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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도 (生活道)의 도라지꽃의 문화와 전설
생활도 (生活道)의 도라지꽃의 문화와 전설
예부터 전해오는 우리 생활 속에는 생활 그 자체가 도(道)와 연관이 되어있는 생활도(生活道)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일제의 침략이후 문화 말살정책과 서양식 교육이 들어오면서부터
우리는 우리 고유의 뛰어난 생활도의 문화가 왜곡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그 한 예로 도라지라는 우리 민요를 들어보겠습니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도를 알지, 도를 알지. 혼백(넋)을 알아 가는 그 도를 알지
심심 산천에 백도라지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있는 그 넋의 도를 알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마음과 감정의 갈래를 조금만 바로 고쳐도
대바구니로(갈비뼈) 철철철 다 넘는다
기쁨과 희열이 넘쳐난다.
도를 아시오 도를 아시오.
백도인 혼과 넋의 진도(眞道)를 아시오.
그것은 가슴속에 있는 마음의 깊은 곳에 있는 진실된 도입니다.
그것은 감정과 관념들로 쌓여 있어서 잘 나타나지 않으니 그 감정이나 관념의 차이를 넘어서
혼과 넋의 경계에 서보면 참 자신이 우리 몸이 아니라 혼과 넋의 참 모습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한 참모습을 접하고 알게 되는 순간 가슴이 터질듯한 깨달음의 환희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래서 미워함도 원망함도 없는 원활한 자기 완성을 이루면서 조화로우면서도 용기 있고
당당하고 행복한 사람으로서 의식의 완성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노래입니다.
긴 시간과 근대식 문화의 왜곡 속에서 다소 약간은 변질이 된 듯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인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다면, 당장 조용히 "도라지" 노래를 콧노래로
열 번만 불려 보세요. 그러면 님의 몸이나 마음에서 그 동안 깊숙하게 숨겨져 있던 희열이
일어남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한 하루가 될 것입니다.
글: 김영은
어느 빛도 태양보다 밝은 수 없지만 거울 앞에 서면 보이는 건 모두 허상이다
그대 앞에서 기쁘게 흔들리며 벅찬 듯 치밀어올린 감동도 보기 좋은 사치였다
지하 세상에서 기다릴수록 외로움이 큰 뿌리의 소중함 산길에 도라지꽃 피었다
도라지꽃 / 이해인
엷게 받쳐입은 보라빛 고운적삼
찬 이슬 머금은 수줍은 몸짓
사랑의 순한 눈길 안으로 모아
가만히 떠올린 동그란 미소
눈물 고여오는 세월일지라도
너처럼 유순히 기도하며 살고싶다
어느 먼나라에서 기별도 없이 왔니
내 무덤가에 언젠가 피어 잔잔한 송가를 바쳐주겠니
도라지꽃의 전설
먼 옛날 산기슭 마을에 아리따운 한 낭자가 살고 있었지요 대갓집의 무남독녀이다보니
자연 혼담이 쇄도했지요. 하지만 그토록 금지옥엽으로 키워온 딸을 선뜻 내주고 싶은 상대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어요. 게다가 부모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겨도 딸은 막무가내로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이었어요.
부모는 하는 수 없이 혼사를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고, 일이 이렇게 되니 빈번하게 들어오던
혼담도 뜸해지던 어느 날 낭자는 마을 뒷산에 있는 절의 탑을 돌며 소원을 빌면 어떤 어려움도
성취된다는 말을 들었어요. 달빛마저 희미한 어느 날 밤, 집을 빠져나와 대웅전 탑 앞에 당도한
낭자는 소원성취를 하리라는 일념으로 탑을 돌기 시작했지요. 그러다 그만 갑작스런 현기증으로
탑전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때마침 새벽녘 잠에서 깨어나 탑전으로 발길을 옮기던
젊은 비구승이 쓰러져 있던 낭자를 발견하고 선방으로 데리고 갔어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겨우 깨어난 낭자는 비구승을 바라보고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그토록 간절히 구하던
배우자상이 어떻게 지금 내 앞에 나타나있단 말인가? 어쩌면 저분은 현신하신 부처님이 아닐까.'
낭자는 놀라움과 기쁨, 또한 뼈를 가르는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형언할 수 없는 심경에
빠져버렸습니다. 하지만 비구승은 새벽을 알리는 법고 소리가 울려 퍼지자 가사 장삼을 챙겨
입고는 표연히 방을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낭자는 갑자기 더할 수 없는 허탈감에 사로잡혔어요.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머무를 처지가 못된다는 생각이 들자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고
자신이 다녀간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새벽 예불을 드리는 시각을 기다려 집으로 돌아왔지만
날이 갈수록 낭자는 비구승을 사랑하게 됐고, 그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강한 열망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날이가고 달이 가도 스님을 만날 길은 묘연했지요.
탁발하러도 내려오지 않았고요 그리움에 지친 낭자는 마침내 몸져 눕게 되었어요.
유명하다는 의원은 모두 초빙하여 치료를 해보고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지만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마침내 온 식구들은 소원이나 풀어주리라 마음먹고 뭣이든지 하고 싶은
일을 말해보라고 딸을 달래기 시작했어요. 너무도 간절한 부모의 정성에 못 이겨
겨우 입을 뗀 낭자는 뒷산 절에 가서 불공이나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더랍니다.
부모는 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마를 대령하고 공양미를 비롯하여
온갖 준비를 갖추어 절로 향했습니다. 이윽고 절에 당도한 일행은 낭자를 부축하여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 앞에 불공을 드렸습니다.
온 가족이 늘어서서 절을 하는 동안 낭자는 계속 마음을 죄면서 비구승의 방문이 열리는지를
곁눈질해 보고 있었어요.하루 해가 기울고 방선(아침에 선에 들어가는 것을 입선이라하고
저녁 때 선 공부가 끝나는 것을 방선이라 함) 이 되자, 놀랍게도 스님방 문이 열리고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수려한 비구승이 경건한 자세로 나오고 있었어요. 비구승을 보는 순간 낭자의 두 눈엔
주루룩 눈물이 흘러내렸지요. 마치 시커먼 먹구름이 소나기로 쏟아진 뒤 하늘이 더 찬란히 빛나듯
낭자의 마음은 어느새 속 깊이 사무친 슬픔이 걷히고 희망의 빛으로 환히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영검한 부처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대갓집 외동딸의 불치병이 치유되었다는
기적같은 이야기는 삽시간에 인근 마을에 파다하게 퍼졌지요.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집에서는 많은 재물을부처님 전에 봉헌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낭자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절에 갈 수 있었고, 그때마다 낭자는 먼 발치에서나마
스님을 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낭자의 건강은 차차 회복되었고요.
그러나 하기 결제(불가에서 1년을 4기로 나누어 일정한 곳에 안거하며 수행에 전념하는 3개월간)
가 끝날 무렵부터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말았지요.해제(결제가 끝나고 다음 결제까지의
3개월. 스님들은 이 기간에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공부함)가 되던 날부터 스님을 볼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제나 저제나 가슴 앓으며 기다려도 스님은 그림자조차 찾아볼 길이 없었어요.
절망에 빠진 낭자는 더 이상 절에 가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
낭자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부싯돌을 찾?들고 절을 향해 떠났어요.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절 근처로 낙엽을 긁어 모으고는
불을 붙였습니다. 고풍이 창연하던 법당이며 훌륭한 승려들을 수 없이 배출한
선방이 불타오르기 시작하자 잠들었던 스님들이 놀라서 뛰어나왔지요.
이를 어둠 속에서 지켜보고 있던 낭자의 가슴에 자책과 회환의 금이 그어지고 있었어요.
젊은 학승이 아무리 두문불출을 결심했어도 선방에 불이 붙으면 뛰쳐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불을 질렀기 때문이었지요. 그토록 안타깝게 그리워하느니 놀라 뛰쳐나오는 모습이라도 한 번
더 보고 불길 속에 자신의 몸을 던져 죽기로 마음먹었던 거지요.
그러나 예상은 빗나가서 비구승이 묵던 방은
문조차 한 번 열리지도 않은 채 잿더미로 가라앉고 있었어요.
낭자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스님이 필시 불에 타서 죽은 것이라고 생각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게 했다는 자책감을 이기지 못한 채 낭자는 불 속으로
뛰어들고 말았어요.
마침 타오르는 불길을 망연히 쳐다보던 주지스님이 낭자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불길로 뛰어들어 구해냈습니다.주지스님은 응급조치를 취한 다음 낭자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사력을 다해 가까스로 이야기를 마친 낭자는 절명하고 말았지요.
이를 너무 애처롭게 생각한 주지스님은 낭자의 시신을 고이 묻어주었어요.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자신에게 쏠려오는 낭자의 진한 연정에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려 황급히 절을 떠났던
젊은 비구승은 정진을 거듭하여 마침내 대각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주만물의 이치를 깊이 깨달은 대사가 되어 자신을 키워준 절들을 돌아보기 위해
순례의 길을 떠났어요.발효하는 술독같이 끓어 오르던 열정의 잔해들이 대웅전 뜨락이며
선방 툇마루에서 서걱대다가 대사의 발길이 닿자 그윽한 향기로 승화하는 듯한 절들을 돌아
마침내 낭자의 진한 연정을 묻은 옛절에 이르렀습니다.
절문에 들어선 스님은 전혀 다르게 변한 사찰을 놀란 눈으로 보고 있었어요.
이때 새 주지스님이 경내를 산보하다가 대사를 발견하고는 예를 갖추고 물었지요.
어디서 오신 뉘시며 왜 그렇게 놀란 표정으로 서 있는지를. 옛절의 모습을 더듬는
대사의 말이 끝나자 주지스님은 선임자에게 전해 들은 대로 절이 개축된 내력을 이야기하며
낭자의 묘지 쪽을 향해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어요. 스님을 따라 천천히 걷던 대사의 눈에서
그만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나왔어요.자신으로 인해 가엾게 생을 마친 낭자의 처지가 너무도
마음아팠고 또 칠정(喜怒哀樂愛惡慾)에 매달려 번뇌하는 중생을 생각할 때 슬픔을 금할 길이
없었던 거지요. 드디어 두 사람은 낭자의 무덤 앞에 도착했습니다. 아무 말없이 묘를 바라보던
대사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묘를 파보자고 했어요.
주지스님은 사람을 불러와 묘를 파고 관을 찾아 뚜껑을 열었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관 속의 낭자는 조금도 상하지 않은 채 그대로 보전되어 있었어요.
대사는 낭자의 시신을 두 팔에 안고 망연히 서 있었어요. 너무도 애절한 얼굴로 숨져있는
낭자를 안는 순간 대사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어요.
흘러내린 눈물이 옷섶을 타고 시신으로 스며들자 시신의 그 애절하던 얼굴이
서서히 평온해지며 행복한 표정으로 변해갔어요. 낭자의 얼굴이 완전히 화평해지자
'낭자의 넋은 이제 위로를 받았소이다.' 라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대사는 낭자의 시신을
안은 채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지스님은 화장할 준비를 갖추고 대사의 뒤를 따랐습니다.
장작더미 위에 낭자의 시신을 놓은 다음 또 장작을 쌓아 그 더미에 불을 붙였지요.
깨끗하고도 뜨거운 불길이 한동안 춤추듯 낭자를 감싸안았다가는 뽀오얀 재를 남긴 채
사라졌어요. 대사는 정성스럽게 재를 쓸어모아 바랑에 넣고 그 밤으로 길을 떠났어요.
그리고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며 발길이 닿는 곳곳마다 재를 뿌렸어요.
'낭자여! 그대는 내가 가는 곳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한 곳에 있지 못하는 사람. 가는 곳 어디에나 낭자가 있도록 그대를 뿌리오.
그대를 온 강산에 심겠소.'재는 바람결 따라 이곳 저곳에 흩어졌습니다.
봄이 되자 흩어진 재의 알갱이가 떨어진 자리마다 작은 새싹이 돋아났어요.
그 새싹은 자라서 스님네들이 해제할 무렵인 7월에 가늘고도 긴 줄기 위에
그리움과 순결한 사랑을 상징하는 보랏빛 꽃과 흰 꽃을 피워냈다고 합니다.
http://cafe.daum.net/maxim3515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아름다운 이야기군요. 스크랩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