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천자봉 산행과 벚꽃 구경은 그야말로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격이 아니던가 싶다.
군항제 행사와 함께 회원들의 인기도 좋아 은하수 1,2호 차는 평소보다 20분 일찍 출발했다.
창원 시내에 들어서자 기사님은 진땀을 빼며 개미 쳇바퀴 돌 듯 했다.
얼마나 속을 태운 끝에 장복 산자락을 꼬불꼬불 거슬러 올라 안민 터널에 도착하니 오후 한시가 가까웠다.
당초에는 산행도 하고 벚꽃 구경도 하기로 했지만 시간상 어렵단다.
천자봉까지 산행할 팀과 군항제 벚꽃 구경할 팀으로 나뉘었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산행을 나선 가운데 남은 사람은 아홉 명뿐이었다.
역시 산군들은 산밖에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조금은 김이 빠졌다.
그러나 남은 몇몇 일행들은 안민 터널 고개에서 진해만과 시내를 내려다보며 좋아했고, 벌써부터 군항제 꽃구경할 마음에 설레기도 했다.
옛날 길인 듯 비탈길을 조심스레 내려오니 진해 ‘경화동’이었다.
밤에만 왔기에 길을 모른다며 총무님은 어딘가로 통화를 연발했고, 기사님도 차를 세워 행인들에게 시청과 화장터가 어디냐고 물어 댔다.
시청인지 화장터인지 헷갈렸지만 그렇게 화장터와 시청이 함께 있는 것으로 알고 찾아 들어갔다가 시간만 지체하고 말았다.
부산 가는 길로 얼마를 더 가서야 천장봉 아래 화장터 입구가 나왔다.
2호차 기사님께서 선 듯 응해만 주셨더라면 안민 고개를 내려와 곧장 목적지로 갈 수 있었을 텐데 시간만 자꾸 흘러가고 있어 안타까웠다.
길을 모른다는 2호차 기사님은 결국 1호차 기사님이 동승한 뒤에야 군항제 행사장으로 가게 되었다.
화장터가 동쪽 끝이라면 군항제 행사장은 서쪽 끝이 아니던가.
시내를 통과하는데 신호등은 얼마나 많으며 세월아 가라며 어찌나 서행을 하는지 애가 탈 지경이었다.
중심가에 이르자 관광버스들도 제법 보였고, 진해 역 앞에는 벚꽃 구경 온 단체 손님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는 로터리를 지나 헌병 검문소를 통과한 우리는 해군 통제부 영내로 들어갔다.
군항제 행사 때만 민간인 출입이 허용된 땅이었다.
오래전 내가 해군이 되고자 이곳에 첫발을 디뎠을 때는 사월 말경, 길은 온통 벚꽃이 떨어져 눈길 같았다.
가운데는 화단이 있고 양쪽으로 벚꽃 나무가 줄지어 2킬로미터쯤, 그런 고속도로를 본 것은 내 생전 처음이었다.
길옆의 아름드리 소나무들도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나를 놀라게 했고,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가슴이 터질 것 같이 시원하게 해주던 곳, 정확히 사십삼 년 전의 회상이다.
길은 전보다 더 넓어졌지만 모습은 그대로였다.
변했다면 입구 돌에 새겨진 “대동단결” 대신 다른 문구인 것 같았다.
벚꽃은 그때 내 나이만큼이나 앳되고 싱그럽다 해야 할지, 만개하기까지는 아직 삼사 일쯤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활짝 핀 벚꽃을 볼 수만 있었더라면 꽃구름 속을 지나는 환상이었을 텐데, 아쉽기가 이만저만 아니다.
차 속에서 바라보며 그 벚꽃 길을 따라 나는 추억 깃든 신병 훈련소도 지나고, 잠수함 때려잡는 교육을 받던 쏘나 학교도 지나 부두로 갔다.
이승만 별장이라는 청기와 집이 있는 그 산 아래에는 유디디티들이 있었다.
그때 부두 앞에 정박 중인 군함에서 내려다본 우리는 줄에 널린 특수한 빤 쓰에 눈독을 들였고, 몰래 훔쳐다 입기도 했었는데 그곳까지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 아쉬운 것은 함정 공개를 하지 않은데다 많은 군함들도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차에서 내려 군항을 거닐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에는 함정을 공개하여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주어 즐겁게 하고 해군의 위용을 자랑, 긍지를 느끼게도 했다.
간첩들이 넘어오고 남북 관계가 얼어붙었을 때도 이러지 않았다며 한 아주머니 역시 서운함을 토로했다.
나는 한때 동서 남해를 누비며 구백 마일 영해 경비, 간첩 잡는 그물 되자며 이곳에서 청춘을 바쳤기에 그 모항을 찾아온 감회는 남달랐다.
함포를 쏘면 낡은 군함에서는 그 진동을 못 이겨 녹이 우수수 쏟아졌고, 포 조준도 육안과 수동으로 하지 않았던가.
나는 최첨단 군함을 보고 싶었다.
더욱이 국산으로 이뤄진 것들이라 하지 않던가.
나는 조금이라도 아쉬움을 달래 보려고 군항 부두를 지나오다 말고 차를 세우자고 했다.
그곳에서는 걸을 수 있다기에 일행들 모두 그러자며 차를 돌려보낸 뒤 네 시에 검문소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꽃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화장실을 찾아 들어간 곳은 옛날 보급창이었다.
현대식 건물로 바뀐 안에는 매점과 음식점 등 은행도 있었고, 군복을 입은 군인만 아니면 사회나 다를 바 없었다.
건물 밖 벤치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부두로 나가 볼까 하였더니 안내하는 군인이 안 된다며 막았다.
또 되뇌지만 군민 일치라 해야 할지, 협조가 안 된 군항제 행사인 것만 같아 내심 씁쓸했다.
다시 큰 길로 나섰지만 가끔씩 관광버스가 들어오며 행인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평일인데다 아직 벚꽃이 피지 않았다는 보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직선 멀리 두 갈래, 나란히 펼쳐지는 벚꽃 길은 한없이 아름다웠다.
여유롭게 구경하며 걸을 수 있으니 좋았다.
손원일 제독의 동상 곁에는 바다와 관련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남여 해군 복장을 한 사진틀 앞에서는 자신의 얼굴을 넣어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해군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손 제독은 많은 해군가를 만들었고, 파도와 싸우며 그 노래를 부를 때면 나는 가슴이 용솟음쳐 와 뱃멀미를 잊기도 했다.
벚꽃 길을 나오는 길에 일행 중 누군가가 해군 사관학교에 가면 볼거리가 많다고 했지만 차로 이동해야 하며 시간이 없어 아쉬웠다.
도천 초등학교 앞은 전에 벚꽃 나무를 심어 새로운 벚꽃 축제장이 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개발에 밀려 한그루도 볼 수가 없었다.
버스에 도착하니 한 시간의 여유가 있어 나는 일행들에게 저 앞에 보이는 탑산에나 올라갔다 오자고 했다.
아무래도 그곳 전망대에 올라가 진해 시가지와 해안 풍경을 본다면 진해에 대한 기억이 남을 것 같았다.
일행들은 두말없이 따라왔고, 나는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로 서둘러 걸었다.
탑산 아래 광장에 오니 해군 의장대와 기마병, 그리고 여학생들의 고적대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 축포를 쏘아 대며 행사가 한창이었다.
뒤따르던 일행들이 그만 여기서 구경 할래요! 하며 관중들 틈에 끼어들고 말았다.
그러면 여기서 꼭 기다리라며 아주머니 한분과 걸음을 재촉했다.
일년 계단이라 부르는 365개의 계단을 올라야 했다.
산행에서 다져진 덕분인지 그리 힘든 줄은 몰랐다.
아주머니 역시 전에 산행 때 본적이 있는 분 같았는데 손자를 보느라 두 달 만에 나왔다고, 그러나 휘파람 소리가 날 정도로 잘도 올랐다.
전망대 꼭대기에서 바라다 본 군항과 속천 항 등, 한 눈에 들어오는 진해 시가지는 참 많이도 불어난 것 같았다.
해병 혼이란 흰 글자가 새겨진 천자봉도 멀리 보였고, 마진 터널 오른쪽 장복산 자락에는 불타 새로 심은 어린 나무들로 마치 어느 외국 운동선수 빡빡 머리 줄무늬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 9층 전망대도 벌써 사십 여년 세월이 흐른 것 같다.
더 높이 올려 시야를 넓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내려오니 일행들 모두 구경에 몰두하다 말고 진짜 구경을 잘했다며 좋아했다.
약속 시간 안에 우리는 돌아올 수 있었는데 여성 두 분이 감감 무소식이었다.
벚꽃 구경 갔을 때 통제부 안에서부터 헤어졌다고 했다.
네 시까지 한 약속이었지만 십 분을 더 기다린 뒤 화장터에서 기다리고 있을 본진을 위해서도 어쩔 수 없이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기사님이 전화를 받는데 총무님 같았다.
기다리게 한 그분들께서 어디에 들렀다가 온다며 기다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에 잉! 일행들 애태우게 해 놓고서 빨리도 알려준다.
구경을 끝낸 느긋함 때문이었을까! 화장터 가는 길은 막히지도 않고 어찌 그리 수월한지.
도착하니 총무님이 준비해 놓은 무 쇠고기 국이 시원했다.
저녁 식사를 먼저 하고 있을 때 네 시간의 산행을 마친 산우님들이 속속 도착했다.
식은 죽 먹기였는지 발걸음들이 가볍다 못해 나폴 거렸다.
첫댓글 똘레랑스님, 휴식님의 깊은 뜻을 모르시지요? ㅎㅎㅎ 산행을 못 한 아쉬움은 있지만 벚꽃이 만개하지 않은 군항제라도 들여다 봤으니 그걸루 아쉬움 덜었어요.
일요 벚꽃 산행에 기대 마빵이었는데........출발도 못하고 꽝~~~ 이었지요. 흑흑~~~
라일락님 얼굴이 기억속 저편에서 희미해져 가네요. ㅎㅎ 이대로 잊혀지는 건 아닌지...
진해에 간다니까 무조건 관광 인줄알고 외출복을 입고오신 횟님친구가 산에 간단말을 않했다고 해 하시는 모습이 너무 코믹했어요 벚이 만발 했으면 했는데 쫌 일렀지요^^산행 못하신분은 아쉬움이 많겠습니다.산행을 안하셔도 영감이 풍부하시고 횟님들을 눈팅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휴식님
휴식님 군항제벗꽃구경하시느라 산행은 뒤로하셨군요. 봉화산행에서 처음뵈었을때 괭장히 낭만적이라고 느꼈는데 역시나시네요. "여왕벌"이라고 이쁜이름지어주심을 잊지않고 있습니다. 잘읽고 웃음으로 답하겠습니다.혹시 수선화님 . 오해하지마삼.괜찮을까요
ㅎㅎ 휴식님께선 고운님이 느끼시는 것 보다 훨씬 더 낭만적인 분이세요. '여왕벌' 이란 닉도 잘 어울리시는데 그 닉을 쓰셨더라면 휴식님께서 무척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요.
추억을 많끽 하려가섰는데 통제..금지 구역이 많아서 서운...그냐저나 감회가세로웠겠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