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째로 빼앗아 먹기
내가 직장생활을 한 것이 벌써 40년 전이다. 연지 2년 6개월이 지난 회사에 취업하였고, 점차 성장하는 성취감도 동반 상승하였다. 내가 가보니 회사의 부지도 작고 사무실도 부족하였다.
입사할 당시 대략 35명 정도로 기억한다. 사무실에 20명 가량, 나머지는 생산 현장과 기타 일반직에서 근무했다. 중금속기계 공업단지에서 개척과 신규 아이템을 확충하는 것이 주요인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확실한 매출처가 지원하고 있어서 행복한 시작이었고, 미리 지급하는 선수금을 줄 정도의 신뢰로 이어 왔다. 나는 기계설계 분야에 목적을 두고 입사하였으나, 부지 구입과 건물 증축이 이어져서 나도 일정 부분을 참여하였다.
첫 증축공사 업체는 마산의 한효를 지명하고 시작하였다. 회사에서도 처음이고 건설사도 처음 만나는 회사여서 생소했다. 기업 생리와 건설 생리에 대한 거리감이 있어서 상호 부담감이 있었다. 그런데 어쨌든 원만한 해결이 되었으나, 얼마 뒤 한효는 없어졌다.
그러다 기존 회사보다 훨씬 큰 대규모 프로젝트를 위해 국내도급 순위가 내로라하는 부산의 신동양을 끌어들였다. 한창 기분 좋게 출발하였지만 건설사가 도중하차 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인근 마산의 광신을 대타로 심었다. 곧 그 후 광신도 없어졌다.
건물이 완공되자 상승 기회를 얻었고 승승장구를 했다. 그래서 더 확장이 필요하다며 증축에 들었다. 이번에는 창원의 견실한 자금주라는 백제를 찾아냈다. 조건 없이 하자 없이 끝났지만, 1년 이내에 백제도 사라졌다.
영호남의 가교로 생각하다 익산에 공장 신설을 거론하였다.
익산에 부지를 확보하고 신축공장 첫 삽을 떴다. 대륙토건사를 지명하고 무난히 넘겼다. 1년이 지나자 증축이 필요하여 대륙토건에게 기득권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완공 후 1년 후 2차 증축에 참여시키려고 보니까 사라졌다. 그래서 전주의 건실한 중견기업 거성을 지목하였다.
거성은 2차 증축을 완공한 후 사라졌다.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했던 나는 슬펐다. 왜 그럴까? 왜 이렇게 벌어질까? 의문에 의문이 번졌다.
그러다가 회사의 사옥이 생겼다. 즐겁고 기쁜 일이 벌어졌다. 수암에서 기공식을 마치고 전 직원에게 기념품을 지급할 정도의 규모로 컸다. 여수 화학단지에서 대규모 화재가 생기자 불연소 화학제와 불연 페인트 등 신형 규제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어려운 과제를 넘었다며 쉬다가, IMF를 맞았다.
전국적인 경영 환경에서 멈추면 죽는다는 올스톱에 부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나, 발주자의 자금 상황이 허용된다면 멈추지 말고 바로 재개하자고 건의하였다. 우여곡절이 있어도 완공하였다. 그러나 수암도 더 이상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사라졌다. 내가 보았던 슬픈 현실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숱한 어려움과 명철한 순간 판단이 넘어야 할 과제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때 다른 회사로 결정했더라면 좋았을까? 결정된 후라도 그때 솔로몬의 지혜로 넘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그때 왜 그런 회사를 결정하였을까? 라는 주제가 가장 큰 문제로 남고 있다. 기업의 수명은 30년이라는 책이 있다. 그러나 50년 100년도 넘은 회사도 있다. 그런데 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