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흥식 화신백화점 회장 부인 한인하씨
[조선일보 김용운 기자] 원로 피아니스트 한인하(韓仁河·88)씨가 자신의 이름을 딴 ‘한인하 피아노상’을 제정, 올해부터 시상한다. 한씨는 10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 피아노음악 발전에 헌신한 연주자와 교육자를 해마다 한 분씩 선정해 상금 1000만원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한씨는 광복 전 국내 최고 부호로 꼽혔던 ‘화신백화점’(화신그룹)의 고(故) 박흥식(朴興植) 회장 부인이기도 하다. 한씨는 도쿄 예대 피아노과를 나와 서울대·경희대 음대 교수를 지냈으며, 1956년 한국 여성 최초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황제)’을 서울시교향악단과 협연했다.
약속 장소인 신라호텔 중식당에 들어서면서 기자는 ‘다리 불편한 할머니’가 예약한 방을 물었다. 한씨는 20년 단골 식당에서도 이름 대신 그렇게 통했다. 휠체어를 타고 간병인과 함께 나온 한씨는 맑고 정정했다. 말도 젊은이 못잖게 빨랐다.
“연극이나 미술 등 여러 예술분야에서 훌륭한 상이 많지만 서양음악 쪽에는 이렇다 할 상이 없어 안타까웠어요. 피아노를 위해 애쓰는 분들에게 작은 격려가 됐으면 합니다.” 한씨는 “상을 위해 번듯한 재단을 만든 것도 아니고, 작은 기금을 마련해 그 과실로 소박하게 상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인하씨가 고 박흥식 회장을 만난 것은 도쿄예술대 대학원에 다니던 스물네 살 때. 평양에서 태어난 한씨는 도쿄로 유학, 손아래 윤기선(피아노) 박민종(바이올린)과 한 학교에 다니면서도 이들과 말 한번 나눈 적 없을 정도로 수줍었다. 그런 한씨를 박 회장이 덜컥 찾아왔다. 박 회장의 부인이 병석에 눕자 그 부부의 중매를 섰던 이가 한씨를 소개한 것. 한씨는 “그이가 나를 보고는 (예쁜 모습에) 첫눈에 나자빠졌다”고 웃었다. 집안에서는 재취가 뭐냐며 난리가 났지만, 우여곡절 끝에 25세 때 박 회장과 결혼했다.
그러나 한씨는 “(광복 후) 집안에 시련이 닥치고 박 회장마저 94년 세상을 떠나면서 낙산사 등에 들어가서 절사람처럼 세상과 끊고 지냈다. 지금도 만나는 이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10년 전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 수술도 두 차례 받았다.
단골 식당에조차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한씨는 2000년 경희대 발전기금으로 1억원, 동아음악콩쿠르에 한인하상 기금으로 1억원을 전달하는 등, 음악계를 도와왔다. 한씨는 박 회장과의 사이에 이화여대 교수를 지낸 박봉숙(재미)씨를 두었다.
한씨는 “서울의 요양원에서 홀로 지내고 있으며, 내가 세상을 떠나면 딸이 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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