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관리위원회가 이번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목표 투표율이 35 %라고 하며
투표참가확인증이 있으면 몇가지 할인 혜택을 준다고 하였다
영화, 축구시합, 탄산온천 입장시 대략 3, 4천원 정도 할인이 되며, 순전히 해당 민간단체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란다
국회의원이 광역시장에 출마하여 선거가 있게 되었다
이런 경우 보궐선거 비용을 중도 사퇴한 전 국회의원이 부담하게 하여야 할 것같다
아니면, 아예 현직 국회의원은 지자체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선거법 위반으로 선출직 공무원이 물러나고 새롭게 보궐선거를 할 경우 그 비용을
원인제공자인 그 물러난 사람에게 부과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않은가
선거일이 휴무가 아닌 등 여러 이유로 투표율이 매우 낮아서 대표성도 의문시 되어 선거의 의미가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제 한문 수업에서 주자학의 의미에 대해서 훈장이 일장 연설을.........
조선의 소위 그 주자학인지 성리학인지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자기는 무조건 재미가 있어서 주자를 좋아하고,
심취해 있다고 하며 특히 소리내어 읽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지난주 경주에서 전국 유교 경전 암송대회가 있었고 , 자기의 울산 향교 학생을 참가 시켰는데
차석을 하여 흐뭇했다고 한다, 그 학생은 나이 70 의 할머니인데 시장에서 김치 장사를 하며
오전 향교 수업에 거의 매일 출석한다고 한다. 병로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기도 하고.......
암송대회 참석자 분포는 청소년, 남여 노소 다양하고 외어서 소리내어 읽어야 하는 200 자 정도의 글을
다 외우지 못하여 중간에 보고 읽는 사람도 있고, 프로같은 우수한 사람도 있는 등 다양하다고 하며
내년에는 우리들 중에도 누가 참가하였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주자학에 대한 비판적 평가의 예를 드는 중에
" 조선 말기에 양식이 없어서 일본에게 먹혔다 " 하는 말이 좀 다르게 들렸다
연이어 생각나는 것이, 강화도 조약을 맺을 수 밖에 없는 이유로 박규수 대감이나 신헌 장군이 내세운 것이
나라가 일본에 비해 힘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임진왜란 때 그렇게 실감하고도 또 똑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일본의 동향, 아니 서양의 도래에 둔감했던 것이 이유일 것인데
아편전쟁의 결과를 보고 일본은 대오 각성하고, 중국이나 우리는 그러지 않았던 것일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고 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다
일본의 경우, 하급무사들이 자기들보다 더 능력 있어 보이지 않는 상급무사들의 녹봉이 훨씬 많은 것에
의문을 품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한다
중앙집권제가 아닌 영주제 하의 하급 무사들이 자기 다이묘의 뜻에 반하여 도꾸가와 막부를 타도하고자 하였던 것이라던가
지방정부 차원에서 영국 등 서양 나라들과 전쟁을 하기도 한 것 등이 그 예이다
저녁에 " 울산 불교 문화 유산 " 이라는 제목의 강의을 들었다
신라에 불교가 유입된 과정이 고구려를 통한 북방유입설이 잘 알려진 것이지만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워낙 강성하였기에 신라의 외항인 울산을 통한 남방유입설도 설득력이 있다고 한다
인도의 옛 이름인 서축과 대비되는 울산의 동축사라는 이름이 예사롭지 않고
울산의 태화사지 석탑이 7세기 작품으로 보물급이라고 주장한다
변신사리,,,부처님 진신사리와 구분되는 말로 석가모니의 사리가 아닌 돌이나, 금속 등에 고명한 스님이 부처님의 사리로
세례(?)한 것을 변신사리라고 한다고 한다, 맞게 들었는지 모르겠다
한국에 2000 여개의 사찰이 사리를 모시고 있는데. 당연한 것 아닌가......평소의 의문이 풀렸다
석남사 대웅전에 있던 탱화 두점이 17 년 전에 도둑 맞았는데 한점은 그 몇년 후에 통도사 입구에서 발견되어 반납받았으나
나머지 한점은 대략 어디 있는지 짐작은 가나 확증이 없어서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공돌품 업계(?)의 묘한 상황을 느끼게 한다
우리 집안에서도 몇십년 전에 잃어버린 것을 인사동 가게에서 다른 인척이 발견하여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적이 있다고 들었다
조선 후기에는 사찰에 종이 제작 등의 부역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없어진 어떤 절 두개가 그 무거운 부역을 견디지 못하고
자진 폐사 하였으며, 그 중 하나는 의문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한다,
통도사에는 그 부역을 면제해준 관찰사의 공덕비가 지금도 있다고 한다 2014년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