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에게 뉴욕 데뷔는 곧 세계 데뷔다. 이 거대하고 활기찬 음악의 심장부에 한국을 심는 이가 있다. 뉴욕 한국음악재단(Korea Music Foundation)의 이순희 (64) 회장.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입상한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김(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악장),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인디애나음대 교수) 피아니스트 김대진(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캐서린조(줄리아드음대 교수) 첼리스트 양성원(연세대 교수)…. 수많은 한국 음악인들이 이순희씨가 만든 한국음악재단이 주선한 무대를 통해 뉴욕에 데뷔했다.
‘뉴욕 한국음악인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이씨가 한국음악재단 20주년 음악회(10월9일·예술의전당)에 참가하러 서울에 왔다. 이 재단의 활동을 통해 데뷔한 음악인을 비롯해서 중진·중견 연주자들이 꾸미는 따뜻한 무대다.
“음악은 혼자서는 못해요. 아무리 실력있는 연주자라도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줘야 해요. 아이작 스턴이나 주커만·펄만 같은 유태계 바이올린 연주자도 막강한 유태인 단체들이 후원했기에 세계적 대가로 클 수 있었죠.”
이씨가 한국음악재단을 만든 것은 1984년. 서울대교수를 지내다 뉴욕에 정착한 바리톤 김학근씨 등이 힘을 합쳤다. 이씨는 홀을 잡고 프로그램을 짜고, 연주자들이 음악에만 전념토록 배려했다. 그렇게 20년간 데뷔시킨 연주자가 51명, 실내악단이 7개다.
“2001년부터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1년에 6회 콘서트를 합니다. 지금은 링컨센터 앨리스 털리 홀에서 ‘KMF 버추오소 콘서트’ 기획시리즈로 발전했죠. 이 시리즈에서만 100여명 연주자를 미국 무대에 소개했습니다.”
재원은 재단 이사진과 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김마태(의사)씨 등 음악애호가들이 내는 기금과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백건우(피아노) 강동석(바이올린)씨 등은 기금마련 자선음악회로 재단을 도왔다.
에피소드도 적잖다. “한국의 부모 품을 떠나온 14살 음악도의 줄리아드예비학교 입학서류에 부모 대신 사인했다가 훗날 그 학생이 몹쓸 사고에 연루되는 바람에 애를 먹었고…. 한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달라고 하도 찾아가니까, 학장은 나만 보면 ‘순희씨, 이번엔 무슨 일이냐?(What Soonhee this time?)’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이순희씨는 우리나라 예술가곡의 1세대 소프라노이기도 하다. 1962년 서울대음대에 다니다 도미(渡美), 오클라호마대학과 줄리아드음대, 동대학원에서 세계적 성악가 제니 투렐(Jennie Tourel)에게 배웠다. 지금도 제네바·니스 콘서바토리와 밀라노 오페라학교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하며, 10년간 그의 독창회를 반주해온 세계적 피아니스트 달톤 볼드윈과는 지난해 3월에도 뉴욕무대에 함께 올랐다.
이씨는 최근 한국음악재단 한국지부를 냈다. 이제는 거꾸로 한국무대를 꿈꾸는 교포2세 연주자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다. 피아니스트 김대진씨가 회장, 음악평론가 한상우씨가 이사장을 맡았다. 한국음악재단 20주년 기념 음악회(02-706-1481)에는 신수정 문익주 김대진 조지현(피아노) 김인혜(소프라노) 김의명 박재홍(바이올린) 양성원 송영훈(첼로) 김상진(비올라)씨가 출연, 드보르자크 ‘피아노 오중주 작품81’ 등을 연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