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스토리문학 2016년 겨울호(통권97호) 발표작
기념일 외 1편
조유리
발가락들을 숨 쉬게 하기 위해선 무슨 색깔을 입혀야 하나
오른발이 붉어지면 왼발이 파래지는 오늘
숨바꼭질은 숨는 게 아니지
발가락들 틈에 고여 있는
사마귀의 굳은 혀를 찾아내는 일
넘어가지 않는
달력에는 저쪽이 없고
블라인드를 세워두고 닫혀있는 창문에게
노래를 불러 줄 걸, 날아가지 못하도록
울음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흰목멧새의 춤이
식은 피자위에 차려질 때
갈라 선 부부의 속엣말 사이에서
아이들방 꽃벽지가 웃자라네
해마다 다시 찾아오고야 마는
입 없이 입술을 앓는 환상통
늦게 도착한 표정으로 저녁은 화장이 짙고
광장의 뿔들
뿔이 모여 든다
뿔을 세우며 양손으로 감싸 쥐며
모르는 뿔들이 서로를 알아보며
무사히 도착했지만 무사하지 않은 뿔들
우리는 왜 뿔이 되었습니까?
아무도 물을 수 없을 때
떠가는 구름 사이로 검은 새들이 빙빙 돈다
어둠 속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밤이
얼굴을 갈아입으며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
당신들은 무사합니까?
새들이 쪼아 먹다만 빵부스러기 사이로
잔뜩 부풀어 오른 의문들에 대해
떼 지어, 허공을 비틀며, 셀 수 없는
세다가 놓쳐버리고 마는 깃털들을 흘리고 있는데
여기는 누구의 손바닥에 가려진 천공인가
얼룩덜룩한 손바닥들이 하루하루를 덮으며
몸통이 없는 비밀들이 탑이 되어 세워지는 동안
살아서 죽어간 봄날을 뒤집어쓰고 침몰한
우리는 누구의 생목숨인가
조유리
2008년 계간 <문학∙선> 등단
한국작가회의 회원, 빈터 동인
garam09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