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시간의 만남

[德田]

첫 시간의 만남

                                                                                                            글 德田 이응철

-선생님! 좋으시겠어요?

-네? 무엇이 ㅎㅎ

-아이들이 선생님을 무척 기다린대요!

올해도 어김없이 여러 형편상 부모님이 직장 일로 텅 빈 집을 지키는 아이들을 위해 춘천시에서 지역 후원자님들의 협조로 방과 후 아동 지도를 실시한다. 지역 곳곳에 아동센터를 두고 공익요원도 배치한다. 하교해 집에 혼자 우두커니 있지않고, 방과 후 이곳에서 저녁을 제공하고 독서도 하고 외국어도 가르치며 정서 안정을 위해 동시, 그림그리기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돌봄센터-.

  지난해부터 이런 훌륭한 제도에 참가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매주 금요일 오후 네 시부터 한길 아동센터는 3D 펜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의 창의력을 한껏 키워주는데 예능지도에  올해도 참여하게 되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제 아동센터가 설레는 마음으로 예능 문을 활짝 열었다.

문을 열자 15명의 아이는 일제히 소리쳤다. 다른 방에 중학생 몇 명이 있다.

해맑은 얼굴 절반 이상이 그립던 녀석들이다. 한 학년씩 올라간 녀석들이 모두 한 뼘씩 큰 느낌이었다.

-그래, 잘들 있었지? 선생님도 여러분 보고 싶었어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갑자기 노랫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무야! 나무야! 서서 자는 나무야! 나무야 나무야 다리 아프지,

나무야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

지난해에 미술 그릴 때 가르쳐준 동요를 두 번씩이나 부른다.

여기저기 채송화처럼 환하게 피어 반긴다.

지난해에 아버지가 사업하시는데 빚이 많다고 뜬금없이 그림을 그리며 고백하던 ㅊ도 볼이 통통해 반긴다. 다행히 다 정리하고 엄마가 하던 식당을 함께 한다고 서둘러 위치까지 일러준다. 다행이다. 지난해 울먹이며 어쩌면 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말을 해서 내 마음을 덜컹 떨어뜨리기도 했던 녀석이다.

뛰어난 두 형제도 반긴다.

오늘 그림 주제는 나의 꿈이었다.

참고화를 보여주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나는 어른이 되어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물어보았다. 한 번에 답하는 어린이는 마음속에 이미 결정된 녀석들이고, 한참 후에 답한 아이들은 오늘 결정한 게 분명했다.

   형 재윤이는 과학자가 되겠다고 했다. 지난해에 화실까지 다녔는데 5학년이 되면서 우주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3학년 동생은 재하는 법관이 꿈이란다. 법복을 입고 날카로운 눈으로 옳고 그름을 밝히는 판사가 되겠다고 그린다. 대단한 모습이었다. 그 옆에는 피고와 원고, 변호사들이 앉아있는 그림을 설명한다. 형보다 언제나 창의력이 풍부하여 지난해도 여러번 수상을 했다.

 주위가 어수선한 태준이도 4학년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지난해에는 얼마나 장난을 쳐 야단을 맞기도 했다. 오늘은 어떤가? 제목을 설명하자 이내 스케치하는 게 아닌가! 놀랐다. 꿈은 수의사란다. 수술 모자를 쓰고 양손에 수술기구를 들고 쥐, 햄스터, 원숭이를 치료하는 그림을 보여준다.

어찌나 귀여운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담당 센터장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으로 달라졌다고 알려 준다. 어수선했던 녀석들을 어쩜 이렇게 바르게 가르쳤을까? 교육의 힘이다.

지난해 인사 잘하던 모범생 2학년 규호가 반가워한다. 지난 1학년 때도 형들보다 그림이 월등했었다. 규호의 꿈은 무엇인가! 춘천이 낳은 유명한 축구선수 손흥민이 되고 싶단다. 축구선수, 등 번호 7번을 달고 우뚝 선 손흥민 선수와 좋아하는 골키퍼 21번 조현우를 그 옆에 그리고 있다. 한국 태극기를 달고 주장 완장을 찬 손흥민 선수와 붉은 악마를 도화지가 꽉 찰 정도로 그려 신나게 설명한다. 고사리 같은 어린 손과 악수하고 지난해처럼 활짝 웃는 탐스러운 꽃들이 아닐 수 없다.

    3학년 현주는 화가가 꿈이다. 미술가들이 쓰는 모자를 쓰고 왼손엔 둥근 빠레트와 오른손엔 붓을 쥐고 이젤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림이다.  화가를 선택한 4학년 하은이 역시 부쩍 커진 모습이다. 오빠하고 함께 아동센터에 오더니, 오빠는 이제 중학생이라 못 온다고 한다. 엄마 사랑을 혼자 독차지한다고 시샘까지 하던 하은이 해맑은 모습은 여전했다.

   마지막으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오른 녀석이 들이닥쳤다. 방금 태권도에서 끝나고 왔다며 가방에 킥복싱과 복싱헬멧과 비슷한 태권도 모자를 벗어들고 인사를 한다. 반가움이 얼굴에 활짝 펴있다. 화지를 받자마자 태권 대련 모습을 멋지게 스케치한다.

쉬는 시간이었다.

찬서가 어느새 등 뒤로 와서 귓바퀴 뒤에 숨어있는 사마귀를 보며 깔깔댄다. 귀엽다. 작년에도 사마귀를 만지곤 했던 녀석이다. 여전히 하은이는 다가와 반지를 조몰락조몰락한다. 재하는 와서 작년에 그림을 잘 그려 아빠가 자전거를 선물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즐겁다. 천사들 숲에 앉아있는 칠순 옹도 십 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전신이 스멀거린다. 기다리던 천사와 욕심으로 가득한 선생님의 만남이 아무리 불볕더위가 35도를 넘어도 넘보지는 못한다. 아동센터 안이 만남의 뜨거운 열기로 넘쳤다.

완성된 작품을 모으고 나오려고 할 때였다.

ㅡ선생님 저녁 먹고 가세요

그 많은 애들 중, 배식받아 자리에 온 2학년 지민혁이가 소리친다.

아ㅡ! 얼마나 정이 넘치는 목소리인가! 그래 많이 먹으라고 다독이고 나왔다. 뿌듯하다.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한껏 느낀 녀석들과의 사랑이 거친 첫 날, 섬에 온 느낌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