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49:13 )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 하셨은 즉 그의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사랑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얼마나 이쁜지 눈에 항상 넣고 다니고 싶습니다.
그런 자녀가 고난을 당한다면 그 부모는 자신이 자녀를 위하여 그 고난을 당하며 감수할 것입니다.
부모에게 그 자녀는 자신의 전부이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오늘 묵상말씀에 하나님의 그 사랑이 그대로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 하셨은즉 그의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위로 하셨은즉>이라는 히브리어는 <니함 נחם>인데 이는 원래 숨을 크게 쉬는 모습에서 유래한 단어로 힘들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 위로하고 격려하는 의미와 과거를 후회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 <나함 נחם)의 동사 완료시제형입니다.
<위로 하셨은즉>라는 히브리어는 <니함 נחם>이라는 단어는 ‘안위하다’, ‘긍휼히 여기다’라는 의미로 이미 위로를 완료하였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 위로받은 대상은 <그의 백성> 즉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입니다.
<그의 백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암모 עמו)인데 이단어의 원형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백성들로 택하신 자들을 지칭하는 (암 עם)에서 왔습니다.
(나함 נחם)<위로>를 받아야 할 대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암모 עמו)을 긍휼히 여기시며 안위하실 것이라는 예언적 완료, 즉 확실하고 확고한 어조로 위로하셨음<나함 נחם)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시겠다고 다짐하시는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결심으로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의 위로하심의 대상은 바벨론 포로로 인하여 고난당한 자, 즉 이스라엘 민족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떠나 죄악의 고통과 고난 가운데 말라죽어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인 것입니다.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위로하심의 역사가 예수님의 십자가고난과 부활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암모 עמו)을 긍휼히 여기시며 안위하실 것에 대하여 이와 같이 오늘 말씀 15~16절에서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지 손바닥에 새기셨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 이 위로를 무슨 말로 다 이야기 할지 표현이 부족할 따름입니다.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다니시며 자랑하십니다.
자신의 생명과 바꾼 자녀입니다.
하나님 나에게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그리스도로 죽고 그리스도로 다시 살아 온전히 그리스도인으로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 오늘 하루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하여 <니함 נחם>위로를 받아 구원받은 그 은혜를 늘 마음에 새기고 그에 합당한 믿음과 감사와 사랑의 삶을 살아내도록 도우소서.
사랑하는 동역자님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그 한량없는 십자가와 부활의 위로하심 <니함 נח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그 부르심에 합당한 그 은혜에 걸맞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