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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3:32-43, 엡 2:8-10 잘 살아야 할 텐데 ! 3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 일컬어지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는 길이 2,825m에, 높이는 227.5m에 이른답니다. 1933년도에 착공하여 1937년에 완공되었는데 그 당시 이 다리공사는 최대 난 공사였답니다. 다리가 워낙 높고, 바람이 거세 완공되기도 전에 추락으로 인한 사망 사고가 많은 것으로 먼저 유명해졌습니다. 건설회사에서는 추락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궁리를 하다가, 마침내 다리 밑에 그물망을 쳤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물망을 설치한 다음부터 단 한 사람도 추락해서 그물에 걸리는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물이 받치고 있기에 설령 추락해도 죽지 않는다는 안도감이 인부들로 하여금 자신 있게 일을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랍니다. 사고를 당해도 살 수 있다는 마음의 안정이 가져다 준 결과였습니다. 믿는 데가 있으니 맘에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삶의 든든함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결과도 하늘과 땅 차이만큼 벌어집니다.
어려서는 부모님의 희생적 사랑이 든든함입니다. 커가면서 형제와 친구도 든든함이 되고 공부 잘하는 것 , 좋은 직장, 따뜻한 가정, 풍족한 재산, 건강도 든든함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든든함은 삶의 여유를 수반합니다. 하지만 이런 든든함은 그리 오래 갈 수 없으며 절대적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조선 시대에 사람을 무시하는 젊은 관원 하나가 급한 공무로 강화도를 가게 되었답니다.
깊포 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화 나루를 향해 가고 있는 쪽배에서 이 관원이 나이 지긋한 뱃사공에게 입을 엽니다. “ 이보게 사공 그대는 인생이 무엇인줄 아는가 ? ”, “ 모릅니다.” “ 아니 그 나이 먹을 동안 무엇 했는가 ?” “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 바쁘다 보니 그런 생각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 “그럼 돈은 많이 모아 놓았는가 ?”, “ 살기 빠듯한 지라 겨우 자식들 키우며 초가 한 채에 채전 밭 하나뿐 입니다.”
그러자 이 관원이 혀를 차며 “ 아는 것도 없고 돈도 못 모으고 나이만 먹었지 인생 헛 살았구만 ”하고 꾸짖었습니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쯤에 왔을 때 돌풍이 일어 그렇잖아도 물살이 센 협곡인데 그만 배가 뒤집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때 상기된 얼굴로 불안에 떨고 있는 관원에게 뱃사공이 “ 나으리 헤엄칠 줄 아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관원은 난감한 얼굴로 “ 아니 난 헤엄치는 것은 배우지 못했네 ”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뱃사공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돈도 없지만 헤엄칠 줄은 압니다. ”말하고는 바다로 뛰어 들더니 헤엄쳐 사라졌습니다.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무엇을 아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입신양명하여 사회적 성공과 안정이 있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어도 한 가지가 해결 되지 않으면 결코 든든할 수 없습니다. 나는 누구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의 문제, 곧 죽음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결코 든든할 수 없습니다.
소름끼치고 잔인한 이야기지만 제 어려서의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저희 고향은 보신탕을 즐기는 동네입니다. 보신탕을 삼복 때만 먹는 것이 아니라 초상집에서도 먹고, 추수 할 때도 먹을 만큼 보신탕을 좋아하는 동네입니다. 그러다 보니 개 잡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마을 건조장 뒤편에 감나무가 있는데 동네 개는 거기에서 다 죽어 갔습니다. 개목에 줄을 매어 감나무 가지에 걸고는 잡아당깁니다. 그럼 개가 바동걸이지만 결국 끌려 올라가면서 목이 졸리게 됩니다.
저는 죽어가던 개들의 눈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에 개들은 우리에서 키우거나 묶어놓지 않고 다 자유롭게 키웠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들에 나가면 쫒아오고 멀리 외출하고 돌아오면 용케도 알고 나와 반가이 꼬리를 치며 달려듭니다. 빈 집을 지켜 주기도 하며 개는 사람들에게 한 식구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데 어울려 살아온 가족 같은 개를 때가 되면 사람들이 몸보신 하겠다고 죽이는 것입니다. 그 때 죽어가던 개들이 한갓 미물이지만 눈에 깊게 베인 한탄과 서운함과 두려워하는 죽음의 눈동자를 저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눈동자를 장성하여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것도 개가 아닌 사람의 눈에서 보게 됩니다. 육신의 때가 다 지나고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들의 마지막 눈빛이 바로 그 눈빛입니다. 제 나이 적지만 38 명의 죽음의 눈동자를 보았습니다.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그 눈빛은 똑같습니다. 허망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려달라 애원하는 그 눈을 대할 때면 나도 죽어야 하는 존재이기에 몸서리가 쳐집니다.
입신양명 , 부귀영달 다 누리고 한평생 멋지게 살았던지 못했든지 간에 죽음의 눈동자는 거의 동일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환희에 찬 눈동자를 보기도 했습니다. 이생의 눈을 가지고 이미 천상의 것을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17년 전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마지막 1 개월을 사셨던 제 외삼촌이 믿음 좋은 외숙모의 권유로 병석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목수로 세상을 떠돌며 평생을 술꾼으로 살다 겨우 60의 나이에 암으로 죽어가며 믿은 예수입니다.
죽기 3 일 전부터 “ 왜 이렇게 꽃이 만발하냐고 . 순백색의 비둘기들이 날아다닌다 ” 말을 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눈동자 속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나 회한은 찾아 볼 수 없는 절대적 든든함, 절대적 환희가 있었습니다. 배에 가득찬 복수가 빠지며 마지막 가쁜 호흡을 하시는 중에도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고 돌아가셨습니다. 3일 후 집에서 장지를 향해 상여가 나가는데 무지개가 장지까지 드리워져 부여군 홍산면 면소재지의 온 동네 사람들이 그것을 보았습니다.
저희 외삼촌이 죽음 직전 알게 된 지식은 예수님이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세주라는 사실하나였습니다. 교회 한번 나가지 못했고 주일 예배 한번 드리지 못했지만 너무도 확실하게 마지막 순간 예수를 믿었습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 하나가 죽음의 공포는 간데없고 환희에 찬 눈동자와 미소 띤 얼굴로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교회 안 나와도 구원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이 뭔지 말씀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실 때 두 명의 강도가 양 편에서 함께 죽어갔습니다. 한 강도는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강도는 비난하는 강도를 꾸짖고 예수님을 변호하며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 ”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 천국을 인정했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분이 오직 예수라는 사실을 믿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말씀하십니다. 틀림없는 사실이기에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를 두 번이나 강조합니다. 영원히 살고 죽는 일이 예수님께 있습니다. 강도 둘 다 똑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둘 다 똑같은 강도죄를 지어 사형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만 구원받아 영생에 들어갔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문제는 착하고 안 착하고가 아닙니다.
죄의 크기와 상관없습니다. 죄질과 상관없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모든 자의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읽은 말씀 그대로 오직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믿어지게 하시지 않으면 믿을 수 없습니다. 죽어가던 강도나 저희 외삼촌이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믿어 지게하시는 믿음의 선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도 죽음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암 말기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구원의 기회를 드리고 싶어서 대구에 다녀왔습니다. 전날 까지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정신을 놓고 계시다가 마침 제가 갔을 때 정신이 돌아오셨습니다. 죽음의 그림자인 황달끼가 가득한 눈에는 두려움과 회한이 교차된 채 눈물이 맺히고 있었습니다.
“ 어르신 아프시다는 소식 듣고 마지막으로 뵈올 것 같아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 고맙다며 제 손을 꼭 쥡니다. “ 어르신 온전치 못한 아내를 50 년이상 돌보며 자식들 다 키우기까지 참 훌륭한 생을 살아오셨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못 일어날 병에 걸리시니 인생이 한심스럽고 두려우시지요 ?” 그리 여쭈었더니 “ 예”그럽니다. “어르신 이 책이 뭔지 아십니까 ?” 성경책을 들어보이면서 “ 이 책은 하나님의 책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어르신을 사랑하셔서 어르신의 죄를 대신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에수님이 어른신의 죄를 대신 가지가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고 약속되어 있습니다. 내 어머니도 안 믿다가 작년 이 맘 때 돌아가셨는데 믿고 천국 가셨습니다. ‘평생 믿지 않았는데 무슨 염치로 이제와서 예수를 믿나 ?’그런 생각이 드시겠지만 죽어가던 강도도 믿고 천국 갔습니다.
믿으면 우리 어른신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 가실 수 있습니다. “ 말씀 드렸더니 ” 피식“하고 힘없이 웃습니다. 그러더니 “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 하시며 잡은 손을 놓더니 “ 가세요 ” 라고 말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냥 나올 수 없어서 기도 해 드리고 싶어서 여쭈었더니 기도까지 거부하십니다. 보통 믿지 없는 사람도 마지막 순간이 되면 기도해 드린다 하면 좋아하시는데 이 분은 손사래를 치며서 싫어하셨습니다.
안 믿는 것도 믿음입니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난다는 잘못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참 믿음이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강도는 예수님이 믿겨 졌지만 그렇지 못한 강도는 천국이 안 믿겨지는 믿음이 꽉 차있기 때문에 구원에 실패한 것입니다. 영생 구원은 진실로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함이 없이는 절대로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지적동의가 아닙니다. 믿음은 생각의 정리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물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믿어 지십니까 ? 그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선물이이기에 절대적인 든든함이 있는 것입니다. 든든함입니다. 모든 것을 안다고 해도 예수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몰라도 예수를 알면 다 아는 것입니다. 잘 살아야 합니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 정말 예수 믿으며 잘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와 문명이 우리 육신의 때에는 필요하지만 목숨이 마감된 영혼의 때에는 전혀 무용지물입니다.
이 세상 7-80 년 사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목숨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생명이라 하지 않습니다. ‘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 목숨입니다. 이 목숨은 숨을 쉬지 않으면 끝나는 겁니다. 그것을 죽었다 그럽니다. 이 목숨은 예수 믿어 영생 복락 얻으라고 있는 것입니다. 목숨이 마감된 후에는 두 번 다시 영생을 얻을 기회는 영원히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그 분의 영원하심의 표현은 바로 영생이고 그 생명을 예수님 안에 숨겨놓셨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5:12) 그러므로 천지간에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첫 사람 아담으로 부터 내려진 원죄의 삯인 죽음을 끝내시고 영원히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숨 못쉬면 그것으로 죽어버리는 인생에게 영원히 사는 생명 주시려고 예수님은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초개와 같이 버리셨습니다. 이 죽음은 십자가에서 인간이 죽어 멸망 받아야 할 억만 죄를 다 갚아 주신 위대한 죽음입니다. 죄와 저주는 가져가시고 대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과 축복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자에게 이 영생의 복을 실행하기로 성경을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의심 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2000 년 동안 너무나도 확실하게 이 영생의 복이 실행되었습니다. 8 년 전 인천에 있을 때 인천 의료원 앞쪽에 월마트가 있었습니다. 그때 거기 게시판에 조심하라는 주의문이 붙었습니다.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할머니 한분이 매장에서 어떤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아빠를 유심히 보더니 눈물이 글썽이며 말합니다.
“애기 아빠! 애기 아빠는 1년 전 죽은 내 아들 00 와 똑 닮았네 그려. 꼭 내 아들 같구만 , 이 보오 애기아빠 나 소원 하나 있는데 들어줄래요 . 내가 아들 이름을 부를 테니 다정히 대답한번 해주지 않겠소? ” 눈물을 글썽이며 부탁하는 할머니의 청에 애기아빠와 애기엄마는 짠한 마음으로 승낙을 했습니다. 잠시 후, 계산대에서 할머니는 “아무개야 ”하고 다정히 불렀고, 애기아빠는 “예, 엄마, 먼저 가세요.”라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애기 엄마까지 “ 예 어머니 먼저 가세요 , 금방 갈께요 . ” 뜨거운 마음으로 인사했습니다. 그리곤 부부는 쇼핑을 다하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는데 몇 배의 계산이 나왔습니다.
계산이 틀렸다고 항의하자 계산원이 그랬습니다. “아까, 당신 어머니 것마저 당신이 계산한다고 손을 흔들었잖아요.”
아뿔사 사기였습니다. 그러나 비록 사기지만, 손을 흔들며 대답했기에 억울하지만 애기 아빠가 다 갚아야 했습니다.
믿음이 그런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 순간 내가 받을 저주와 죄도 다 전가됩니다. 예수님께로 옮겨갑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나님이 초청하실 때 손을 번쩍 드는 순간,
내게 있는 모든 죄와 저주와 멸망은 예수님에게 전가되고 그 분이 가진 생명과 축복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임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의 허물과 죄와 병을 위해서 그 분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믿기만 하면 이 놀라운 축복을 즉각 시행하시겠다고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들라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 ? 나사로야 나오라! 삭개오야 내려오라 ! 시몬의 아들 요한아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
죄 때문에 지옥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구세주를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 가는 겁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신해 죽이시고 내게 영생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틀림없이 믿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죽음의 끝자락에서 믿기만 해도 영생의 문이 열리는데 이렇게 젊어서부터 예수를 믿는다면 얼마나 큰 축복을 받겠습니까 ?
믿음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꿉니다. 믿음은 인생의 힘이요. 소망이요. 활력이요 . 비전입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믿음은 기적을 창출합니다. 믿으면 어마 어마한 일이 일어납니다.
마가복음11:23을 보면 이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우라 할 것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않으면 그대로 된다합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 진실되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민자 집사님이 이번 주에 당신에게 일어난 간증을 올렸는데 그 간증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은 "이명" 을 아시나요? (속칭-귀울림이랍니다.)
남의 얘기로만 어렴풋이 들었고 ,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로만 알았는데 어느 순간 내 귀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겨울바람에 낙엽 굴러가는 소리같고, 지하실의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같은, 표현하기도 어려운 소리가 왼쪽귀에서 들려지는 것이다.
황당했다. 병원을 찾았다. 특별한 약이 없는, 원인을 못찾는 불치의 병으로 고칠 수 없다는 의사의 판단을 들었다.
딸이 근무하는 한의원을 찾아갔다. 침으로 시술을 하였지만 소리의 강도는 줄어들었으나 완치는 안되었다.
두 달 정도를 다니다 그만두었다. 어떤 사람은 아주대서 수술도 받고 온갖 치료를 했지만 10년 넘게 지금도 못 고쳐진 사람도 있다는 말을 남편한테 들으면서 다른 병원은 찾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왠지 하나님이 고쳐주실꺼란 믿음이 생겨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도 뿐이란 걸 느꼈다.
남들은 알 수 없는, 오직 혼자만이 들려지며, 고요한 시간엔 소음이 더욱 또렷이 들리는-뼈가 부러진 것도 아닌, 상처도 아닌, 아픈것도 아닌 잠자리에선 혼자스트레스 받는, 어이없는 병에 걸려 혼자 끙끙대며 마음의 병을 앓았다. 기도를 시작했다. 자면서도 했다, 목사님이 치유 기도를 선포 하실 때는 귀를 붙들며 매달렸다. 오늘은 안들리나?
들린다. 오늘은 안들리려나? 또 들린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역사 하실것을 믿기에....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일년이 넘어갔다 . 여전히 소리는 들린다. 또,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기도도 잊었다.
어느 날 문득, 참! 그랬었지 귀에서 소리가 났었는데. 안들린다. 내일은? 내일도 안들린다. 모레는? 모레도 안들린다. 할렐루야다 !
나는 기도 하고 잊었었는데 우리 하나님은 어느새 나의 병도 치료하셨다.
혼자 열받고 짜증낸 것이 꽤 지난것 같다. 생각해보니 몇 달은 지난 것 같다 이제 서야 생각이 났던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은 역사 하셨던 것이다. 미련한 중생은 이제 서야 깨달았다.
하나님은 내가 잊고 있을지라도 당신은 절대로, 나처럼 건망증이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당신만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틀림없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
나만의 고통이었고, 나에겐 절실했던 두번째 기도 응답이었다.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 이렇게 생활에 기쁨되고,
믿고 기도하는 것이 이렇게 감사 한마음으로 되돌아오니 어찌 기도 하는 것이 즐겁지 않으리오!
하나님은 나에게 기도를 하게끔 인도하시는 것 같다. 그것도 즐겁고 기쁜맘으로... 당신만을 의지 하도록 역사하심을 느낀다. 그 감사함이 눈물이 되어 나를 감동시킨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얼마를 하여도 그저 감사밖에는 할말이 없다. 하나님 ! 감사합니다. 성령 충만케 하옵소서 ! 아멘
진리의 눈으로 보면 육신적으로 해뜨면 없어질 안개와 같은 인생 살았다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정말 예수 믿으며 천국만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정말 예수 믿으면서 잘 살아야 합니다.
진실로 믿으면 삶에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납니다. 의심치 아니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인내하면 반드시 응답받는 축복이 일어납니다. 낙심치 않으면 반드시 영광의 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신실하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능력이요 축복이요 힘입니다. 최고의 축복이며 든든함입니다.
이렇게 잘 믿어 한 평생 잘 사는 길이 분명이 열리게 되고 마지막 날에 웃으며 영생얻는 성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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