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생방송 원고 80여매를 쓰면서 여덟개의 코너를 쓰고있다.
그 중에 한 자리가 '고전 사랑방'이다. 5년에 걸쳐 1200여회를 넘게
써오고 있는데 중국 고전보다 우리 선현들 작품을 중심으로 쓰고 있다.
고전하면 중국의 사서오경이니 노자 장자, 사기 같은거 부터
이야기 하는거 보다. 내 땅에 선비들 글 한줄이 더 소중하니 자연
고려나 조선 때 글과 인물을 돌아보고 있다.
새해라 고려 말 장관급 찬성사 벼슬을 지낸 급암(及庵) 민사평(閔思平)의
신년 축원이 담긴 시를 소개해 봤다. 그가 삼십대 초반에 올린 새해축원 노래는
맨 아래 방송원고를 참고해 보기 바라며, 방송에선 늘어 놀 수 없었던
민사평과 최유(崔濡) 이야기를 잠시 돌아볼까 한다.
점잖고 시서를 즐겼던 민사평 충정왕 따라 원나라 들어가 공을 세우기도 했는데
원나라 끄나풀 역할을 했던 최유와 대궐에서 난투극이 벌어진다. 그것도
충정왕이 뻔히 보고 있는 자리에서 최유는 배전(裵佺)을 향해 '내가 니놈 덕에
판서 자리 올랐단 말이냐? 오늘 왕이 어떻게 왕자리에 올랐는데 이놈아' 하면서
주먹으로 배전을 치니 힘 없는 충정왕 원나라 끄나플 몽고 깍뚜기 최유한테
말 한마디 못하고 있을 때 찬성사 민사평이 나서서 ' 머슴 집안에 판서 나왔으면
만족할 줄 알아야지 어느 안전이라고 주먹질이냐?' 그 소리에 민사평에게 달려들어
주먹질 했던 최유란 작자. 그 고려 조정에 ' 머슴 집안에 판서 났으니 만족할 줄 알어라'
따끔한 소리 할 사람이 민사평 하나였더란 소리다. 이게 김종서 주도로 편찬된
'고려사절요' 충정왕2년 1350년 사건이다. 최유는 끝내 원나라로 도망쳤고
원나라에 황족들 매달려 고려가 배반 하려고 한다 이간질 해서 기황후를 꼬드겨
공민왕을 폐하게 하고, 결국엔 원나라군 1만명 이끌고 압록강 건너 내려왔다가
최영과 이성계에게 전멸 당해 도망치더니. 다시 또 원나라 황제 꼬드겨 고려 치세요.
고려 놈들 혼좀 내주세요 하다가 그동안 역적질 간신배 다 드러나 목에 칼 씌워
고려땅으로 보냈으니 그 종말이 어찌 됐겠는가?
공민왕 13년 그는 처형됐고 안타깝게도 그에게 주먹질 당했던 민사평은 5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민사평이 서른 셋 나이에 썼던 새해 축원을 간추려 방송에 전하며
그의 또 다른 면모를 전해 주고자 이글을 덧붙여 본다.
요즘도 있잖은가. 강대국 빽을 믿고서 제 나라 우습게 보고 설치는 자들 말이다.
그래도 그해 민사평이 올렸던 새해 축원 처럼 올해도 좋은 한해였으면 싶다.
신년 첫 주간 부터 수소폭탄 전쟁 운운 소리 나오는 병신년, 제발 원숭이 재주 자랑하다
병신되는 그런 꼴들 아니 봤으면 좋겠다.
*1월4일 '상암골 상사디야' <고전사랑방> 원고
진행자 이정일 (남) 김영화 (여)
♣ 고전코너 ‘고전 사랑방 --- 신년맞이 고사 급암 민사평 시 ’
남 고전 속에 마음의 양식과 사설 속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아 보는 ‘고전 사랑방’
오늘은 ‘신년맞이 고사 급암 민사평 시’ 음미해 볼까요?
여 급암 민사평은 고려말 인물인데요. 고려말 신년맞이
어찌 했는지 민사평부터 만나봐야겠죠.
남 민사평은 온화한 성품을 가진데다. 화목한걸 좋아해서
일 처리에 모나지 않았구요. 시서를 즐겨서 당시 문장가
이제현과 함께 이름이 높았죠.
여 동문선에 급암 민사평의 시가 9수 정도 전하는데요.
오늘 음미해볼 노래는 민사평이 젊은 시절 한림학사 때
신년맞이 감회를 담은 작품이죠.
남 민사평의 나이 서른 셋 신년 새해 풍경도 드러날텐데요.
잠시 1328년 충숙왕 때 민사평의 신년맞이 모습 볼까요?
여 (낭송) 십이월은 물시계 화살 따라가고/ 새봄은 북두성 자루따라 오네/
새날 상서로운 연기가 전각에 엉겨있고/
서기로운 첫해가 하늘에 떠올랐구나/
남 북두성 자루에 있는 별자리를 보고 1월인지 2월인지
분별하기도 했는데요. 민사평은 새해 맞이 심경을
우선 북두성 자루 따라 오는 봄기운부터 불러 들이고 있죠.
여 북두성 자루 쪽 세 개의 별이 정월에는 자축인 인 방향을
가르키고 2월에는 묘를 가르키고, 봄에는 북두칠성 자루가
동쪽을 가르킨다면서요.
남 옛 사람들은 북두칠성 자루에 있는 세별이 어떤 방향을
가르키는지를 가지고 1월2월을 알아 봤다는거죠.
지난 십이월은 물시계따라 가버렸고, 이제 봄날은
북두성 자루따라 돌아오고 있는 신년맞이. 상서로운 날.
여 (낭송) 궁궐문 열쇠로 봄빛을 여니/
새해 첫 새벽 계인이 닭 모양으로 시간 알려 소리친다/
상서로운 안개가 좋은 기운 빚으며 둘러싸니/
멀리 있던 목덕이 새해부터 피어나리라/
남 고려 때만 해도 궁궐에선 새벽이면 계인이 시간을
알려줬다는건데요. 사람이 붉은 비단으로 닭벼슬 같이 만들고
꼬끼오~~ 소리치며 시각을 알려줬던 닭사람, 계인이 있었죠
여 고려의 수도가 개성이었으니, 개성 궁궐에
신년 첫 새벽에 꼬끼오~~ 신년 아침이오
닭처럼 치장을 하고 그리 외치던 사람이 있었던거군요.
남 새벽 시각을 알려주던 닭사람 계인은
중국 당나라 때 대궐 문을 열면서 시각을 알려줬는데요.
고려 때도 신년 첫날 새벽 궁궐문 열면서 외쳤던거죠.
여 민사평이 서른세살 한림학사 때 지었다는
무진년 새해맞이 모습인데요. 북두성 별자리로
1월 2월 알아봤다는거랑. 신년 첫날 닭사람 계인이 꼬끼오
외치며 대궐문 열고서 신년 복마중 나갔더라.
남 새해 복을 목덕으로 왕성하게 해주십소사.
그런 염원이 보이기도 하죠. 목덕은 모든 초목에 생기가 도는
봄을 뜻하는 덕이기도 하거든요.
여 고려말 민사평이 신년 첫날 봄을 부르면서 맞이하고 있는
새해 상서로운 기운과 희망들. 느껴지는데요.
‘고전 사랑방’ ‘민사평의 신년노래’ 또 다른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고려때 새해맞이 궁궐의 이벤트가 인상적이네요.
마치 오늘날의 타종행사처럼......
예나 지금이나 강대국 또는, 권력가에 빌붙어
앞잡이 노릇하며 자신의 영달을 꾀하는 사람들은
늘 있었죠. 자신의 뒷배를 봐주는 사람에게는 마치 개나 종처럼 굴면서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안하무인격으로 거만하고 잔인한 사람들 말입니다.
고려말 자신이 태어난 조국 고려를 오히려 괴롭혔던 기황후,
그런 여인네를 마치 영웅이나 되는 양 미화한 드라마도 있었잖습니까?
고려에 무슨 원한이 그리 많아 어머니의 나라, 자신의 나라를
괴롭혔던 기황후나 그런 여자를 부추겨 그릇된 욕망을 쫓았던 최유!
그리하여, 후대는 그들을 매국노라 부르는 거죠.
좋은 공부하고 갑니다.
계인이라는 건 처음 알게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