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3.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단 4:34~37
*제목; 기도하는 자를 아무도 이길 수 없다(7) 다 잃어버려도
1. 간증이 있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
행복한 삶. 믿음이 있는 사람이나 믿음이 없는 사람이나 공히 다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자녀들의 삶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항상 내 “마음의 그릇”이 문제입니다.세상은 항상 문제로 가득했고, 하고, 할 것입니다. 이는 누구나 어느 시대에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이 있고, 행복을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삶이 있습니다. 그 차이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내가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입다. 외부의 문제들을 처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외부의 문제 하나를 처리하면, 금새 새로운 문제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또한 문제가 해결되어도 내 마음의 그릇이 엉망이면 전혀 행복해지지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 욕구가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외부의 해결되는 문제들이 나에게 행복으로 느껴지려면, 내 ‘마음의 그릇’이 행복하게 세팅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그릇이 행복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는 ‘받아들임’이고, 다음은 ‘내려놓음’입니다. 이렇게 할 때, 외부의 그 어떤 폭풍도 헤쳐갈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붙잡을 것은 붙잡고, 내려놓은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할 때가 많다. 내려놓아야 할 것을 붙잡고 있고, 붙잡아야 할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러니 힘든 것입니다. (‘붙붙내내’하라!)
다음에 필요한 것은 “영의 그릇”입니다.영의 그릇이란 하나님과 관계를 담는 그릇을 말합니다. 이 그릇이 준비되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과 응답을 담아내고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를 “믿음”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렇다면 이 영의 그릇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1~3절’을 봅시다.
“1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리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
3 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단 4:1~3)
믿음의 그릇, 영의 그릇이 온전히 세워질려면, 이처럼 “간증”이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간증이란 하나님이 내 삶에 이루어진 은혜의 경험담을 말합니다. “에벤에셀의 돌”과 같은 것입니다(삼상 7:12).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간증이 넘칠 때, 영의 그릇이 든든해지고 더 크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 (삼상 7:12)
이러한 경험은 바로 도전(순종)을 통해서 경험되어집니다. 오늘부터 말씀대로 도전합시다. 그래야 간증을 소유하고, 믿음의 그릇을 바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간증과 믿음이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삶이 반드시 은혜가 넘치는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2. 느부갓네살왕의 두 번째 꿈
느부갓네살왕의 첫 번째 꿈을 해석한 다니엘(그의 기도와 세 친구의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느부갓네살왕의 꿈을 해석하고 바벨론의 총리가 된다.)은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꿈을 해석하게 됩니다.
그 꿈의 내용은 ‘큰 나무가 순찰자에게 찍혀 그루터기만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단 4:4~18). 첫 번째 꿈과 마찬가지로 다니엘은 그 꿈을 정확하게 해석합니다. ‘큰 나무는 느부갓네살왕이고, 순찰자는 하나님이신대, 느부갓네살왕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어, 그 나무를 그루터기만 남기고 베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느부갓네살왕의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꿈이셨습니다. ‘26~27절’을 봅시다.
“26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27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단 4:26~27)
느부갓네살왕이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이런 놀라운 영화를 누리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 교만하여 져서, 공의를 폐하고, 죄를 쌓아가며, 가난한 자를 보살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을 사랑하셨고, 이를 통해서도 다니엘을 높이 세우려 하신 것입니다. “모든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너무나 잘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왕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다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고서도 교만하여지고, 다시 은혜를 깨달아 돌이키고 나서 다시 타락해버립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있는 기회조차 거부하게 됩니다.
이런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28절’입니다.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단 4:28)
이제 그는 꿈의 예언대로 “기한이 차매”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맞고 나서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사랑의 매를 맞으면, 다 정신을 차립니다. 그러나 그 매는 아픕니다. 위대한 대제국 바벨론의 왕이었던 그가 들짐승처럼 이슬을 맞으며, 배고픔에 뒹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설교의 목적, 말씀의 목적은 이렇게 되기 전에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우리 모두, 이렇게 되기 전에 돌이키시기를 기도합니다.
어쨌든 느부갓네살왕은 이렇게 되고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34~35절’이다.
“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5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단 4:34~35)
“총명”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깨달은 가장 큰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만물을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시다는 사실입니다.
아파도 너무 많이 아팠어도, 느부갓네살왕은 세상에서 가장 큰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깨달은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져 갑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진다.
모든 것이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다.
모든 것에 찬양과 감사가 나오게 되어 있다.
징계도 하나님의 뜻이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크게 맞지 않고서도,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이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겠습니다.” 고백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첫댓글 주님은 자녀들이 온전한 은혜 가운데 거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래서 현몽으로도, 말씀으로도 늘 인도하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돌이켜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혹 '광야학교'에 갔더라도, 빨리 돌이키면 됩니다. 주님의 뜻은 '징계'가 아니라 '복과 은혜'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