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삼월이 코앞이건만 동장군은 좀처럼 물러설 기미가 안보인다. 계급장이 장성(將星)이라 그런지 보무도 당당하고 고집도 보통이 아니다. 슬슬 겨울이 지겨울만도 하지만 사실 이 계절에만 볼 수 있는 진풍경도 있다. 겨울손님 철새는 한반도에 날아와 한 계절을 함께 나는 이웃이자 진객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한반도는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다. 우리나라에는 10대 탐조 여행지가 있다. 비무장 지대를 끼고 흐르는 임진강을 비롯해 인천 강화도, 경기 안산 시화호, 강원도 고성.속초.강릉의 석호, 전북 새만금, 전남 해남 고천암호, 경남 창원 마산만 종암갯벌, 창원 주남저수지, 창녕 우포늪, 제주 구좌읍 등이다. 아! 하나 빠졌다.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인 충남 천수만을 빼놓을 수는 없다. 충남 보령, 홍성, 서산, 태안군의 경계에 위치한 천수만은 따뜻한 호수와 평야가 있어 쉼터와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철새들에게는 이름난 고속도로 휴게소같은 곳이다. 지난 연말 해를 보고, 대보름에 달을 봤으니 이제 곧 떠날 새를 보면 겨울과 이별에도 아쉬움이 없겠다 싶어 구름도 꽁꽁 얼어붙은 어느 날 천수만을 다녀왔다.
정치권 철새는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이지만 겨울 철새들은 탐조여행객들에게 인기다. 철새들은 동토 시베리아에서 여름과 가을을 나고, 혹한이 찾아들면 따뜻한 남쪽나라로 '해외여행'을 떠난다. 이곳이 바로 천수만이다. 노랫말에도 나오듯 '고단한 날개 쉬어가라'고 한껏 펼쳐진 평야에 떨어진 나락을 주워먹고 얼지 않은 호숫물 속 물고기를 잡는다. 천수만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곳이다. 1982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폐유조선으로 물을 막아놓고 간척사업을 벌여, 원래는 없던 평원을 만들어냈다. 사람에게도 고마운 일이지만 철새들도 쌍익(?)을 들고 환영했을게 분명하다.
한반도는 새계적인 철새도래지다.
천수만에서 탐조를 할 수 있는 곳은 서산 간월호와 부남호 일대다. 사계절 날아드는 철새 중 천수만의 겨울 철새는 약 70여종에 이른다. 까마귀 노는 곳에는 안간다는 백로를 비롯, 황오리, 기러기, 흑두루미, 가창오리, 노랑부리저어새, 흰꼬리수리, 흰죽지수리, 황새, 왜가리 등이다. 이중 환상적인 군무를 보여주는 가창오리가 가장 인기가 있다. 수천에서 수만마리가 일제히 날개짓을 하며 힘차게 날아오르는 가창오리는 사실 이제 보기 힘들다. 가창오리 군무는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인데 멸종위기를 겪고 있어 매년 천수만을 찾아오는 개체수가 부쩍 줄었다. 그래서 이젠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최근 농가들이 볏짚을 팔기위해 흰비닐로 둘둘 말아놓아 먹을거리가 적어진 탓도 있다. 추위를 피해서 내려온 새들인 만큼 추울수록 철새들의 움직임이 뜸하다. 한창 추울 때 벌써 남해안으로 다녀온 가창오리는 겨울의 막바지에 다시 한번 천수만에 들른다. 가창오리는 보통 이른 아침 해가 뜰 무렵과 해질녘 두번 날아오른다. 예보상 강추위가 멎는다는 이번주가 절호의 찬스다.
보령 이광명 고택
◇겨울바다, 그리고 한옥집
내친 김에 보령의 겨울바다를 즐겨도 좋다. 숨막히도록 뜨거웠던 여름 대천해수욕장 드넓은 백사장에 기타소리는 잦아들고, 이젠 한적하고 서정적인 겨울바다의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여인의 광장을 중심으로 난 길에 주차된 차량도, 이따금 불을 깜빡이는 네온사인도 그리 보기 싫지만은 않다. 속삭이는 파도소리를 좀더 정확히 감상하기 위해 해변을 걷는다. 콧속으로 밀려드는 청량한 바람엔 바다의 향기가 배어있다. 아빠 손을 꼭 붙들고 낯선 바다를 바라보는 아이도, 하나의 목도리를 함께 두른 연인들도 모두 바다의 교향곡을 함께 감상하는 청중이다. 수평선 너머 해가 저물며 황금색 커튼을 쳤다가 검은 막을 내릴 무렵까지도 파도의 연주는 계속되지만 청중들은 주섬주섬 일어서고 만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서해안 명품낙조는 천수만 탐조여행의 덤이다
보령에서 들러봐야 할 곳은 많다.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무창포도 있고, 겨울진미 굴을 잔뜩 구워먹는 천북 굴단지도 있다. 조선말 지어진 고택을 둘러보고 인근 펜션에서 초롱초롱한 겨울밤을 만끽할 수도 있다. 부엉새가 울어대는 보령의 한적한 시골마을 삼곡리. 국내 유일 입구(口)자 모양의 한옥 이광명 고택이 있는 곳이다. 이광명 고택은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의 딸과 혼담이 오가자, 왕가에서 품격을 세우려 거금을 내려보내 지은 집이다. 논밭 가운데 대숲 야산을 등지고 있는 고택은 빈틈없는 정사각형이 99칸 기왓집이다. 기와를 올린 지붕의 곡선이 화려하고 위엄이 있다. 집을 끝까지 두른 복도식 툇마루가 있고 복도를 따라 방들이 여럿 나있다. 겨울에는 한옥체험을 받고 있지 않지만 고택 뒷편에 지은 펜션에서 숙박하며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인근 산책로도 좋다. 고택의 돌담을 따라 걸으며 꼭꼭 숨은 봄을 찾아보는 걸음, 통통 튀고 있다.
서산.홍성.보령 | 글.사진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여행정보
서산 버드랜드는 다양한 철새의 정보와 탐조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
●가는 길=서울~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서산 방면 29번국도~안면도 방면 40번국도~천수만. 대천해수욕장은 서해안고속도로 대천IC에서 나오면 된다.
●둘러볼 만한 곳=천수만의 철새를 제재로 보기 위해선 탐조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서산버드랜드를 통해 탐조버스를 예약하면 된다. 무학대사가 창건했다는 서산 간월도는 일몰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서산버드랜드(www.seosanbirdland.kr) (041)664-7455.
●먹거리=천수만 간월도 앞에 굴밥을 잘하는 집이 있다. 큰마을영양굴밥은 굴, 호두, 은행, 밤, 대추 등을 넣고 돌솥으로 갓지은 밥이 맛있다.(041)662-2706. 보령시내에는 큼지막한 키조개를 맛있게 볶아주는 집이 있다. 철판에 올려 채소와 함께 빨간 양념에 볶아먹는 매콤한 관자 맛이 일품이다. 하니쌈밥(041)933-9333.
보령 황해원은 돼지고기를 듬뿍 올린 옛날식 짬뽕으로 유명한 곳
21세기에 들어와서 짬뽕은 많이 바뀌었다. 원래 이름처럼 고기류와 해물을 함께 넣고 뻑뻑하게 끓이는 것이 짬뽕인데, 지금은 그저 시원한 해물탕면이 되었다. 돼지고기를 듬뿍올린 옛날식 짬뽕으로 인기를 끄는 곳이 바로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에 위치한 황해원이다. 육사(肉絲)로 썰어낸 돼지고기가 칼칼한 국물에 슬며시 녹아들고 수타로 뽑아낸 면과도 퍽 어울린다.(041)933-5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