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中寄人(설중기인)
허립(許岦:?~?)
자는 계진(季鎭). 그 외에 不詳
시월 산중에 눈이 펑펑 내리니
十月山中雪意豪 시월산중설의호
하루 종일 술항아리 식을까, 품에 안고 있네
擁罏終日㥘寒袍 옹로종일겁한포
평생 품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숲을 거닐고
平生壯志今蕭索 평생장지금소색
양 귀밑머리 해마다 흰 터럭만 늘어만 가네
雙鬢年來盡白毛 쌍빈년래진백모
*
은자(隱者)가 깊은 산중에 산다
시월이라, 하늘이 무거워진다.
산에는 나목들이 부끄러움도 잊은 채
눈을 맞아 새 옷을 입는다.
세상사 다 잊었건만
그래도 자기의 뜻을 알아주는 벗이 있어
눈 내린다는 핑계로 사람을 보내
기별을 넣는다
우리 집에 잘 익은 술이 있어
같이 한 잔 하면서
세상 시름을 의논하고 싶다고......
벗이 오기 전에
술이 식지 않게
핫옷에 품고 있는 은자의 마음이 그리운
오늘이다
눈이 많이 내린 탓일까,
보낸 노복도 벗도 오지 않고
눈 내린 숲을 거닐며
살아온 삶을 회상해 본다
장부의 꿈이 아무리 크고 높아도
세상에 알아주는 이가 없으니
그 또한 마음 아픈 일이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어쩌면 나에게 가장 큰 스승이 아닐까?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모든 게 사람 노릇 같다
누구를 위해
술 항아리 품고
기다려 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세상
참, 멋지게 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