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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중앙
JTBC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서 그는 살벌하다. 아내의 불륜 사실을 짐작한 후 그야말로 ‘눈이 뒤집혀서’ 추적을 해댄다. 아내에게 물건을 집어던지는 건 예사, 멱살까지 쥐고 욕을 퍼부어댄다. 그러나 서래(김희애 분)에게 급소를 걷어차이고 엎어치기 한 판으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한다. 드라마를 잘 보고 있다는 기자의 말에 대뜸 “아주 진상이죠?”라며 웃는다.
장현성은 한마디로 ‘고품격 인생’을 전문으로 연기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그가 맡은 역할들은 대부분 변호사, 검사, 의사, 기자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었고 교양 있고 반듯한 인물이 주를 이뤘다. 이런 똑똑한 이미지 때문에 퀴즈 프로그램의 섭외 요청을 받을 때마다 난감하다는 그의 말에 또 한 번 웃었다.
1989년 서울예대에서 연극 연출을 공부한 그는 극단 학전에서 설경구, 황정민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과 대학로 생활을 하며 내공을 쌓았다. 영화감독들의 눈에 띄어 1990년대 말부터 자연스레 스크린에 데뷔한 이후 TV 드라마에서 깔끔한 연기를 선보이며 캐스팅이 끊이지 않는 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는 괜한 고집과 편견으로 ‘나는 이 인물이 이해가 안 돼’라고 하기 전에, 맡은 배역의 처지와 감정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배우 양택조의 사위로도 유명한 그는 결혼 11년 차. 두 아들을 키우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라도 일을 열심히 하게 된다고 했다. 가족들을 건사해야 하는 40대 남자와 예술인으로서의 장현성 사이에서 늘 고민하고 있다는 그가 꿈꾸는 것은,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지 않는 ‘균형 잡힌 삶’이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를 하는 틈틈이 공연을 통해 에너지를 채우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갈증은 전혀 없다고 했다. 2년 전에는 ‘컨택트’라는 뮤지컬에서 매우 성공한 광고 기획자이지만 느닷없이 춤이란 환상을 통해 열정을 쏟아붓는 인물을 연기했고, 이번에 준비 중인 ‘노이즈오프’에서도 엄청나게 다혈질인 연극 연출자 역을 맡아 속 시원히 모든 것을 표출하고 있다.
아내의 불륜에 분노, ‘펄떡펄떡’ 뛰고 있다
평균 시청률 3% 이상을 기록하며, 특히 30~40대 주부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아내의 자격’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김희애(윤서래 역) 남편으로 열연을 펼치고 있는 장현성(한상진 역)이다. 그는 “세상에는 갑과 을이 존재해. 난 내 자식이 갑이 되었으면 좋겠거든!”이라며 아들을 국제 중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라 불리는 대치동에 입성했지만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격분하게 되는 인물이다.
복제 폰을 만들어 도청을 하고, 경찰까지 동원해 불륜 현장을 급습하려 했으며, “넌 몸 달아서 애 인생까지 망친 여자야!”라며 온갖 막말과 욕설,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늘 교양 있고 지적인 인물들을 주로 연기해 온 그였기에 매회 ‘반전의 장현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내의 자격’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떤가? 요즘 지나다니면서 욕을 많이 먹을 것 같다 하하, 욕보다는 재미있다는 연락이 많다. 특히 동료들의 리액션이 큰 편이다. ‘하얀 거탑’을 쓴 이기원 작가는 캐릭터부터 작품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뭐가 좋은지 꼼꼼하게 문자로 보내줬다. 나랑 친한 배우들인 이선균, 고수희 등도 재밌게 보고 있다고 해서 기분이 좋더라. 그동안 내가 해왔던, 예측 가능한 역할이 아닌 걸 하니까 굉장히 놀라워하고 나를 잘 아는 분들은 “보기에 시원하다”라고 했다.
지적이고 차분한 역할만 해왔기에 에디터 역시 ‘의외’였다. 기존 이미지를 생각해본다면 이성재가 맡은 로맨티스트 ‘태오’ 역할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아니다. ‘하얀거탑’으로 만나 인연을 맞게 된 안판석 감독과 어느 날 맥주 한잔을 하다가 ‘아내의 자격’의 대본을 보여주면서 한상진을 제안하더라. 난 읽는 순간 한상진이 정말 하고 싶었다.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인물에 대해서 감독님이 설명만 해주는데도 펄떡펄떡 뛰는 거 같더라.
맡은 역할에 너무 충실하다 보니 실제 성격이 의심되기도 한다(웃음) 전혀 다르다. 난 의외로 되게 소심하다. 말을 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하고 되도록 말을 고르는 편이다. 지금 맡은 한상진은 뇌와 입이 굉장히 가까운 사람이다. 항상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니까’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이번 역할을 맡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런 사람들은 스트레스 안 받고 참 오래 살겠다’라고. 내 모습하고는 많이 달라서 그런지 대리 만족도 느낀다(웃음).
아내에게 욕은 기본, 손찌검도 하려 했다. 한밤중에 처제 집을 급습해 불륜 현장을 잡으려고도 했다. 말 그대로 막 나간다. 연기하면서도 이건 좀 심하다 싶지 않았나 배역을 자기한테 끌어오는 배우가 있고, 자기가 배역에게 가는 배우가 있다. 난 후자이고 싶고, 연기를 해오며 선배들에게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얼마 전에 내가 참 좋아하는 배우 강신일 형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들이 연습할 때 흔히 하는 말이 ‘나는 이 장면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와닿지가 않아서 연기가 잘 안 된다’라고. 근데 그건 강신일이 못 가는 것이고, 장현성이 못 가는 것이지, 그 역할이라면 할 수 있다”라고. 그 말을 듣고 완전히 정리가 됐다. 이 남자, 완전 ‘양아치’ 짓 맞다. 이런 행동을 나라면 못 하지만, 한상진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사실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다. 애 하나 잘 키워보려고 부자 동네로 이사까지 했는데, 아내가 바람나고, 평범한 가장이 겪기엔 너무 엄청난 일이기도 하다
불쌍한 남자다. 장담하건데, 만약 남자가 100명이 있다면 그중에 한 70~80명은 한상진 같을 것이다. 이 남자도 아내의 불륜이라는 사건 속에 휘말리게 되면서 그 안에 잠자고 있던 비열함이나 공격성이 튀어나온 것뿐이지,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그냥 무난하고 쿨한 40대 가장이었을 것이다.
김희애와 호흡은 어떤가? 예전에 ‘부모님 전상서’에선 꼬박꼬박 높임말까지 하던 착한 남동생이었다 이번엔 존칭은 고사하고 매일 ‘야’ ‘너’라고 소리를 지른다. 솔직히 김희애의 얼굴을 보면서 욕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웃음). 연기 호흡은 정말 좋다. 김희애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알고 있고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에 참 편안하다. 배우끼리의 호흡이란 것은 결국 믿음인 것 같다. 연기를 할 때 김희애는 그냥 서래 그 자체라서 저절로 몰입하게 한다.
상상하기 싫은 질문 하나만 하자. 만약 상진과 같은 상황을 만난다면, 비슷하게 할 것인가 어휴, 난 절대로 못한다. 솔직히 한상진과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고 당연히 상상을 해봤다. 굉장히 놀라긴 하겠지만 난 점검부터 할 것 같다. 이유가 뭐였는지, 해결 가능성은 있는 건지, 굉장히 고통스럽지만 이런 생각부터 찬찬히 해볼 것 같다. 내가 평소에도 생각이 참 많은 편이라 그렇다.
곰곰이 생각하는 건, 배우를 하면서부터 생긴 버릇인가 대학 졸업하고 극단 학전에서 8년 정도 연기를 했다. 그때 내 인생의 스승인 연극 연출가 김민기 선생님을 만났는데 정말 많은 것들을 흡수했다. 선생님은 뭔가에 대해 설명을 할 때 눈앞에 있는 작은 연필로 대충 그려서 이야기를 하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정확히 의사 전달이 되곤 했다. 보통 우리는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굉장히 많은 걸 동원하지 않나. 말도 많아지고 행동도 과장되고. 선생님을 보면서 ‘말을 적게 하면서도 정확한 표현을 하는 게 참 아름답다’라는 걸 매번 느꼈다. 닮고 싶은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도 이런 성격이 된 듯하다.
그는 ‘아내의 자격’의 대본이 매우 정교하다며 정성주 작가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영어를 섞어 쓰거나 어순을 달리해서 유식한 척을 하려는 한상진의 캐릭터를 잘 표현하고 있단다.
낮에는 생계를 위해, 밤에는 꿈을 위해 살다
어린 시절 단 한 번도 배우의 꿈을 꿔본 적이 없던 장현성은 대학 원서를 쓸 무렵 불현듯 연극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 서울예대에 입학했다. 장진, 장항준, 정웅인 등과 함께 넘치는 끼로 캠퍼스를 주름잡던 ‘전설의 89학번’이 되었고, 연기파 배우들의 산실이라 불렸던 극단 학전에서 프로로 활약했다. 당시 연극배우가 되고 싶던 이들에겐 엘리트 코스나 다름없는 길을 걸어왔지만, 연극쟁이 시절 그의 머릿속엔 ‘내일 뭘 먹을까?’라는 고민으로 가득했다.
언제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나? 어린 시절부터? 전혀. 원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예전 문창과를 가려고 학교 구경을 갔다. 엄청 추운 겨울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극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정말 멋있더라. 몸으로 시를 쓰는 사람들 같았다. 어쩌면 저게 진짜 ‘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로를 바꿨다. 연기 전공은 실기 시험을 봐야 하는데 준비한 게 없어서 연출 전공으로 입학했다. 그때 연극과에 가겠다고 하니 아버지가 호적에서 파겠다고 하시면서 엄청 반대했다. 내가 너무 확고하니까 몇 년이 지나서 실은 자신도 젊었을 때 극단에서 6개월 정도 연극배우를 했다고 고백 하시더라. 먹고살기 힘들어서 결국 관뒀다면서 배고픈 직업이라 반대했다고 하셨다.
대학 동기인 장항준 감독과 특히 친하다고 들었다. 두 사람 언뜻 보면 매칭이 잘 안 되는데, 뭐가 그렇게 통했나(웃음) 놀랍게도 제일 친한 친구다(웃음). 더 놀라운 건 난 연출 전공이고 항준이는 연기 전공이었다는 것이다. 둘 다 연극과보다는 문창과 친구들하고 더 친했다. 매일 문창과 동아리 방에 가서 대자보 쓰고 막걸리 마시면서 ‘동지!’ 이랬다. 그땐 어렸으니까. 대학 졸업하고 난 학전에서 연극하고 항준이는 어렵게 시나리오 작가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때 둘이서 사회를 향한 울분을 많이 나눴다. 항준이와 김은희 작가의 신혼집이 서울 방화동이었는데, 난 삼송리 쪽에 살아서 그 집에 가서 술도 참 많이 마셨다. 나야 참 좋았다. 술, 안주, 잠 모두 공짜였으니까 (웃음). 아마 지들도 좋았을 것이다. 거기서 작품이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밤새 참 많이 나눴다.
학전에 가게 된 건 어떤 계기가 있었나 운이 좋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박광정 형이랑 친했는데 그 형이 김민기 선생님에게 연출을 배우겠다고 백상연기대상에서 신인 연출상까지 받아놓고선 학전에 조연출로 가게 됐다. 그때 극단 오디션이 있으니 보러 오라고 해서 합격하게 됐다. 나한텐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지금도 학전의 특별한 날엔 꼭 가려고 한다.
배고픈 연극쟁이였나 학전의 배우들은 놀라울 정도로 고소득자였다. 김민기 선생님이 대단한 게 20대 중후반의 어린 녀석들에게 다 계약서를 쓰게 했다. 일단 최소한 30만원을 주고, 수입의 일정 비율을 러닝 개런티로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다들 엄격한 학전의 오디션을 통과했으니 이 정도의 자격은 있다는 의미였다. 내가 있을 당시에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대박 나면서 관객들로 넘쳐났다. ‘앞으로 4주 후 목요일까지 매진입니다’ 라고 써 붙일 정도였으니까. 당시에 김민기 대표의 월급보다 우리가 훨씬 더 많이 받았다. 한 달에 300만원이 넘게 받곤 했으니까. 나중에 창작 뮤지컬을 할 때는 가난하게 지낸 적도 많았다.
영화나 드라마 쪽으로는 왜 진출하게 된 건가 IMF 때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집이 말 그대로 쫄딱 망했다.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부모님은 도망가고, 나한테 남은 거라곤 라면 상자 3개에 담긴 옷, 칫솔, 안경 그런 것뿐이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점심에 뭐 먹을지 걱정했을 정도니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아버지가 팔다 남긴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제일 작고 비싼 전자수첩을 들고 나가 종로나 인사동에서 팔러 다녔는데 공장이 망해서 만원만 받겠다고 해도 다들 믿지 않고 10명에 9명은 ‘에이 안 사, 저리 가’라면서 쫓아냈다. 아침부터 나와서 빵 하나만 먹고 오후 2시까지 팔다가 대학로로 와서 무대에 오를 준비를 했다.
당시에 구민 생활관에서 굉장히 저렴한 돈을 내고 운동을 할 수 있었는데 유오성, 설경구, 안내상, 황정민, 이문식까지 전부 거기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웃음). 딱히 할 일도 없고 연극 스케줄도 다들 비슷하니까 그런 것이었다. 그러다 공연을 하고 지쳐서 집에 가 쓰러져 자는 게 일과였다. 그런 생활을 하던 중에 영화 ‘나비’의 김현성 감독이 연극 무대에서 우연히 나를 보고 영화 출연을 제안했다. 얼마를 주느냐고 물었더니 연극이랑 단위 하나가 다르더라. 이걸 하면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하겠다고 한 게 오늘까지 왔다.
“친한 친구들은 매번 내가 반듯하고 정적인 연기를 하는 걸 보고 ‘저 자식, 저 가면을 벗겨야 하는데!’ 그런다(웃음)”
“나는 마음은 쓸쓸하지만 남들 앞에선 견고해 보이기를 원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쓰는 것도 좋아하고, 그런 남자를 연기해보고 싶기도 하다. 영화 ‘오직 그대만’의 시나리오도 참 오랫동안 썼는데, 이상하게 그런 류의 쓸쓸함이 참 끌린다.”(소지섭, 한효주 주연으로 지난해 부산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됐던 ‘오직 그대만’의 원작자는 장현성이다. 절친한 영화감독 송일곤이 그의 시나리오에 반해 영화화했다)
예술가와 생활인 사이의 균형 맞추기
드라마 ‘아내의 자격’을 마무리할 즈음, 장현성은 5월 4일부터 서울과 지방 공연을 앞둔 연극 ‘노이즈오프’의 연습을 병행하고 있었다. 장항준의 아내로 그와도 절친한 김은희 작가가 쓰는 드라마 ‘유령’에서는 소지섭의 상관인 유능한 수사국 국장 전재욱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배우를 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그는, 지나친 상업성에 물들지 않기 위해 ‘아티스트’ 정신으로 똘똘 뭉친 친구들과 어울리고 연극, 뮤지컬,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밸런스를 맞추고 있었다.
오늘 보니까 굉장히 소탈한 성격이다 친한 친구들은 매번 내가 반듯하고 정적인 연기를 하는 걸 보고 ‘저 자식, 저 가면을 벗겨야 하는데!’ 그런다(웃음). 친한 친구, 선후배들이랑 만나서 술 마시는 것을 참 좋아한다.
누구랑 친한가 일단 항준이(웃음). ‘완득이’에 출연했던 (김)윤석이 형도 친하다. 강산에 형님은 같은 동네라서 자주 만난다.
가수 강산에씨와 친하다니 의외의 인맥이다 (윤)도현이가 예전에 제대하고 나서 학전에서 ‘개똥이’라는 뮤지컬을 같이 했는데 그때 친해졌다. 당시에 파주에 살던 도현이가 일산에 있던 산에 형의 비닐하우스에서 많이 놀던 때가 있었는데, 그 옆 막걸리 집에선 김C가 서빙을 했다(웃음). 거기서 매일 막걸리 마시면서 놀고, 내가 연극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보고 싶어 하는 비디오도 빌려다주고, 그러면서 다 친해졌다. 다들 비리비리할 때였다(웃음).
강산에와는 어떤 점이 통하나 일단 난 그 형 음악이 정말 좋다. 가수나 배우도 마찬가지지만, 다들 관객이나 청중을 현혹시키기 위해서 장치를 쓰지 않나? 더 자극적인 음악을 만들거나, 시청률을 위해서 더 과장된 연기를 한다거나. 근데 산에 형은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태도가 참 존경스럽다.
‘놀러와’에서 장항준 감독이 ‘장현성은 돈이 되면 다 출연한다’라고 했다. 반론할 기회를 주고 싶다(웃음). 작품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자기는 안 그러나(웃음)? 사실 배우로서 자기 식구를 건사하고 한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힘들다. 내가 어마어마한 톱스타는 아니지만 하고 싶었던 연기를 하면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엔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이나 배역에 어느 정도는 욕심을 낼 줄 알아야 한다. 예술가로서의 장현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들 바보, 가족 안에서 안정을 찾다
결혼은 꿈도 못 꿀 정도로 가난한 연극쟁이였던 그가 어느새 결혼 11년 차, 두 아들의 아빠가 되었다. 큰아들이 ‘되고 싶은 사람’을 쓰라는 학교 숙제에 ‘아빠’라고 썼다며 한껏 행복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를 보니 영락없는 ‘아들 바보’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와 아빠의 끼를 물려받았나 확실히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남자 형제가 있으면 둘째가 딸처럼 살갑다 하던데 우리 집도 둘째가 애교도 많고 끼가 더 있는 것 같다. 작은아들 준서(6)는 어려서부터 외할아버지(양택조)랑 노래도 자주 부르곤 한다. 큰아들 준우(10)는 굉장히 솔직하고 독창적이다. 나랑 첫째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개는? 무지개!’ 이러면서 퀴즈를 내는 걸 좋아한다. 얼마 전에 준우가 ‘어떤 때는 로봇도 됐다가, 공룡도 됐다가, 아빠 얼굴도 되는 것은? 정답은 구름이에요’라고 하더라. 그럴 때 보면 참 창의력이 좋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아이들이 대를 이어서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면 밀어주고 싶나 준우의 꿈이 배우이긴 한데, 사실 가급적이면 말리고 싶다. 부모 마음은 다 똑같지 않나? 잘 되기도 너무 힘들고 경쟁도 치열하지 않나. 성공하지 못했을 땐 너무도 고통스럽고 상대적 박탈감도 심하니까. 그래도 본인이 정말 하고 싶다고 하면 나도 우리 아버지처럼 끝까진 말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떤 아이로 컸으면 좋겠나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아내가 막내의 유치원 숙제라고 하면서 도와달라고 하더라. 아이들 교육 방침을 써 오라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소신과 배려’로 하기로 결정했다. 아침 식사하면서 그날 정했다(웃음). 소신 있게 살고, 남을 배려하면 좋겠다.
혹시 딸을 갖고 싶진 않나 정말 갖고 싶다. 나는 세상을 두 가지로 나눠서 보는 습관이 있다. 한창 연극을 할 땐, 세상엔 연기를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먹고살기 힘들 때는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고, 결혼을 하고 보니 자기 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근데 지금은 ‘딸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다. 난 정말 갖고 싶은데, 아내는 처음부터 다시 육아를 시작할 엄두가 안 나는 것 같더라. 이제 좀 편해지고 자기 생활도 즐기면서 사는데, 나 좋으라고 한 사람의 인생을 휘저을 수는 없는 거니까.
아내와는 서울예대의 선후배로 만나서 결혼에 골인했다. 아내가 연기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안 하나 결혼을 하고 처음에는 (박)광정이 형이 하는 극단 파크에서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내 아내도 장항준, 김은희 부부와 친한데 자기들이 하는 드라마에 작은 배역이라도 출연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어봐도 싫다고 하더라.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결혼 11년 차다. 아내와는 어떤 점이 잘 맞나 우리 부부는 대화를 참 많이 한다. 같이 새벽까지 맥주도 자주 마신다. ‘아내의 자격’을 찍으면서 ‘전날 아내랑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다’라고 하니까 동료 배우들이 깜짝 놀라더라. 아내랑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하느냐고. 서로 브레히트의 희곡이나 ‘세일즈맨의 죽음’처럼 고전 작품에 대해 말할 때 가장 오래 이야기하는 편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작품이나 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한다. 11년이나 같이 살다 보니 이젠 동지애가 생긴 것 같다. 내가 결혼할 때 집에 빚도 많고 가난한 연극배우라서 장인어른이 반대를 하기도 했는데, 그 시간들을 잘 헤쳐온 것 같다.
가족으로서가 아니라 선배 연기자로서 양택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마흔세 살인데 40대까지 뛰어온 것만으로도 이미 굉장히 많은 것들을 해온 기분이 들어서 친구들끼리도 ‘우리 참 수고했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장인어른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무대에 서지 않나. 그 나이가 될 때까지 현역으로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존경스럽다.
장인어른이 연기나 활동에 대해 조언을 해주나 공연이 있으면 서로 보러 가고, 드라마를 챙겨 보긴 하지만 만나서 그런 이야기는 잘 안 나눈다. 오히려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워낙에 애들을 좋아하셔서 손자들 이야기만 하기에도 바쁘다. 가족끼리는 그런 게 훨씬 더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기획 / 김민주 사진 / 하지영(studio lamp) 스타일리스트 / 홍승하 메이크업 / 정샘물 인스피레이션 촬영협조 / 장현성
첫댓글 혜령님! 올려주셔서 감사해용 ^^잘 봤습니다.
고생하셨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