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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 1 - 현재 한국불교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헤쳐가야 하는가
주경스님(서산 부석사 주지, 중앙종회의원)
1. 간략한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에 대한 이해
한국의 근현대사는 격동과 위기, 변혁의 과정에서 생존을 위한 도전과 투쟁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이 무너지고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는 이 나라를 근본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신분과 계급제도를 비롯하여 국가의 모든 체계가 일제를 중심으로 개편되었다. 특히 한국역사의 외곡과 일본문화의 이식은 민족의 전통과 정체성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남북이 분단되며 이 국토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과 대립의 대결장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친일파와 친일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미군정에 의해 친일세력의 정치 경제적 세력은 그대로 유지된다. 분단과 친일세력의 잔존은 현재의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전통문화에 대한 외면과 무시 그리고 도덕불감증의 근본 원인이다.
3.15부정선거로 몰락한 이승만 정권은 분단을 야기한 미국과 야합하여 탄생한 정권이다. 이들은 기나긴 항일투쟁을 통해 민족 정통정부의 구성을 염원했던 백범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의 역사와 전통, 독립정신을 등져버렸을 뿐만 아니라 파괴하고 소멸시켜 버렸다. 이승만 정부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공이념으로 국부를 자처하는 독재적 국가 통치로 국가와 민족의 정통성 확보와 친일청산을 통한 사회통합에 실패했다. 오히려 친일세력이 그 지위를 확보하고 정치적 사회적 세력을 공고히 하는 기회를 주었다. 4.19혁명으로 얻은 이승만정권의 퇴진과 짧은 민주주의에 뒤이은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긴 군사독재와 한국적 경제발전, 그리고 박정희의 저격과 뒤이은 전두환의 군사 쿠데타. 이렇게 한반도의 20세기는 갈등과 투쟁, 위기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시간으로 점철되어왔다.
일제에 협력하던 친일세력들은 일본이 패망하고, 친미로 변신해서 이승만 정부에서 살아남았다. 이후 이러한 세력들은 정치적으로 이 나라와 사회가 뒤집어지고 변화할 때마다 생존과 성공의 기반을 유지해온다. 그리고 한국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그 단적인 예가 한국의 화폐에서 나타난다. 우리의 화폐에는 수 백 년 전 조선시대의 인물들밖에 없다. 세계 어느 나라의 화폐를 살펴봐도 이런 나라는 없다. 대부분의 나라가 국가를 건국하거나 독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근현대사의 인물들을 화폐에 새기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아직 우리의 근대사를 이끌어 온 의사ㆍ열사들의 독립정신과 그 사상을 담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지금의 정부에 들어와서는 국사가 선택과목으로 되어버렸다. 세계의 어느 나라가 자신들의 역사를 선택해서 배우도록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느 나라를 본떠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나라와 민족을 막론하고 가장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과목이 있다면, 바로 국어와 역사와 산수이다. 일본은 계속적으로 독도를 그들의 영토라고 우기고, 우리의 동해는 일본해로 표기되고 있으며,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그들의 역사로 편입시키고 있다. 이런 형편에 우리의 역사교육을 포기하는 우리 교육당국의 속내를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
근현대사를 대략 돌아보면서 현재의 한국이 이렇게 경제적 역량과 국제적 위상을 갖추게 된 것은 거의 기적적인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변혁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다수 우리의 전통문화와 정신을 잃어버리고,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오직 잘 살기 위한 경제적 가치의 추구와 신분상승의 욕구로 점철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유구한 역사와 문화적 자산을 자양분으로 하여 현재의 경제적 발전을 이루고 있으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인식의 수준은 아직 현저히 낮은 단계에 머물고 있다.
대표적으로 불교와 불교문화재에 대한 시각에서 그 단편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와 당국자 또는 일부 전문가 그룹은 불교문화재를 대할 때 종교적 신성함을 인정하지 않고 물질적인 존재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또 불교문화재의 지정비율로 볼 때, 불교계와 불교계 추전인사들이 문화재 정책의 기획과 집행에 당연히 함께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고려하고 있지 않은 현실이다. 특히 종교편향과 차별이 두드러진 현 정부에 와서는 자의적으로 종교적 잣대와 정치적 잣대를 멋대로 들이대며 종교간의 분규상황을 조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 불교계의 토지를 공원으로 묶어 놓은 것이다. 종교자산인 불교계의 산림과 사찰토지를 국립공원 등 각종 공원으로 지정하여 종교 활동을 규제 및 제약하고 재산권을 심대하게 침해하고 있는 형편이다.
2. 근현대 한국불교의 전개와 상황에 대한 간략한 정리
조선 500년간 한국불교의 명운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졌다. 세계사를 둘러보아도 500년 동안이나 현실적으로 정치적 사회적으로 탄압을 받으며 그 존재를 이어온 종교는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말 경허, 만공 선사와 백용성 스님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출현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한국불교는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일제 36년간 한국문화의 침탈과 더불어 불교 왜색화에 의해 한국불교는 대처불교라는 변형이 생겨나게 되었다. 해방이후 한국불교는 대처와 독신비구승과의 분규로 내외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된다. 60년대 초, 조계종의 성립이후 비구대처간의 분규는 종식되었지만 이후 수 십 년간 소송과 재판으로 역량을 소모한다. 현재의 수많은 군소종파의 난립도 비구대처간의 분규로 인한 부산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1980년 한국불교는 쿠데타 정권에 의해 유례없는 법난을 당하여 최악의 상태로 내몰린다. 그리고 94년과 98년의 두 차례의 조계종 분규는 한국불교의 현대사에 가장 아픈 기록으로 남았다. 해방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문물이 밀려들어오고, 그들의 종교와 사상이 이 사회를 잠식해 갈 때, 불교계는 내부의 분규와 정치적 탄압의 그늘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중에도 한국불교는 청정한 수행교단을 건립하기 위한 중단 없는 노력을 기울여 왔고, 사찰들은 꾸준히 불사를 이루어 왔다. 사실 개신교와 가톨릭이 서구 강대국의 지원과 이에 따른 정부의 호의 아래에서 순조롭게 자리 잡고 발전해 왔다면, 불교는 내부의 분규와 외부의 압박을 견뎌내며 치열하게 자활해온 것이다.
현재 한국불교는 불교 정통의 가르침과 유교적 가풍이 일부 혼재 하고 있으며, 종단과 사찰 운영에도 불교 전통의 방식과 현대 민주주의적 요소가 혼합되어 뚜렷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수많은 내외의 장애와 문제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자기 정화와 종단확립에 노력하고 있으며, 사회참여와 중생구제에 더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불교는 점점 좋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3. 현재 한국불교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헤쳐가야 하는가?
1) 사상과 철학의 문제
현재 한국불교는 바다와 같아 무엇이든 수용할 수 있다는 추상적인 사고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수행교단과 개인의 삶의 원칙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까닭에 불교 본연의 엄격한 수행가풍과 청빈한 삶의 기초를 흐리고 있다.
특히 통불교라는 미명아래 유불선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상과 수행방법의 채용이 자유로운 상황이다. 새로운 종파를 생성하는 창종도 일부 개인이나 집단이 임의적으로 할 수 있다. 한국불교의 장자 종단인 조계종도 독신 비구로서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과 종법에 정한 미등록 사설사암의 소유 및 몇 가지 법적 제한을 제외하면 무한히 자유로운 생활이 보장된다. ‘불조의 혜명을 잇고 자각각타(自覺覺他)’ 한다는 대 전제가 있을 뿐, 현대사회에서 출가승단의 구성원으로 가져야 할 구체적인 원칙과 기준이 마련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더욱이 승가의 가장 근본적인 수행생활의 원칙인 탁발과 무소유 정신도 거의 포기가 된 형편이다. 탁발이 폐지됨으로 중생들과의 만남은 단절되고 폐쇄그룹으로 살아가게 되고, 소유에 대한 적절한 원칙과 규정이 없는 까닭에 사설사암을 비롯한 법인, 부동산 및 동산 등의 재산상 소유가 거의 무한대로 허용되어 있다.
총무원장과 본사주지를 비롯한 소임자 선출에 있어서 세속적인 선거제도의 도입과 확산은 세속적인 정치화와 혼탁한 선거풍토의 유입이라는 심각한 병폐를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선거의 권한을 가진 사설사암은 더욱 늘어가며 이들의 정치적 권한은 강화되어가는 것이 현실이며, 선거에 관련된 다툼과 소송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 한국불교가 서있고 가야할 뚜렷한 사상과 철학을 정립하고 현실적인 수행교단의 존재 원칙과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가. 현실적인 승려의 위상과 위의가 정립되어야 한다.
승려는 원칙적으로 승가 구성원의 근본 입장인 수행자로서 그 존재가 형성된다. 그러나 한국의 승려는 수행자 이면서 사찰의 관리와 포교, 전법교화 해야 하는 포교사로서의 현실적인 사명도 함께 질 수 밖에 없다. 수행자로서만 존재할 수도 없고, 성직자 역할만 할 수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교단은 구체적인 승려의 위상과 역할을 규정하고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으로서나 교단 구성원으로서 승려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상과 역할 규정이 필요하다. 두 역할을 모두 감당해야하는 원력 승려도 힘이 겨워 보이고, 교묘한 처신으로 의무와 역할을 피하며 자신의 편리와 이양만 추구하는 박쥐승도 옳은 모습이 아니다.
출가 승려 간에도 그 위계와 질서가 뚜렷하지 않다. 교육제도의 혼재와 소임과 승납에 따른 위계가 엄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같은 산중, 같은 교단에 소속된 승려들은 분명한 위계와 질서가 존재해야 한다. 주지 등 중요소임을 산다고 위계를 어겨서는 안되고, 개인의 삶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는 사설사암을 소유하거나 경제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별격의 존재처럼 살아가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된다.
수행할 때와 소임을 살 때 그 부여되고 담당하는 위상과 품행의 근본원칙과 기준이 보다 분명히 확립되어야 한다.
출가자와 재가불자 사이에도 적절한 위계와 질서가 필요하다. 출가자의 지나친 우월감과 언행은 재가불자들로 하여금 승가에 대한 불신과 환멸을 낳게 할 수 있으며, 사찰과 법회에서의 독선적인 행동과 태도는 이미 뜻있는 재가불자들의 지탄을 받아오고 있다. 또한 출재가 구분 없이 호형호제 하며 출가자의 위의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것도 문제다. 상호 존중하고 협력하는 출가와 재가의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3천 가지 위의(威儀)와 8만 가지 세행(細行)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승려의 삶의 원칙을 제시하는 크고 굵은 가닥이 분명해야 한다.
나. 수행과 포교 및 교화활동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선원수행자가 과연 그 존재만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사무치게 돌아봐야 한다. 적어도 해제 철이나 선원의 좌복에서 일어나 세상으로 나왔을 때는 최소한이라도 참선지도, 법회 등 포교와 교화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현재 선원의 수좌는 종단구성원으로 너무 자유롭고, 포교 교화 활동 및 종단 사업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게 전반적인 여론이다. 또한 종단 내에서 선원 대중이 특별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도 종단화합에 장애 요인이다.
정진하는 수좌와 소임을 사는 사판의 구별과 차이가 종단에 너무 엄연하다. 서로 간에 차별로 느낄 정도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을 때도 있다. 정진대중과 소임자라는 이판사판의 이분법적 시각을 버려야 한다. 그저 앉으면 수좌고 소임에 들면 소임자이다.
종단의 중요 소임을 담당했던 중진급 이상의 승려들이 선원의 수행자로 돌아가 정진 하는 모습이 수행종단으로서의 위상을 세우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충분한 경험과 능력을 두루 갖춘 승려가 포교와 교화 등 중생제도와 종단발전에 기여해야 함에도 단지 평범한 수행자로 돌아가 어떤 기능과 역할도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진정한 수행의 목적과 중진 승려의 종단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한다. 두드러진 소임과 책임을 가진 위치를 갖지 않더라도 그 역할과 기여에 대한 책임감이 요구 된다.
주지 등 권한과 책임이 있는 소임을 주지 않으면 나 몰라라 하는 안이한 인식과 풍토가 문제이다. 수행자로서의 헌신과 정진력이 중생들과의 만남의 장에서도 발현되어야 한다.
소승적 자기 학습과 수행에만 몰입하는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본교육과 선원정진, 유학 등 자기수행과 공부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승려가 적지 않다. 뒤지지 않는 자질과 품성을 지녔지만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교단도 훌륭한 인재의 양성과 활용이 분명 필요하다. 현재 우리 종단의 수학형태는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개인의 능력평가와 차후 역할부여에 대한 고려 없이 다만 학습과 공부에 매진하는 것은 우려스럽기도 하다. 불조와 대중에 대한 역할 감당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2) 종단과 사찰 운영의 문제
현재 한국불교에서 가장 심각하게 당면한 문제가 정부의 종교차별과 편향, 수행환경의 제약과 4대강을 중심으로 한 환경파괴의 문제이다. 정치학자들은 지금의 MB정부를 우파기독교정부라고 지칭한다. 이들은 보수실용주의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그 근본은 뉴라이트 네트워크를 조직적 사상적 기초로 하여 성립되었다. 이들은 성시화 운동과 역사교육 폐지, 부자감세 등의 정책을 채택하고 뉴라이트 계열의 인물들을 정권의 실세로 등장시켜 전통종교와 전통문화를 폄하 압박하는 정치를 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흐름과 전통종교와 전통문화에 대한 위기상황에도 우리 불교의 대응과 대책은 느슨하기만 하다. 그 근본적인 문제가 종단과 사찰운영의 틀이 현대사회의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대응해가기에는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긴박한 문제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지만 근원적인 종단운영과 사찰운영의 철학과 제도개선에서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건강한 교단의 운영과 건전한 사찰의 역할 부여와 활동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가. 주지 및 소임자의 잦은 교체로 사찰 운영의 안정적인 틀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주지의 임기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현 주지 임기제도의 장단점에 대해 면밀한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 주지의 잦은 교체로 인한 공찰의 공동화현상과 전교자의 성과와 실적을 무시 또는 배제, 폐기하고 원점에서의 새롭게 시작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주지의 임기를 늘이거나 안정적인 연임 제도를 마련하여 사찰운영의 내실화를 기해야 한다.
또한 일정규모 이상의 사찰의 경우 주지 이외의 일반 대중은 주지의 교체여부와 관계없이 계속적으로 그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받침 되어야 한다. 본, 말사 모두 전임자와 후임자간의 연속성과 책임성을 담보 할 수 있어야 한다.
전횡적 주지제도의 행태도 문제다. 주지면 뭐든지 해도 되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주지만능의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 대중이 선출한 소임자로서의 그 권한과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하고, 대중에 의해서 운영되는 사찰이 되도록 해야 한다. 주지의 신분보장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일으킨 주지에 대한 평가와 징계 등도 현실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나. 종단 및 본사 소임자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최소한의 소임에 맞는 소양과 경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임에 따른 적절한 자격연수와 교육이 필수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최근 15대 종회의원 선거와 관련한 선거관리위원회 및 법규위원회의 판단과 결정은 전문적인 식견과 경험을 갖추지 못한 소임자와 소임자 그룹이 범할 수 있는 오류와 혼란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 종단의 소임 대부분은 법납과 법계규정을 제외하고 별다른 자격과 경력이 없어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특별한 책임감과 의무감 없이 소임을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보인다. 도덕성과 책임감은 소임자가 근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이다.
인연관계에 따른 주먹구구식의 인사행태도 큰 문제이다. 작은 소임에서 큰 소임으로,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의 자연스러운 소임의 진행과 전개가 필요하다. 소임의 변화에 따른 교육과 연수과정도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현 정부의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정실인사가 이 나라와 사회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하는지가 반면교사이다. 도덕불감증이 만연하고 종교간 대립과 투쟁을 불러오는 지금의 정부는 무원칙한 인사와 우리 종단의 인사형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은 그냥 흘려 넘길 것이 아니다.
다. 종단 내에 재가불자들의 역할과 기능이 없다.
1) 재가불자는 승가에 대한 외호와 지원을 담당하는 불법의 수호자들이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불교 특히 조계종은 대부분의 사찰들이 관람료와 불전, 그리고 정부의 각종 보조금에 재정적인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재가불자의 존재와 역할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찰이 순수한 불자들의 시주와 후원금보다는 각종 불공과 재, 기도 등 승려의 축원과 노력에 대한 반대급부적이고 대가성의 수익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종교적 순수성과 자발적 보시와 봉사는 종교의 근본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현재의 한국불교는 근본이 확립되지 못한 기형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재가불자들이 기존의 종단과 사찰의 기득권에 개입하고 시비를 가리기 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재가불자의 전형과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승가의존적이기 보다 독립성 확보가 우선적 과제이다. 그리고 당당하게 종단 내에서의 위상과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2) 포교사단의 건전한 육성과 활용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의 포교사단이 취하고 있는 비승비속, 반승반속적 사고와 위치에서 방황하는 포교사단의 위상을 분명하게 정립하고, 적절한 역할과 기능을 부여하여 불법홍포와 교단발전의 자양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 우리 종단은 출가 승려의 절대적 부족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천여 명에 이르는 교육되고 조직된 포교사들의 역할과 기능은 현재 한국불교의 고질적인 출가승 부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교사 개인과 포교사단은 종단과 개별사찰 또는 스님들과의 협력 연대활동 보다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활동을 선호하고 있으며 이러한 체계는 지난 10여 년 동안 개선되지 못하고 고착화 되고 있다. 포교사와 포교사단의 본사단위 또는 지역단위의 사찰 및 승가조직과의 유기적 조직적 결합을 통한 활동기반 마련을 위한 심도 있는 논의와 실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라. 최소한의 포교와 교화의 안정적인 틀을 갖추어야 한다.
종교는 최소한 그 가족 내에서 공유되고 일치되는 성질의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불교는 그 최소한의 조건인 가족포교에서부터 실패하고 있다. 자녀와 배우자에게 종교적 평화와 이익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가 최고의 종교이며 최상의 가르침임을 확신하고 출가한 승려들조차도 자신의 가족에게 불교를 포교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도 있다. 불자들은 최소한 그 가족들에게는 종교적 동일성과 신행공동의 틀을 갖춰야 한다. 이미 불교의 인연을 가지고 있는 불자들과 가족들의 포교와 교화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부족하다면 누구를 먼저 포교하고 교화할 것인가. 가까운 곳은 친하고 먼 곳을 공격한다는 근교원공(近交遠攻)의 전략이 불교포교의 근본 지침이 되어야 한다.
또한 신도들의 시주와 기부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재원과 재정적 기초를 마련해야. 현대사회에서는 안정적 재정의 기초 없이는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다. 기존의 관람료와 불전금, 정부보조금 등의 비종교적 재원의 비중을 줄이고, 불교의 정신과 보살행을 위한 명분과 사업을 정립하여 신도들로부터의 시주금과 기존 자원의 활용을 통한 재원마련, 각종 기금 그리고 수익사업 등을 통한 재원마련과 투명한 운용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