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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사회에 처음 진출하는 대학생들은 불운한 세대이다. 이들은 '좋은 직장'을 목표로 캠퍼스 낭만을 뒤로한 채, 학점과 토익 점수, 인턴 등 '스펙'(학점이나 외국어성적·자격증 등 취업에 유리한 조건) 관리로 4년을 바쁘게 보냈다. 졸업을 앞둔 이들은 노력의 대가를 기대하며 여기저기 입사 지원서를 제출해 보지만 결과는 참담할 뿐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여파로 이미 국내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버렸기 때문이다.
국내 경제연구소들의 내년 실업률 예상치는 평균 3.5% 수준이다. 그러나 비경제활동 인구를 포함한 체감실업률은 이보다 휠씬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새해 경제운용의 초점을 일자리 창출에 맞추고 사회간접자본 투자 증대, 일자리 나누기 등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원책이 시장의 대세를 역전시키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취업에 실패한 대학 졸업생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다음 세 가지가 있어 보인다.
첫째, 대학 졸업을 유예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해 시장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일단 시간을 벌어 보는 방법이 있다. 이는 보통 '신중(愼重)형' 학생이 택하는 대안으로 백수로 분류되는 오명을 피할 수 있고 '스펙'을 보다 매력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둘째, 기대수준에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일단 인턴직이나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후 정규직으로의 이직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방법이 있다. 이 대안은 값진 사회 경험과 함께 최저 생활비라도 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생계형' 졸업생들이 선호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창업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대안이 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직장이 없다면 본인이 직접 직장을 만드는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극소수의 '도전형' 학생만이 선택하는 방법이지만, 내가 가장 권하고 싶은 길이다.
창업에는 실패 위험이 따르고, 사회경험이 일천한 20대의 창업은 실패 위험이 더욱 높다. 하지만 20대 창업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장점도 있다.
첫째, 한 회사를 창업하는 데는 취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시간과 정열이 필요한데 20대는 자녀 교육과 같은 책임이 없어 자유시간이 많고 생애 최상의 체력을 갖고 있어 창업하기에 최적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창업에는 항상 실패의 위험이 뒤따르지만, 20대에게는 이 실패의 경험이 약이 될 수 있다. 20대는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
셋째, 창업에 성공하려면 창의성과 '무모한' 도전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존 사회질서에 물들지 않은 20대야말로 창업에 적절한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델컴퓨터의 마이클 델, 아마존의 제프리 베조스,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등 세계 기업 역사를 바꿔놓은 혁신적 창업을 한 사람은 모두 사업 경험이 일천한 청년이었다.
혁신이론가들은 풍부한 경험이 오히려 혁신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무지(無知)가 혁신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이것저것 재다 일생일대의 사업 기회를 놓치기 쉽다. 반면 경험이 부족한 20대 창업자는 기회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업 실패 확률은 높지만 중대한 사업기회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우를 범하진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선 기업가정신이 사라졌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과도한 기업 규제 때문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평등을 우선하는 우리 국민정서 때문이라고도 한다. 나는 우리 사회의 기업가정신 회복을 위해 대기업들에 한 가지 사항을 부탁하고 싶다.
사원을 채용할 때 계량화된 '스펙'에만 의존하지 말고 '도전정신'과 같은 사업에의 열정에 보다 비중을 둬 달라는 것이다. 창업 실패 경험을 한 지원자가 학점이나 토익 점수 몇 점 더 획득한 지원자보다 휠씬 훌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이렇게 채용 방침을 바꿔 준다면, 대학생들은 '스펙' 관리에 더 이상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고, 대학가는 창업 열기로 뜨거워질 것이다. 그리고 20대 창업의 열기야말로 요즘의 경제위기와 청년실업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다.
김병도 서울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