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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김홍술 제공 |
사람의 죽음을 일컫는 단어가 참 많습니다. 변사, 돌연사, 객사, 동사, 아사, 열사, 사고사, 병사, 과로사…. ‘무연사’(無緣死)라 해서 찾아봤더니 ‘무연고자의 죽음’ 흔히 (설령 연고가 있어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고독사’란 뜻이더군요. 이야기를 하려니 가슴이 탁 막히네요. 26년째 노숙인 공동체에서 살다보니 당연 눈물로 보내는 날도 많았죠.
지난 10월 9일 부산역 광장에서 일곱 번째 ‘노숙인 합동 추모제’를 지내면서 136명의 고인 영정과 명판을 걸었습니다. 한 분 한 분 돌아가실 때 모습들이 떠올랐습니다. 무연사도 많았어요. 그러니까 부산역 광장은 물론 쪽방이나 여관 또는 후미진 곳에서 혼자 돌아가셨는데 아무도 몰랐다가 시신이 부패되면서 발견된 경우 말입니다.
노숙인 형제들의 무연사 이야기
꽤 오래 지난 이야깁니다. 2001년 무더웠던 여름날, 우리 공동체에서 나간 후 소식이 끊어진 B형제가 사망했다는 연락을 경찰로부터 받고 뛰어갔습니다. 부산 구포 고가교 철거를 준비하느라 설치한 가림막 안 온갖 쓰레기 더미 속에서, 형제는 먼지에 덮여 얼굴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부러져 사체의 조직이 부패되고 있었습니다. 아마 누군가의 신고에 경찰이 소지품을 보다 신분증의 주소지를 확인하고 연락을 했나 봅니다. 담요에 둘둘 말아 리어카에 싣고 집으로 모셔 닦이고 입히고 한쪽에 모셔 3일을 함께했던 기억이 납니다.
2005년 추웠던 겨울. K형제가 자신이 살던 영구임대주택 아파트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형제는 우리 부활의집 주방장으로 열심히 지내다가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로 수급자가 되었고 영구임대주택 입주자로 선정되어 독립했었습니다. 공동체의 생활 규칙과 통제를 불편해 했지만 그래도 많은 가족들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정들며 살았었죠. 그러다 아파트로 갈 때 얼마나 좋아하던지요. 마음껏 뒹굴며 잘 수 있는 자유와 내 집이 있다는 자랑스러움에 한껏 만용도 부렸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예배에도 자주 빠지곤 했죠. 1년 여 지난 어느 날 형제가 살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주민들의 악취 신고를 받았는데 의심이 된다면서요. 경찰을 대동하고 문을 뚫고 들어 가보니 이미 수십 병의 술병과 함께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었습니다.
한 분 더 소개하죠. Y형제입니다. 형제는 우리 공동체 예배에 출석하는 외부 교인의 지인이라며 왕래를 시작했습니다. 간간히 찾아올 때는 양손에 음식이나 간식을 잔뜩 사들고 왔습니다. 옷차림도 깨끗하고 부동산업을 한다며 명함을 들고 다녔는데, 나중 알고 보니 시내 유명 교회에도 드나들곤 했더군요. 형제는 간혹 제게 전화를 걸어와 통화를 애걸하였는데, 지금 수십억 원대의 물건이 성사되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큰 교통사고로 뇌를 다쳤다는 형제는 얼른 보기에 황당한 말과 이상한 태도가 있었으나 그냥 덤덤히 받아 넘겼습니다. 그렇게 수 년이 흘렀고 어느 날 또 경찰의 비보가 날아들었지요.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을 했다는데, 겨우 찾아간 형제의 거처는 4층 건물 한 귀퉁이의 두 평짜리 쪽방이었습니다. 이미 보름 정도 부패한 시신은 경찰이 옮겼으나 방에는 옷가지와 잡다한 세간살이가 널려 있었고, 고인이 누웠던 자리에 남은 분비물과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온갖 약봉지들과 한쪽에 모셔진 성모상과 십자가…. 형제는 고아였습니다.
노숙인 형제들과 함께하는, 고난주간의 노숙생활
오래된 제 이야기를 하려니 좀 그러네요. 2000년이 다가오자 새로운 천 년이라며 세상이 온통 요란했을 때, 저는 해맞이와 전혀 다른 별난 계획을 세웠습니다. 어두움의 심연과 죽음의 문 앞까지 찾아가 볼 결단을 하고 부활의집 형제들 몇 명과 함께 부산대학병원 해부학 실에 시신 기증식도 마친 후 무덤에 묻힐 구체적 실행 과정을 나눴습니다. 평소 장례를 맡아주시는 장의사와 형제들의 도움으로 부산 외곽 산속 한 곳에 자리 잡고 매장과 똑같이 관속에 들어가 묻혔습니다. 2박 3일간 42시간의 사투 끝에 마침내 2000년 1월 1일 오전 무덤에서 살아 돌아온 이야기는 여기서 풀 수가 없군요. 암튼 그 일을 계기로 새로운 각오와 결행이 이어졌습니다. 좀 더 노숙인 곁에 가까이 다가갈 요량으로 그 해부터 고난주간(부활절을 앞둔 한 주간)을 예년의 금식기도와 달리 노숙인들과 어울리며 노숙생활을 해보기로 한 겁니다.
그렇게 노숙인들과 해마다 고난주간이면 한 주간 밤낮 어울리고 부산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면서 구걸에 함께했습니다. 마음 맞는 노숙인 동료들끼리 삼삼오오 동행하는데 주로 교회의 ‘구제금’ 배급을 받으러 다니는 일이었죠. 주로 500원, 300원 동전을 주는데 간혹 1000원을 주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컵라면이나 커피 대접을 받기도 하죠. 어떤 교회는 예배를 드려야만 돈도 주고 밥도 줍니다. 심지어는 제가 아는 목사님을 맞닥뜨려 놀라는 일도 생겼죠.
그렇게 매일 5천~6천 원의 수입으로 노숙인들은 저녁 때 마음 맞는 동료들과 술과 안주를 사서 바닥에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며 하루살이 같은 메마른 삶을 위로받으며 보냅니다. 평소 부활의집 공동체에서 노숙인 형제들과 함께 사는 것과는 사뭇 다른 더 현장감 있고 리얼한 일체감이랄까요, 그런 마음이 들었죠. 어떨 때는 낯선 노숙인이 끼어들어 술이 거나해지면, 여러 노숙자들이 나더러 “목사님” 하고 부르는 게 못마땅한지 “너 이 새끼 진짜 목사 맞나?” 하며 멱살잡이도 하고, 말리는 노숙인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2002년 1월 어느 추운 날 부산역 광장에 소문난 ‘번개’라는 노숙인 형제가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져 돌아가시자, 부산역 주변에 늘 자리 잡고 지내던 가까운 노숙인 형제들이 불러서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번개 형제는 평소 내가 부산역 광장으로 나가면 “형님 목사님” 하고 부르며 인정 넘치는 언사로 내게 자기 잠자리도 양보했고, 구걸한 돈으로 뭔가를 사 줘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부산역 광장 바닥의 오물이 묻고 냄새나는 이불이지만 껴안고 자기도 했고, 콧물과 때와 피가 범벅이 된 부은 손으로 저를 꼭 잡고 안으며 엉엉 울기도 했죠. 20여 년을 굽신거리며 구걸한 것으로 술을 안 먹인 동료가 없을 정도였던 ‘번개’ 형제를 보낸 저는, 2년 후부터 부산역 광장에서 노숙인 합동추모제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번개 형제가 저를 재촉했던 게 분명합니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와 공동체 붕괴
오늘날 세계는 국가사회로 자리매김되었고, 국가사회는 정치체제나 경제체제를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피할 길 없이, 잘했든 못 했든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선택했죠. 1990년대 후반엔 세계화의 영향으로 밀리다시피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로 편입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이 노골적으로 기승부려도 재갈을 물릴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빈익빈 부익부’ 즉 경제 양극화 현상은 ‘사회복지’라는 장치로는 손댈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의 재벌 자본이 나라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데도 국가권력은 판을 고쳐 경제민주화를 하려들지 않고 오히려 자본과의 밀월 유착 관계에서 못 벗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가족공동체나 마을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전통적인 사회안전망은 유실되었고,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어 사회복지 전달체계 조직을 펴 보지만 알맹이 빠진 껍데기, 수박 겉핥기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시나브로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급격히 이동하는 사회구조에서 아이들,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하나같이 돈, 일자리, 스펙 쌓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해 쉽게 돈 많이 버는 직장을 찾고, 혼인이나 출산 등의 가정 책임을 기피하며, 자유롭게 ‘오늘을 즐기자’ 하며 살겠다는 겁니다. 생산과 협동에는 관심이 없고 소비와 먹고 즐기는 짜릿한 쾌감을 행복으로 여기며 삽니다.
이런 우리 사회 분위기가 마치 악마의 덫에 걸린 것 같고 마약에 취한 것 같지 않나요? 인간이기에 짐승과 달리 이성과 양심이 잘 작동하여 탐욕을 극복해야 할 터인데, 사회구조가 짐승의 생존 각축장이 되어 버렸으니 더욱 본능을 충동질하여 활성화시키고 있는 겁니다. 이런 사회일수록 윤리·철학·도덕·인문·예술 등이 천대받는 반면, 이기고 지는 게임이나 스포츠 그리고 외모·음식·건강·인기몰이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투기 등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요. 그래서 국가사회의 체제와 법제도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라 봅니다.
약자들에게 부채감 못 느끼는 사회
제가 사는 공동체에는 식구들이 급식하고 남은 잔반을 가져와서 집 뒷마당에 개를 몇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개들이 자라서 저들끼리 짝짓더니 여덟 마리나 되는 새끼를 낳더군요. 어미와 새끼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한 집에다가 밥을 넣어 주었죠. 젖 뗀 새끼들은 한 밥통에서 어미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에 따라 질서가 잡혀 어느 정도 골고루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새끼들이 좀 더 커서 어미와 분리해 여덟 마리를 따로 큰 울안에 모두 넣었더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 밥통에서 힘 있는 놈이 아무도 못 먹게 하고 제가 먼저 배불리 먹더니, 다음 힘 센 놈이 차례를 잇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결국 맨 마지막으로 처친 새끼는 늘 물리고 밟히고 깨갱거리며 밀려나 발육 상태가 배나 늦었습니다. 그래서 좀 힘들고 비용이 들었지만 각각 한 마리씩 분리해서 밥통을 넣어 주었더니, 처진 새끼들도 얼마 있지 않아 발육 상태가 양호해지면서 회복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인간의 탐욕 본능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강아지들 이야기와 별 다를 바 없지 않을까요? 자본의 자기 축적과 잉여가치가 정당화되는 사회에서 탐욕이 밀어내는 구조와, 거기서 밀려나 탈락하는 이들에 대해 우리는 양심에 아무런 부채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가난하고 고단한 삶, 게다가 병들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생을, 죽지 못해 살아야 하는 분들이 점차 늘고 있지요.
특히 최근 들어 우리나라는 가족 해체에 이어 독신가구가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작년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 보고에 따르면 전체 가구 수의 27.2%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2인 가구(26.1%), 3인 가구(21.5%), 4인 가구(18.8%), 5인 가구(6.4%)를 제치고 가장 흔한 가구 형태로 부상한 실정입니다. 요즈음 ‘혼밥’ ‘혼잠’ ‘혼술’ 등의 유행어가 시사하듯, 우리 사회의 공동체 붕괴가 심각한 수준임을 방증해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오죽하면 ‘헬조선’이라는 유행어가 생겼을까요. 독신가구는 결국 고독한 삶으로 이어지고 다시 무연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구조…. 이 현상이 과연 어디서 연유할까요? 참으로 슬프고, 절망감이 앞을 가립니다.
시장 논리로 운영되는 사회복지, 대안은 ‘공동체 복지’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는 앞서 언급한 대로 재벌 자본과 국가권력에 의해 유지 심화되고 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복지는 그 자체가 시장 논리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가의 사회복지 정책과 행정에 대해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논의는 여기서는 다루지 않고, 다만 앞서 지적한 시장 논리로 운영되는 사회복지의 문제점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시장의 논리는 경제영역뿐 아니라, 시장 논리의 폐해를 보완해야 할 사회복지 분야는 물론 교육, 문화 심지어 종교 영역에까지 깊숙이 침입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든 사회적 관계가 수요-공급의 관계로 거래되는 시스템으로서 시장은, 이미 물건이나 서비스를 넘어서서 인간 생활의 전 영역을 포섭해버렸습니다.
유형·무형으로 생산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그 상품을 소비로 전환시키는 메커니즘은, 사회복지 영역의 경우 사랑, 봉사, 나눔, 섬김, 원조, 자선 등을서비스 상품화하여 시장에서 유통하는 실정입니다. 고귀한 인간관계 가치가 상품으로 변환되면서 시장의 가격경쟁과 성과경쟁의 손 안에 들어선 거죠. 국가기관은 공급자로서 정책개발 및 예산과 함께 복지상품을 만들어 내고, 민간복지 영역은 수요자로서 수탁운영이란 사업을 통해 사회복지 대상자를 ‘소비자’로 상대해 서비스 상품을 파는 겁니다. 이렇게 시스템이 작동하면 자연히 거대한 국가조직의 관료적 구조가 민간 영역으로 연계가 되어, 시장의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의 연쇄관계로 고착됩니다. 그래서 민간복지는 다만 경쟁과 성과로 살아남아야 하고, 모든 사회복지 수혜자는 상품을 주입받아야 하는 실험대상으로 전락하는 겁니다. 사회복지 수혜자가 클라이언트라는 딱지를 붙이기 전엔, 모든 사회적 약자 한 개인은 존엄하고 고유한 인격적 주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체적으로 고민하며 선택한 방식이 아닌, 단지 소비 대상이나 서비스 유통시스템에 의해 규정되는 방식의 사회복지는 재고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이렇게 사회복지가 시장화되는 폐단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의 하나로 ‘공동체 복지’를 생각해봅니다. 공동체의 원형인 가족과 마을공동체를 살펴볼 때, 서로를 돕고 나누는 부조의 복지는 상품화와 시장화에 전혀 관계없는 자연모델입니다. 복지를 상품으로 생산하는 주체나 그것을 소비하는 객체가 따로 거래되는 게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복지의 주체요 객체로 참여하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요체는 서비스가 돈이란 수단으로 거래되는 게 아니라 인간 마음과 마음이 호환되는 관계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 복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동체가 무너지고 사회구조가 시장 시스템으로 대체되어가는 상황에서 공동체 복지를 어떻게 복원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기초공동체인 가정과 마을이 붕괴되는 현대사회에서 공동체 복원에 시급한 첫 단계는, 시장화·자본화·상품화·소비화·개인화로 치닫는 돈 중심의 우리 삶의 방식에서 사람 중심의 가치관·세계관으로의 변화가 아닐까요? 사회복지 사업이 보살피고 관리하는 대상으로서의 클라이언트가 아니라, 함께 부대끼며 삶을 나누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참여하는 사회복지 공동체 말입니다.
‘무연사’에 담긴 인간 구원의 메시지
다시 ‘무연사’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죽음은 잠시의 변화라 할까 상태라 할까 아주 짧은 찰나입니다. 또 죽음 이후의 기억(추모)이나 상상의 사후세계까지를 총칭해도 될 겁니다. 이러한 죽음의 의미는 우리 사회에서 삶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왠지 사회복지 영역에서는 ‘삶의 보장’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지 죽음과 관련해서는 거의 무방비한 실정입니다. 아마 서구 기독교적 세계관과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점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미 삶을 떠난 한 인간의 영혼은 돌보거나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아예 단절된다는 교리적 바탕이 깔려서 그렇지는 않나 생각합니다.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버렸으니 어쩔 방법이 없다는 거라면 참 어이없고 황당한 교리죠.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죽음이 핵심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적 인과응보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볼 수도 있고 예수의 죽음을 ‘희생’의 죽음으로 해석하여 ‘죄 사함’의 원리로 교리화했다지만, 죽음을 넘어선 ‘부활’의 메시지를 가져오기 위한 해석으로서 죽음의 의미를 더 확장하기도 합니다. 죽임과 죽음을 이기는 부활이 참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반대로 죽임과 죽음의 세력에 압도되는 것이 곧 어두움이요 지옥이 아닐지요? 하느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의 대비되는 두 질서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고난과 죽음과 부활로의 희망찬 메시지가, 사랑과 정의와 평화와 자유의 복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눌림 받는 작은 자들에게 선포된다는 겁니다.
무연고자의 삶과 죽음에 대해 성서에서 한 이야기를 들어, 그 특정한 삶과 죽음이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우리 기독신앙인이 잘 알고 있는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자로(나사로)’ 이야기입니다. 이 본문에서 부자와 대비되는 거지를 말하는데 그 거지를 ‘나자로’라 이름하였습니다. 그는 부자의 대문간에 사람들이 들어옮겨다 놓아야 겨우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연명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심지어 개들이 종기를 핥을 정도로 병자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는 거죠. 죽음 이후의 이야기는 일단 생략하겠습니다. 상당히 긴 이야기로 부자와 나자로의 사후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짧은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행간에 묻혀 있는 내용을 상상해보겠습니다.
거지는 ‘하느님이 도우신다’라는 뜻을 지닌 ‘나자로’라는 이름이 있는 반면, 부자는 이름이 나오지 않고 있는데 이 또한 숨겨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남에게 빌어먹어야 할 정도의 가난과 천대를 겪는 삶. 게다가 온몸에 악성 피부질환이 있어서 나자로를 들어다 옮겨놓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요새말로 ‘앵벌이’는 아니었을까요. 비참한 동료의 모습을 팔아서라도 입에 풀칠하고 살아야 하는…. 그들 가운데 나자로는 그렇게 부자의 집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생을 살다 마감했답니다. 그 죽음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그의 죽음이 아마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해보는 ‘무연사’는 아니었을까요? 거처는 있었는지, 아니면 평소 그를 옮겨주던 이들이 싸늘히 식은 그의 주검을 처리(장례)는 했었는지…. 혹시 시신마저 홀로 버려진 채 부패하다가…, 음, 상상에 맡겨야겠네요.
결국 우리는 지극히 작은 자요 멸시 받는 자요 억압 받는 자요 쫓김 받는 자가, 오늘 예수의 죽음으로서 언제나 역사의 골고다 십자가를 지고 간다고 해석해야 되지 않을까요? 예수의 뒤를 바로 이었던 수많은 ‘따름이’(교회)들이 ‘그리스도인’(왕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이 세상 나라의 권력과 가치 지향으로부터 얼마나 박해를 받았는지! 또 얼마나 고난과 죽임을 뚫고 왔는지! 세상의 지배 질서에 맞서 이게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고 전면 저항하고,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통치 질서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렸는지! 작은 자들, 눌린 자들, 그들 민중(오클로스)이 다시 예수지요. 그리스도(왕)로서, 그들이 참으로 원하는 나라, 그들을 섬기는 그들의 나라가, 곧 하느님의 나라(통치)가 아닐까요?
따라서 그들의 삶은 마태복음 25장의 ‘지극히 작은 자’로서 예수요, 그들의 죽음은 누가복음 16장의 ‘거지 나자로’로서 예수라 할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그들의 죽음의 의미와 그 죽음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는, 세상(죽음)의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죽임 당했으나 결코 죽지 아니한, 아니 하느님이 다시 살려내는 ‘부활’의 예수요 희망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은 삶과 영혼으로 살고 죽어간 자들, 그 ‘무연사’ 영혼들이 남기고 간 희미한 신음소리에서 구원의 메시지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들을 향해 교회가 “너희는 예수 안 믿어서 지옥이야”라고 해야 하나요? 우리 사회가 즐기고 남은 온갖 쓰레기더미, 오늘 ‘무연사’의 골고다에서 마지막 외침같이 들려옵니다.
‘하느님 아버지, 진짜 불쌍한 제 영혼을 버리시는 겁니까?’
내년 2017년은 1517년 일어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로마제국의 권세로부터 탄압받던 교회가 그 제국의 세상권력과 야합하여 기득권 지배세력으로서 ‘천년왕국’을 누렸죠. 그 타락한 종교권력에 저항하다 초개처럼 스러져간 뭇 개혁자들의 핏자국 위에서 탄생한 프로테스탄트(저항하는 자)가 개신교였습니다. 그 이후 다시 교회는 자본이라는 기득권 지배세력의 음녀와 동거하고 있지는 않나요? 교회는 여전히 프로테스트(저항)하고 있나요? 아니라면 교회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변 가난한 자들에게 몇 푼 던져주듯 무연고 사망자들에 대해서도 값싼 동정을 베푸는 선교가 아닌, 교회의 근원적 ‘돌아섬’(회개:메타노이아)이 있어야 함을 경고합니다. 어서 당장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처럼 스스로 호화스런 옷을 벗고, 가장 가난한 형제의 친구로 다가서지 않으면 하느님이 그 옷을 벗겨 수치와 조롱의 나락으로 던질 것임을…. 김홍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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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호칭 문제는(하느님) 예외로 놓고 내용에만 집중하면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