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식품을 먹는 것은 자연이 차려놓은 향연을 먹는 것. 논어에선 유물유칙( 有物有則)이라 했다. 우주의 모든 것은 때가 있고 때를 거스리는 일은 자연을 거스리는 일이다. 몸도 마음도 자연에 순응하여 영양을 섭취해야 건강하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도 다르다. 그래서 제철 음식을 재대로 먹기만 해도 오는 질병을 미리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해조류, 생선, 조개류 등 바다의 원초적인 먹거리는 최고의 건강식이다. 동해부인의 홍합, 남해부인의 낙지, 서해부인의 굴맛, 키조개맛, 제주부인의 전복을 따를 만한 해물 맛이 별로 없다. 키조개는 일년 내내 먹을 수 있지만 차디찬 바다에서 더욱 차지게 여물고 단맛이 증가하여 맛있는 때가 겨울이다.
김주영은 대하소설 「아라리난장」에서 ‘.........그라고 득량만에서 잡히는 우럭도 맛좋기로 유명하제. 거그서 나는 키조개 구경 못해봤지라? 거짓말 하낫도 안 보태도 정말 키만 하지라...’고 표현하고 있다. 키조개의 모양이 점점 넓어지는 삼각형으로 곡식을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키’와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치조개·도끼조개·가래조개 라고도 부른다.
연안 수심 5~10m의 진흙에서 주로 서식하는데 장바구니에 선뜻 집어넣기를 망서려지는 가격은 잠수부들이 직접 하나하나 손으로 따는 식품이며, 뛰어난 맛으로 전량 일본으로 수출하는 고급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키조개의 주산지는 장흥 득량만이다. 득량만은 양분이 풍부한데다 풍랑이 심하지 않고 수심도 깊어 양질의 키조개를 길러낸다. 어른 손바닥만한 키조개는 검은색 진주광택이 난다. 패각을 벌리면 둥근 패주(貝柱)가 나오는데 약간 아이보리색이 나면서 윤기가 있는게 신선하다.
기본손질은 패주 주위에 너덜너덜하게 붙어있는 내장을 칼로 잘라내고 측면을 싸고 있는 얇은 흰막을 벗겨낸다. 손질한 패주는 결 반대 방향으로, 모양 그대로를 살려 두께에 따라 2~3등분으로 편썰기한다. 모양대로 둥글게 썰어야 질기지 않으며 날로 먹어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다.
싱싱한 패주를 얄팍얄팍 썰어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으면 야들야들하면서 담백 찝찔한 바다의 살냄새가 난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젓가락으론 바다를 들어올려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보자. 비린내도 거의 없다.
구워 먹어도 별미다. 돌판에 참기름을 두르고 구우면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훨씬 강해진다. 살짝 익혀 깨소금을 듬뿍 묻혀 입에 넣으면 보드라운 패주의 감촉을 깨소금이 감싸서 고소하고 달보드레하다. 오래 익히면 고무처럼 질겨지므로 살짝만 익혀야 한다. 야채를 넣어 새콤달콤하게 무쳐낸 키조개무침도 뺄 수 없는 먹거리이다.
패주를 넣어 끓인 키조개죽, 패주에 밑간을 하여 180℃에서 살짝 튀겨내서 야채와 소스를 뿌려먹는 패주샐러드, 패주를 넣은 달걀패주찜, 패주덮밥은 소스에 따라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패주는 자양·강장에 좋은 식품으로 세포에 윤기를 주어 노화를 방지하고 혈압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하여 고혈압에 효과가 있다.
피로한 시신경을 회복시켜주고 시신경의 약화로 인해 동반되는 두통이나 현기증, 어깨 결림에도 효과적이다. 이는 필수아미노산과 철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날것으로 먹어도 맛있지만 말린 것이 영양가나 약효면에서 훨씬 더 우수하다.
중국의 속담에 ‘ 冬季進補 開春打虎’(동계진보 개춘타호)겨울철에 보약을 먹어두면 봄이 되어 호랑이라도 잡는다는 말이 있다.
겨울에 신체를 잘 돌보아 몸을 건강하게 하면 병들을 미연에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한창 물오른 키조개를 다양한 조리법으로 맛있게 먹고 건강을 지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