
인천의 재정 악화로 시작된 롯데와 신세계의 치킨 게임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가 되었다.
2018년 12월 31일부로 치킨 게임은 끝이 난다.
신세계백화점이 롯데백화점으로 바뀌면서 터미널 주인도 완전히 바뀌게 된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뀌기 전의 마지막 모습을 남기러 인천으로 출발했다.

부천에서 지하철을 타고 30여 분을 달려 인천 구월동에 도착했다.
인천에는 최근 몇 년 사이에도 몇 번 온 적이 있지만, 구월동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인천 사람이 아니니 오랜만에 오는 게 당연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인천 사람들과 죄다 연락이 멀어지면서 차츰 낯선 곳이 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필자가 방문했던 시점은 신세계백화점이 롯데백화점으로 바뀌기 직전이었다.
2019년으로 해가 넘어감과 동시에 구월동의 랜드마크이자 터미널의 동반자인 신세계는 막을 내린다.
그리고 이 자리를 롯데백화점이 차지하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이 모습을 볼 날이 이젠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천종합터미널은 신세계백화점과 한 몸처럼 움직여왔다.
터미널 디자인부터 신세계백화점과 매우 흡사하게 생겼으니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인천 1호선과 연결된 서부광장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어디부터 백화점이고 어디부터 터미널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천종합터미널은 현재 롯데그룹 소속이다.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인천교통공사 간판을 달고 있다.
생각만 해도 혼란스럽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원래 인천종합터미널 + 신세계백화점 부지는 인천광역시 소유였다.
입구 오른편에 보이는 '인천교통공사' 간판은 그 시절의 흔적이다.
그러나 2000년대 말에 송도, 청라, 영종, 논현 등등 사업을 무리하게 벌이는 바람에,
극심한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은 인천이 2012년 9월 부지를 롯데그룹에 팔아버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곳은 신세계에서도 최상위권의 매출을 자랑하는 밥줄이다.
졸지에 노른자위 지점이 경쟁사 땅이 되어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신세가 된 신세계그룹은
인천광역시와 롯데그룹을 상대로 가처분 소송을 걸었지만 패했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넘어간 끝에 최종적으로 인천종합터미널은 롯데 소유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신세계가 영업 중인 상황이었기에 터미널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딱 한 가지, 매표소 위치가 바뀌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매표소 위치가 승차장 쪽으로 옮겨가면서 시간표가 대합실 중간의 벽면에 걸렸다.
이런 위치에는 보통 광고가 붙기 마련인데 시간표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게 참으로 독특하다.

현 매표소와 승차장 맞은편에는 백화점으로 연결되는 입구가 있다.
에스컬레이터에 달린 하늘색 간판에는 신세계식 디자인으로 여러 시설이 안내되어 있다.
사진을 찍었을 때 기준으로 당장 몇 주 남지 않은 모습이다.
글을 쓰는 시점에서 이미 간판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르고,
글이 올라온 직후에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있을 것이다.
변화라는 게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다.

엄청난 변화를 앞두고 앞서 바뀐 점은 매표소의 위치이다.
승차장 쪽으로 위치가 바뀌어 무인발매기 위주로 설치가 되었으며,
매표소 위치가 바뀌면서 의자들도 양옆으로 치워져 중앙이 뻥 뚫린 구조가 되었다.
수요에 비해 매표소 직원 수는 상당히 적은 편인데 무인화를 염두에 두고 만든 기운이 역력하다.

원래 매표소가 있었던 자리는 이렇게 텅 비어있다.
어떤 공간으로도 쓰기가 애매해서 이렇게 놔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칸막이가 되었던 창틀이 광고가 된 모습을 보며 묘한 기운을 받는다.

양옆으로 옮겨진 대기실 의자와 시간표, 그리고 2층을 수놓은 푸드코드는
보이지 않는 듯 많은 것이 변해있었음을 알리는 증표가 된다.
문득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모습이 추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표소 위치 변동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바뀌었던 대합실과는 달리,
승차장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없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터미널 주차장에는 지붕이 없는 데다 뒤쪽으로 이렇다 할 건물이 없어 시야가 매우 넓고,
승차장조차도 양옆 광장으로 분리벽 없이 뻥 뚫려있어 사람이 드나들기 쉽게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구조가 버스터미널 하면 떠오르는 아주 전형적인 모습으로 느껴진다.

ㄱ자로 꺾인 인천종합터미널 승차장은 본 건물 쪽이 승차장, 꺾인 부분이 하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도 사람과 차량이 많다 보니 하차장 대기실이 따로 분리가 되어 있다.
인천터미널은 여러 번 왔지만 하차장 대기실은 처음 발견했는데,
아마 대다수의 터미널 이용객들도 잘 모르는 사실일 것이다.
워낙 외진 곳에 있는 탓에 본 건물과는 달리 다소 한산하며, 노인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보였다.

지하철과 연결된 서쪽 광장 말고 동쪽 광장으로 나오면 이런 광경이 펼쳐진다.
8년 전 방문 당시에는 한창 공사 중이었던 건물이 완전히 공사를 끝내고 어엿한 백화점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신세계가 기껏 공사를 끝내고 영업을 하려던 찰나 롯데가 그 기회를 가져가 버렸다.
신세계 입장에선 그야말로 죽 써서 개 준 꼴, 눈 뜨고 도둑맞은 셈이다.

지하철로 터미널, 백화점을 오면 서쪽 광장으로 들어오게 되지만,
버스로 이곳을 방문하게 될 경우 동쪽 광장으로 들어오게 된다.
새로 지은 건물이 반짝반짝 빛나는 동쪽 광장은 이제 롯데백화점으로 가는 관문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건축계에서도 사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 눈앞에 펼쳐졌다.
말도 안되는 현실을 인천종합터미널은 온몸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시점이 되었다.
터미널 입장에서는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지 황당할 따름이겠지만,
앞으로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해야만 한다.
그 변화가 터미널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부디 좋은 쪽으로 바뀌는 것이기를 바란다.
첫댓글 요즘 인천 울진 운행해요? 9시간 넘는다던데
네, 오전 10시에 한대 있습니다. 서수원 경주 포항 영덕을 다 찍고 가니 엄청나네요.
2012년당시 인천재정상태가최악이라 터미널.백화점.농수산물부지를 신세계에1조규모에 영구입대권을제시했지만 신세계가시간끌기와가격갂기등 딴지가심해서 화가난인천시가 공개입찰로바꾸면서 롯데한테넘어간일이죠
맞습니다. ㅎㅎ 신세계가 딴지만 덜 걸었어도 이런 사태는 없었을텐데 말이죠.
11월 한국시리즈 5차전 관람하러
문학구장에 갔었습니다.
토요일 저녁 5시쯤 야구끝나고 나오는데
주변 정체가 장난아니더군요.
예전 용현동이나 지금이나 고속도로와
접근성은 좋은데 맥시멈님께서 지적해 주셨듯이 처음 터미널 들어설때와
너무나 달라진 주변환경이 문제네요.
문학야구장도 2002년인가 개장했고
농수산물 시장도 있고
남동공단으로 가는 길목이다보니
출퇴근 정체가 장난아닌거죠.
이번주말쯤 수원에서 인천갈일 있는데
그때 버스를 타면 변화된 터미널을
볼수 있겠네요.
잘 보고 갑니다^^
하필 터미널 위치가 남구-남동구-연수구의 연결 부분인데다 고속도로, 공단, 상업지구, 경기장까지 몰려있으니 정체가 없는게 이상하겠죠. 이번 주말이 지나야 소유주가 바뀔 테고, 바뀌자마자 한번에 갈아엎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조금 더 지켜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인천시가 참 무리한 사업들을 많이 벌이더니 그것이 이런 코미디 같은 일로 귀결되는 걸 보면 참 씁쓸할 따름입니다. 인천터미널을 가보진 않았지만 대단히 알짜 부지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걸 팔아야 할 정도면 인천시의 재정 상태가 어렴풋이나마 그려집니다. 터미널도 공공사업이라 인천교통공사에서 직영하는 인천터미널의 운영 사례가 좋은 선례를 남겨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예전 이야기네요. 광역시 지역의 터미널인데다 버스 이용객 역시 꽤 많은 모습이 고양이나 부천과는 확실히 대조적입니다.
알짜배기 땅을 팔아야 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안 좋았으니 얼마나 무리수가 심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롯데가 일종의 하이재킹을 한 셈인데, 인천터미널 사례는 안 좋은 쪽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항상 느끼는 겁니다 주말낮만 되면 말도 안되는 정체 답답한 흐름 그와중에 농수산 시장과 백화점만 붐비는 흐름..... 그사이에 우리의 버스는 가족과 친구들의 만남이 점점 늦어지는 그런마음.....
저도 신세계가 좋아 인천터미널에 쟈주 갔고
실제로 지금도 명품관 때문에 거리가 먼 강남보단 인천 신세계에 자주 갔지만....
저도 롯데 계열 큰대에서 일하지만..... 아쉽네여 신세계가 없어진다는것에... 보기에 신세계가 너무
자기들이 독점식 운영을 하다가 너무 안주한 모습을 보이다가 뺏기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된거 같아 거 속상합니다.
인천을 놓친 대신에 부산 센텀시티를 가져왔으니 결과적으론 쌤쌤이라고 할까요. 가장 피해보는 사람들은 백화점 이용객이겠지요. 버스터미널 이용객들 역시 주변 정체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보고 있고요... 인천시의 정책적인 부분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롯데가 농수산시장 부지를 터미널로 쓰고 터미널 부지를 복합쇼핑몰로 바꾼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 얘기가 돌고 있죠... 인천시민이라면 아주 민감한 주제겠군요.
개장부터 롯데 변경전까지 인천교통공사 소속 직원들과의 친분이 많이 쌓였었는데,
어느순간 하나 둘 그자리를 떠나가더군요. 세월의 야속함이라고 해야 겠지요.
농수산물시장과 신세계백화점이 중심역할을 기둥처럼 했었는데, 그 기능을 간과한다면 효과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한참때는 안산과 안양에서 신세계백화점 이용객들이 많아 별도의 행선판을 만들어 부착하기도 했었죠.
향후 롯데소속의 인천터미널 앞날이 주목되어 집니다.
구월동 신세계백화점이 인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알짜 백화점으로 알고 있는데,
그곳이 바뀐다고 하니까 개인적으로는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너무나 아쉬운 것은 공공재인 인천터미널이 사유지가 되어버렸다는 점이죠.
사유지가 됨으로서 생기는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