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3편은 구원의 시작과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다윗도 선지자(행2:30)로서 그의 자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완벽하게
설명합니다. 그래서 주님도 다윗이 자신을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주와
그리스도로 믿은 사실을 최고의 믿음의 경지로 말씀하셨습니다(마22:41-46)
그래서 시22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미리 예언하였고
23편은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목자가 되실 것을 예언하고, 24편은 주님께서
영광의 왕으로 만유의 주재가 되실 것을 미리 예언했습니다. 대단하지요.
성도들이 구원을 확인하는 즉시 여호와는 자신의 목자가 되십니다(시23:1)
신약으로 말하면 그리스도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 내주하시므로
성도들의 목자가 되십니다. 그리스도가 목자가 되시는 순간부터 서서히
부족함이 없어집니다. 생명을 주시고 또 주시는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부요해 집니다. 사람은 이 결핍증 곧 부족함이 없어져야 행복해 집니다.
넉넉함과 여유로운 관을 쓰게 됩니다. 그 얼굴과 용모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 행복은 재물이나 학벌 또는 명예만으로는 안 됩니다. 상대주의에
의해 이런 것들은 허상일 뿐 실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께서 주시는 영광스런
부요함은 절대적 가치이기 때문에 세상에 도무지 껄떡거릴 만한 것이 없어집니다.
첫 번째 단계는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모신 다음에는 먹고 마십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라고 표현 한 것은 요6장에서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를 남길 때의 장면과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식사를 할 때에는 비스듬히 눕습니다. 그러므로 누인다는 말은 먹이기
위함인 겁니다. 그 다음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먹고 안식이 있음은 바로
만족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5장에서 아들의 생명음성을 듣고 살아나면
요6장에서 생명의 떡을 먹고 생수를 마시는 사건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갓난 애기가
태어나면 바로 젖을 물 듯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모신 다음 그리스도를 먹고 마십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다음 단계는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3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땅에 있는 성도들이 어릴 때는 땅의 것과 육신만을 위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난 피조물 곧 새로운 인생의 길로 목자이신 그리스도는 인도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의 목적의 그 원 상태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 길은 의의 길,
외길이며 꼭 시골의 소로와 같은 오솔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 길은 하나님 곧
삼위일체의 이름 안에 있는 의의 길입니다. 진리의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의와 거룩과 영광의 길이며 그 길에서
빛과 생명과 사랑으로 진화되어 드디어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고 사랑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래서 처음 신앙이 어릴 때는 구원의 방법이 여러 가지인
것 같으나 시온산에 주와 함께 서는 길은 오직 한 길 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세 번째는 이 의의 길에서 주께서 함께 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를 따라 의의 길로 가는 동안 성도들은 환난과 인내와 연단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주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적재적소에서 성도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안위라는 말은 노아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 뜻은 위로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는 성령이 위로하시는 복을 받게 되는 겁니다(마5:4)
이 지팡이와 막대기의 위로로 사망의 음침함과 악한 자를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 인생이 심한 곡절을 겪을 때마다 주님의 말씀이 지팡이 같이 징계하시고,
막대기 같이 안위 하셨음을 알고 감사의 눈물을 흘릴 때가 많습니다. 이를 통해
과거의 체험에 대한 확신으로 인하여 확실한 미래의 보장을 갖게 됩니다.
말씀 안에서 그 말씀이 자신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찬송을 부르는 겁니다. “내 인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 문 향해 말하리 예수 인도 하셨네”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이 말씀은 지난날의 고통 속에서도
함께 하셨고 인도하신 그 분의 섭리를 알고 현재와 장래에도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하는 매우 귀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체험이 현재의 믿음이 되고
현재의 주의 임재와 공급하심과 이끄심이 장래에 대한 확신이 되는 겁니다.
네 번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면 하나님의 보상이 있습니다.
5절 “주께서 매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床)을 베푸시며 머리에 기름을
바르십니다. 사람들도 수고하고 큰일을 한 일꾼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노고를 치하합니다.
잔치를 베푼다는 뜻은 하나님의 인정하심이며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세워 주신다는
뜻이며 잔이 넘침은 축하와 축복 승리의 의미입니다. 브라보 하는 축배입니다.
이런 것이 있어야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시89:20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을 부었도다”고 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인정하심과
세우심과 복 주심은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계속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남은 생애의 보장이 확실합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화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 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확실히 나를 보장한다는 선언입니다. 불신자들의 마음에는 장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원인 모를 불안감이 지겹도록 따라 다니는데 반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항상 따라 다니는 보디가드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언제까지냐 하면 영원 영원토록입니다. 진짜 행복합니다.
그래서 ‘내가 여호와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라고 완성적인 차원의 신앙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구원은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모시므로 먹고 마심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집으로 끝이 납니다. 엡2장에서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후에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그 은혜를 따라 획득해야 할
은혜를 추구하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지어지는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겁니다(엡2:22)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처소가 되는 것이 바로 구원의 종점입니다.
첫댓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 하심이 항상 함께 하시는 복 있는 자녀가 되기를 소망 합니다.
사랑하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주의 대속의 은총으로 성령 안에 잠기어
주와 한 영이 된 자로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신 은혜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