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좀 줄까?
-아니. 김치 가지고 오지마. 김치 있어
자주 있는 일이다. 엄마는 주고 싶어하고 나는 거절하고. “빨래 건조기 그거 꼭 사라.”,“이번에 이사하면서 침대 좋은 걸로 바꿔라” 엄마는 반복해서 말했지만 내가 반응이 없자 당신께서 직접 결제를 해버리신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안 받으면 관계를 망칠 거 같아 마지못해 받는다. “남들은 못 받아서 안달인데 너는 왜 안 받으려고 그러니?” 그러게 왜 나는 엄마에게 받는 게 불편할까? 정말 아무것도 안 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도 딸아이에게 좋은 건 다 주고 싶다. 예쁜 옷도 사주고 싶고 좋은 학원도 보내고 싶다. 그러나 아이는 옷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직접 구매하고 힘들게 대기해서 어렵게 등록한 학원도 안 가겠다고 한다. 가끔은 다정하게 말을 건네도 방어적인 자세로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듯 철벽을 친다. 나는 잘 해주려고 하는데 쟤는 도대체 왜 그러는거야?
정신 사나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중심축은 모녀 관계이다. 주인공 에블린은 부모가 반대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한 결혼을 한 것이 마음에 짐으로 남은 듯하다. 그러면서도 딸 조이가 3년째 사귀고 있는 (동성) 연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에블린은 정체성을 인정해주길 원하는 조이의 바람을 무시하며, 이혼서류를 준비하는 남편의 마음 역시 안중에 없다.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으니 그만큼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조이는 나쁜 아이가 아니야. 외부의 어떤 힘에 아이는 조종당하는 것이니 나는 어떻게든 악으로부터 딸을 구해야겠어. 마치 우리 애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탈선하게 되었다는 그런 말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아무튼 딸을 구하기 위한 엄마의 분투는 시작된다. 엄마는 점점 더 능숙하게 멀티버스를 오가며 자신이 가진 힘을 사용하는데 익숙해진다. 엉뚱한 행동을 하면 다른 세계로 접속하여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고 잠재능력이 발휘되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황당한 짓을 한 덕분에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도 재미있을 거 같다.
결국은 모녀의 이야기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던 건 딸과 엄마의 대화였기 때문이다. 조이가 말한다.
“당신을 어머니로 둔 기쁨과 괴로움”, “엄마도 내가 느끼는 걸 똑같이 느끼길 바랬어”
어머니가 내게 주신 사랑이 항상 기쁘기만 한 건 아니다. 괴로움도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고 엄마가 내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해서 열심히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서로 딴 이야기만 오고 갔다. 엄마가 살아온 세계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정말 멀티유니버스이다.
답답한 건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서 제일 이해 안 가는 게 학교 교칙이고 두 번째가 엄마라고 한다. 남편은 당신이 첫 번째가 아니라서 다행이란다. 나 역시 아이가 이해가 안 되는데 자꾸 공감을 해 달라니 참 답답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머리 염색을 하고 싶다며 당장 내일 청담동을 가자고 한다. 머리 염색 교칙 위반 아니냐 물으니 실제로 단속을 잘 안 하니까 살짝 하는 건 괜찮을 거란다. 어휴... 모범생인 나랑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게다가 웬 청담동? 정말 헐이다.
에블린과 조이의 평행선도 좁혀지지 않더니 막판에 만나서 겹치고 포옹한다. 나도 에블린처럼 다중 우주를 오가며 득도의 경지에 이르면 아이가 느끼는 걸 똑같이 느끼고 아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실 아이를 보며 느끼는 답답함은 불안과 연결되어 있다. 저렇게 해서 자기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을까? 부모로서 내 역할을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
“마침내 제가 자랑스러워요. 엉망이라도 괜찮아요. 그 부족함을 메워줄 다정한 사람을 보내줄거니까요” 에블린의 남편은 다정함이 우리를 구한다고 한다.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와 달리 지금 이대로 충분히 괜찮다고 하는 남편을 만났다. 아이도 주변의 친구, 선생님, 연인의 도움을 받으며 잘 살아갈 수 있다. 아무리 전전긍긍해도 내가 채울 수 없는 자리가 있다. 나는 완벽하지 않으니까. 완벽한 엄마는 더더욱 아니니까. 그래도 그 부족함을 메워줄 다정한 이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기 마련이니 아이를 향한 한숨은 조금 줄여도 될 거 같다.
첫댓글 사춘기 딸이, 차원이 다른 세계에 사는 것 만큼이나 이해가 안 되시나봐요. 저도 정말 아들 욕을 많이 하고 다녔는데... 그래도 샘은 다른 유니버스로 가는 통로가 있는 것 같네요. 우리 아들은 아무 말도 않하고 아무 것도 안 해서 그냥 차단된 느낌이었는데. 언제 만나서 시원하게 씹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