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폴공항 현지 시간으로 27일 새벽 4시 40분 도착. 입국심사 받고 나오니 5시가 조금 넘었다. 입국심사도 간단하다. 여권을 기계에 넣고 읽히면 문이 열리고 통과하면 그걸로 끝이다. 줄서서 기다리고 입국심사관의 질문에 대답하고 때로는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보여주어야 했던 예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젊은이들이 이런 과정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8시 에든버러 행 비행기를 또 타야하니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쉴 수 있는 라운지 카드를 가지고 있어서 찾아가니 6시에 문을 연단다. 6시에 라운지에 들어가 뜨거운 양송이 스프를 한 컵 마시고 나니 몸이 풀린다. 역시 내게는 뜨거운 국물이 최고다.
좀 쉬고 에든버러 행 비행기 출구를 찾아간다. 스키폴공항은 무척 넓다. 유럽의 허브공항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D라인의 맨 끝에 위치한 탑승구를 찾아 한없이 걸었다.
곧 보딩이 시작되어 창가 자리에 앉았다. 낮에 가는 비행기니 바깥 구경하려고 창가 쪽 자리를 신청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고도를 높이자 보이는 것은 온통 구름이다. 구름이 바다에 떠있는 섬처럼 보인다. 구름 섬들을 지나더니 두꺼운 구름으로 덮혀 그 아래 세상은 볼 수가 없다. 설원 위를 거인이 지나간 발자욱이 보이고 구름 산맥이 서서히 다가왔다가 물러간다.
그러다 갑자기 원형의 무지개가 따라온다. 구름 위 수증기와 아침 햇살의 작품이다. 내 인생에서 두 번째 보는 원형 무지개다. 2000년 백두산 천지에서 처음 원형 무지개를 보았다. 그 때의 감격이란... 그 원형 무지개 안에 내 그림자가 있고, 함께 손잡은 우리들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 때처럼 선명하지는 않지만 원형 무지개가 따라오다 사라졌다 반복한다. 표현 할 수 없는 충일함이 마음에 차 오른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한 달 간의 에든버러 생활이 기대된다.
한시간 30분 만에 도착. 여권을 기계에 대고 통과하는 것으로 끝내고 나와 짐을 기다린다. 여기는 영국. 바쁜게 없다. 컨베어벨트는 혼자 돌고 짐은 나올 생각을 안한다. 사람들은 여유있게 짐을 기다리고...
짐찾아 나오니 효은이가 달려와 포옹한다. 반갑다. 살이 빠진듯하고 몸이 가벼워 보인다. 드디어 도착했다. 18시간이 걸렸나 보다. 휴우~~~ 짐을 나누어들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향한다.
지난해 효은네 살 집 찾으러 함께 왔던 이곳을 다시 왔다. 좋은 집을 빌리고 이사한 곳에 오니 마음이 편하다. 루카는 학교에, 죠나는 어린이 집에 가 있어서 집은 조용했다. 효은이가 차려 놓은 된장찌개 점심을 먹고 나니 샤워하고 좀 쉬라는 권유에 따라 씻고 누었다.
자다가 깨보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집은 조용하고, 아무도 없고... 네시간을 정신없이 잤다. 효은이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아이들 데리고 공원에 갔다고 카톡에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정말 드물게 보는 청명한 날씨. 하늘이 무척 높다. 햇살은 쨍한데 기온은 낮은가보다. 자고 일어난 몸이 으실으실하다. 스웨터를 꺼내어 덧입고, 돌아올 식구들을 기다린다.
여섯시가 다 되어서야 루카와 죠나 효은 란디가 들어온다. 공원에서 만나 함께 왔단다. 루카는 할머니 하고 환호하고 안고, 사위와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데 죠나는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나를 유심히 바라본다. 어떻게 대해야 할 사람인가를 가늠하는 눈치다. 유모차에서 내려놓으니 내 주위를 빙빙 돌며 슬쩍 건드려보고 물러서고를 반복한다.
아이들을 씻기고 모두 저녁 식탁에 둘러앉았다. 루카가 ‘날마다 우리에게’를 선창하고 죠나는 ‘맛있게 먹겠습니다’ 에 맞추어 손뼉을 친다.
저녁을 먹고 나서 가방을 풀고, 루카는 한글 단어 카드 선물을 주자 제일 좋아한다. 막내 이모가 보낸 옷도 좋아했다. 김을 보고는 와~ 한다. 죠나도 형을 따라 와~ 하고는 나를 쳐다보고 싱긋 웃는다. 8시가 되니 아이들 재운다고 하다가 나를 위하여 침대를 바꾸어 놓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엄마 아빠는 땀을 뻘뻘 흘리는데 아이들은 그 틈을 타 노느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깔깔댄다.
9시가 되어서야 정리가 되고 아이들은 아쉬운 듯 자러갔다. 나도 피곤하여 자리에 누웠는데 루카가 할머니와 잔다고 찾아왔다. ‘알러뷰 할머니’를 연신 부르며 뽀뽀하자고 덤비는 루카와 함께 꿈나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