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20일(주일) 낮설교 - 부활절 제5주 -
제자들의 우선순위
( 사도행전 1 : 1~11 )
Ⅰ. Story. 「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 」 창골산 예화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에 따라 사람들의 인생길은 여러 갈래로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만약 “내가 걷는 이 길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인가?”에 최우선을 두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불의 전차”로도 잘 알려진 스코틀랜드의 올림픽영웅 “에릭 리델”(Eric Liddell)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1924년 초, 6개월 앞으로 다가온 파리올림픽대회의 경기 일정이 발표되면서 영국전체는 한바탕 소란에 빠졌습니다. 국가대표육상선수로서, 발군의 실력과 겸손한 언행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에릭 리델이 돌연 출전포기를 선언했던 것입니다.
“저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 그의 불참사유는 사회적으로 더욱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조국의 명예를 저버린 위선자”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는 자신의 소신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육상경기는 나의 목표가 아니라, 주님의 종으로 쓰임받기 위한 하나의 훈련과정일 뿐이다. 나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달린다.” 그의 중심은 이미 너무도 확고히 서있었습니다. 그의 불참을 안타까이 여긴 주변의 권유로 평일에 경기가 열리기로 계획된 400m로 출전종목을 바꾸었습니다. “내가 100m 경기를 포기하고 400m 훈련을 시작하자, 비로소 400m가 진정한 나의 종목임을 알게 되었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영영 400m 출전은 엄두도 못 내었을 거야.” 확신과 감사에 찬 어조로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6개월 후, 400m 올림픽결승트랙에 서게 된 에릭에게 대표팀의 안마사가 쪽지를 건네주었습니다. 거기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리라”는 성경구절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치 못했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달리는 특유의 어설픈 폼으로 에릭이 처음 결승테이프를 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47.6초의 신기록을 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100m 전문인 그가 짧은 훈련기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우승을 할 수 있었는가를 궁금해 하는 기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처음 200m는 제 힘껏 최선을 다해 빨리 달렸고, 나머지 200m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더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단번에 스코틀랜드의 영웅이 된 에릭 리델, 그는 보장된 부귀와 명예를 버리고, 부모님이 선교사로 사역하는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평생에 걸쳐 “나의 계획이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인가?”를 되물었던 에릭 리델. 인생이라는 경주에서 그가 추구했던 것은 영원히 썩지 않을 면류관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선교사가 되어 중국에서 1945년 병사할 때까지 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Ⅱ.
지난주에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생각하며 은혜를 나눴습니다. 오늘은 지난주 그 말씀과 연속선상에 있는 말씀입니다. “제자는 제자를 삼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제자로 살아갈 때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려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란 어느 것보다도 먼저 생각하고 고려해야하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이 우선이라면, 에릭 리델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주일을 범할 수 없습니다. 주일을 한번쯤 빼먹는다고 당장 어떻게 될까요? 아닙니다. 약간 마음의 거리낌이 있을지 몰라도 별일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소홀히 하면 할수록 그 만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누가 가장 가깝습니까? 가장 많이 생각하고,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나라’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기간 내내 하나님나라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을 때도 역시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직전에 보혜사 성령님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요 14, 16장). 그런데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에도 역시 성령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에는 일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관심 가지셨던 것은 늘 ‘그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씀은 바로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분의 제자입니다. 그분의 관심사가 곧 우리의 관심사일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우리 삶에 최우선순위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Α. 제자의 우선순위는 ‘하나님나라의 일’입니다(3).
1. 예수님은 우리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제자란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고, 스승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스승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니 제자로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나라’에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하나님나라를 가르치셨는데, 하나님나라가 무엇일까요? ‘나라’가 무엇입니까? 나라의 경계는 바로 통치권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영토는 어디든지 통치권이 행사됩니다. 독도나 마라도나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이라도 우리의 영토에는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행사!
3. 예수님의 관심은 바로 하나님나라였습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 원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이것이 예수님의 제1성(聲)입니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전해야 합니다.
Β. 제자의 우선순위는 성령세례를 받는 것입니다(4-5).
1. 주님은 제자들이 증인이 되길 원하셨지만, 제자들을 그냥 내보내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 확신과 능력을 덧입혀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성령세례를 받는 것은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성령께서 그 사람과 함께 하시고, 능력의 팔로 붙잡아 주실 수 있습니다. 부모가 함께 있으면 어린아이를 붙들어줄 수 있습니다. 아이는 힘이 별로 없다 하더라도 부모의 힘이 아이의 힘이 됩니다.
3. 어린아이는 아주 당연하게 부모에게 무엇이든지 요구합니다. 사탕이든, 과자든, 빵이든 요구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없이 혼자 있는 아이는 감히 요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는지 분명합니다. 성령세례를 받을 때, 권능이 임하는 것입니다. 마치 탱크와 같음!
Γ. 제자의 우선순위는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8-11).
1.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요 20:22) 바로 성령을 받을 때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체험할 때,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이 생깁니다.
2. 8절 말씀이 분명히 보여주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증인이 되리라” 그러니까 성령 받는 것과 증인되는 것은 거의 동시적인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성령 받았는데 증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생까할 수 없는 일입니다.
3. 제자들의 우선순위는 바로 복음의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먹고, 마시고, 일해야 합니다. 복음을 생명처럼 여기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라고 주님은 우리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제자로서 직무유기를 하는 것입니다.
Ⅲ.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고,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선순위’라고 합니다. 군인이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는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의 우선순위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남겨주신 명령이 우리가 행해야하는 ‘최우선순위’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나라의 일에 최대의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제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성령세례를 받는 일이며, 성령의 권능으로 무장하여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름 받은 우리들은 증인의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증인”(martus)이란 말은 “순교”(martus)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복음의 증인이 된다는 말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는 말입니다. 생명을 걸고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사람 = 그가 제자입니다!