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기의 요행수(僥倖數)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요즘 들어 요행수(僥倖數)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그런데는 어떤 사고와 관계가 있는데, 얼마 전에 광주광역시 오치동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한데 그것은 실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다. 퇴근하던 한 가장이 벼란간 옥상에서 떨어진 물체에 깔려죽은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가 투신하던 몸뚱이었다.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질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고 무슨 날벼락인가 싶기만 하다.
사고의 전말은 이렇다. 한 공직자가 늦은 시각까지 일을 하고 밤늦게 퇴근하던 때였다.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현관앞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남편이 저 쪽에서 걸어오는 것을 발견하던 순간이었다. 한데 이때 느닷없이 어떤 물체가 공중에서 떨어지며 그를 덮쳤다.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가족에게 말도 건네기 전에 쓰러지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떨어진 물체는 어떤 사람이 자살을 하려고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비극이있을 것인가.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지 싶다.
당시 이를 지켜본 가족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현관에 나와있던 부인은 만삭이었다. 큰 아이는 고작 여섯 살.
그 일을 떠올리면 세상은 도처에 죽음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한다. 그러니까 사는 것은 말하자면 요행수인 셈이다. 요행수를 생각해 본다. 이말은 ‘운수보기’와도 일맥상통한다. 한데 이 운수보기는 당면한 하나의 일진상의 ‘운수'이면서도 이 말이 갖는 관형격은 운수보기로 살아간다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비명횡사를 한 사람은 평소 성실하기로 소문난 공직자였다고 한다. 그날도 그는 늦은 시각에 퇴근을 하고 있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하필 그 시각 그 지점에 덮쳐온 낙하물은 다름 아닌 취업의 압박에 시달려온 대학생이었단다. 그는 자신을 비관한 나머지 죽어갔지만 한 가정을 무너뜨려놓고 말았다.
덮친 자와 덮침을 당한 사람. 두 사람은 현장에서 손 쓸 새도 없이 즉사하고 말았다. 사망한 공직자는 전도유망한 곡성군청 홍보주무관. 그는 때마침 인기를 끄는 영화 ‘곡성(哭聲 )이 지자체 이름 곡성(谷城)과 동음이라서 그 영화의 인기를 지역 홍보에 연계시키고자 홍보 담당자의 입장에서 열심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날은 무슨 얄궂은 운명의 날이었을까, 그는 이 날도 늦도록 일하다가 퇴근을 서둘렀다. 집 앞의 현관에 도착한 시각이 밤 아홉시 오십분. 평소의 공무원 퇴근시간이 여섯시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해서 비보를 들으며 말문이 막히고 어안이 벙벙해질수 밖에 없다.
요즘에는 느닷없는 사건들이 자주 일어난다. 엊그제는 예전엔 들어보지도 못한 조현병자가 생명부지의 한 여성을 공중화장실에서 살해하는 엽기적 사건이 발생했다. 소위 ‘묻지 마 살인’사건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범인은 끔찍한 사건을 저질러 놓고도 TV 앞에서 전혀 죄의식이 없어 보이는 행동을 했다. 유체이탈화법을 써서 마치 남의 말을 하듯이 횡설수설 했다. 나는 그가 내뱉는 말을 듣고서 경악 금 할 수가 없었다.
“누구라도 먼저 만나는 사람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망한 사람 말고 어느 누구라도 그 장소에서 마주쳤다면 희생이 됐을 것이라는 말인데, 이 얼마나 섬뜩한 발언인가.
밤늦게 화장실에 가는 여성을 노려 뒤를 좇아가 무참하게 살해한 이 천인공노할 사건은 이제는 어디도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를 뒤받침 하듯 얼마 전에는 등산하는 중년여성을 한 정신병자가 무참히 살해했다. 또한 이와는 다른 것이지만 스크린도어에 끼어 죽은 십대 근로자. 그리고 남양주 폭발사건 등등.
후자의 두 사고는 아무리 과실이라고 쳐도 우리가 처한 사회 안전망을 생각하면 이토록 취약한지 한숨만 나온다.
하루거리로 전해지는 이런 사건 사고. 이런 걸 생각하면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안감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요행수요, 운수보기라는 생각만 든다. 곳곳에 허점이 너무나 많이 도사리고 있어서 걱정이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은 대화제의를 무시했다며 무자비한 보복 운운 하고 있으니 불안은 더욱 가중되는 느낌이다.
요사이는 청소년들에게도 함부로 말을 못하는 세상이라고 한다. 한 지인은 젊은 사람에게 반말을 했다가 따지고 드는 바람에 혼쭐이 났다는 말도 들었다. 잘한 행동은 아니지만 감정을 자제 못하고 대들며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니 세상이 참 불안하고 안타깝다.
이런 지경에서는 그저 매사에 조심조심, 남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고 거스르는 행동은 모른 척하며 오직 자기 안전만 신경 쓰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 현실이 실로 개탄스럽고 답답하고 염려가 된다. (2016)
첫댓글 참으로 세상은 문명이 발달한 만큼 끔찍한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굶어 죽은 사람이 속출하고,
북한에서는 김일성주석의 사위도 총살당한 형국을 상기하면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곡성군청 홍보담당 양대진주무관 죽음은 날벼락 같은 사고라 생각하여 애석하기 짝이 없습니다. ㅜ ㅜ ㅠ ㅠ
그 사건은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곡성(谷城. 哭聲)과 관련하여 홍보업무를 본 직원이라니 기이하다는 생각도 들어 소름이 끼칩니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 따름입니다.
'요행'이라는 글자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불행한 사건들과 관련하여 별의별 생각이 교차합니다.
어떤 시람은 엄청난 흙더미에 깔려서도 받쳐주는 무엇이 있고 구해주는 사람이 있어 무사히 살아나오고
어떤 사람은 누가 보아도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걸 보면 요행수를 무시할 수도 없을 듯합니다. 하늘이 주신 목숨을 끊는 일도 아니 되지만 꼭히 죽으려거든 주위를 살펴 마지막에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나 말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어른이랍시고 요즘의 청년들에게 무어라 할 게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떻든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열에 다섯은 백수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청년들의 눈에는 핏발이 서있고 기성세대를 원망하는 눈빛을 감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 더러운 알바자리도 없어 전전긍긍하는 청년들의 아픈 가슴을 하루속히 치유해주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겠습니다.
하도 불안한 세상에 살고 있다보니 하루 하루 하는 것이 요행수라는 생각만 듭니다.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짜서 젊은 이들이 취업을 못해 죽고, 안전이 담보되지 못해 죽은 일은 막아야 하겠습니다.
하루하루 살아있는 게 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병리현상은 더 심해지고 자살을 부추기는 일들도 많고.. 자살의 원인이 대부분 우울증이고 우울증의 상당부분이 돈문제에서 비롯된다고 하던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 사고는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한 가장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그것도 바로 자기사는 동 현관앞에서 비명횡사를 당했으니 기가막힌 비극이요 참사가 아닐수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