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께로부터 허리를 지나 S 자로 흘러내리는 리진(李眞)의 연푸른빛의 드레스는 발목까지 흘러내렸다.
무명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는 부두의 여인들과는 단연 대조족이었다.
그녀가 한걸음 뗄 때마다 구경꾼들이 앞으로 뒤로 몰려 들었다.
처음엔 외국 여인인가? 바라봤다가 어, 조선여인이네, 싶으면
다시 한번 호기심 서린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노골적으로 머물렀다가
콜랭의 얼마간은 오만해 보이는 코와 그 아래의 콧수염과 흰 피부 갈색 곱슬머리로 옮겨갔다.
리진의 깊이 파인 드레스의 가슴 부분에 장식된 눈부신 흰 드시스에 눈길을 주었다가 손에 들고 있으나 머리에 쓰게 되면 앞사람 이마쯤에 닿고 말 것 같은 챙이 긴 모자를 보았다.
혹여 그녀의 드레스를 밟을라, 싶어 뒤로 한 발짝 물러서기도 했으나
리진과 콜랭을 바라보는 부두 사람들의 시선에는 조선 여인이 웬 서양여자 옷차림을 했을까? 의혹이 공통으로 서려 있었다.
어떤 이는 심사가 뒤틀려 눈살이 찌푸려지거나 입술이 퉁명스러워졌다.
리진의 매력은 단순히 옷차림이 다른 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인들 속에 섞여 있어도 단박 눈에 띄는
눈부신 목덜미와 깊은 눈동자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녀의 드러난 목덜미는 어디에서나 하얗게 빛을 냈다.
그 빛의 느낌을 뭐라 표현할까.
고개가 아래로 숙여질 땐 다정하고, 뭄의 중신이 바로 서 있을 땐 의연하며
무엇을 살피는 듯 주변을 돌아보느라 부드럽게 접혀지고 휘어질 때는
누구라도 손바닥을 갖다대고 싶게 관능적이었다.
가지런한 눈썹 밑에 자리잡은 리진의 반짝이는 두 눈은 또 어떤지.
무슨 어려운 이야기를 해도 금새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이 깊은 데다가
물기가 촉촉이 서려 있어 그 눈동자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바다. 밑을 감추고 있는 듯 비밀스러워 보였다.
귀밑으로부터 빰까지는 홍조가 들어있어 얼핏 수줍음이 많은 사람인가 싶은데
두 눈 사이로 좁은 듯 길게 뻗어 있는 콧마루가 수줍음을 넘어 총명함을 느끼게 했다.
독특한 조화였다. 가늘지도 도톰하지도 않은 꼭 다문 입술 주변엔 봄날 새싹에나 붙어 있을 옅은 솜털이 보송보송해 설령 그녀가 무슨 생뚱맞은 짓을 해도
깊이 껴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사랑스러움이 넘쳐흘렀다.
그 사랑스러움이 그녀에게서 풍겨 나오는 매력의 전부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매력을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도 지적일 정도로 단정하고 균형 잡힌 걸음걸이를 유지하고 있는 데서 흘러나왔다.
리진은 뭇 사람들의 흘끔거림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장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습관처럼 숨듯이 움츠리고 걷는
조선 여인들하고는 확연히 구별되는 걸음걸이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익숙해진 듯 리진은 걸음걸이의 균형을 흩트리지 않았다.
의혹에 찬 뭇시선을 견디느라 저편 바다를 응시하는 따위의 행동도 하지 않았다.
자칫 오만해 보일 수 있는 그 걸음걸이는
그녀의 깊은 눈동자, 애절한 목덜미, 얼굴에 넘쳐 흐르는 사랑스러움이 덮어주었다.
가슴을 펴고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그녀의 걸음걸이는 무엇이라도 뚫고 나갈 듯해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신을 잃지 않을 것 같은 강인함을 느끼게 했다.
아무리 흘끔거려도 흔들림 없는 리진의 모습에
외려 그녀를 응시했던 사람들이 긴 한숨을 쉬며 바다로 시선을 외면했다.
그 사랑스러운 여자는, 낮은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는 포구를 바라보고 있는 그 여자는,
불과 십여 년 전인 1882년에 제물포 조약이 체결되기 이전에는
이 항구가 손가락을 꼽으며 셀 수 있을 정도의 초가들이 조용하게 모여 살고 있던
곳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