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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편지
1987년 당대 최고의 영화감독 배창호가 메가폰을 들고 국민배우 안성기와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으로 처음 진출한 황신혜가 주연한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7년 멜로드라마의 부활을 이어가며 당시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할 정도로 관객의 눈물을 훔친, 이정국 감독, 박신양 · 최진실 주연의 영화 〈편지〉. 그리고 이듬해, 멜로드라마의 상투성 대신 여운과 절제의 미학을 취함으로써 흥행에도 성공하고 평단의 갈채를 받기도 했던 허진호 감독, 한석규·심은하 주연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은? 쉽다. 여자 주인공은 모두 미녀 배우인 데 반해, 남자 주인공은 모두 인간미를 매력으로 삼는 배우들 이라는 것,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면 거기에 남자 배우들 모두 안경을 쓰고 나왔다는 점까지 추가할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공통점도 있는 법. 이 세 영화 속에는 모두 황동규시인의 시 <즐거운 편지〉가 가로놓여 있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날>과 <편지>에서는 그 시가 직접 낭송되었다. 특히 <편지>에서는 전반부와 후반부에 두 번이나 낭송되거니와, 사실 이 시가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 이 영화 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까지는 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웬 <8월의 크리스마스> 이 영화에는 황동규의 시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으로 허진호 감독이 원래 작정했던 것이 바로 〈즐거운편지였다. 다만 영화 <편지>가 앞서 나오는 바람에 그 제목을 버릴 수밖에 없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등장 여부보다 영화의 내용과 맥락에서 보자면 기쁜 우리 젊은 날>이나 <편지>보다오히려 <8월의 크리스마스>가 훨씬 더 <즐거운 편지>와 잘 어울린다.
허진호 감독에 따르면, 이 영화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가수 고김광석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정작 영정 사진 속의 고인은 마치 이날을 준비라도 한 듯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에서 모티브를얻었다고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이 사진사로 설정된 연유가 거기에 있다.
사진사 정원 한석규은 시한부 인생의 삶을 살면서도 아무에게도상처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아 늘 밝고 따스하고 담담하고 넉넉하게 웃으며 산다. 그러고는 남은 자들을 위해 사진관을 혼자 조용히 정리하면서 미소 띤 얼굴을 자신의 영정 사진으로 준비해둔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정작 정원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주차 관리 요원 다림 심은하은 사진관에 걸린 자신의 사진을 보고환하게 웃는다. 소통은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뒤늦게 이루어졌다. 이들은 서로의 사랑을 가슴 밖으로 내비친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을 보는 우리의 가슴은 더욱 아려 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또한 촉촉하고 따스해지는 것이다. 그 일상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영화는 인공적인 조명을 배제한 채 자연광을 눈부시게 담아내고 카메라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신화가 더 필요했던 걸까? 고 김광석과 영화 속에서 요절하는 정원의 연결 고리에 더해, 촬영감독 유영길마저 이 작품을 자신의 영정마냥 유작으로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나 버린다. 그 밝음과 서늘함, 그 촉촉하고 따스함이 결국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내리는 함박눈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는 <8월의 크리스마스>란 제목이 더 제격으로 보인다.
다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정원이 남긴 이 말 한마디다.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이 대사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감독이 왜 이 영화의 제목을 <즐거운 편지〉라 붙이려 했는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 영화를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 시를 모르는 탓이리라. 그러니 이제라도 서둘리 이 시를보자.
I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II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믿는다.
- 황동규, <즐거운 편지>
1958년,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915~2000는 《현대문학》 11월호에 신예 시인 하나를 추천한다. “지성을 서구적 기질에 의해 흉내낼 줄밖에는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속에서 귀하고 중요한 지성의 움직임을 발견했다고 고평하면서 말이다. 놀랍게도 이 '지성'의 주인공은 약관의 나이, 곧 스무 살 청년에 지나지 않았다. 이이가 바로 황동규黃東奎, 1938~ 다.
황동규는 1938년 평안남도에서, 본인은 이렇게 불리길 좋아하지 않지만, 소설가 황순원黃順元, 1915~2000 선생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고등학생 시절 클래식 음악에 빠져 작곡가를 꿈꾸다가 청음은 뛰어나나 발성에 자신이 없다는, 성악가라면 모를까 아무튼이해 못 할 이유로 그 꿈을 접고 그 대신 문학에 뜻을 두게 되었다고 하니 우리 문단의 편에선 운명이랄까, 그의 이 기이한 선택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사실 <즐거운 편지>는 고3 시절 짝사랑하던 한 살 연상의 여대생에게 바친 시로, 고등학교 졸업 때교지에 실렸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듬해 그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문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한다. 물론 이런 사실이 시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공부 잘한다고 좋은 시인도 아니며, 저러한 이력은 아무나 흉내 낼 일도 아니다. 다만 공부 때문에 게임을, 또는 게임 때문에 공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지금의 청소년들이 안타까워 굳이 밝혀 둘 따름이다.
황동규의 등단작 <즐거운 편지>는 이처럼 비록 열여덟 살짜리애송이가 쓴 시이지만, 국민의 애송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정도로 충분히 조숙하다. 먼저 1연을 보라. 단 하나의, 제법 긴 호흡의, 아주 일상적인 어휘만으로 이루어진 문장이 시를 이룬다.그러나 산문처럼 늘어지지 않고 시상의 전개와 호흡의 흐름이 적당한 긴장을 이루면서도 잔잔하고 부드럽게 이어진다. 능숙하다.그냥 읽다 보면 처음엔 어려워 보이지도 않고 세세한 내용을 따져보기도 전에 그저 뭔가 있어 보이는 그 분위기, 여기에 많은 이들이 흘려 이 시를 자기의 연애시나 애송시로 삼았으리라.
허나 잘 읽어 보면 만만찮다. 물론 굳이 이 시의 창작 배경을몰라도 짝사랑의 시라는 것은 쉽게 알 수가 있다. 그대의 앞에 마주하고 있지 않다는 것만 보아도, 언젠가 한번 불러 보리라는 희구를 드러내는 것만 보아도 그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이 시에서 화자는 뒤로 물러서 있지만, 은근히 그 사랑의 위력을 과시한다. 빤한 듯한데 빤하지 않은, 연애시로서 이 시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다시 잘 보면, 비밀은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사소한 일'이라는 데 있다.
내 사랑은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하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위대한 선언인가. 매일같이 변함없이 일어나서사소해 보일 뿐,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굉장한 일이 또있을까? 오늘 해가 지지 않으면, 오늘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큰일 아닌가? 그 엄청난 일이, 그것도 매일같이 벌어진다는 것은 실로 경이라고 해야 옳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어야하지 않을까?
그러니 화자는 지금 고백하고 있는 게다. 등 뒤에 서서 얼굴 한번 제대로 비치지 못한 처지지만 그대에게 은근히, 그러나 당당히,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게다. 내 사소한 사랑이야말로 위대하지 않은가? 다만 늘 그대 뒤에 있기에,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하게, 늘 그대 앉은 배경에 있기에 그대가 몰라줄 뿐.하지만 그대여, 그대가 찾는 위대한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당신은 굉장한 사랑을 찾고 또 기다리고 있는가? 그래, 당신은 장동건이나 이민호를 꿈꿀 수 있다. 당신은 고소영이나 수지를 꿈꿀수도 있다. 하지만 그대가 진정 어려운 일에 부닥쳐 한없는 괴로움에 빠질 때, 그때 그대를 도울 사람, 그대가 의지할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을 구원하는 것은 극점에 빛나는 오로라도, 대양을 뒤집는 태풍도 아니다. 당신이 온전히 빛나도록 배경이 되어 주는 해 질 녘 노을, 당신의 땀을 닦아 주는 바람일 게다. 당신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 그때 가서야 비로소 나는 그대의 등 뒤에서 벗어나 그대 앞에 서리라. 그리고 그대를 불러 보리라. 나는그럴 자격이 있다.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을 지켜 온 자이니 말이다. 그대여, 그때 가거들랑 나를 인정하고 내게 의지하라.나처럼 당신을 오랫동안 조용히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기다린 자가 있던가. 지금 사소해 보이는 내 존재가 과연 그때도 사소할 것이냐. 나는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그런 사람, 당신을 지키는 그대 등 뒤의 사람인 것이다.
이 시를 이렇게 읽으면, 아닌 게 아니라 <편지>의 '환유'가 아내정인에게 이 시를 읽어 준 것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무룻신기한 것과 신비한 것은 다르다. 몸통이 잘리고 사람이 사라지는 마술은 신기하지만 신비하지는 않다. 그런다고 사람의 상처하나 고친 적이, 마술은 없다. 반면에 자연, 우주, 생명 같은 것은신비한 일이지 신기하다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한 경이일뿐만 아니라 우리를 살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기에 홀려 신비를 잊는다. 마치 마술에 홀려 현실을 잊는 것처럼, 우리를 둘러싼모든 가짜 가치에 홀려 우리는 진짜를 잊고 산다. 말하자면 신비하지만 사소해서 그 가치를 몰라주는 일이 너무도 많은 게다. 그런 의미에서 박신양 같은 남편도 최진실 같은 아내에게 이 시를빌려 자신의 가치, 자신의 사랑이 갖는 가치를 은근히 과시하고맹세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전제는 어디까지나 배경이 되어 준 자여야만 하는법. 그렇지 아니한 자에게는 이런 사랑 노래를 부를 자격이 주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니 아내가 그 위대하고 사소한 남편의 가치를 알아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남편이 아내더러 오랫동안 사소함으로 그대를 지켜 왔노라고 고백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아내를 짝사랑할 수야 없지 않은가.물론 시를 자기 것으로 삼는 데 응원을 하면 했지 말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시는 짝사랑에 더 잘 어울리는, 수줍고 소박하고자신 없으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비치고 싶지만은 않은, 자신의사랑과 능력도 드러내 보이고 싶고 기회를 얻고자 눈길도 끌고싶은, 짝사랑을 고백하는 이의 이중적인 마음에 어울리는 노래인것이다.
그런데 자칫 통속으로 흐를 수 있는 시의 표정을 바꾸어 놓은것이 바로 2연의 존재다. 2연의 첫머리, 시가 본래 진실을 담는그릇일 터인데, 굳이 '진실로'란 말을 연거푸 반복하고 있다. '진실로 진실로'라니, 그것은 <요한복음서》에 등장하는 어법이 아니던가. 한데 그만큼 진실이라는 얘기는 바꿔 말하면 그만큼 믿어지지 않는 얘기란 뜻도 된다. 도대체 밝히고자 하는 진실이 무엇이기에 이러는 걸까? 그가 밝히고자 한 것은 '그대를 사랑하는까닭'이다. 내가 왜 그대률 사랑하는 줄 아는가? 그에 대한 답은. 적어도 우리가 기대하기에, 아름답기 때문이라거나 운명 같기 때문이라거나 뭐 그런 것이어야 할 텐데 그의 답은 엉뚱하게까지 들린다.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
린데있었다"라고 말이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에 대한 나의 사랑을 한없는 기다림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니?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확실히 동어반복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이유도 없는 게 진실이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정도를 님어 그 사랑을 아예 기다림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다시 말해 사랑과 기다림을 맞바꾸었노라고.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사랑 대신 기다림을 택했노라고. 내가 만일 사랑을 택했다면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텐데 니는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기다림으로 바꾸
어 버렸으니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노라고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택하느라 기다림을 버린다. 하지만 기다리지 못해 사랑을 버린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그는 사랑을 기다림과 맞바꾸었지, 사랑을 맹목이나 욕정이나 소유나 조급함과 바꾸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사랑, 뜨겁다 식어지는 그런 사랑 버리고, 아니 그런 사랑과 기다림을 맞바꾸었으니 이런 사랑이 어디 있을까. 이
러한 사랑의 진정성이 있기에, 그토록 오랫동안 그대의 배경처럼 그대를 따라다니고 기다려왔지만 스토커와는 거리가 멀 수 있었던 게다. 사랑을 기다림과 맞바꾸다니, 이런 지고지순한 사랑이또 있을까?
그러나 대단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 또 하나 있다. 문장의 시제를 눈여겨보라. 그토록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사랑을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라고 분명히 되어 있다. 과거다. 그리고 현재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 반드시 “그칠”것이라고 믿는다. 그때, 그 미래의 순간에 내 기다림의 자세는 어떠할까. 화자는 그것을 생각하며 이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는사랑을 현재화하지만은 않는다. 그는 시간의 카테고리 속에 사랑을 위치시킨다. 그러고 바라보면 사랑인들 아니 멈출 리 없다. 그것이 올바른 인식이다.
그러나 언젠가 그칠 사랑을 고백한다니, 연애시로서는 당혹스러운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짝사랑의 상대에게 연애시를 바치면서 이런 문구를 넣는 의도는 자신의 성숙을 드러내 보이고자 함에 다름없다. 이 시의 대상이 연상의 여인이었다는 것은 그래서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자각이 과시용 거짓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시인의 회상을 빌리면 처음에는 김소월이나 한용운류의 연애시를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영원한사랑은 존재하지도 않고 바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한다. 사랑도 선택이고, 중간에 그칠 수도 있고, 멈췄다가 또다시다르게 시작될 수도 있고, 정으로 바뀌어 지속될 수도 있다는 걸시작 과정에서 깨달았다는 것이다. 고등학생이 말이다. 그런 조숙과 자각이 없었으면 이 시는 세련된 연애시 이상의 수준을 넘기가 어려웠으리라.
열정으로 넘쳐 제어하기 힘들기 일쑤인 기쁜 우리 젊은 날, 황동규는 사랑을 순간의 감정으로 파악하지 않고 이처럼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 속에서, 기다림이라는 연속성 속에서 파악함으로써 이 시를 사적인 경지에서 승화시킬 수가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은 그칠 것이다. 눈도 그치고 그러다 다시 퍼붓고 하는데 사랑이라고 다르랴. 다만 그때 그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할 따름이다. 사랑이, 이토록 열렬한 사랑이 그칠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 기다림의 순정성만 있다면 떳떳할 수 있다. 반드시 그칠 줄 확신하는 것만큼, 지금 그대를 사랑하는 것도 분명한 일. 그래서 나는 지금 그대에게 이 사랑을 고백한다. 기다리겠노라고. 그 기다림이 사랑이라고. 그래서 이 편지는 '즐거운' 편지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진정한 사랑은 짝사랑이라 하더라도, 정작 짝사랑하는 이는 고통스러운 법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니, 이쯤 해서 '불후의 명곡'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들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사랑해선 안 될 게 너무 많아
그래서 더욱 슬퍼지는 것 같아
그중에서 가장 슬픈 건
날 사랑하지 않는 그대
내 곁에 있어 달라는 말하지 않았지
하지만 떠날 필요 없잖아
보이지 않게 사랑할 거야
너무 슬퍼 눈물 보이지만
어제는 사랑을
오늘은 이별을
미소 짓는 얼굴로 울고 있었지
하지만 나 이렇게 슬프게 우는 건
내일이면 찾아올 그리움 때문일 거야
신승훈 작사·작곡. <보이지 않는 사랑>
'보이지 않는 사랑'은 '등 뒤의 사랑'이다. 사랑도 하지 못한 짝사랑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은 기다림이 있기에 이별한 짝사랑의 고통보다는 크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은 기다림이라기보다 집착에 가까워 보인다. 해가지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사소하게 그의 등 뒤에서 사랑을 하리라는 이 맹세가 황동규의 그것과 다른 이유다. 게다가 이런 그리움은 기다림보다 더 절망적이다. 같은 짝사랑이라 하지만, 그래도 그대의 등 뒤에서 하나의 배경으로 자리 잡아 그대를 지켜보는 황동규의 사랑은 그나마 여유가 느껴진다. 그러기에 미소 짓는 얼굴로 울고 있다는 표현처럼 신승훈의 이것은 즐거운 편지가 되지 못하는 게다. 슬프다는 말이 네 번이나 반복되는 것, 그리하여 끝내 신승훈은 마지막 음에서 목울음을 떨며 삼키는 기교를 보여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고통의 사랑, 더 큰 사랑의 고통, 그대 등뒤에라도 머물고 싶었지만 모진 마음 다잡아 스스로 등을 돌려야했던 사랑도 있다. 다음을 보라. 제목부터가 ‘배경’, 곧 등 뒤의 존재이다.
등 뒤의 수평선
제주읍에서는
어디로 가나, 등 뒤에
수평선이 걸린다.
황홀한 이 띠를 감고
때로는 토주土酒를 마시고
때로는 시를 읊고
그리고 해질녘에는
서사書肆에 들르고
먹구슬나무 나직한 돌담 문전 門前에서
친구를 찾는다.
그럴 때마다 나의 뒤에는
수평선이
한결같이 따라온다.
아아 이 숙명을, 숙명같은 꿈을,
마리아의 눈동자를
눈물어린 신앙을
먼 종소리를
애절하게 풍성한 음악을
나는 어쩔 수 없다.
-박목월, <배경>
적어도 그 사연을 알기 전까지는 이 시를 해석할 수가 없었다. 대충은 짐작이 갔다. 제주는 셈이니까 어디서나 수평선이 있을테고, 그 수평선을 허리띠마냥 감고 술 마시고 시를 짓고 서점을 오가는 낭만적 정경을 노래한 것으로 해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다음 이어지는 부분에서 발생한다. 이 수평선이 따라온다는 게다. 의인법일까?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것이 '숙명'이요, '숙명 같은 꿈'이요, 거기서 더 나아가 '마리아', '신앙', '종소리', '음악'이 되고 만다. 목월은 이렇게 나열하길 좋아하는 시인이 아니다. 나열은 들뜨기 쉽고 자칫 수다스럽다.
더구나 마지막 구절, 어쩔 수 없다니, 그것은 운명 따위를 일컫는 말. 그렇다면 수평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신앙과 음악 같은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것들이 운명이란 말인가. 그렇게 보자면 시의 분위기 파악이 난감해진다. 꽤나 만족하고 정겨운 낭만적 삶의 풍경을 연출하는가 싶더니, 자신을 따라온 수평선을 발견하면서부터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야 하는데 벗어날 수 없는 애절함, 그러면서도 풍성한 아름다움이 함께 노래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딘가 비약이 있는 시 정도로 치부해 두고 기억 속에 묻어 두었다. 박목월月, 1916~1978 평전 속의 그 사연을 읽기 전까지는.
이 시의 배경에는 신승훈의 노랫말처럼 '사랑해선 안 될 사람과의 러브스토리가 담겨 있다. 전쟁 중 대구에서의 일이다. 서른여덟 나이의 유부남 박목월 시인을 흠모하던 여대생이 있었다. 서울로 환도한 이듬해, 그녀의 구애에 목월도 호감을 갖게 되지만 자책을 느낀다. 후배 시인 황금찬에게 부탁해 그녀로 하여금 단념하도록 부탁도 해 보았지만 도리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겠지요”라는 대답만 들을 따름이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해 가을, 목이 자취 없이 사라졌다. 그녀와 함께 제주도에 살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은 몇 달이 지나서의 일. 제주 생활 넉 달째 되던 어느 겨울날, 목월 선생의 부인 유익순 여사가 그들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말없이 보퉁이를 하나 내민다. 무슨 사달이라도 벌어지려는 걸까? 허나, 거기에는 그들 두 사람을 위한 한복이 한 벌씩 들어 있었다. 더불어 그녀는 생활비가 담긴 봉투도 내어놓았다. 부인 앞에서 여인은 울었다. 그녀는 목월과 헤어졌고, 목월은 서울로 올라오게 되지만 차마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효자동에서 잠시 하숙 생활을 하며 스스로를 정리한다.
이제 비로소 앞의 시 <배경>이 이해가 간다. 섬나라 제주도가 수평선을 벗어날 수 없듯, 운명같이 다가온 그녀를 벗어날 방법도 없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벗어나야 할 당위는 알지만 당분간 이라도 그럴 의지는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황홀한 띠'와 같다고 하였으니 말이다. 제주도에서의 삶, 그 남국의 정경과 풍광, 거기서 벌이는 애정의 도피, 토주를 마시고 시를 읊고 책방을 찾는 즐거움, 그것은 일단 황홀경이었으리라. 하지만 '띠'는 장식이자 구속이기도 한 것. ‘허리띠'의 은유는 늘 그런 양면성을 지닌다. 그러기에 한결같이 따라오는 앞서지 않고 늘 등 뒤에 수평선처럼 따라다니는 그녀, 그것은 구속이자 구원救援이기도 했다. 마리아와 같은 구원의 여인에게서 사랑과 위안을 얻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신앙과 양심의 갈등으로 인해 번민도 많았으리라. 그녀에게서 마리아의 눈동자와 눈물의 신앙을 읽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래서 시인은 토로한다. 어쩔 수가 없노라고.
그래서일 것이다. 가정으로 돌아가기 전 효자동에서 하숙 생활을 하던 목월은 <효자동>이란 시를 남기거니와 그 시에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마태복음> 5장과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는 구절이 나온다. <마태복음》5장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로 시작하는 이른바 '산상 설교'의 첫 부분이다. 이 장의 27절부터 32절까지는 간음과 혼인에 관한 설교가 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로 유명한 이른바 '사랑 장'이라 불리는 부분이다. 그리하여 역시 하숙 시절에 쓴 <뻐꾹새>라는 시에서는 '기도가 눈물처럼'이 아니라 '눈물이 기도처럼 흐른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등 뒤의 그녀는 어찌 되었을까? 목월의 등 뒤를 떠나살다가, 가다가다 <이별의 노래>가 들려올 때마다 그걸 듣는 그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30년 만에 시인이 찾아가 딱 한 번 차한 잔 마시며 담배 한대 피울 시간만큼 만나고 돌아섰다는 후일담이 전해지긴 하지만 그것은 다 호사가의 관심사에 속할 뿐이다. 윤리라는 문제가 걸리긴 해도, 그녀 역시 슬프고 아파할 권리가 있다. 그녀 역시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떠남 또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다. 그리하여 지난 숙명은 ‘숙명 같은 꿈'으로 돌리고, 새로운 숙명으로서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황동규처럼 그녀도 기다렸다. 반면에 그녀는 짝사랑을 성취했다. 그러나 잠시였다. 그리고 떠나야 했다. 아마 그녀의 사랑도 어디쯤에서 그쳤을 것이다. 물론 이런 유의 전설에는 어느 정도의 각색이 가미되게 마련이다. 실제로 이들의 사연과 관련해서는 이러저러한 뒷이야기와 이설이 전해진다. 박목월 시에 김성태가 곡을 붙인, 지금도 널리 애창되는 가곡 <이별의 노래>가 이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는 설도 그중 하나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 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박목월 시 · 김성태 작곡, <이별의 노래>
헤어지는 노래에 '아!' 같은 감탄사야 항용 등장함 직하지만 너'도' 가고 나도 간다는 이 보조사 '도'의 의미가 심상치 않게 들린다. 대개 이별은 그'가' 떠나고 나는' 보내거나 그 역 이라야 노래가 되는 법인데 이 노래는 그렇지가 않다. 무슨 특별한 사건이나 사유가 있어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허락된 운명의 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동시에 각자 제 갈 길로 가야 한다는 것, 그 사연이 바로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에 담겨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들 스토리의 전말을 듣고 보면 더욱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 노래는 목월의 제주행보다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스캔들에 관한 한, 실증에 따른 정설 확인처럼 무모하고 무익한 것도 드물다. 다만, 이들의 사랑에 관한 모든 전설은 전적으로 시인 박목월 편에서 구성되고 회자된 것이란 점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인식적 습관은 종종 박목월은 미화하고 마치 그녀는 평생의 영광처럼 목월과의 추억을 간직했으리라 여기곤 하지만, 어쩌면 그녀야말로 억울했을지도 모르며 참회의 세월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녀야말로 하고픈 말이 많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침묵해야 했다. 시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러기에 이제 그녀에게 이 노래, 김수희의 〈애모〉를 바친다.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세월의 강 넘어 우리 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데
얼만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
한마디 말이 모자라서 다가설 수 없는 사람아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데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여
·유영건 작사·작곡, <애모>
아마도 그녀 역시 목월 앞에만 서면 작아졌을 것이다. 등 뒤에 수평선처럼 행복하게 따라다녔지만 한편으로는 그녀 또한 늘 눈이 젖어 들었을 것이다.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했던 여인, 그녀도 아마 평생 목월을 잊지는 못했으리라.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시간을 초월한 남녀 간의 애틋한 만남을 다룬 영화 <동감>처럼, 황동규가 연모한 그 여대생이 바로 목월을 사랑한 여대생이었다면, 과연 어떤 시가 탄생했을까? 더구나 황동규의 아버지는 박목월의 친구 황순원! 그리하여 만일 우리의 발칙한 상상대로 영화가 만들어져 기쁜 우리 젊은 날>이나 <편지>처럼 시를 삽입하고자 한다면, 어떤 시를 택해야 할까? 사랑을 기다림으로 맞바꾸었다고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사랑이 그칠 줄 알지만, 막상 그 사랑이 맺어져 행복하게 지내다가 실제로 그 사랑이 그치게 되었을 때, 과연 황동규도 <이별의 노래> 같은 시를 썼을까? 그보다는 아마도 다음 같은 시가 더 적격이지 않았을까?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강은교, <사랑법>
떠날 사람 떠나보내고 등 뒤에서 침묵하는 자가 여기에도 있다. 물론 이 시는 연애시로만 볼 것은 아니다. 강은교喬, 1945~시인이 조심스레 자신의 성장 과정과 내면을 드러내 보인 글들을 보면 '가장 큰 하늘'이 등 뒤에 걸린 '그대'는 시인의 아버지인 것으로 보인다. 경기여자고등학교를 다니던 그녀도 황동규처럼 클래식 음악에 빠져든다. '르네상스' 음악실을 무상으로 출입하게 된 그녀에게 아버지는 점점 실망해 갔다. 어느 날 아버지는 회초리를 든다. 실망의 극에 달한 모습과 회초리는 그전에도 그 후에도 구경해 본 일이 없었다 하니 그녀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능히 짐작할 수가 있다. 결국 그녀는 그다음 순서로 책을 아주 열심히 읽게 되었고, 그녀 역시 카뮈와 같은 멋진 글쓰기를 갈망하는 한편, 성악 콩쿠르에 나가고 싶었지만 레슨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음악을 포기하게 된다.
그녀는 또 다른 황동규가 아니었던가. 등 뒤에서 하늘을 볼 줄 아는 눈이 그들은 닮았다. 기다림과 침묵, 그 성숙이 닮았고, 사랑을 버림으로써 큰 사랑을 얻는 사랑의 역설도 닮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목월의 그 여대생을 닮았다. 집착하면 안 된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을 두 눈 온전히 뜨고 봐서도 아니 되고 눈 감아서도 아니된다. 자유로이 홀로 떠나고 홀로 잠들도록, 안 보는 척하며 끝까지 그 모습을 바라보아야 하나니, 그 눈이 바로 실눈인 것이다. 뿐이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진정한 실체, 곧 그대 등 뒤에 걸린 커다란 하늘은 눈을 부릅떠도 아니 보이고 눈을 감아도 아니보이나니, 가느다랗게 실눈을 뜨고 애써 들여다보아야만 비로소 보이는 법이다.
하지만 <사랑법>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소통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철저히 내면적인 목소리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런 침묵이 오래되면 미칠 수도 있을 정도로. 그러니 우리의 발칙한 상상은 여기에서 그쳐야 한다. 짝사랑 그 운명 같은 사랑에 대해, 오랜 기다림 끝에 아주 잠시 동안 허락된 사랑의 기쁨과 고통에 대해, 그 뒤에 찾아오는 고적한 삶에 대해 우리야말로 침묵해야 한다. 지독한 사랑의 노래 끝에는 침묵만이 남을 뿐이다.
이제 강은교 시인에게도 영화 속 노래를 하나 바치고자 한다. 스페인 영화계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 1949~ 감독의 영화 <그녀에게 Hable Con Ella〉다. 베니그노는 발레리나 알리샤를 짝사랑한다. 물론 그녀는 모른다. 그런데 그만 알리샤가 식물인간이 되고, 그런 알리샤를 베니그노는 4년 동안 지극 정성으로 보살핀다. 옷을 입혀 주고 화장과 머리 손질을 해 주고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항상 마주하고 항상 곁에 있고 항상 말을 하지만, 그것은 등 뒤의 짝사랑과 조금도 다를 바 없으며, 침묵과도 다를 바가 없다. 그녀에게 말을 걸지만 그녀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한없는 괴로움 속을 헤맬 때에 오랫동안 그녀가 누워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다. 가장 큰 하늘이 바로 베니그노의 등 뒤에 있음을 과연 그녀가 알게나 될까? 베니그노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한다. 병실에 꽃을 치장하고 커튼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지만,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죽음 곧 무덤에 대하여 그는 서둘지 않고 침묵한다. 그저 실눈으로 그녀가 홀로 잠드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이 영화 속의 노래, 브라질 음악가 카에타누 벨로주 Caetano Veloso, 1942~ 의 <쿠쿠루쿠쿠 팔로마cucurrucucu paloma>를 들어 보라. 왜 이 노래 하나만으로도 영화 값이 아깝지 않다고들 하는지 알게 될게다. 안타깝게도 나의 재주로는 애절하게 풍성한 이 노래를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으니 침묵할밖에. 다만 이 노래가 <사랑법>의 배경 음악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그것이 강은교 그녀에게 아니 지금도 누군가의 등 뒤에서 사랑하는 모든 그와 그녀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우리 청산포 사람들
죽지 않고 살다 보면 꼭두 일 년에 한 번씩은
이렇게들 만나는군.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라는데
우리 죽지 않고 살아 만나는 게 이게 어딘가
철수, 용복이, 상철이, 또 내 아는 국민학교 동창들
갓 20대 안팎으로 여드름을 달고 와서
어른이 되고 호주가 되고
대물림 끝에 외톨박이로 떠돌던 놈들,
이젠 제법 출세도 했다.
희끗한 머리에 장군이 되고 사장이 되고
과장, 계장, 주사 하다못해
교회당 종지기 노인의 아들이었던
끝남이도 어엿한 목사가 되었다.
우리 청산포 사람들
창경원의 벚꽃이 함빡 구름처럼 피는 날
명함을 박지 못한 놈들만 구석지에 모여
언제나 기가 꺾였다.
저희들끼리 키득거리고 술잔을 엎었다.
가설무대에서 마이크가 울고
삼류가수보다 못한 굳세어라 금순이가 울고
흥남 부두에 눈발이 쳤다.
새로 바뀐 전화번호를 적고 번지수를 건네받다 보면
새로 끼인 얼굴도 한둘.
산속의 댕댕이넝쿨처럼 모진 인연들만 얽히고 설켰다.
이잣돈에 차용증서 재판건이 나오고
저희들끼리 치고 받았다.
우리 청산포 사람들
막판엔 면장이 나서서 인사말에
우리 청산포 아바이들, 힘주어 수십 번도 더 들먹거렸고언제나 그랬듯이 총무란 작자가
회관건립기금 기부자 명단을 호명하면
코빼기도 안 보인 장군이다 사장이다
출세한 놈들의 이름자만 거드름을 피웠다.
이 모임도 이젠 시들해졌군
누가 탄식을 했고
변질됐어 종간나새끼들!
누가 맞받아 응수를 했다.
아, 결국은 조금씩 취해서 돌아오는 길
못난 놈들만 고향냄새를 풀어놓고 돌아오는 밤길
해마다 이맘때면 구로공단 막바지 언덕길엔
하늘 높이 둥근 달이 떠서
내 고향 성천강 물소리만 귀에 부서졌다.
송수권, <면민회의 날> 188쪽
아버지의 이름으로
5월 8일 '어버이날', 1974년 이전까지는 '어머니날'이었더랬다. 어릴 적 그날이 오면, 이 못난 자식도 용돈을 털어 카네이션 한송이 사다 어머니 가슴에 달아 드리곤 했다. 그 곁에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이 드셨을까? 섭섭해 하셨을까? 당연하다고 여기셨을지도 모른다. 이 땅의 아버지들조차 사랑과 희생의 상징은 어머니요, 그래서 당신들도 어머니께 감사하는 데는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어머니날'만 있는 건 너무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날'을 따로 만들 수도 없는 일. 해서, '어버이날'로 바뀌긴 했는데· · · · · ·. 헌데 '어버이날'이 되었어도 어쩜 어버이에게 딱히 바칠 노래는 그리도 없는지, 여전히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으로 시작해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 푸른 하늘 그 보다도 높은 것 같애"로 끝나는 <어머님 은혜>나,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로 시작해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로 끝나는 <어머니 마음>을 부르곤 한다.
그렇다면 어버이, 곧 부모를 노래한 곡은 없을까? 있긴 있다. 1960년대 서영은이 작곡하고 유주용이 취입했다가 훗날 후배 가수 홍민의 곡으로 널리 알려진 <부모.란 대중가요가 있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 김소월 <부모>
노랫말과 아주 조금 차이가 나지만 이것이 원시(原詩)다.
소월 김정식의 아버지 김성도는 소월이 두 살 때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몰매를 맞았고 이로 인해 정신 이상을 일으켜 평생을 실성한 사람으로 지냈다. 이런 아버지를 둔 어린 소월의 생활, 그 심정은 어떠했으며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어떠했을까? 어린 소월은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정말 열심히 살고자 했던 소월. 그러나 그의 생은 너무나 힘들었다. 부모가 되었으면 부모 마음을 알 법한 사람이 그래서는 아니 될 터인데, 특별히 자기 자식들만은 자기 같은 상처가 없도록 훌륭한 아버지고 되고 싶어 했을 터인데, 오죽하면 여섯이나 되는 그 새파란 자식들을 놔두고 스스로 생을 접었겠는가. 이것은 슬픈 아이러니다. 그런 아버지 밑에 자라난 자신이 한(恨)이면서 자기 자식들에게 자살한 아버지를 두게 한 셈이니 그 한이 오죽하랴.
p237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이른바 '드라마뮤비' 제작이 유행이던 2002년경, 눈 내린 풍경을 촬영하기 위해 소금과 인공눈을 뿌리는 등 당시 제작비만 3억 8,000만 원이 소요된 마치 한 편의 시대극 같은 뮤직비디오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이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하고, 추운 겨울의 무거운 분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도시 철거민의 아들과 대통령 경호실장 딸의 순애보 같은, 그러나 비극적인 첫사랑 이야기가 흑백 화면에 펼쳐진다. 그들의 사연이 무려 8분에 가까운 러닝타임으로 흐르는 동안, 처연하고 가슴 아픈 리듬앤블루스 풍의 노래가 우리의 귓가를 쉼 없이 울린다. 지영선의 <가슴앓이>는 그렇게 세간에 알려졌다.
밤별들이 내려와 창문 틈에 머물고
너의 맘이 다가와 따뜻하게 나를 안으면
예전부터 내 곁에 있는 듯한 네 모습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네게 주고 싶었는데
골목길을 돌아서 뛰어가는 네 그림자
동그랗게 내버려진 나의 사랑이여
아-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그 큰 두 눈에 하나 가득 눈물 고이면
세상 모든 슬픔이 내 가슴에 와 닿고
네가 웃는 그 모습에 세상 기쁨 담길 때
내 가슴에 환한 빛이 따뜻하게 비췄는데
안녕하며 돌아서 뛰어가는 네 뒷모습
동그랗게 내버려진 나의 사랑이여
아-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 강영철 작사·작곡, <가슴앓이>
이 정도면 한 편의 시가 되기에 충분하다. 특히 골목길을 돌아서 뛰어가는 네 그림자"나 "안녕하며 돌아서 뛰어가는 네 뒷모습 같은 장면은 비록 전형적이고 통속적이긴 하되 여전히 순수하고 애틋한 정조를 불러일으킨다. 원수 같은 이별이나 지나치게 비극적인 이별보다 이런 애틋한 헤어짐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법이다. 그런가 하면 "동그랗게 내버려진 나의 사랑이여"같은 표현은 얼마나 뛰어난 시적 성취인가. '동그랗게 내버려진 다니 무슨 뜻일까? 비슷한 말로 '동그마니'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외따로 오뚝하게 내버려진 상태, 즉 둘이 있다 갑자기 혼자만, 그것도 속된 말로 뻘쭘하게 남았을 때 그 상태를 이른 말인 것. 골목길 이별 장면에 혼자 남은 사람의 모습과 그 심정을 떠올려 보라. 시적 화자의 심리를 이렇게 형상화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여하튼 사정이 이러하니 시적 화자는 이제 그녀를 뒤따라갈 수도, 혼자 삭일 수도 없는 것. 이 시의 화자는 그녀의 이별 선언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정도의 무슨 사연이 있는 듯한데, 그러자니 비난도 저주도 욕설도 할 수 없고, 다만 만남처럼 헤어짐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상태인 것. 그러나 그럴수록 가슴은 아파 오고……………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홀로 외쳐 보는 것이다. 아, 어쩌란 말이냐. 조각조각 흐트러진 이 가슴, 이 아픈 가슴을.
그렇게 본다면 사실 뮤직비디오의 내용이나 분위기는 이 시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솔직히 말해 이 뮤직비디오는 내용 과잉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잉은 오히려 사랑의 진실을 사치하게 보이도록 할 뿐이다. 아니, 사랑은 그 자체로 감정의 과잉이다. 그래서 사랑은 극적 과잉이 없어도 당사자에게는 이미 그 자체로 운명적이기에 충분히 극적인 것이다. 이 뮤직비디오에서는 다만, 권상우와 함께 열연했던 당시만 해도 낯선 아역 신인에 불과했던 문근영, 그녀의 “그 큰 눈에 하나 가득 눈물 고이던 모습만이 가사의 느낌을 여실히 전해 주었을 따름이다.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긴 하나, 마찬가지로 그런 점에서 나는 가슴을 후비고 쥐어짜는 듯한 지영선의 리듬앤블루스 풍 편곡보다 좀 더 순수하고 맑게 들리는 포크송 같은 이 노래의 원곡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1983년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강영철과 메인보컬을 맡은 양하영으로 이루어진 혼성 듀엣 '한마음', 그리고 이후 솔로로 독립한 양하영이 다시 부른 <가슴앓이>에는 별 과잉이 없다. 어둡지만도 않고 밝지만도 않다. 부를 수만 있다면 듣는 내가 오히려 한 옥타브 더 올려 가슴 터지게 후렴구를 불러 보고 싶은데 정작 가수는 절규에까지 이르지는 않는 수위에서 어쩌란 말이나는 말만 반복한다. 그런데 그 반복이 묘한 호소력을 갖는다. 그래, 어쩌란 말이냐. 어쩌란 말이냐. 이걸 너무 소리 높여 반복하면 악쓰는 꼴만 되고 만다. 그건 가슴앓이가 아니다.
가슴앓이를 겪어 보았는가. 십대든, 이십대든, 아니 늙어서도 운명 같은 만남과 헤어짐의 상처는 정녕 가슴을 앓게 만든다. 그것은 결코 비유가 아니다. 정말로 가슴 부위를 가격당한 듯 가슴이 아프다. 진짜로 목구멍부터 명치 부위가 때로는 뭔가로 가득찬 듯 답답하게 때로는 텅 빈 것처럼 허탄하다. 그럴 때면 절로 한숨이 터진다. 가슴은 산산이 흐트러진다. 아, 어쩌란 말이냐.
여기에는 천하장사도 대책이 없다. 사랑 앞에서, 운명 앞에서,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어쩔 수 없는 사랑과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서는 정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만일 그 사랑과 운명이 세상이 허락지 않는 거라면 그 가슴앓이는 더할 수밖에 없고, 그때는 극적 과잉마저도 과잉이라 하지 못할 것이다. 시인이라고 이에 다르랴.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는 않을 그들의 사랑 노래를, 한 시인의 경우를 통해 슬쩍 엿들어 보자.
생명파의 시인으로 알려진 청마 유치환柳致環, 1908~1967. 여성적이고 감상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던 당시의 우리 시단과 확연히 차별되는 성격의 작품을 남긴 시인. 하지만 그의 시를 지나치게 남성적, 관념적, 의지적인 것으로 못 박는 것만은 사양해야 할 일이다. 가령, 다음 작품 <그리움 1>에 등장하는 '깃발'을 그의 대표작 <깃발>과 비교하며 읽어 보라.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긴 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 유치환, <그리움 1>
여기서 '깃발'은 의지의 화신이라기보다 허무하고 가련한 자아의 표상일 따름이다. 이런 작품을 굳이 관념적으로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너'를 굳이 이상향으로 보아야 할까? '너'는 역시이상적인 연인으로 봄이 적절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시는 예전에 늘 같이 거닐던 곳에서 '너'를 찾아보지만 만날 길 없어 안타까워하는 연애시로 보는 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노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 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畵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 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유치환, <바위〉
이 작품은 확실히 의지적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에 흔들리지않으며, 비바람 같은 시련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치 도를 닦듯 그저 침묵하고 수련하여 심지어 생명까지 초월하는 존재, 시인은 그런 바위 같은 존재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즉자신의 바람대로라면 그는 애련 곧 사랑의 아픔 따위에는 끽 소리조차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웬걸, 그의 다음 시 <그리움 2>를 보라.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 유치환, <그리움 2>
혹시 앞서 인용한 <가슴앓이>의 노래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유치환 시인의 가슴앓이, 그 답답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 애련 따위는 의지로 극복하고자 했던시인은 어디 가고, 이토록 짧은 시 안에 “어쩌란 말이냐”만 반복하면서 절규하고 또 한탄한단 말인가.
이 시를 읽는 데도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여기서 '임’은 바위다. 바닷가의 갯바위건만 바위 정도가 아니라 육지처럼, 말 그대로 뭍같이 파도 따위에 까딱도 않는 존재 자신의 시 <바위>에서 그토록 바라던 경지가 이것 아니던가. <바위>에서라면 이 <그리움 2>의 바위는 화자인 '내'가 흠모하고 따라야 할 정신과 영혼의 스승이리라. 하지만 그가 변했나? '나'는 그를 움직이고 싶어한다. 그가 흔들리길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 파도도 임을 못 움직이니 난들 어찌하겠느냐는 자탄만 내뱉고 있는 것이다.
둘째, 여기서도 역시 '바위'는 화자 자신이다. 그리고 임은 나와 거리를 두고 있는 또 다른 바위거나, 아무튼 뭍에 가까운 쪽 어디에 서 있는 존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파도는 나를 자꾸 밀어붙이며 그에게 가라고 한다. 마치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친구들이 고백을 부추기듯이 말이다. 한데 임은 까딱도 않으니 나는 도리어 파도가 원망스럽다. 어쩌란 말이냐 이런들 임은 꿈쩍도 않는데 왜 자꾸 나를 흔드느냐 도대체 파도야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어느 쪽으로 보든 연애시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도대체 시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청마는 통영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훗날 극작가로 성공한 형 유치진과 더불어 일본으로 건너가 도오야마 중학교를 다니다가 한의원을 하던 부친의 사업이 기울자 귀국해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한다. 1928년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한 그는 진명유치원 보모로 있던 권재순과 결혼한다. 어릴 적 주일학교 시절부터 만나 매일같이 신문을 보내며 오빠, 누이로 지내던 사이.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신식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그 결혼식에서 꽃을 들고 섰던 어린아이가 바로 훗날 시인으로 성장한 김춘수였다. 이만하면 유복한 결혼 생활이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청마의 여성 편력은 간단치가 않았던 성싶다. 그러던 그가 운명의 여인을 만나게 되면서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며 애련에 물들어 버리는 사태가 전개되고 만다. 그녀가 바로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李道, 1916~1976다.
스물한 살 때 결혼하여 대구에 살았던 정운, 그녀는 남편이 폐결핵을 앓자 약국을 경영하던 언니가 살고 있는 통영으로 옮겨오게 된다. 하지만 해방 닷새를 앞두고 남편은 결국 딸자식 하나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난다.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정운은 이듬해인 1946년 10월 통영여자중학교의 강사로 나서게 된다.
그곳에는 해방 직전 만주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1945년 10월부터 교편을 잡고 있던 청마가 있었다. 이리하여 시인 남녀가 한학교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정운의 오라버니는 바로 대구에서 청마와 교유한 바 있는 시조시인 이호우李鎬雨, 1912~1970가 아니던가. 남매 시조시인으로 이미 이름이 알려진 정운과 형제문인 청마의 기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뿐 아니라 통영에는 당대의 아동문학가 향파이주홍李周洪, 1906~1987과 소설가 최해군崔海君, 1926∼도 있었다. 최해군에 따르면 그들 넷은 신선대 아래 용당동 바닷가를 거닐다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의 옛 주막에 오르곤 했는데, 그곳에서는 노파가 마루에 둥근 상을 펼치고 조그마한 동이에 담긴 막걸리에 잔네 개와 나물 한 보시기를 올렸다고 한다. 그렇게 술잔이 오가면, 그 술잔 사이로 이야기들이 푸짐해지면서 향파의 해학과 정운의 잔잔한 미소와 청마의 호탕한 웃음이 일기 시작했다는 게다. 넉넉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것으로 족하거나 그렇게 끝날 수만은 없었던 것. 서른여덟의 청마는 갓 서른이 된 정운의 미모와 재능 앞에서 눈이 멀고 만다. 한복을 즐겨 입던 그녀의 단아한 아름다움은 이미 당대 많은 문우의 마음을 설레게 했거니와 무엇보다 문학을 비롯하여 그녀의 정신세계를 공유하면 할수록 청마는 혼절할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시와 편지를 바친다. 그러나 정운은 비록 홀몸이긴 하나 유교적이고 전통적인 규범을 깨뜨릴 수 없었고 더욱이 청마 유부남이었던 것. 정운은 마음의 문을 닫고 청마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럴수록 청마는 가슴을 앓는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꿈쩍도 않는데 어쩌란 말이냐. 그 시는 바로 이런 사연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의 편지는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곤 했다. 연애할 때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하는 판에, 시인이 연애를 하기 시작했으니 오죽하랴. 굳게 닫힌 그녀의 마음을 열고자 그는 자신의 가슴앓이를 이토록 처절히 고백하곤 했다.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마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 눈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릿길입니까? 끝내 만릿길의 세상입니까? 정향!차라리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죗값으로 사망에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아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 유치환, 1952년 6월 29일 편지 중에서
한동안 편지에서 청마는 그녀를 정향이라 칭했다. 정향이란, 가수 현인이 부른 <베사메무초>에 나오는, 프랑스 말로는 리라꽃이요, 가수 이문세가 부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영어로는 라일락꽃이요, 순수 우리말로는 수수꽃다리라 부르는 꽃을 이르는 말이다. 28일에 쓴 편지에서도 그는 “나의 구원인 정향! 절망인 정향! 나의 영혼의 전부가 당신에게만 있는 나의 정향! 오늘 이날이 나의 낙명의 날이 된달지라도 아깝지 않을 정향"이라고 불렀다. 쉽게 말해 당신 없인 못 살겠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당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또한 살기힘들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구원'인 동시에 '절망'인 사랑 때문이다. 그리하여 편지에서 시인은 항의한다.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라고. 동시에 그는 정향을 원망한다. 정말 내 사랑이 들리지 않느냐고, 입을 여미고 왜 말 한마디 없느냐고. 왜 일부러 우리 사랑에 눈을 감으려 드느냐고, 과연 이렇게 사랑하는 내가 미련한 것이냐고, 아니면 서로의 우정과 사랑을 십분 감지하면서도 신분상의 이유로 짐짓 서로를 멀리해야 하는 것이 미련한 것이냐고. 정말이지 연애만 하면 역설과 아이러니는 수사법도 아니다.
우리는 이해해 주어야 한다. 한 교무실에서 매일같이 마주하고 늘 저만치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편지를 써야 했던 청마의 심정을, 그 고통, 그 가슴앓이를 말이다. 그에게 그것은 얼마나 행복이고 또 저주였을까. 사랑하면서도 사랑해서는 아니 되고 더욱이 늘 가까이에 마주하면서도 멀리해야 하니 그것이야말로 '지척 같으면서 만릿길'이 아니었겠는가. 그런데 끝내 그것이 만릿길로 종결될 것이라면? 청마는 이제 '하나님께 원망한다. 이런 사람을 왜 나와 같은 세상에 주셨냐고. 가까이 못할 것이라면 왜 이리 아름다운 사람을 곁에 주셨냐고.
이 대목에서 우리는 새삼 <깃발>의 마지막 구를 떠올리게 된다. “아아 누구던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이때의 '그'는 말할 것도 없이 곧 '하나님'이요, 운명이다. 청마는 희구한다. 이러느니 차라리 그녀를 꿈꿀 수조차 없게,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나를 보내달라고. 그것이 설령 '사망의 길'이라도 그편이 낫겠노라고. 같이 있어 행복하고 같이 있어 괴로운 이 모순, 내가 살아야 할 이유이자 내가 죽고 싶은 이유가 될 정도의 이 모순, 이 편지의 주제는 바로 사랑과 운명의 모순이다. 이번에도 또 들려온다. 그런즉, 아, 어쩌란 말이냐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그런데 삶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다.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으면 어쩌지 않으면 그만이다.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어른스러운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치환은 남성적이 의지적이진 않아 보인다. 관념과 육체가 일치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더구나 그는 여전히 낭만적이다. 사랑 앞에서 그는 맹목이 되는지도 모른다. 특히 운명 같은 사랑이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거기에 나이가 문제 될 것도 아니다. 신분상의 금기는 그 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오히려 열정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그러나 청마의 사랑은 순간의 애욕도, 일시적인 욕정도 아니었다. 정운은 그에게 이상의 여인, 구원의 여인이었을 따름이다. 하루 이틀, 아니 일 년 열두 달이 가도 그 마음은 변하질 않았다. 그만큼 집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만큼 순수했다는 증거다. 오로지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그는 시와 편지를 쓰고 또 썼다. 그러니 그것은 마치 기도와도 같지 않았을까.
그 기도가 통하였는지, 그 사랑과 정성에 감복했는지, 마침내 바위처럼 꿈쩍 않고 물같이 까딱 않던 그녀의 마음에 서서히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3년이 넘도록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시편에 그녀의 마음이 드디어 움직인 것이다.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
이들의 애정이 어느 정도였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플라토닉한 사랑이었는지 농염한 사랑이었는지 그런 것도 실은 호사가의 관심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정운의 다음과 같은 시조를 대하노라면 말 한마디 없어도 서로의 마음과 영혼까지 오고 가는 충분히 사랑하면서도 애달프고, 애달프면서도 충분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 이영도, <무제 1〉
마치 여인네의 고시조 작품마냥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라니, 참 솔직한 표현이지 싶다. 그리고 참 단아한 사랑이지 싶다. 거북했던 사람. 그러나 참 다정했던 사람 만나자니 민망하고 아니 만나자니 슬픈 사랑 그 경계에서 정작 만나면 그저 이심전심으로 아무 말 없이 가슴을 주고받은 사랑.
정운과 사랑을 나누게 된 이후, 직장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청마는 단 한두 시간을 만나기 위해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먼 길을 달려왔다. 길은 험했고 버스는 느렸다. 정운 역시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게 만나 아무 말 없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도, 서로를 존경했기에, 서로의 처지를 이해했기에, 그저 하염없이 보내야 했다. 하지만 행복했다. 사랑했기에.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행복>
이 시, 특히 마지막 연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이것은 우리 한국인에게 시구가 아니라 만고불변의 경구처럼 되었다. “사랑하였으므로 나는진정 행복하였네라." 이것은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바칠 수 있는가장 아름다운 헌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연애편지를쓸 때면 줄곧 베껴 쓰곤 하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두 구 사이의 한 줄, 곧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라는 대목.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보낸 그정도의 정성과 사랑을 바친 이에게만 그 경구와 헌사가 합당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청마는 정운과의 사랑을 통해 결국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사랑 시편 〈행복〉을 남기게 된 셈이다. 그리고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청마는 1967년 2월 13일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이라는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세상을떠나고 만다. 그날 밤 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인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고혈압 때문에 사이다만 마셨던 청마는 부산의 수정동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그만 버스에 부딪히고 말았던 것이다. 천국에는 우체국이 없었을까. 이날로 그의 편지는 끝이 난다.
세상을 뜰 때까지 청마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20년 동안정운에게 편지를 보냈다. 보낸 이만 정성이었을까. 받은 이 정운도 정성이었다. 그녀는 그 많은 편지를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정운도 청마에게 얼마나 편지를 보냈는지 그건 알 길이 없지만정운이 알뜰히 모아 놓은 청마의 편지는 전란 때 불타버린 예전것을 제하고도 무려 5,000여 통!
그의 사후, 당시의 주간지에 이들의 러브스토리가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이 계기가 되어 청마의 편지 중 200통을 추려 같은 제목의 단행본이 출간된다. 그런데 이 러브레터가 책으로 나오자마자 엄청난 주문이 몰려들면서 일약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그것이 유치환과이영도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관심 때문이든, 유명인의 러브스토리와 러브레터를 엿보는 호기심에서 기인한 것이든, 베껴서라도멋진 연애시와 연애편지 한번 써 보려는 독자 대중의 심사에서비롯한 것이든, 그 시절의 그런 풍경이 그립고 부러울 따름이다.연예인의 별별 잡다한 러브스토리가 연일 방송과 인터넷을 장식하고, 연인간의 사랑 고백은 무슨 거창한 이벤트를 벌여야만 대단한 건 줄 아는 이 시대의 풍속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
청마를 지금의 시점에서 윤리적으로 비난하기는 쉬울지 모른다. 정운과의 사랑도 지나치게 미화되었는지 모른다. 실제로 청마의 부인 권재순 여사는 관심에서 벗어나기만 했다. 그녀 역시 청마와 오랫동안 연서를 주고받았고 집안에 별 벌이가 없을 때 유치원 보모 생활을 하며 가계를 돕는가 하면, 만주에서는 함께 고생을 하다가 어린 아들 하나를 언 땅에 묻고, 남편을 채근하여 통영으로 귀환케 하는 등 삶의 고비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왔건만 청마의 그 서한집 인세조차 정운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물론 정운은 그 돈을 시 전문지 <현대시학》에 작품상 기금으로 기탁했지만 말이다.
우연인가? <가슴앓이>의 원조 '한마음도 파도와 바위를 그린 <갯바위>라는 노래를 남겼다.
나는 나는 갯바위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파도
어느 고운 바람 불던 날 잔잔히 다가와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감싸고
향기로운 입술도 내게 주었지
세찬 비바람에 내 몸이 패이고
이는 파도에 내 뜻이 부서져도
나의 생은 당신의 조각품인 것을
나는 당신으로 인해 아름다운 것을
나는 나는 갯바위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파도
우린 오늘도 마주보며 이렇게 서 있네
- 강영철 작사·작곡, <갯바위>
파도도 바위도 원망할 것이 없다. 내 몸이 패여도 나의 생은 당신의 조각품이요, 나는 당신으로 인해 아름답기에, 어쩌면 이는청마와 정운이 들었어야 할 노래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지금 가슴을 앓고 있는 바로 당신이 들어야 할 노래인지도 모른다. 허나 어쩌랴. 부부였던 '한마음'의 두 사람조차 이제는 남남인 것을 운명아, 사랑아,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