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주에 가족들과 휴가를 함께했다.
마침 주중에 아버지의 90주년 생신을 맞이하는 날을 맞춰 온 가족들이 휴가일정을 같이하기로 했었다.
먼저
【휴가!】 하면 과거 30년간 직장생활 하던시절 생각이 떠오른다.
당시 휴가기간은 6월 중순부터 8월 하순까지 조별로 나누어서 실시하였다.
우리 모두는 7월말과 8월초순을 원했고, 선후배,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체면이나 양보는 없었다.
총각들이 양보하는 편이었고 정년을 앞둔 고령의 선배들이 그나마 8월하순쪽으로 물러서 주었다.
그 외에는 제비뽑기, 사다리타기로 결정을 지웠고, 형제자매들간의 약속으로 그 시기에 못가면 안될 사정이 있는 사람은 꽤병으로 병가를 내는사람, 푸짐하게 한턱쓰고 바꿔치기 하는사람, 휴가철이면 야단법석이다.
나는 그래도 운좋게 많은 세월을 절정기에 잘 맞추었다.
다음주가 내 휴가주일때 前週 토요일날 집에 퇴근을 해보면 친구와 후배가족들이 탑승한 승용차7~8대가 주차되여 내가 퇴근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차들이 뒷트렁크가 터지도록 싣고서 ....
휴대폰이 없던 시절, 승용차 행열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동해안 북쪽을 향하여 달렸다.
내가 진두지휘하여 서행하며 10번도 더 쉬면서 목적지를 향하여 ....
2박3일간 미리 예약해 둔 곳, 울진삼척 무장공비가 출몰한 자그마한 포구, 건너뛰어도 될만한 계곡을 사이에 두고 이쪽은 경상북도 울진, 저쪽은 강원도 삼척, 한동네가 다른道로 갈라진 폭 꺼진 바닷가에 우리들은 몇해를 두고 휴가를 즐겼다.
백사장이 아닌 자갈밭이고 바다속에는 골뱅이, 놀래미, 자연산 섭(홍합), 돌미역, 따깨비, 솥만 걸어놓으면 하루종일 삶아 먹을것들로 풍부한 해수욕장, 외부인들은 잘 모르는 곳으로 집전체 민박을 얻고, 바닷가엔 텐트를 치고, 고향집에서 장작과 칼국수를 갖고와서 캠파이어에, 홍합삶은 국물에 칼국수를 삶아 자연산회와 함께 먹고 마시던 예전, 어른도 자녀들도 원없이 즐겼던 꿈같은 추억의 휴가 ....
둘 뿐인 우리형제와 자녀 조카들과 귀향길에 올랐으나 모두가 함께하지 못하고 각자 출발시간이 달랐다.
우리 내외는 승용차가 비잡도록 잔뜩 실려있는 상태로 출발했고, 조수석 아내는 불편한 여행이 되었다.
2m×6m의 장판이 실렸고, 32인치LED디지털TV에 손수레, 과일을 비롯한 약간의 음식들 ....
나는 백수라서 휴가개념이 별로인데 아내는 모처럼의 휴가기분에 들떠 있었다.
포항간 고속도로 영천휴게소에서 잠시 머문 뒤 동해안 화진휴게소에서 동생내외와 합류했다.
형제가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며 고향집에 도착했고, 반가워 어쩔줄을 모르는 고령의 부모께서 반가히 맞아주었다.
우리는 집에서 멀지않은 거리에 위치한 소나무 숲으로 조성된 【봉평해수욕장】내 규모가 큼직한 요리집을 택해 늦은
오후시간대에 예약을 해 두었던 터라 모든 가족들이 제시간에 도착이 되었다.
큼지막한 케익과 코스요리에 부모님들은 흡족해 하셨다.
바닷물이 엉덩이 아래까지 철석거리며 해수욕객들이 수영하며 놀고있는 광경이 환히 잘 보이는 장소에서 우리들은 오감만족을 체험하며 즐겁게 놀다가 저녁때가 되어서 성류굴로 향했고, 성류굴앞 유원지에서 은어튀김을 안주로 동동주맛에
모두 푹 빠져 있을즈음 수개월째 금주상태인 나는 슬거머니 왕피천변에서 어린 손자와 시간을 보냈다.
가족 중 동동주를 즐겨 마셨던 주객들은 밤중에 고생깨나 했었다.
다음날은 삼척【해안헤일바이크】를 타러 갔으나 예약이 되지않아 탑승하지 못하였고, 황영조 기념관을 둘러보고 임원항과 죽변어시장 구경과 함께 생선맛을 보았고, 다음날은 울진 왕피천보다 더 아름답다는 가곡천(삼척시 가곡면)을 따라 수십리를 이동하며 피서지로 유명한 동할골, 덕풍계곡을 경유 폐광한 연화광업소가 있던 자리(자연휴양림을 운용하다 몇년 전 폐쇄함)에 자리를 마련하여 휴식하며 굴속에서 내품는 냉풍으로 피서를 즐겼고, 골짜기 막장에 60대의 부부가 거주하는 독가촌 박물관(sbs세상에 이런일이 방영)을 관람하면서 다음 기회에 꼭 한번 이곳에서 1박하리라 다짐(여름에는 피서, 가을에는 단풍) 하였고, 그 외에도 주변에 소문난 맛집 등을 순회하며 맛있는 음식들을 맛보는 등 이번 휴가는 모든 가족들과 함께 뜻깊고 즐거운 기간이었다고 나름대로 결론지우며 어슬픈 글쓰기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