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일찌감치 투표를 하고 왔다. 왕왕 울려대던 선거차량의 스피커소리가 멈춘 거리엔 바람도 없이 봄비가 고분고분하게 내리고 있었다. 등이 휘도록 허리를 굽히고 목이 쉬도록 표를 부탁하던 후보들도 지금쯤은 조용히 기도하는 심정으로 보내고 있을 터이다.
후보들의 선거공약과 출마의 변들은 저마다 절실했다. 모두 다 국민을 위해 일을 잘 할 것 같은 최고의 ‘선수’같아 보였다. 하지만 비슷하다는 것은 별로 차별성이 없다는 의미도 된다. 기업이나 각종 클러스터를 지역에 유치하여 일자리를 늘리거나 국책사업을 끌어와 지역의 개발과 성장을 돕겠다는 공약들이 그러했다.
아직도 많은 후보들은 이미 철지난, 껍데기만 남은 그러한 공약들을 최고의 청사진이라도 되는 양 유권자들에게 제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대부분 지방토호들과 결탁한 기득권자들만의 ‘지역개발’이 되거나, 대기업에만 막대한 이익을 안겨줄 ‘국책사업’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을 이제 아는 사람은 안다. 그래서 그러한 지역개발과 국책사업이 우리네 민생을 해결해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도 안다. 생각해보라.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늘어나는 것은 빚이고 올라가는 것은 물가였지 않았는가? 그런 공약들이 우리 서민의 삶과는 얼마나 무관한 것이었던가?
후보들의 선거공약은 그래서 달콤한 사탕처럼 보이기도 한다. 잠시잠깐 입에 물려줄, 그러나 금방 녹아버리는 사탕. 그 순간만 쓰디 쓴 현실을 살짝 잊게 하는 단맛. 그들이 제시하는 ‘성장’과 ‘발전’의 미래가 이처럼 달콤하리라는 일시적인 착시. 우리는 잠시 그렇게 달콤한 환상에 젖어보는 것일 뿐.
그것이 ‘사탕’이고 ‘환상’인 것은 앞으로 경제가 호황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도 처음엔 소위 7.4.7공약이라는 것을 내놓고 호언장담하면서 출발했다. 지금 그 결과가 어떠한가? 하긴 국제유가는 나날이 고공에서 춤을 추는데 앞으로도 어느 누가 ‘경제’를 살릴 수 있단 말일까. 만일 정권이 바뀐다 해도 ‘간판만 바꿔달고 똑같은 메뉴를 내놓는 식당’처럼 될 가능성이 그래서 없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경제가 '성장’하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은 게 좋다는 얘기다. 기업이나 산업은 무한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원이나 자연은 무한정 리필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우상처럼 떠받들어왔던 그 경제는 알고보니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불러와 대량 쓰레기만 양산하는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경제였다. 강자는 더 강해지고 약자는 더 약하게 하는 폭력적이며 비민주적인 약육강식의 경제였다. 석유에너지를 빨아먹고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반생태적인 경제였다. 그러므로 석유고갈이 오면 일시에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경제다. 그뿐 아니다. 사악한 금융자본이 고도의 사기술로 전 세계를 상대로 이자놀이와 투기장으로 만들어 버린 해괴한 경제다. 블레이크 없는 위험천만한 경제다. 파국으로 끝나고 말 비지속적인 경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여전히 대다수의 후보들은 이런 ‘나쁜 경제’ 이야기는 쏙 빼고, 그럴듯한 껍데기만 내보이며 ‘착한 경제’이야기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최고인 듯 최선인 듯 떠들고 있다. 우리는 이미 기막힌 금융위기까지 겪었다. 또다시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우리에게 닥칠지 모른다. 무시무시한 기후재앙과 핵재앙도 우리 곁에 언제나 상존한다. 식량위기가 언제 닥칠 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닥칠 수도 있다.
나는 그 어렵다는 경제학 공부를 한 적도 없고, 그래서 복잡한 경제논리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경제를 모르는 사람도 상식적인 예상은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파국이 언제든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경제공약’들은 그래서 허황해 보이는 것이다. 석유고갈이 오면 식량부족은 불을 보듯 뻔하다.(농약, 비료, 수송, 비닐하우스 등등도 석유 없인 불가능하다) 더구나 점점 커가는 지구촌 기후재앙은 남의 일이 아니다. 대규모 아사사태가 올 수도 있고 하루아침에 삶의 모든 것이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
-보석으로 장식된 마차를 타고 유리구두를 신고 무도회에 나간 신데렐라의 ‘꿈’은 땡, 땡, 자정을 울리는 시계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난다. 아름다운 마차는 호박덩이가 되고 늠름한 백마들은 시궁쥐가 되어 도망가 버린다.- 석유시대의 종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왜 이런 동화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경제는 생태계와 비슷하다. 다양성이 건강한 생태계의 생명이듯이 경제도 다양성이 생명이다. 생태계에서 특정한 종이 생태계를 지배하면 결국 멸종을 불러온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우리 경제는 대기업과 자본의 독점화가 서민생활을 파탄나게 하고 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1대 99의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정치인들이 여전히 대기업과 자본권력만 이롭게 할 개발과 성장 타령이나 하고 있다는 게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자원과 자연의 한계, 즉 생태적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내놓는 그들의 공약은 텅빈 껍데기 이론일 뿐이다. 거창한 경제 공약을 하는 후보일수록 그리고 큰일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짝퉁 정치인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동차나 휴대폰 수출도 아니고 기업유치나 국책사업도 아니다. 무엇보다 서둘러야 할 것은 곧 닥칠지도 모를 위기상황에 대한 대책이다. 식량자립과 에너지자립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논의하는 정당도 정치인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늦었지만, 그러려면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가 ‘개발’이니 ‘성장’이니 하는 쇳소리 쩔렁대는 요란한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석유고갈과 기후변화에 대비하여 ‘현실’을 논의해야 한다. 그것이 허황한 경제공약보다 훨씬 중요하다. 저것들이야말로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 것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우리네 삶을 뿌리부터 뽑아버릴 수 있는 악재 중 악재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악재를 전제하지 않은 경제는 사상누각일 뿐이다.
궂은 날씨이지만 아무쪼록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개인에게는 단 한 표의 미미한 힘이지만 그것이 모여 큰 것을 결정하게 된다면, 그것은 큰 힘이 된다. 그 힘으로 모든 껍데기정치와 정치인을 물러가게 하고 알맹이만 남게 했으면 좋겠다. 그래선지 오늘은 자꾸 신동엽 시인의 그 시가 떠오른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하던, 그 절절한 문장을 자꾸만 읊조리게 된다.
첫댓글 공감의 글,,잘 읽고 갑니다.. 4월에 껍데기들이 과반수를 차지했군요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단단하게 뭉쳐져 있는 저 집단에너지를 해체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