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은 왜 할까요? 한 마디로 돈이지요. 왜 도박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할까요? 가장 짧은 시간에 큰돈을 잡으려는 욕심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자기가 그 분야에서 꽤 잘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박에는 경쟁이 따라붙기 때문에 승리의 쾌감이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그냥 돈만 챙기는 것이 아니지요. 어쩌면 돈은 부차적인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이겼다는 쾌감, 그 짜릿함을 느껴보고 싶은 욕망이 먼저일 수도 있습니다. 사냥을 나가서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혔을 때의 쾌감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도박에서는 그보다도 더한 짜릿함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는 경우 잃어야 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지요. 몽땅 얻느냐, 몽땅 잃느냐 하는 게임입니다. 부담이 큽니다. 얻는 것도 크고 잃는 것도 큽니다. 그만큼 얻었을 때의 쾌감이 몇 배나 확대되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얻었다는 것 외에 상대방은 그 좌절을 맛보아야 합니다. 승자와 패자의 엇갈리는 상황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마치 전쟁의 승패를 당하는 경우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대방을 꺾고 막대한 전리품을 챙기는 경우 말입니다. 이겨서 즐겁고 돈이 생겨서 기쁘고, 뭐 그런 거죠.
인간은 무엇으로도 도박을 만들 수 있겠다 싶습니다. 신선놀음이라는 바둑임에도 그것이 도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화투나 카드처럼 손장난으로 이루어지는 속임수가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요즘은 똑같이 소형카메라를 이용해서 상대를 읽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바둑판이 그대로 전송되어 바깥 고수에게 전달됩니다. 다시 말해서 첨단장비를 이용한 쟁탈전입니다. 그러니까 현장의 당사자들의 게임이 아니지요. 누가 실력자를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것입니다. 현장에 있는 바둑 기사들은 기사가 아니라 싸움꾼입니다.
형의 도박에 끌려들어갔다가 들통이 나서 형은 목숨을 잃고 자신은 살인 누명을 쓴 채 옥살이를 합니다. 얼마나 잔혹하게 당했는지 아마도 뼈에 사무쳤을 것입니다. 본래 바둑의 고수이니 옥살이를 하면서도 실력을 발휘하고 덕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목적은 다른 데 있습니다. 복수, 형을 살해하고 자신을 거의 불구로 만들 뻔했던 원수들을 가만둘 수 없습니다. 그의 감옥생활은 한 마디로 도 닦는 시간이었습니다. 바둑보다도 무술 훈련을 받는 기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감옥, 역시 그 분야의 고수가 있는 곳 아니겠습니까? 본래 바둑은 머리를 써서 이기면 됩니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는 머리만 써서 되는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출옥하여 그는 감옥에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세상에 숨어있던 고수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함께 할 동료들을 찾아 규합합니다. 모두가 그들에게 당한 아픔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회가 되고 가능성을 찾는다면 그 놈들을 혼내줄 마음은 있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지만 이러저러한 실력자들이 모이면 못할 일도 아니지요. 그만한 원한도 가지고 있으니 동기는 충분합니다. 수적으로는 대적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싸움은 숫자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악질은 최대한 악질로 만들어놔야 상대적으로 복수에 쾌감이 증폭합니다. 그 일을 직접 수행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의 대장은 공산당보다 더 악질적입니다. 인간다운 면모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섬뜩할 만큼 잔인하고 무정합니다. 그의 이름을 살수(살인의 고수)라고 한 것이 괜한 소리가 아닙니다. 그 휘하 부하들이나 행동대원들도 한결같이 못돼먹었습니다. 그 놈들을 향해서 하나하나 찾아 복수를 합니다. 그들이 자기에게 대해준 대로 되갚아주는 식이지요. 좀 잔인하지만 적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면 시원합니다.
바둑의 묘수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바둑은 단지 범죄의 도구일 뿐이지요. 그러니 바둑을 보려고 가서는 안 됩니다.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도박이고 바둑판 위에 오가는 돈이 목적입니다. 한 마디로 화투판하고 별다를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바둑알이 놓일 때마다 살기가 흐릅니다. 신의 한 수가 목숨을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정말 바둑을 취미로나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모욕적인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아무리 성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가장 추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영화 ‘신의 한 수’를 보았습니다. 잔인한 장면은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잔인함을 실행하는 눈빛과 표정, 하는 짓은 여태 보던 것과는 질이 조금 다르다고 느껴집니다. 그만큼 연기가 빛난다고 하겠지요. 그래서 고놈이 당할 때는 섬뜩하면서도 짜릿합니다. 우리 모두 그런 잔인함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인간이기에. 그나마 마무리를 부드럽게 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나 할까요? 그렇지 않았다면 꿈에라도 재현되어 나타날까 겁납니다. 결코 하지도 당하지도 말아야 할 짓들입니다.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