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이 가마에 불을 지핍니다. 강변의 흙과 물로 빚은 도자를 밀어 넣었습니다.
잘 건조된 참나무 장작도 넣습니다. 이글루 같은 가마는 이글이글 달아오릅니다.
앞으로 나흘. 황토색 도자가 매끈한 도자로 탄생하는 시간. 그동안 가마 안 도자는 어떤 꿈을 꿀까요. 하늘빛일까요. 아니면 우윳빛일까요.
가마 위 우뚝 솟은 굴뚝에서는 아리송한 연기만 모락모락. 도자는 생명이다. 그 사이 죽은 것은 없다. 빛깔은 시간이 지날수록 광채를 더한다.
문지르고 닦다 깨어지면 또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자연의 순환주기에 따라 흐르고, 태어나고, 흐르기를 반복한다.
광주∼이천∼여주를 잇는 삼각벨트 ‘도자투어라인’
지금부터 딱 6개월 전 일이다. TV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가 끝난 것이. 대중적 인기를 끌지는 못했으나 도자기 같은 묘한 매력을 풍긴 이 드라마는 조선 최초 여성 사기장인 ‘백파선’의 일대기를 그린 조선판 ‘트렌디 드라마’였다.
그 배경이 되는 무대가 바로 ‘광주’다. 남한강에서 북한강으로 갈리는 분파지점인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일대는 과거 도자 운송과 원료 조달의 관문이었다.
그렇게 남한강 줄기를 따라 내려오면 ‘황포돛배’가 드나든 여주나루터에 이른다. 내륙교통을 기반으로 도자문화를 발달시킨 이천까지 연결하면 ‘오리온의 벨트’ 같은 ‘도자투어라인’이 완성된다. 이 투어라인 안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도예가들의 꿈들로 반짝인다.
이들 세 지역에 걸친 요장(일종의 공방)은 697곳, 도예가들만 1천916명에 달한다. 도내 등록 도예가(2천374명)의 80.7%의 도자벨트 안에 집중한 것이다. 과거 조선팔도를 호령했던 광주, 여주, 이천 도자의 명성을 되찾을 날도 멀지 않았다.
4월 2일, 한국도자재단 관계자들과 함께 도자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살아 숨 쉬는 도자투어라인을 돌아봤다. 당일 코스로 기획됐으나 여유 있게 도자문화를 느끼고 싶다면 과감하게 1박을 권한다.
광주 ‘곤지암도자공원’… ‘왕실도자’ 기품 있는 풍만함
먼저 찾은 곳은 광주시 ‘곤지암도자공원’. 지난해 5월 문을 연 이곳은 체험형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콘셉트로 조성됐다.
69만2천㎡에 이르는 드넓은 대지에 경기도자박물관, 모자이크공원, 구석기체험마당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화려함에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바로 ‘모자이크 정원’이다. 가로 72m, 세로 50m의 모자이크 정원은 오방색 이미지를 주조로 청룡과 백호, 주작, 현무 등 사방신이 새겨있다.
분수를 중심으로 매표소에 이르는 길목에는 알록달록 무지개빛깔의 모자이크 조각들이 꽃잎처럼 박혀 있었다.
투어를 함께한 한국도자재단 이준한 대외협력실장은 “전국 각지에서 수집된 수십만개의 도자파편을 가지고 15명의 작가들이 작업해 만든 공원”이라며 “제작기간만 수개월이 걸렸다”고 소개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도자파편이었다. 백호도 주작도 파편으로 그려졌다. 폐품으로 수집된 도자를 깨서 날카로운 부분은 사포로 문지르고, 색은 새롭게 덧입혀 거대한 그림을 완성한 거란다.
레드카펫처럼 깔린 모자이크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경기도자박물관’이 서있다. ‘관요의 고장’ 광주의 도자 역사와 태동부터 현대까지
장구한 한국도자의 변천사가 전시돼 있다.
특히 고려시대부터 현대 도자를 아우르는 소장품 상설전인 ‘한국인이 빚어낸 아름다움’ 전과 도자의 역사와 특징을 배울 수 있는 도자문화실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 도자투어라인을 돌아보는 관광객들에게는 필수적인 관광코스다.
이를 토대로 이천과 여주에서 만날 지역 특징적인 도자 문화를 미리 체득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는 체’ 하고 싶다면 꼼꼼히 돌아보고 담아가자.
이외에도 공원에는 ‘갤러리아 카페’, ‘자연생태원’, ‘스페인조각공원’, ‘엑스포조각공원’, ‘한국정원’, ‘캠핑장’ 등 각종 전시장과 편의시설이 자리해 있다.
이날 시간상 문제로 모든 시설을 다 돌아볼 수 없었지만 일정을 넉넉하게 잡아 간다면 모두 꼼꼼히 둘러보길 권장한다. 그만큼 예쁘고 얻어가는 것이 많다는 의미다.
이천 ‘세라피아’… 젊은 도예가의 현대적 창조공간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으로 들른 곳은 ‘이천 세라피아’. 평일에도 수 많은 인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특히 봄에는 더더욱.
설봉저수지와 설봉공원을 중심으로 5천여 본의 ‘왕벚나무’가 식재돼 있다.
숨바꼭질하듯 곳곳에 놓인 도자조형물과 개성 넘치는 건물들이 흩날리는 벚꽃과 묘한 배경적 어울림이 있었다. 벚꽃이 아름답지만 한 철이다.
이천 세라피아에는 세계 도자예술의 흐름과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 전문 도서관, 체험장 등 현대적인 문화시설이 있다. 그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창조센터’다.
여기 1층에서 ‘도자, 에콜로지를 생각하다’라는 이름으로 오는 8월 24일까지 도자기획전이 진행 중이다. 생태학을 뜻하는 ‘Ecology’의 뜻처럼 ‘자연’과 ‘동식물’, ‘인간’의 세 가지 주제로 모두 95점의 작품이 진열됐다.
전시 말고도 이곳만의 특징이 있다. 바로 ‘창조공방’이다. 의미 그대로 의미 그대로 공예 분야에 재능 있는 신진 작가를 발굴·육성하기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현재 도자 작가 5명과 유리 작가 3명이 상주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창조공방은 오픈 스튜디오 형태로 관람객들이 직접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지켜볼 수 있으며, 아카데미 운영은 물론 막 구워낸 뜨끈한 작품도 현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물론 파는 것은 작가 마음이다.
다음은 ‘토야지움’을 들렀다. 한국도자재단의 마스코트인 ‘토야’(TOYA)와 ‘박물관’(MUSEUM)의 합성어로 지난 2009년 사무실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수장고를 갖춘 전시관으로 총 4개의 전시실에 1천300여 점의 재단 소장품과 아시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유럽 등 대륙별 세계 도자를 전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도자는 물론 다양한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진행할 수 있는 컨퍼런스실과 휴게 공간, 교육학술 공간도 함께 마련돼 있다.
토야지움 왼편에는 ‘토락교실’이 놓여있다. 상설체험관으로 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물조물 빚기’, ‘반짝반짝 모자이크’, ‘알록달록 그리기’ 등 도자와 파편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이날은 지역 아동기관을 통해 들어온 10여 명의 아이들과 부모가 도자 틀과 백토 반죽으로 진흙 케이크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만든 케이크를 들고 고깔모자와 폭죽을 터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토락교실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상설운영하며 개인과 단체에 따라 각각 1만3천원에서 1만5천원의 참가비용이 발생한다.
여주 ‘도자세상’… ‘생활도자’의 산실
광주와 이천을 둘러봤다면 그 대미는 ‘여주 도자세상’이 장식한다. 생활도자의 산실인 여주답게 상대적으로 ‘쇼핑’에 특화된 곳이다.
국내 최초의 도자쇼핑문화복합문화관광지인 도자세상은 생활도자에서 예술도자까지 각양각색의 도자를 직접 감상하고 체험하며 구입해 갈 수 있다.
상품의 특성과 고객 취향을 고려해 아트샵과 리빙샵, 브랜드샵, 갤러리샵 4개 매장을 갖추고 있다.
전국 115개의 요장에서 3천800여 종의 다양한 생활도자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에 만나볼 수 있다. 실제 들어간 매장에는 도자기로 만든 수저와 젓가락, 꽃무늬 도장을 한
다기세트, 백자와 청자 그릇,
화병 등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러운 도자가
진열대를 꽉꽉 채우고 있었다.
가격 수준을 논하기 힘들지만 소품인 경우 1만원 내외로 그릇과 찻잔이나 밥그릇 등의 세트상품의 경우 10만원 안팎에 판매하고 있었다. 정확한 가격대는 도자세상 온라인 포털사이트(
www.dojasesang.com)에서 확인 가능하다. 그러니 알아서 판단하도록.
쇼핑이 주목적이기는 하지만 도자세상에는 ‘반달미술관’이라는 전시시설도 운영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생활도자전문 미술관’을 지향한다. ‘반달’이라는 이름처럼 미술관 내 마련된 전시실 이름도 ‘초승달’, ‘하현달’, ‘상현달’, ‘보름달’ 등으로 구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