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게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날이다.
먼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1991년 음력 8월 7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바로 오늘이 해년 마다 돌아오는 음력 8월 7일 즉, 아버지의 기일인 것이다.
두 번째는 1999년 12월 18일 처음 만난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내게 있어 너무나 소중한 사람인 여자친구와 딱 천 일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마지막 세 번째, 오늘은 위의 두 가지 기념일을 모두 학교의 동아리 방에서 혼자 보내게 만든 한총련의 대의원 대회가 있는 날이며, 이적단체라는 규정을 처음으로 받은 5기 한총련 투쟁국장을 지냈던 고 김준배 선배를 추모하기 위한 열사추모문화제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내 신분을 밝히면 난 2001년에 창원대 총학생회 부회장을 지냈고 9기 한국대학 총학생회 연합의 대의원을 지낸바 있다. 즉, 수배자라는 이야기이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흔히 한총련은 공안 당국이 규정하는 이적단체이다. 다시말해 국가보안법 상의 '적'인 북을 이롭게 하는 조직인 것이다. 그런 조직의 대의원을 지냈기에 나는 2년째 경찰에게 쫓기고 있는 A급 수배자인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너무 억울하다. 한총련이 과연 북을 얼마나 이롭게 한 것일까? 아니, 9기 한총련 대의원인 나는 북을 얼마나 이롭게 하였는가?
한총련이 북을 이롭게 하였는가를 따지기 전에 북이 진정 남의 '적'인가를 따져야 할 터인데 이는 너무나 뻔한 이야기이다. 세상에 나를 죽이려고 하는 '적'과 같이 공을 차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우리 집에 초청을 해서 말이다.
얼마 전 남북 축구가 진행되었을 때 나는 전과는 다른 아주 큰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바로 예전의 남한 북한하던 호칭이 지금은 남측 북측으로 바뀌었다는 것과 경기장 곳곳에서 단일기를 흔들며 남북을 함께 응원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또한 얼마 뒤 열리는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북을 응원하기 위한 응원단을 모집한다고 한다. 아니, 적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 것은 이미 우리에겐, 현실에선 북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왜 난 아버지의 제삿상에 절을 올릴 수가 없고, 사랑하는 애인과의 기념일에도 그녀를 만날 수 없단 말인가?
작년 수배를 시작으로 나는 명절이 너무나 싫다. 특히, 추석은 아버지 기일과 같이 오기에 더욱더 싫다. 4녀 1남의 비교적 적은 수는 아니지만 아들이 나뿐이라는 사실에 언제나 명절과 아버지 기일, 어머니 생신이 돌아올 때면 내 스스로가 참 많이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난 정당하기에, 난 잘못이 없기에, 분명 북은 '적'이 아니고, 난 '적'을 이롭게 하지 않았기에 또한 국가보안법과 같은 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탄압하고, 민족을 '적'이라 규정하며 민족의 통일의 길을 막고 있는 법이 자유민주주의의 나라 자랑스런 월드컵 4강 신화의 나라 대한민국에 존재한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그 법으로 인해 내가 수의를 입고 법정에 죄인이 되어 서야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싫기에 흐르는 눈물을 어금니를 깨물려 닦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무나 빈약한 억지 주장으로 한국의 학생운동을 탄압하며 자신의 영리만을 취하려는 사람들아 당신의 아들·딸은 너무나 소중해서 억만금을 주고 튼튼한 아들 놈 군대에도 보내지 않고 환자라 속일 때에 우리 어머닌 하나밖에 없는 아들 놈 군에 보내며 이제 건강한 청년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안타까운 마음 애써 미소지으며 자랑스러워 하셨고, 너희들의 아들·딸의 미래가 염려되어 미국의 국적을 아들·딸들에게 선물할 때에 우리 어머닌 철부지 아들놈 내 조국의 미래가 걱정된다며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수배자가 되어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원망하며 벙어리 냉가슴으로 소주잔을 기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너희들의 영리를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지 마라.
'이제 한총련을 자유케 하자'라는 구호를 들고 사회 각계 각층에서 한총련의 합법화를 위한 범 시민대책위까지 구성이 되어 활동 중이며, 대통령 직속 기관인 의문사 진상 규명위원회에서는 고 김준배 선배는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숨졌으며, 한총련의 이정규정은 부당한 것이기에 철회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공안당국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전국 200여개 대학의 총학생회가 가입되어 있는 한총련이 이적단체라 하면 전국의 대부분 대학생들은 이적단체 구성원인 것이고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의 대부분이 이적단체 구성원이라 한다면 이 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될 것인가? 결과적으로 이 나라가 망하던지 아니면 그렇게 규정하고 있는 이 나라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오늘 한총련은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전국의 대학생들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한 대의원대회를 갖는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몇 명의 대의원들이 연행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고, 또 마치고 각자의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몇 명의 대의원들이 연행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학교로 돌아가 학생회방 한켠에서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을 가족과 함께가 아닌 혼자서 보내야하는 한총련 대의원들, 과연 그들의 잘 못이 무엇이란 말인가?
한총련 대의원.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한총련이 정말 이적단체라면 누구나 다 인정할 수 있는 합당한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벌해야 할 것이다.
왜 한총련이 이적단체일 수밖에 없는지를 국가보안법이 철폐 또는 개정되기를 바라는 80%가 넘는 전국민들에게 이해시키고, 주한미군이 이 땅에서 떠나기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구시대적 사고로 더 이상 한총련을 억압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한총련을 자유케하자.
조금 더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보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 젊음의 그 패기와 열정을 바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