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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치심
왕하 15:1-7
1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이십 칠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2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륙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 이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 아사랴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4 오직 산당은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5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궁중 일을 다스리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6 아사랴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 되지 아니하였느냐
7 아사랴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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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고 천국간다는 생각은
사람 같으면 모두 걱정하는 바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어디를 가느냐는
보통 큰 문제가 아닙니다.
40년을 산들, 100년을 산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중요한 문제는
우리들 앞에 있습니다.
80년을 살아도
이미 날아가 버린 세월입니다.
앞으로 남아 있는 모습이 중요한 것이지
지나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아야겠는데
구원받기 위해서 뭘하겠다고 생각하고
결단을 가지고 교회에 나온다면
믿음을 우롱하는 행동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란 것은
교회가 있다고 해서
그리고 그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구원이 자동적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란 것은
교회라는 이름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뜻만 소개하는 곳일 따름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고
천국을 주고
구원을 주는 길은
성경 안에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든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이해가 안 되도록 설치해 놓으신
원칙이 마치 장애물처럼 가로막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다고
다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긴장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만 구원된다는 원칙입니다.
신을 믿는 종족이 어디 한두개 이겠습니까.
인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신과 격리해서 살아 본적이 없습니다.
늘 신과 같이 생활해 왔고
또 신을 찾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 성경을 보면
이방 신은 신 취급도 안 합니다.
그것은 가짜 신이라고 규정을 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날때부터 이방 신을 신봉하는
이방 민족에게 속하여 태어난 자들입니다.
이 점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단군을 신으로 삼은 후예들이라고 합니다.
단군이 하늘로부터 나왔기에
천손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말씀하시기를
이방 신은 백날 믿어보아야 헛수고며
구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짜 구원받는 사람은
이스라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단정을 하고 출발을 합니다.
그러니까 신약에서 물론
이방인 가운데서도 구원받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뒤늦게 이스라엘 자손으로 편입된 사람들이
먼저 챙겨야 할 것은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원받았다는데
그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원받는 원리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이점을 놓치면 안됩니다.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된 집단의 원형이라면
이방인으로서 구원받은 우리는 이러한 원형에서 벗어날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 무시하고 성경말씀을 도외시한다면
그들은 여전히 이스라엘 속에 들어오지 못한
이방인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다
신을 섬겼던 민족들이기에
하나님에 대해서 누구나 다 감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펼치게 되면
갑자기 가짜 신과 진짜 신이 구분이 되면서
가짜 신은 백날 해도 헛수고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네가 믿는 신이 진짜 신인지
아니라면 가짜 신인지
성경을 통해서 맞닥트리게 합니다.
오늘날 현대 과학시대에
신을 찾는다는 자체가
상당한 자존심의 양보요 대단한 겸손이요
대단한 결심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돈만 아는 세상에서
내가 신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견한 일이겠습니까.
하나님 저 마음 아시잖아요.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 믿습니다. 라며
큰소리 치며 다가서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 네가 아느냐?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로서만 구원된다는 사실을 확인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중심의 신앙인
교회가 나에 천국을 보장할 것이라는
도식적인 생각은
머릿속에서 싹 지워버려야 합니다.
그러한 생각이 바로
성경은 안 보고
상식 선에서 나온 인간의 마음으로
신을 찾게 될 때나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성경은 이를
이방인이나 다를바 없다고 하십니다.
엉터리요 이스라엘의 원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이제껏 내가 만난 하나님은
말씀과 상관없는
거짓 하나님이요,
거짓 예수요,
거짓 교회임을 알게되고
시인할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인간들이 갖고 있는 상식적인 신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신
바알과 아세라같은 우상 같은 신입니다.
그런데 우상들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면
상식과 상식을 주어 모아서 만들어 낸 신입니다.
그 바알의 신 특징은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한마디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
성의를 보이면 축복을 주신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이 믿던
신앙들의 일반적인 태도입니다.
왜 사람들이 이런 신을 섬기는가 하면,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가 직접 독대해서 만난 하나님이지만
이방인들은 이런 독대의 경험이 없었기에
연결고리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저 인간과 인간 속에서 형성된 관계를
길게 늘여트린 것에 불과합니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조립해서
완벽해 보이면
"아마 이것이 신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내가 자식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아끼는데
설마 하나님이 이처럼 성실하고 착한 나를
지옥에 보낼 리가 있겠는가 라는 식의
신 관념입니다.
또 효자열전에 보면
숱한 효자들이 나옵니다.
이런 효자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효를 강요받은 지
알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백설이 난무한 산천을 누비서라도
한 겨울과 수박을 구하여 다가 먹인다면
아마 대표적인 효자일 것입니다.
신이 이런 효성에 감동하여
꿈에 산삼이 있는 지점까지
정확하게 알려줄 만하지 않겠냐 하는 것이
우리들의 상식 선에서의 신 관념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런 효자는
결코 지옥에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이런 생각은 윤리도덕을 잘지켜
천국간다는 세상 가르침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런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로 인해 지옥가는 자들일 뿐입니다.
(윤리...주자학..송자)
또 다른 예로,
자식을 위해 헌신적으로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자기 자식을 개과천선시켜서
나중에 유학 보내어 성공시킨
어머니의 경우가 있다 합시다.
대개 그런분들은
이렇게 생각 할 공산이 큽니다.
"나는 비록 예수는 안 믿어도
내가 최선을 다해 자식을 양육했으니까
신이 아마 우리 가정을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아주머니도
지옥으로 직행하는 겁니다.
물론 이런 저런 생각을
아예 처음부터 싹트지 않아야
구원을 받습니다 라는 말을
제가 하기 싫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을 하고 예수 믿으나
안 하고 예수 믿으나 할 것 없이
인간은 죽을 때까지
이런 생각의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무언가 그럴 싸 한 것을 했다고 여기면
대번에 그것 가지고
복달라고 우기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뭔가 찜찜한 일을 하면
저주받을까 봐 행동에 조심하는 것이
또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니 성도라는 것은
평생 속에서 피어오르는
상식적인 하나님과
성경에서 말하는 참 하나님 사이에는
갈등하고 싸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 삶을 통해서 터득되는 느낌은
아무래도 상식적인 신 쪽이고
실제 복음을 통해서 얻어지는 하나님은
이런 상식적인 하나님을
오히려 꾸중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늘 자신을
책망하게 되어 있지요.
이스라엘에게 나타난 하나님만이
진짜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만들어 낸
모세라는 분이 시내산 꼭대기에 왕림한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뭔가 받은 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는데
이 말씀대로 살면 너희들은 거룩한 백성이요
자신의 친 백성이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할 때에
이 지상에 있던 수 백 수 천개의 민족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데
그들은 구원에서 모두 배제되는 대상임을
분명히 하시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제거되고
오직 모세가 전하는 말에 순종했던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만이
택한 민족 구원받은 백성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방민족으로서
약오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어쨌든 진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에
우리는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너희는 언약 밖의 인간이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답게 하는 것은
모세가 받은 언약서인
십계명이라는 언약때문입니다.
이 언약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서로서로 뭉칠 때
그들이 다른 민족들이나,
여기에 있는 단군의 후손들보다
더 똑똑하고 훌륭해서가 아니라,
단지 모세가 들고 내려온
하나님의 약속에
모든 것이 매여 산다는 것 때문에
유일하게 구원받는 겁니다.
우리는 명절때가 되면 강정이 빠질수 없습니다.
땅콩, 깨, 콩, 쌀 등등의 흩어지기 쉬운 곡물들을 네모나고 각지게 뭉쳐서 만듭니다.
튀겨진 쌀 사이에
조청이나 엿을 부어 하나로 뭉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는 것은
개개인의 양심이나 자질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인간 모두가 생각하는
'지성이면 감천이다' 라는 상식적인 선에서 나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않됩니다.
왜?
모세 언약에 딱 들어 붙어 있으니까,
그 내려주신 약속 때문에
그들은 구원받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그들은 구원받는 겁니다.
우리의 착함이라는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는 겁니다.
우리의 착함과 선함과
열심히 하면 구원받는다는 주장은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이방인들의 종교에서는 가르치는 교리입니다.
내가 열심을 다해서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으니
설마 하나님께서 외면치 않으시겠지. 라고 생각하는것은
지옥 가는 모든 이의
엉터리 같은 사고방식입니다.
이만큼 교회 봉사하고 헌금하고
목사가 되어 설교까지 하는데
설마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구원되겠지 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신의 행한 봉사의 일은
강정으로 붙게 만드는
엿도 아니고 조청도 아닙니다.
구원받은 강정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짜 이스라엘을 봐야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아야합니다.
그 일하심에는 심판도 있고,
은혜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의 원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엿이 되어 가지고
그들을 뭉쳐주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심지가 무엇인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목숨을 다해서라도 매달리는 것이
뭐라도 있기는 있습니까?
있으시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현대인들은 심지가 없어요.
딱 들어붙는 것이 없다 이 말입니다.
죽어도 이것은 양보 못할 거야 라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겁니다.
내가 교회도 다녔고
나쁜 짓도 별로 안 했으니
설마 천국은 들어가겠지 라는 생각이
항상 여러분을 유혹할것입니다.
말씀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평소에 내가 생각한 것과 말씀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신명기 9장 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 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바쁘다는 이유를 가지고
말씀을 진지하게 안보니까 남는 것은
상식에 대한 이해 뿐입니다.
상식 선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니까
자꾸만 다음과 같은 생각이
치밀어 오르는 법입니다.
"왜 사기꾼들은 더 잘되고
교회 착실히 나오는 나는 못 되는가?
내가 하나님을 왜 믿지?
하나님을 안 믿어도 잘 사는데
내가 충성을 다해도
하나님은 왜 나를 외면해 버리시는가?
하나님이 자꾸 이렇게 나오니까
나도 더 이상 교회 나와
충성할 마음이 싹 가신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세상 모든 것과 모든 변화에 대해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관심은 없고
자꾸 자기 합리화와 자기 생각만
우기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신명기 9장 5-6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의 원칙이 주어집니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 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즉 하나님은 다른 민족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받는 그들의 의로움이
이유가 되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역시 다른 민족들처럼
목도 뻣뻣하고 교만하고
자기 잘난 것만 넘치는 그런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민족들이 구원을 받게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이 주신 약속,
즉 하나님이 내리신 사랑의 맹세와 자비심 때문에
그런 거예요.
따라서 우리는 종교생활로 쌓아 놓은
지식과 지혜로 신앙을 말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해야 합니다.
죽자고 십자가만 붙들어야 합니다.
십자가라는 것이 무엇이고 하면
바로 하나님이 너를 이만큼 사랑한다는 겁니다.
내 생명을 내어놓을 만큼이나
너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네가 붙들고 놓치지 않을 싶을 때
그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을 사랑하고 믿느냐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교회 안으로 불러주신 것도
다 이 소식을 다시금 듣고 매달리라는 뜻에서
인도하신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의 사랑이냐,
아니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내 사랑에 더 집착하는가 하는 점을 놓고
양단간에 결단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쪽이 더 막중하며 효과 있으며
어느 쪽이 나를 구원할 수 있으며
어느 쪽이 나로 하여금
영생의 길로 데려가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내 사랑에 매혹되든지
아니면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주님의 사랑에
매혹 당할 것인지 말입니다.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면 안됩니다.
한쪽이 O이면
다른 쪽은 X가 되는 거예요.
한쪽이 정답이면
다른 쪽은 탈락이 되는 거예요.
한쪽이 구원받은 양이 되면
다른 쪽은 지옥 가는 염소가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쪽이 천당이 되면
다른 쪽은 필히 지옥입니다.
천당과 지옥은 무엇인가 하면
주님과 딱 들어 붙어있는가
아니면 내가 나만을 최고로 사랑하느냐
여기에 달려 결정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쭉 하는 말 배경에는
결국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는 말을 강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교회에서 내 위치가 무엇인가가
구원과는 관계없는 일이지요.
교회에서 얼마나 활동했는가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 에게 주신 사랑을 아직도 잊지 않고
귀하게 여기느냐에 달린 거지요.
아마 상식 선에서 하나님을 아신 분들은
참 이상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참 하나님의 본성이 말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내려주신 그 언약에서
요점 되는 것을 한번 살펴본다면
신명기 5장 8-10절의 말씀을 보면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라고 합니다.
자, 여러분 이것이 사람이 지어낸 것이 아니고
제가 방금 지어낸 문장이 아니라
모세가 산 위에서 하나님과 만남으로
부여받은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남긴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달리 구원될 길이 없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방금 보았던 이 말씀의 저의를
우리가 충분히 영접해야 합니다.
자, 방금 제가 말씀드린 것은
옛날 이스라엘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시대가 지나가 버린 오늘날에는
우리에게 무슨 언약을 남기실까요?
오늘날에는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에 새 언약이 소개되어 있는데
"내 피와 내 살"입니다.
옛날에 십계명대로 살지 않으면
네가 저주를 받는다고 했는데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기 전에
자기 택한 백성과 약속을 남긴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영접하지 하지 아니하면 저주받는데,
"자,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내가 너를 위해서 흘린
용서의 언약의 피니라.
이 떡을 먹으라
이 떡은 너에게 주는 영생의 떡이니라
이 새 언약을 네가 죽을 때까지 대대로 전하라"
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살과 피가 바로 예수님이 세우신
새언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무엇이며
예배당은 무엇입니까?
새 언약을 날마다 전파하고 퍼지도록하는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새 언약을 빼 버리고
살과 피를 증거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자체적으로 아무리 부흥과 선교를 강변해도
교회가 될수 없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가족이 무엇입니까?
아파트가 가족이 아니지요.
그냥 아파트일 뿐입니다.
아파트는 식구들이 모일 때 포근하게 해주지요. 따뜻하게 육신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할뿐입니다.
텅 빈 아파트에 가면
가족이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의 이스라엘은
모세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의해서
구원받은 자라면
이제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이방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관계없이
누구나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조청,
새로운 엿,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이것을 증거하는 것이 교회가 되고
거기서 눈을 돌리면 파산일 뿐입니다.
예배당 있다고
다 예배당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목사란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머슴이다 고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말이 정답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의 은사로 세워진 것입니다. 따라서 목사가 맞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다 라는 것은
성령 받은 공동체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노회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그 교회에 모인 성령 받은 사람들이
저 사람은 우리를 가르칠 은사가 있겠다 하면
그 순간 목사가 되고
아니면 반대로 그 단체에서 거부하면
목사로서 봉사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단의 법에서는
형식상 삼분지 이의 찬성이라고
대충 해놓은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들 자신들이 복음을 알고
복음에 매달리면서 살아가면 괜찮은데
우리나라 대대로 내려오는
토속 종교관을 갖고서
복음을 이해하려고 하니
어떤 교회에 가면 진짜 복음을 전한 자를
오히려 쫓아내어 버리고
반대로 비 복음을 전하면 좋다고
목사로 영접하는 경우가 일어납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 자신들부터
우리들이 무엇에 의해서 구원받고
무엇에 목숨을 걸고 사는 지를
복음에 기초해서 분명히 해두어야 합니다.
말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아니하면
진짜 주의 종이 왔을 때는 쫓아버리고
가짜 종이 왔을 때 영접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 모든 책임을
목사가 잘못 가르쳤다고 만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 자체가 성경에서 복음 관이
정확하게 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언약이 무언가
예수님의 피와 살뿐입니다.
어떤 성경 본문을 해석하더라도
그쪽으로 결론이 나야하며
우리는 예수님의 피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교회 키우기 위한 여러 가지 수단에
여러분들이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크다고 구원되는 게 아닙니다.
교회 큰 것은 새 언약이 아닙니다.
모세 언약에서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그러면 나의 백성이 아니다고 했고요.
신약에서는 내피와 살을 먹고 마시며
그것에 모든 것을 거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생각에
구약은 갖다 버리고
신약은 믿기만 하면 된다하니까 좋겠네
라고 하겠지요.
그러나 그 중간 과정을 빠트리면
새 언약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 중간부분이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벌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 하면
3-5절에
"아사랴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은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궁중 일을 다스리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왕은 치고
백성을 왜 안 치실까요?
그것이 모세 언약의 연장입니다.
모세 언약에 보면
모든 백성들이 다 지켜야한다고 하다가
다윗 언약에 보면
왕 하나가 제대로 되면
백성들이 저절로 용서함을 받고
그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된 겁니다.
모세가 받은 계명은
사람마다 일일이 다 지켜야 된다는 것이었는데
다윗이 받은 계명은
왕이 잘하면 그 나라가 축복을 받고
만약에 왕이 엉터리 같으면
백성과 함께 망한다라는 새로운 약속에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잘못해도 왕을 치게 되어있고
왕이 잘못해도 왕이 치이게 되어있습니다.
모세가 받은 계명이
왕이라는 한 개인에게 대표적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왕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처신을 잘해야된다는 이 말입니다.
혹시나 왕이 억울하게 매를 맞거든
자기 때문에 왕이 매 맞는 것을 알아야 돼요.
옛날에 모세 언약 때에
양이 죽잖아요.
양을 죽일 때에
양에게 먼저 안수하고 죽입니다.
안수한다는 것은
내 죄 때문에
네가 대신 죽는 거야 하는 뜻입니다.
그 양이 찢겨지고 불에 타면서 죽을 때에
그것은 다 내 죄 때문에 모진 고통을 받는구나 알면서 백성들은 "양아 미안하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바로 그 양의 역할을 왕이 하는 겁니다.
본문에 왕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백성들이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했는데
백성들이 어디 말을 듣습니까?
안 듣지요.
그래서 모두 각자가 좋아하는 산당을 찾아가서
복 달라고 아들 달라고 이런 식으로 비니까
하나님께서 누구를 치시는가 하면
다른 잡신을 섬기는 백성들을 치는 것이 아니고
왕을 쳐버립니다.
왕을 치니
왕은 죽을 때까지 문둥병이 들어 가지고
처참한 말로를 보낸 겁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계명이
이토록 무섭구나 하는 점을
처절하게 느껴야 합니다.
왕이 대신해서
대표적으로 백성들이 받아야할
죄벌을 당한 것입니다.
사실 3절에 보면
아사랴 왕은 그렇게 나쁜 왕이 아닙니다.
"아사랴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라고 되어 있습니다.
왕은 정직했습니다만
왕의 입장은
백성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살아있고
하나님의 계명이 살아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위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개판이라도
왕이 혼자서 문둥병으로 벌을 받는 겁니다.
그 당시 백성들은
행여 "어? 내가 잘못해도 내가 벌 안 받고
왕이 대신 받는구나 아이구나 잘됐다.
나는 계속 즐기련다."이렇게 나온다면
과연 정상적인 믿음이겠습니까?
아마 그렇게 나오면 신자가 아니겠지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수님의 피와 살이
우리에게 영생이며 구원이다 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죄는 내가 짓고
예수님은 우리죄를 짊어지시고 희생당했으니
예수님에 대한 미안함을 갖고 교회생활 열심히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까?
이사야 53장4절에 보면
왕을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바로 이런 말씀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그의 찔림으로 새 언약이 생겼고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새 생명의 떡이 생긴 겁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라고
6절로 계속 이어집니다.
우리가 져야할 무거운 짐을 담당하시겠다는
이 약속이 오늘날 우리가 영생을 받고
구원을 받는 새 언약이다 는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희희낙락하자는 말입니까?
우리는 내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이야기입니까?
우리는 우리들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빈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저주입니다.
저주를 누군가 내가 믿고자하고
내가 목숨을 건 그 분이
대신 가져갔다는 말은
앞으로 내가 그분의 뒤를 따라 가야하고
그분만 의지 해야한다는 뜻이에요.
돈이 그분보다 더 중요해서 안되고
그 분이 내 재산보다 더 중요한가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네가 무엇을 최고로 여기느냐?"
혹은 "너는 무엇을 예수님보다 뒤로 돌리겠느냐?" 라고 계속 묻고 계십니다.
"저는 예수님이 최고이고
나머지 돈, 명예. 성공. 이것은 뒷전입니다"라고
감히 고백할 수 있는 자가
신약에서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새 언약이라는 엿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교회에 50년이상 섬기신 분들도 계실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교회다닌 것을 보험으로 여기고
구원문제는 해결되었고
이제 이 땅에서 자식손녀의 미진한 부분을
나의 기도와 믿음과 선행으로
채워볼까? 여기신다면 그것이 과연 믿음일까요?
교회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도 상관없고
내 편한 대로 살아가자.
이것도 과연 참 믿음일까?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되지?
복음을 위해서 교사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헌금도 하고
내가 복음을 위해서 무엇을 하지?" 라는 생각이
저절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우러나올 때
그게 바로 믿음입니다.
챙길 것 챙겼으니 도망치자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그 주님께 받쳤으니까
내 몸과 마음을 통해서
주께 영광을 돌려야 되겠다.
내 이 몸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한 곳은 어디일까.
이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피와 살 밖에 없으며
그것만 중요하다.
그런 각오로 살아야 합니다.
끝으로 교회에서는
교인들의 신앙이 정말 문제입니다.
목사가 복음은 안 전하고
엉뚱한 짓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목사 건들면 벌받는 줄 알고
새 언약을 알면 그것이 축복인데
그것은 못 믿고
목사 건들면 저주가 오는 줄 알고
목사 때문에 상담을 하며
어떻게 좋은가하면서 갈등을 합니다.
새 언약의 피와 살이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데
무슨 저주가 있습니까?
차라리 그 복음이 아닌 줄 알면서 방치하면
그것이 저주입니다.
여러분들이 살과 피로 믿는다면
주위에서 여러분들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힘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힘보다도 더 센 것은
하나님의 새 언약입니다.
여러분들이 남에게 구박받고
설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예수의 피와 살만 남기는데
매진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